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가에 숨은 힘

 

우리소리의 힘은 어디까지 일까? 그 해답은 예전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예전 부모님들의 품안에서 자라난 시대는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지금처럼 패륜적이지는 않았다. 물론 시대에 따른 불효야 있었겠지만, 그 불효라는 것이 지금의 패륜과는 차이가 있다. 왜 이렇게 세상이 각박하게 변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소리를 잃어버린 후다. 어머니의 살가운 정이 느껴지는 자장가를 잊고 난 후 아이들이 변한 것이다.

 

얼마 전인가 며칠 사이에 우리는 충격적인 뉴스를 연이어 접했다. 후배를 시켜 가족들을 죽인 사건. 강남에서 살고 싶어 어머니와 누나를 방화를 죽게 만들고, 본인은 그 시간 딴 곳에 놀라가 있었다는 얄팍한 머리를 쓴 사건이다. 더구나 출타 중이던 아버지를 범인으로 몰아가려고 했다는 이야기에 정말 어의가 없다. 며칠 후 술이 취해 어머니를 괴롭힌다고,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 또 발생 해 세상을 경악시켰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왜일까?

 

 

자장가를 잃은 세대, 정이 없어

 

그저 우리 것은 모두 불량품이나 골동품 정도로 알고 있는 사고, 외국의 것이라면 ‘개똥도 보약’이라는 문화적 사대주의가 이 나라의 정신을 병들게 만들었다. 남이야 잘못 되어도 관계없다는 이기주의적인 발상이 이런 결과를 만든 것이다.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물론 가정교육이 잘못 된 것이라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우리의 교육현실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본다.

 

인성을 제외하고 주입식 교육에 치중한 사회가, 이런 불행한 아이들을 양산시키고 있다는 생각이다. 어느 기사를 보니 우리나라 음악교과서에 우리 전통에 대한 내용은, 고작 몇 분의 일도 안 된다고 한다. 왜 그래야만 할까. 교육이 정체성을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다. 하기야 우리는 교육이라는 중요한 사안을 놓고도, 자리배정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필요로 할 것인가?

 

‘우리’라는 개념조차 알려주지 못한 채, 무조건적인 국제화만 부르짖는 정책. 그리고 제나라 말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남의 나라 말부터 가르치는 정책. 이런 것들이 우리 아이들을 황폐화시킨 것이다.

 

 

 

어머니의 자장가에는 모든 교육이 들어있어

 

그 자손이 추울세라 덮은데 덮어주고,

발치발치 눌러주시며 왼팔 왼젖을 물려놓고

양인양친이 그 자손의 엉둥이 허릴 툭탁치며

사랑에 겨워서 하시는 말씀이

은자동아 금자동아 은이로구나 금이로구나,

만첩청산의 보배동아 순지건곤의 일월동아,

나라에는 충신동아 부모님전 효자동아,

동네방네 귀염동아 일가친척의 화목동아

둥글둥글 수박동아 오색비단의 채색동아

채색비단의 오색동아

은을주면 너를사고, 금을준들 너를 사랴

 

회심곡의 한 부분이다. 이런 소리를 우리 어머니들이 아이를 재우면서, 또는 등에 업고 엉덩이를 토닥거리면서 불러주었다. 이런 소리를 듣고 자라난 아이들이 잘못될 수 있을까? 아니다. 이런 소리를 듣고 자라면서 아이들은 잠재적으로 이 소리를 기억하게 되고, 그것이 바로 충신이고 효자로, 동네방네 사랑을 받는 예의가 바른 아이로 성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소리는 잠재적인 기억으로 사람의 성격을 만드는 힘이 있다. 이런 잠재적인 기억이야말로,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따스한 정을 느끼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소리를 듣고 자란아이, 나쁘게 될 수 없어

 

소리는 사람의 인생을 만든다. 검증이 되지 않은 이야기 같지만 사실이다. 어느 누구는 슬픈 노래를 부르다가 슬프게 되어버렸다. 누구는 무명시절 ‘쨍하고’를 부르더니 그야말로 쨍하고 해가 떠버렸다. 이것이 바로 소리의 힘이다. 알지도 모르는 말을 떠들어 대면서 연신 건들거리고 사는 아이들이, 과연 온전한 인물이 될 수 있을까?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화! 세상 사람들아 오륜가를 들어보소. 부모 없는 자식 없고 임군 없는 신하 없다.

부모 공을 알려거든 제 자식을 길러보고, 군의신충 모르거든 효양부모 옮겨가리.

부모에 효도하는 사람이면 임군에게 충성한다.

존장을 존대하고 친구 간에 신 지켜라. 부부간에 화목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라.

이러고야 사람이지 저마다 사람이냐. 철모르는 짐승의 기특함을 들어보소.

 

오륜가(五倫歌)의 사설 중 일부분이다. 오륜가는 사람이 태어나 살아갈 도리를 알려주는 소리다. 이런 좋은 소리를 어릴 적부터 듣고 자라난 아이들이 나쁜 일을 할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소리의 힘이다. 알게 모르게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 아이들은 성격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자연을 벗 삼아 뛰어노는 아이들, 새를 보고 개구리를 보고도 그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이 바로 어머니의 따스한 자장가를 듣고 자란 아이들이다. 어머니의 자장가는 그저 입속으로 중얼거리듯 부르는 소리다. 특별한 곡조도 없다. 아이에게 사랑을 가득 담아 소리를 할 뿐이다. 그 소리 안에는 어린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다.

 

이러한 소리를 일어버린 요즈음의 아이들은 너무나도 황폐화 되어있다. TV에서는 선정, 폭력이 난무하고, 컴퓨터 게임에서는 살인과 폭력이 저질러진다. 이런 것을 보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바랄 것인가. 이제는 모두 정신을 차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삶의 소리, 사랑의 소리, 어머니의 가슴에서 울려지는 살가운 소리를 들려주어야 한다. 피부로 맞닿는 소리를 듣고 자라난 아이들은 그 따스함을 온전히 기억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부끄럽다. 우리의 현실이 어찌 이리 되었단 말인가? 하는 자괴감까지 든다. 그것도 멀리 이국에서 고생을 하러 온 것도 아닌데, 국제결혼이라는 허울을 쓴 채, 종살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니.

그렇다고 대우가 좋은 것도 아니다. 심심하면 음주를 하고 폭력까지 휘두른다는 것이다. 영화 속이나 드라마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더욱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이 부끄럽다.


다문화가정, 그 안에 숨은 슬픔

요즈음은 우리 주변에 외국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온 사람들을 자주 볼 수가 있다. 흔히 이런 가정을 <다문화가정>이라고 한다. 다문화가정이 많은 곳에서는 지자체 나름대로, 이주해 온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많이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외국인들은 그들 나름대로 부르는 명칭이 다르다.

그 안에서 다문화가정은 남다른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벌써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인끼리 결혼을 해 자녀를 둔 가정이 이혼을 하여, 외국인 여성을 맞아들이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간과할 수가 없다.


이런 동남아 쪽의 여성들이 한국남성과 결혼을 하여, 한국으로 들어오는 것은 결코 사랑을 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 중 거개는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스스로의 부모형제에게 도움을 주고자 들어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냥 좋게 이야기를 하자면 국제적인 결혼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돈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인 결혼’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돈 때문에,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동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서. 이런저런 이유로 가족을 떠나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있는 머나 먼 나라로 떠난 여인들. 그 중에는 물론 적응을 잘하고 잘사는 사람들도 있다. 안락한 가정을 꾸미고 그래도 몇 년에 한 번은 자신의 나라를 찾아가기도 하는 사람들. 그들은 정말 복된 대한민국이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일시키고, 때리고, 폭언을 퍼붓고

우연히 듣는 이야기에서 분노를 느낀다. 정말 내가 그런 인간과 동족이라는 것이 부끄럽다.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지 못한 한 남자가 베트남에 가서 부인을 데려왔단다. 얼마인가 돈을 주고 부인을 데려왔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외국인 부인을 데리고 와서 생활이 달라졌다고 한다. 어린 부인을 굶기고 싶지 않다면서 열심히 일을 하고, 일 년에 한 번씩 부인을 자기나라로 보내준다는 것이다. 참으로 바람직한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이 인간은, 도대체 인간답지가 않다. 부인을 데려다 놓고 집안에서 판판히 놓고 먹는단다. 그리고 부인을 식당에 내보내 돈을 벌게 한다는 것이다. 딸린 아이도 둘이나 된단다. 그러면서도 놀고먹는다는 이 인간. 거기다가 술만 먹으면 부인을 때리고, 욕을 한다고 하니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이럴 수가 있는 것인지.



생각하면 쫓아가 귀싸대기라도 올려붙이고 싶은 심정이다. 먼 이국으로 낯선 남자를 따라와 사랑을 받기는커녕, 죽어라하고 일을 하는 이국 여인. 거기다가 폭력에 심한 욕설까지 들어가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 그 가슴이 얼마나 아플 것인가? 아마 스스로 빗을 졌다고 생각을 하고 사는 것일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낯이 부끄럽다.

이런 인간들. 부인을 돈을 주고 사왔다고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인간아, 어찌 그러고 사냐? 제발 정신 좀 차려라. 2009년인가 다문화가족들이 슨 글을 도자기로 만들엇던 후배가 있다. 경기으뜸이가 글을 쓰고 아우녀석이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다문화가정의 부인들과 이주노동자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 때 한 어린 초등학생이 쓴 글이 있다. 오늘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어린학생의 글이 생각이 난다.

우리와는 다르다고 무시하지 마요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자기가 살던 나라에 대해서는
우리보다 더욱 더 많이 알고 있는 걸...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