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전화를 한통 받았다.

 

기자님 저 ○○인데요.”

,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

궁금한 것이 있어서요. 이른 시간에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참 선뜻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질문의 요지는 이렇다. 본인도 정부 모 부처의 블로그 기자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블로그에도 글을 올리고 해당 부서 게시판에도 글을 올리는가 보다. 그런데 갑자기 그 부처에서 기자들에게 휴대폰으로 촬영한 사진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제대로 취재를 하지 않은 기사는 올리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사실 요즈음 블로그들은 기본적으로 고가의 카메라를 소지하고 있다. 그것은 블로그라는 일인미디어들이 자신의 블로그를 방분하는 사람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사진 실력들도 프로급을 능가하는 블로그들이 상당수가 있다.

 

 

취재를 할 때는 꼼꼼히 현장에서

 

사실 취재를 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사전에 충분한 공부를 한 후 임해야 한다는 것도 번거롭지만, 취재를 마치고나서도 많은 자료를 찾아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기사란 활자로 남기 때문이다. 자칫 오류를 범할 수도 있는 것이 기사를 쓰는 일이고보면, 많은 공부를 하지 않고 써 내려가는 기사는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문화재나 역사적인 기록을 하는 기사를 쓴다면, 더욱 꼼꼼하게 모든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칫 엉뚱한 기사를 써서 남의 비웃음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로 나의 경우는 문화재 하나를 취재할 때, 문화재 한 점의 사진을 30장 이상을 찍는다. 행여 빠트릴 부분이 있을까봐, 부분 부분을 세밀하게 촬영하기 때문이다.

 

 

기자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요즈음은 휴대폰의 성능이 뛰어나다. 휴대폰의 화소도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사실 카메라를 지참하지 못한 경우에는, 휴대폰이라는 이기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그리고 SNS가 활성화되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사진을 촬영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에 글을 내보낼 때는 휴대폰보다 실용적인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식으로 기사를 쓸 때는 사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기사에 인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만일 그 기사를 인쇄물로 제작을 하려고 하면, 화질이 좋은 것 같은 사진도 뭉그러지거나 깨어지기 때문이다. 취재기자들이 그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좋은 사진 한 장을 찍겠다고 이리저리 뛰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취재를 할 때 마음가짐부터 달라야

 

기자는 취재에 임할 때 먼저 취재를 하겠다고 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카메라와 수첩, 그리고 필기도구는 기본이다. 언제 어디서 기삿거리를 만날 줄 모른다. 하기에 작은 소형카메라라도 몸에 지니는 것은 취재기자의 근본이다. 요즈음은 가격대가 착한 카메라도 성능이 뛰어나다.

 

기자가 취재를 하고, 그것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하는 신분임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불필요한 사진을 찍어서 자신의 얼굴을 알리려고 하지말자. 독자는 기사를 보고 싶은 것이지, 기자의 얼굴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다. 불필요한 사진이 나오는 기사, 초점도 제대로 맞지 않는 기사를 보면서 좋은 기사라고 이야기할 독자는 아무도 없다.

 

독자들의 수준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기자들도 그 독자들의 수준을 웃돌아야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날로 변화하는 미디어 시대에 뒤처지는 불량신문과 미숙한 기자 밖에는 되지 않는다. 정성을 다해 써내려가는 기사 한 줄. 그것이 많은 독자에게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어른들이고 아이들이고 간에, 사람들마다 휴대폰을 지참하고 다닌다. 휴대폰의 기능도 날이 갈수록 발전을 해, 작금에 들어서는 컴퓨터가 갖고 있는 기능을 거의 다 이용할 수 있을 정도이다. 물론 사람들 중에는 고집스럽게 구형 핸드폰을 고집하기도 한다, 전화와 문자만을 이용할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내가 휴대폰을 바꾼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물론 취재생활을 하다가 보면, 수시로 전화를 자주 거는 편이기 때문에 전화가 없으면 생활하기가 수월치가 않다. 또한 여기저기서 보도자료 등이 수도 없이 날아오기 때문에, 전화가 없는 생활이라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휴대폰을 이용하는 방법은 다 다르다. 누구는 게임을 즐겨하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영화를 보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게임이나 영화를 보는 것은, 전혀 무관한 일이다. 그렇다고 전화를 하고 문자를 주고받는 데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꼭 필요한 기능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이용하는데 있어 필요하기 때문이다.

 

블로그와 신문 열람에 이용해

 

내가 주로 휴대폰을 이용하는 것은 정해져 있다. 휴대폰을 처음 받을 때 기존의 프로그램 말고, 몇 개의 창이 화면에 보인다. 오마이뉴스, e수원뉴스 등의 신문과 페이스 북의 창이다. 그리고 늘 열어보는 다음 뷰의 창이 하나 더 있다. 언제 어디서나 이 휴대폰을 이용해 접속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나 e수원뉴스의 창은 주로 기사를 읽는데 이용한다. 그렇다고 휴대폰에서 바로 기사를 쓸 수는 없다. 사진을 정리해야 하고, 짧은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 어떤 기사를 썼는지, 그리고 그 내용은 무엇인지 등을 휴대폰을 이용해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휴대폰이 주는 편리함이란 대단한 것이다.

 

 

다음으로는 바로 다음 뷰의 창이다. 다음 뷰에는 수시로 올라오는 글들이 많다. 설정을 해 놓으면 내가 구독하는 블친들의 글이 다 나타난다. 거기서 추천을 누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블로그의 특성상 상호간에 서로 추천을 눌러주는 것은, 예의처럼 되어있다. 꼼꼼히 시간마다 확인을 해 추천을 누르고는 한다.

 

실시간으로 이용하는 페이스북

 

요즈음 들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은 바로 페이스북이다. 페이스북은 SNS(소셜네트웍서비스)의 강자라고 한다. 현장에서 사진을 찍은 후, 그것에 바로 설명을 적어 페이스북에 올린다. 실시간으로 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던지 바로 사람들에게 알릴 수가 있다.

 

 

휴대폰의 사진 찍기 기능에 좋아졌기 때문에, 언제라도 좋은 화질로 페친들에게 소식을 알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컴퓨터를 아주 이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좀 더 세심하게 사진이 필요하거나, 많은 양을 글을 쓸 때에는 당연히 컴퓨터에서 작업을 한다. 현장소식을 휴대폰으로 올릴 수 있는 사진이나 글을 오래도록 작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많은 소식들. 바로 휴대폰이 갖고 있는 편리한 기능이다. 물론 더 많은 것을 이용하기도 하겠지만, 그렇게까지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현재 활동을 하고 있는 작업에서는, 이것으로 만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세상을 반은 따라가야 하지 않을까? 늘 이런 생각을 한다.

 

 

5월 한 달 여기저기서 많은 행사가 열린다. 그것을 현장에서 바로 페이스북을 이용하여 소식을 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나에게 휴대폰은 언제나 함께하는 믿음직한 동반자이다. 24시간 휴대폰을 곁에 두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서울을 다녀 온 동생뻘 되는 녀석이 볼멘소리를 한다.

 

“도대체 길을 갈 때도 고개를 들어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으니, 길을 가라는 것인지 집구석에 처박혀 해주는 밥이나 처먹고 살라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되네요.”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그 녀석 말도 일리가 있기는 하다.

 

모처럼 서울 번화가를 나갔단다. 그런데 이 압구정동이라는 곳이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길을 걷는 젊은 여성들의 치마길이가 장난이 아니다. 남자들의 심리라는 것이 뻔하지 않은가? 날씬한 여인들이 벌건 다리를 내놓고 앞서서 걷다가 보면, 괜히 눈길 한 번 더 가게 되니 말이다.

 

문제는 그런 눈길에 있다. 자연스럽게 걸어야 하는데, 당최 그게 안 된다는 것이다. 절로 눈길이 그리 간다는 것. 그렇다고 길을 걸으면서 하늘만 바라보거나, 아니면 눈을 감고 갈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다리를 다 내놓고 걷는 여성들의 뒤를 따라가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금거리며 다 쳐다본다는 것이다. 졸지에 치한이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 들더란다.

 

쳐다보는 남자가 잘못인가?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가 잘못일까?

 

사람의 눈이란 보라고 있는 것이다. 나잇살께나 먹어 그런 여인들의 아름다운 모습에도 별 관심이 없는 어르신들이라면 모를까, 한참 혈기왕성한 30대의 총각들이야 절로 눈이 그리로 갈 수밖에.

 

그런데 요즈음 들어 빈번한 강간, 살해 등으로 인해 불심검문을 한다고 하니, 길을 걷기가 여간 불편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눈을 어디다가 두고 다녀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생각을 해보세요, 그렇게 입고 다니는 여자분들, 솔직히 보아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자신의 몸매자랑을 하는 것인데, 그것을 보면 치한으로 몰리기 십상이니, 이런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그럼 그런 번화가에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들이 바글거리는데, 남자들은 눈을 감고 다니란 말입니까?“

 

딴은 그렇다. 길을 걷는 사람이 눈을 감고 걸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버스야 자리가 앞으로 나란히 나 있으니 그나마 조금 낫지만, 지하철을 타면 간혹 그럴 경우가 있다. 맞은편에 짧은치마를 입은 여성이 앉아있으면 정말 불편하다. 눈을 들어 눈길이라도 마주치면, 이건 머 완전히 변태나 치한으로 몰고 갈 듯한 눈초리다. 이래 갖고야 바깥나들이나 온전히 할 수 있을까?

 

도대체 이 불쌍한 남자들을 어찌할까?

 

“정말 대한민국이 싫어지네요. 어디선가 보니 여성들의 치마길이가 32cm가 절대방위선이라고 해요. 그런 절대방위선도 조금 높은 곳에 서있거나, 앉아있으면 불편한 장면이 보이는데 요즈음은 그보다 더 짧게 입고 다니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입고 다니는 사람은 괜찮고 그 뒤에 따라가면 치한입니까? 우연히 같은 길을 갈 수도 있는데요. 이젠 길조차 마음 놓고 활보를 할 수가 없으니, 이 나라에서는 절대로 남자로 태어나지 말아야 할 것 같아요.“

 

생전 얼굴 한 번 붉히지 않는 녀석인데, 무엇인가 틀어져도 단단히 틀어진 모양이다. 아마도 말은 하지 않아도, 불쾌한 일을 당한 것 같다. 이 녀석 이야기를 듣고 보니, 갑자기 대한민국의 남자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길조차 마음대로 걸을 수 없는 이런 현실이 말이다. 이젠 서울도 그만 올라가야 할까보다. 무슨 곤욕을 치를지 모르니. 참 여자들은 좋겠다. 마음대로 짧게 입어도 누가 머라고 하는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이 녀석 하는 말이 ‘여성들이 많은 길거리에서는 절대로 휴대폰을 손에 들고 돌아다니지 말라’는 것이다. 말 하는 것을 보니, 곤욕을 치루기는 치렀나 보다. 세상 참 씁쓸하다. 이래저래. (사진출처 / 인터넷검색사진 인용. 기사와는 무관함)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에 소재한 봉선사. 봉선사는 고려 광종 20년인 969년에 법인국사인 탄문이 창건한 절이다. 법인국사는 운악산 기슭에 절을 짓고 이름을 운악사라고 하였다. 운학사는 조선조 세종 때 7개의 종파를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의 양종으로 통합이 됨에 따라 혁파되었던 절이다.

그 뒤 조선조 예종 1년인 1469년에 정희왕후 윤씨가 선왕인 세조의 능침을 보호하기 위해, 89칸으로 중창하고 이름을 봉선사로 개명하였다. 그 뒤 명종 6년인 1551년에는 교종을 대표하는 사찰이었으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수차례나 훼손되어 다시 중수를 하였다.



봉선사 대종과 괘불이 전해

봉선사는 한국전쟁 때 150칸이나 되는 전각들이 완전 소실이 되었으며, 현재 남아있는 전각들은 모두 근래에 들어 다시 중창한 것이다. 현재 봉선사에는 조선 초기 범종 연구에 귀중한 자료인 보물 제397인 대종이 남아있다. 이 대종은 1469년에 제작한 종으로, 이렇게 큰 대종을 당시에 주조하였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2월 26일 오후, 의정부에서 봉선사로 향했다. 봉선사를 찾아가려면 광릉내 숲을 지나야만 한다. 엄청난 고목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 길을 지나 봉선사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가 다 되어서이다. 봉선사 일주문 앞에는 많은 차량들이 서 있고, 연신 사람들이 경내로 들어선다. 아마도 모처럼 주말을 맞아 나들이를 나온 듯하다.




세상에 이럴 수가, 배터리가 아웃이라니

봉선사 주차장에서 대웅전까지의 거리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 길을 굳이 차를 갖고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로 인해 불안하다. 밖에 차를 대고 걸어도 불과 10여분도 안 걸리는 거리가 아니던가? 입구에는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와 하마비가 서 있다. 안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선방을 촬영하다가 보니, 배터리가 떨어져 버렸다.

이럴 수가 있나, 여유분의 배터리는 차에 두고 왔는데 난감하다. 할 수 없이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렇게 휴대를 한 손전화를 이용해서라도 답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봉선사에는 16동의 전각이 자리하고 있다. 입구에 있는 청풍루를 비롯해, 운하당과 관무현, 대웅전의 양편에는 관음전과 지장전이 서 있다.



대웅전의 뒤편으로는 조사전과 삼성각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 외에도 다경실과 개건당, 방적당, 동별당, 서별실, 종루 등이 자리한다. 휴대폰으로 하나하나 촬영을 하다가 보니 영 마음에 들지가 않는다. 그래도 어찌하랴, 그나마 고맙게 생각을 할 수 밖에.

화마를 입고도 남아있는 대종

봉선사의 대종은 임진왜란 이전에 주조된 종 중 몇 개 남지 않은 조선 전기의 동종이다. 예종 원년인 1469년에 왕실의 명에 따라 만들었다. 높이 238㎝, 입지름 168㎝, 두께 23㎝의 이 종은 꼭대기에는 용통이 없고, 두 마리의 용이 서로 등져 종의 고리 구실을 하는 전형적인 조선종의 형태이다.




종의 몸통 위부분에는 이중의 가로줄을 돌려, 몸통 부분과 구분 짓고 있다. 줄 윗부분에는 사각형의 유곽과 보살을 교대로 배치하였고, 아랫부분에는 강희맹이 짓고 정난종이 글씨를 쓴 장문이 새겨져 있다. 글에는 종을 만들게 된 연유와 만드는데 관계된 사람들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어서, 이 종을 제작하기 위해 대대적인 불사를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시간 이상을 천천히 돌아보면서 종각으로 향했다. 그러나 종각은 출입을 통제시켜 놓아, 이층 누각으로 오를 수가 없다. 다행히 또 하나의 대종을 본떠 만든 종이 축대 위에 있어, 그곳에서 보물 대종의 모습을 알아볼 수가 있었다. 주말, 광릉내 숲과 함께 돌아보기 좋은 봉선사. 날도 풀렸으니 한번 찾아가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가을은 역시 산이 좋다. 높지 않은 산을 가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정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으로 몰려든다. 단풍이 제철을 맞으면, 산을 오르는 발길들은 더욱 잦아든다. 그래서 가을 산은 풍성한 이야기꺼리를 만들어 주는가 보다. 그 이야기 중에는 참 좋은 내용도 있지만, 참 씁쓰레한 내용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씁쓰레한 내용이, 산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산 인근이나 아니면 시내 한 복판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가 있는 일이다. 다만 씁쓰레한 일을 목격한 것이 산일뿐이다. 참 산에게 미안하다. 괜히 정신적 오염을 시킨 듯해서 말이다.


산길 걷는 남녀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

출장길에 수원에 있는 광교에 올랐다. 광교 저수지 안쪽으로 등산로가 나 있다. 그 안에 볼일이 있어 오르는 길. 갑자기 무릎이 심하게 저리다. 잠시 쉬고 있는 동안에 사람들이 내려온다. 남녀가 내려오는데 그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이 든다. 손을 꼭 잡고 내려오는 사람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연신 웃음소리가 숲길을 메아리친다.

저만큼서 오는 모습을 보면서 ‘참 아름다운 연인’이라는 생각을 한다. 요즈음에는 친구 녀석들도 건강을 위해 부부가 같이 등산을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실실 심통이 나기도 한다. 그건 머 어쩔수 없이 못된 성격 탓으로 돌리고는 있지만. 가까이 오는 두 사람의 대화소리가 들린다.

“그런 자기야 이번에는 어디로 가지. 1박으로 갈까?”
“그래도 되겠어?”
“괜찮아 일 다해놓고 가면되지”


부부사이인 듯도 한데, 대화가 조금 야릇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가 '참 세상을 왜 이렇게 남을 의심하며 살지?‘ 하면서 스스로를 탓한다. 그런데 휴대폰이 울린다.

이런 남편이 또 있다니

여자가 잡았던 손을 놓고 전화를 받는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뒷골이 찡하다.

“여보, 나 오늘 친구하고 산에 왔어. 아침에 등산 간다고 그랬잖아. 저녁에 일찍 들어갈 게”

이건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부부인줄 알았더니 전화를 받고 ‘여보’란다. 그러면 저 여자는 남편이 한 두엇 되나?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시간이 이제 점심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둘러댄다. 도대체 어디 살기에 저녁까지 무엇을 하려고. 참 혼란스럽다.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순간적으로 두 사람 다 눈길을 피하고 걸음을 빨리한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리나케 산을 내려가는 두 사람. 참 못 들을 것을 들었단 생각이다. 하기야 자신들이 좋아서 서로 사랑을 하겠다는데, 내가 참견을 할 필요는 없다.

요즈음 드라마고 무엇이고 맨 이따위 짓을 하는 것들만 보여주고 있으니 사람들이 무엇을 배우랴. 그런 방송을 보면서 사람들은 잠재적인 기억 속에 그런 것이 각인이 되어 나쁜 것이란 사고를 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참 가을 날 기분 좋게 산을 오르다가, 머 밟은 기분이 되어버렸다. 그 남편은 아무것도 모르고 열심히 땀을 흘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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