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때 아닌 비가 추적거리며 내리기 시작한다. 날을 잡아 정자 기행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쉽게 발길을 떼지 못한다. 그러다가 정오를 넘기고 결국은 길을 나섰다. 처음 계획은 영덕까지 내려갈 생각이었으나, 빗발이 점점 거세지는 것이 계획대로 여정을 마무리할지가 걱정이다.

 

요즈음은 이상 기온인 많다가 보니 어디를 선뜻 나서기도 쉽지가 않다. 조금만 흐려도 길을 나선다는 것이 망설여지는 것도 그런 까닭인데, 블러거라고 밝히신 분이 몸소 정보까지 주어가면서 정자 기행을 돕겠다고 하니 비가 온다고 망설이고만 있을 수가 없어 나선길이다. 어차피 길을 나섰으니 내려가면서 여기저기 들러보리라 마음을 먹고, 태백산 신흥사와 영은사를 거쳐 주지스님께서 주시는 차 한 잔 마시고 시간을 뺐기다 보니 생각 밖으로 시간이 지나버렸다.

 

 

바쁜 답사의 길, 그러나 여유로움도 만끽해

 

걸음이 더욱 바빠진다. 7번 국도를 따라 남하하는데 길이 좋다. 요즈음은 어디를 가도 길이 좋아서 고속국도와 지방국도를 적당히 이용을 하면 생각 밖으로 빠른 길을 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왕 늦어진 길이니 국도를 따라가면서 동해의 풍광에 젖어보리라 마음을 먹고 구 길로 접어들었다.

 

가는데 까지만 간다고 마음을 먹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삼척시는 동해 바닷길을 달리는 7번국도 여기저기에 정자 모양을 한 쉼터를 만들어 놓아 관광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내려가는 길에 몇 번인가 길을 멈추고는 했지만.

 

 

삼척시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해신당이다. 남근을 깎아 바치는 해신당은 몇 번 들려보았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관람을 해보자고 작정을 하고 입장권을 끊었다. 그러나 비가 오는 날이라 이미 날이 어둑해졌다. 해신당을 둘러 본 후 마음에 미련이 생겨 전시관 안내를 보는 분에게 혹 이곳에 정자가 없는가 물어보았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물었는데 이분, 여기저기 전화를 걸더니 한곳을 친절하게 안내를 해준다. 그것도 일일이 약도를 짚어가며 메모를 해주시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오늘은 정자 한 곳도 찾아가지 못하나보다고 포기를 하던 차에 이렇게 안내를 받았으니 얼마나 감사를 해야 할 일인가.

 

어둠이 깔린 빗길에 만난 정자

 

 

낮에 내려간 길을 거슬러 올라오다가 보니 날이 저문다. 해신당에서 30여 분을 달려 올라와 정라항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농협 건물을 끼고 우측을 바라보니 문화재 안내판이 보인다. 알려준 길은 조금 더 지나야하지만, 비는 쏟아지고 마음은 바쁘니 어찌하랴. 턱을 넘어 안으로 들어간다. 안내판을 확인하고 차에서 내려 한달음에 계단을 오른다.

 

작은 육향산 위에 있는 척주동해비와 평수토찬비, 비각과 함께 모여 있는 작은 정자 하나. 계단 밑에는 평수토찬비가 있고, 계단위에 척주동해비와 지은 지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육각으로 된 정자가 보인다. 현대적인 모습이다. 육향정(六香亭), 말대로라면 여섯 가지 향기가 있는 정자라고 풀이를 해야 하는데 무엇이 여섯 가지의 향기일까?

 

비는 점점 세차게 쏟아진다. 카메라 렌즈에 물이 묻어 찍기가 어려울 정도다. 불빛도 없는 육향정의 주변이라 겨우 사진 한 장을 찍고 뒤돌아서야 하다니. 그러나 저 멀리 고깃배의 불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낮에 보는 동해바다를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강원도 삼척시 정상동 82-1에 소재한 육향정 앞에 자리한 척주동해비의 비문은 삼척 부사 허목이 지은 것으로 현종 3년(1662)에 건립한 비다. 일명 퇴조비라 불리듯이 조류의 피해를 막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비의 규모는 높이 170cm, 높이 76cm, 두께 23cm이다. 이 비가 훼손을 당하면 다시 피해를 입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비를 신령하게 여겼으며, 이를 탁본을 떠 집에 모시기까지 했다고 한다.

 

현재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되어 있다. 평수토찬비 비문 역시 삼척 부사 허목이 짓고 쓴 것이다. 중국 형산비의 대우수전 77자 가운데 48자를 가려서 새긴 것으로, 임금의 은총과, 수령으로서 자신의 치적을 기린 글이다. 현종 원년(1661)에 목판에 새기어 읍사에 보관되어 오다가, 240여년 후인 광무 8년(1904) 칙사 강홍대와 삼척 군수 정운철 등이 왕명에 의해 석각하여 죽관도에 건립하였다. 비의 높이는 145cm, 폭 72cm, 두께 22cm이며, 비각의 전면에 ‘우전각’이라는 제액이 게판되어 있다.

 

 

빗길에 찾아간 육향정. 비오는 날 바닷가 비린내에 코끝이 간지럽다. 그렇게 하루 종일 비오는 길을 찾아다닌 이곳저곳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많은 좋은 분들을 만났다. 이렇게 어우러지면서 정자 기행을 마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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