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팔달구 화서문로 82-6에 소재한 갤러리 대안공간 눈’. 이곳에서는 두 사람의 화가가 전시를 열고 있다. 1 전시실에서는 김주희의 추억, 그 기억의 잔상전이, 그리고 제2전시실에서는 김명아의 사람 + 사람전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지난 달 30일부터 612일까지이다.

 

김주희는 벌써 6회째 개인전을 갖는다. 성신여자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과를 마쳤다. 2012년 갤러리 Avenue 강남 초대전을 시작으로, 2012년 서울시립미술관 신진 작가전, 20133회 개인전을 모아래갤러리에서 어디든, 무엇이든지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가졌다.

 

 

4회 개인전은 2013년 그림손 갤러리에서 기억의 오버랩으로, 5회 개인전은 스칼라티움 아트스페이스 추억, 그 기억의 잔상으로 가졌다. 그리고 이번에 대안공간 눈의 전시실에서 여섯 번째 개인전을 갖게 된 것이다.

 

화려한 색채에 눈길 머물러

 

전시실 안 벽을 채운 그림들은 화려한 색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중첩이 된 색감들은 눈을 부시게도 하지만, 그 안에서 찾아보는 본래의 그름은 살며시 담장 뒤에 몰래 숨어있는 새색시만 같다.

 

나는 이미지 오버래핑을 이용해 그림을 그린다. 한 가지 물건이나 장소, 시간 속에 이미지를 레이어 중첩하여 색다른 모습으로 그려낸다. 이러한 중첩은 묘한 형태적 흔들림과 같은 일루전을 만들며 몽환적 분위기를 선사한다. 중첩된 이미지는 단순 혼합의 문화현상을 보여주는 외피적 혼성개념으로 읽혀진다.”

 

작가 김주희는 작가와의 대화에서 이렇게 자신의 그림을 소개하고 있다. 특별한 내용이나 의미가 읽혀지기 보다는 단순히 각각 다른 이미지의 버무림을 통해 새로운 시각적 결과가 우선적으로 다가온다는 것. 따라서 이 단계에서 재현은 긍정이나 부정의 시비를 떠나 매력적인 혼성시각의 결과로 이미지의 혼합이 강조된다는 것이다.

 

중첩된 그림 속에서 추억을 찾다

 

전시실에 걸린 그림들은 천안문, 대한문, 숭례문 등과 화성의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등 다양한 색채를 중첩으로 그려 낸 작품들이다. 얼핏 보아서는 잘 알 수 없는 그림 속에서 그 본질을 찾아보기란 그리 어렵지는 않다. 단청색을 연상하듯 울긋불긋한 그림들 속에서 작가는 그 그림들이 추억과 연관이 된다고 한다.

 

 

수원 화성은 내가 추석 때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 온 추억의 장소이다. 그 전부터 수원 화성 야경을 보면서 꼭 그림으로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대안공간 눈에서 전시가 잡힌 후 새로 시작한 신작이다. 여러 장의 사진을 겹쳐서 이어지는 파노라마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보름달 달빛 아래 수원의 아름답고 긴 화성의 야경을 따듯하면서도 화려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을 적고 있다.

 

작가 김주희는 사랑하는 것이 생기면 어김없이 카메라에 담는다고 한다. 여러 번 담아 내 그 장면을 기억하고 또 기억해 낸다고. 그림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로 겹치고 겹쳐 그 이미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추억의 이미지가 더 선명해 진다고 한다. 그렇게라도 그 소중했던 순간을 잊지 않고, 여러번 간직하고 싶어서이기 때문이란다.

 

 

전시명 추억, 그 기억의 잔상은 결국 이렇게 중첩된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도록 여러번 카메라에 담아내고, 그것을 반복적으로 그림을 그려가면서 생긴 잔상이 아닐까 한다. 612일까지 대안공간 눈에서 열리고 있는 김주희의 여섯 번째 개인전을 둘러보기를 권유한다.

엄마, 아빠의 어릴 적 ‘그때 그 놀이’

용인시 기흥읍에 자리하고 있는 한국민속촌은 요즈음 익는 냄새가 솔솔 풍긴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민속촌 안을 돌다가 보면, 여기저기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무엇인가를 굽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부지깽이를 무엇인가를 열심히 뒤적이고 있는 사람들, 화덕에서 나는 구수한 냄새가 군침이 돌게 만든다.

2012년 2월 17일부터 4월 1일까지 매주 금, 토, 일 주말과 휴일에 행해지는, 민속촌 나들이의 즐거움을 주는 ‘추억의 그때 그 놀이’. 아이들이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함께 엄마, 아빠의 어린 시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엄마, 아빠는 옛날 옛적에 이렇게 놀았단다.

2월 18일(토) 오후에 들린 한국민속촌. 어른들은 어른들 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즐겁다. 엄마, 아빠의 옛날 놀이를 함께 돌아보면서, 즐거움을 함께 느낄 수가 있기 때문이다. 2012 한국민속촌과 함께 하는 스탬프 여행은, 사람들을 금방 즐거운 여행 속으로 안내를 한다.

‘뻥이요’를 외치면서 온 마을 아이들을 불러들이는 간식인 뻥튀기며, 잿불에 익혀 입 주위가 까맣게 변하는 것도 모르고, 호호 불려 먹던 군고구마와 군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순도순 둘러 앉아 먹다가 보면, 정이 새록새록 돋아나기도 했다. 아마도 힘든 시절에 함게 먹던 맛이기에 더 잊을 수가 없는가 보다.


“정말 재미있어요. 특히 오늘 같이 바람이 불고 날이 추울 때는 이렇게 불 옆에서 고구마를 구워먹으며 몸도 녹일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죠. 아이들도 재미있어 하고요”

성남에서 아이들과 함께 왔다는 김아무개(여, 44세)씨는 연신 고구마를 뒤적이면서 이야기를 한다. 아이들도 모닥불 곁에서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언제나 잘 익은 고구마를 먹을 수 있을까 하는 눈치이다.

스탬프를 찍으면서 즐기는 그때 그 놀이

추억의 그때 그 놀이는 두 가지 코스가 있다. 추억의 그 때 그 놀이는, 여행을 하면서 스탬프도 찍으며 먹거리를 즐길 수가 있다. 먼저 쉬운 코스인 별이랑 체험 길은 3~7세 아이들에게 적합한 길이다. 부적 찍기와 나무 요요 만들기, 화덕 고구마 굽기, 공기놀이, 뻥튀기 먹기, 그리고 고무줄놀이이다.


8세 이상의 어린이들에게 맞는 달이란 체험 길은, 연탄불 달고나, 고무줄놀이, 제기 만들기, 군밤 굽기, 공기놀이, 마패 만들기, 제기 만들기, 군밤 굽기의 순으로 여행을 하게 된다. 한 곳에서 스탬프를 찍으면 그 체험은 다시 할 수가 없다. 별이랑, 달이랑 체험 길 모두 3,000원 씩이며 입구에서 구할 수가 있다.

아직은 날이 쌀쌀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불 옆에서 구워먹는 고구마며, 밤. 그리고 뻥튀기와 달고나, 그 모든 것이 옛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아이들이 봄 방학을 했는데 마땅히 갈만한 곳이 없어서 한국민속촌은 찾았다는 한 관람객은, 군밤을 굽다가 딴 곳 구경을 못했다고 하면서도 즐거워한다.



엄마, 아빠 어렸을 적, 추억의 그 때 그 놀이. 주말이면 한국민속촌을 찾아 아이들과 함께 옛 추억 속으로 빠져 들어보자.

행사기간 : 2012년 2월 17일(금) ~ 4월 1일(일)
                 매주 금, 토, 일 13:00 ~ 17:00
참가문의 : 031-288-2931(한국민속촌 기획마케팅팀)


이웃과 정을 나누는 ‘추억의 골목길 축제’. 제목만으로도 사람을 끌어당긴다. 11월 26일(토) 10:00~16:00에 걸쳐서 수원시 팔달구 지동 게이트볼장 입구 골목길에서 열린 축제장, 새마을지도자 지동협의회가 주최를 하고 지동주민자치회 등 7개 단체가 후원을 한 ‘추억의 골목길 축제’ 현장을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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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축제'란 그야말로 골목길에서 열리는 축제이다. 2011년 ‘지동 마을 르네상스 공모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8월부터 ‘수원화성과 지동 골목길 반가운 동행’이라는 주제로, 시범골목 약 1km의 구간에 골목의 특색을 살린 벽화 그리기와 조형물들을 10~11월에 걸쳐 설치하였다.




삭막한 골목길이 따스한 길이 되다

지동 골목길 축제.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을 성벽을 따라 길게 자리하고 있는 지동. 팔달구 지동은 그리 부유한 마을이 아니다. 옛 건물들이 늘어선 골목길은 우중충하던 곳이다. 그 좁고 우중충하던 골목길이 탈바꿈을 했다. 지동 주민들과 삼성 자원봉사단, 창작 작가, 학생, 직장인 등 다방면에서 활동 중인 많은 봉사자들이 특별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하였다.

말 그대로 골목길 축제였다. 한편에서 화성 앞에서 제기차기를 즐기는 젊은이들과, 아이와 함께 연날리기를 즐기고 있는 젊은 엄마. 그리고 축제장인 게이트볼 장에서는 왁자한 소리에 그칠 줄 모르는 웃음소리가 화성을 감돌아든다. 그저 마을잔치 같은 이 골목길 축제가 남다른 재미를 주는 이유였다.





옛 추억이 새록새록 담겨있는 축제

길게 테이블을 놓은 앞에서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연 만들기에 정신들이 없다. 직접 연을 만들고 날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축제장에는 역시 먹거리가 빠질 수 없다. 추억의 음식인 어묵이며 여러 가지 음식들이, 차가운 초겨울 날씨를 훈훈히 녹이고 있다. 살아가기에 힘든 사람들은 오랜만에 이웃들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마을 어르신들은 윷놀이를 하면서 즐긴다. 그 얼굴에 오랜만에 세월의 주름을 펼 수 있는 행복함이 가득하다. 골목 안으로 접어들었다. 사방치기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인다. 골목길 어구에는 추억의 솜사탕 장수가 나와 있다. 우중충하던 골목길의 벽들이 이런저런 모습으로 새 단장을 했다.




축제장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따듯한 국물을 드시다가 한 말씀 하신다.

“이런 축제가 정말 좋은 축제가 아닌가? 세상에 이렇게 집 대문을 나서서 즐길 수 있는 축제가 어디 또 있을까 십구만. 먼 길 찾아가고 바가지 쓰고, 거기다가 정신 사납고. 이 골목길 축제는 얼마나 좋아? 멀리 안가서 좋지. 이웃들과 함께 즐기니 좋지. 거기다가 마을이 달라졌으니 보기도 좋지”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할 수 있는 축제. 그저 모인 사람마다 낯익은 얼굴들이라 낯설지 않아 좋은 축제. 수원 팔달구 지동의 ‘추억의 골목길 축제’가 행복한 축제인 까닭이다. 그리고 엄청난 예산을 들여 하는 축제가 한 수 배워야 할 축제이다. 골목길에서 배어나오는 즐거움이 가득한 ‘추억의 골목길 축제’. 재미와 행복이 가득한 축제였다.

<골목길 들여다 보기>







예전에는 ‘동동구루무’라는 것이 있었다. 여자들이 즐겨 쓰던 화장품이다. 지금으로 따진다면 ‘동동’은 그 제품의 명칭일 테고, ‘구루무’란 크림을 말하는 것이란 생각이다. 이 동동구루무에 대한 그리움은, 아마 지금 70~80대 정도의 아르신이라면 한두 가지 재미난 일화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이제는 내 나이도 60이 지났지만, 어릴 적 어머니의 화장대 앞에 놓인 동동구루무를 본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구루무 통이 자취를 감추고, 당시 말로 꼬부랑글씨가 쓰인 화장품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이 동동구루무가 사라진지도 꽤 오래되었다는 생각이다.

2004, 9 용인 한국민속촌에서

영화 속에서나 나올만한 장면

동동구루무 한 통만 사면
온 동네가 곱던 어머니
지금은 잊혀진 추억의 이름
어머님의 동동구루무
바람이 문풍지에 울고가는 밤이면
내 언 손을 호호불면서
눈시을 적시며 서러웠던 어머니
아~ 동동구루무

김용임이라는 가수가 부르는 ‘추억의 동동구루무’라는 노래의 가사이다. 예전에는 이 동동구루무가 여성들에게는 꽤나 호사스런 품목이었던 것만 같다. 가끔은 퇴색한 영화 속에서 장에 나갔던 돌쇠녀석이, 세경을 받은 돈으로 동동구루무 한 통을 사오는 모습이 그려진다. 물론 그 동동구루무는 돌쇠가 연모하던 마을 양반집의 여종인 옥분이에게 건너갔을 테고.


인터넷검색으로 찾아낸 이미지

동동구루무 한 통을 받은 옥분이는 그동안 벌처럼 돌쇠만 보면 쏘아대던 말투가, 얼굴에는 가득 미소를 띠면서 고분고분해졌을 것이다. 이런 추억을 가진 동동구루무는 꽤 오랜 시간동안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것 같다. 동동구무루란 명칭도 아마 화장품을 팔고 다니던 장사꾼의 모습 때문에 나온 이름인 듯하다.

등 뒤에 짊어진 북소리 ‘둥둥’

어릴 적에 마을로 돌아다니면서 동동구루무를 파는 장사를 본 적이 있다. 1950년대야 지금처럼 대형 슈퍼마켓 등 종합적인 물건을 파는 곳이 없었다. 그저 마을마다 몇 개씩 있는 ‘○○상회’ 혹은 ‘○○상점’이라는 간판을 단 구멍가게들이 다였으니까 말이다. 이때는 간장과 같은 찬거리며, 이것저것을 팔러 다니는 장사들이 연신 마을을 돌아칠 때다.



아마 당시에는 이 동동구루무만큼 인기가 있었던 상품도 그리 흔하지가 않았다. 등 뒤에는 대북을 메고, 손에는 작은 북이나 하모니카 등을 들고 다닌다. 북소리가 나면 여기저기 흩어져 놀고 있던 아이들이 쫒아와,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도 했다. 마을의 아낙네들이 몰려나오면, 용기에다가 듬뿍 큰 통에 든 구루무를 퍼 담아 주기도 했다. 벌써 그런 모습을 본 것이 50여년이 훌쩍 지나버렸으니, 이도 당시의 신풍속도였다는 생각이다.

어머니의 정이 그리운 동동구루무

한 겨울에 찬바람이라도 나가서 쏘이고 들어오면, 어머니는 당신이 아끼시던 동동구루무를 듬뿍 손에 발라 비벼주시고는 했다. 그 냄새가 그때는 왜 그리도 좋았는지 모른다. 아마 그 냄새는 당시 일을 하느라 땀에 절어버린 어머니의 냄새와 함께, 지금도 기억을 할 만한 나름의 포근한 어머니의 냄새를 만들어 냈던 것 같다.


요즈음 여인들은 동동구루무라고 하면 싸구려 화장품으로 생각을 하겠지만, 당시의 동동구루무는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그 구루무 한 통에 수많은 사연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구루무 한 통으로 사랑을 얻기도 하고, 많은 눈물도 흘렸기 때문이다. 연일 영하로 떨어져 올라갈 줄 모르는 날이 계속돼서인가? 어머니의 동동구루무가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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