전북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에 가면 견우직녀가 된 석불입상이 서 있다. 200m의 거리를 두고 마주하고 있는 이 석불입상은 일 년에 단 한 번 12월 해일 자시에 만난다고 한다. 두 석불은 일 년간의 회포를 풀다가 새벽 첫 닭이 우는 소리가 나면 제 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 석불입상은 석불이라기보다는 마을 입구에 세우는 장승이나, 묘 앞에 서 있는 석인과도 같은 모습이다. 다만 이 석불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머리에 4각형의 높은 관과 보개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보물 제46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이 석불입상을 보기 위해 비가 부슬거리는 날 길을 나섰다. 익산 왕궁리 터와 1km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왕궁리 석탑도 볼 겸 겸사겸사 길을 나선 것이다.

 

빗길에 만난 고도리 석불입상

 

부슬거리는 비를 맞으며 서로 마주하고 서 있는 두 기의 석불입상. 보기만 해도 마음이 찡하게 만든다. 서로 마주하고 있는 석불입상이 어떤 이유에서 이렇게 멀리 있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마을에서는 예전에 이곳에 커다란 수문이 있어, 수문의 허를 보완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정도의 거리에 수문의 허를 막았다고 보기에는 맞지가 않다. 그런 커다란 수문이 있었다면 아직도 흔적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수문의 허를 보완하기 위해 석불입상을 세웠다는 것도 이해가 가질 않는 부분이다. 만일 그렇다고 하며 이 석불입상은 불상이기보다는 석장승으로 보아야 타당하다. 아마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이 두기의 불상이 옥룡천을 사이에 두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두기의 석불입상은 견우직녀처럼 일년에 단 한 번 12월 해일 자시에 만난다고 전해진다.
  
사다리꼴의 화강암에 지극히 절제된 수법으로 표현을 하였다. 눈은 가늘게 떴으며 입은 약간 벌리고 있어 웃는 상이다.

 

두 석불입상이 부부라는데

 

높이가 4,24m에 화강암 세로 사다리꼴로 조성이 된 이 석불입상은 마을 안쪽에 있는 서 있는 불상이 여성이고, 왕궁리 쪽으로 서 있는 것이 남성이라고 한다. 두 기의 석불입상은 조각을 한 수법이 동일하다. 사다리꼴의 몸체에 팔이 따로 없으며, 마주한 두 손을 깍지 낀 모양만 주변을 파서 돋을새김한 것처럼 조각을 하였다. 웃음을 띤 얼굴은 두 눈이 가늘게 표현을 하였고, 입은 약간 벌어져 있다.

 

전체적인 모습으로 보아서는 석불이라기보다는 마을의 수호신의 역할을 하는 석장승에 가깝게 표현이 되었다. 다만 고려시대에 들어서면서 석불의 조각기법이 표현을 절제하고 있기 때문에, 고려시대의 석불입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남 석불입상과 마주하며 마을 안쪽에 서 있다.

 

두기의 마주하고 있는 석불입상.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흡사 두 석불입상의 마주하고도 만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듯하다. 올 12월 해일에는 동고도리에 가서 두 석불입상의 해후를 보아야겠다는 미련한 생각을 하면서 돌아선다. 아마도 문화재 답사를 하면서 이렇게 이별이라는 아픔을 수도없이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아픔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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