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야

네가 아무리 추워봐라

내가 옷 사 입나

술 사 먹지

 

술타령이라는 소야 신천희 시인의 시이다, 술 좀 마신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 시를 거의 다 알고 있다. 소야 신천희 시인은 아동문학가이며 시인이다. 현재 전북 김제시 금구면 오봉 3129에 있는 무주암에서 수행을 하고 계신 스님이기도 하다, 무주암에서는 4월 초파일에 다문화가족을 위한 잔치인 대문 열고 놀자라는 초청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소야 스님을 안지는 꽤 많은 시간의 흘렀다, 하지만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십 수 년 전 지금은 화재가 나서 불에 타 사라진 넉넉한 술집이 수원 장안문 근처에 있었다. 이곳은 시인, 화가 등 많은 사람들이 이용을 하는 집이었는데, 아마도 내 기억으로는 그곳에서 처음 본 듯하다.

 

 

그러고 나서 술타령이라는 시를 알게 되었다. 이번에 남원에서 열린 제84회 춘향제를 취재하기 위해 내려갔다가, 짜장스님(선원사 주지 운천스님)이 운영하시는 짜장면을 파는 부스에서 다시 뵈었다. 땀을 흘리면서 음식을 나르고 테이블을 닦는 스님의 모습을 만난 것이다. 스님은 스님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워낙 바쁘다보니 조용히 앉아 이야기를 할 여유조차 갖지 못했다.

 

책 한 권을 선물로 받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시는 소야 스님은 동시집 달님이 엿보는 일기장, 달을 삼킨 개구리, 밤하늘 엿보기 외 다수의 동시집이 있다. 또한 장편동화인 대통령이 준 완장, 꽝포 아니야요! 남북 공동 초등학교 와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는 동시집인 똥꽃, 그림자는 착하다와 산문선 무얼 믿고 사나와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가 있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도 수원에 찾아오셨을 때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라는 책을 한 권 선물로 받았다. 이번에도 엄마 아빠와 함께 읽는 동시 그림자는 착하다라는 책을 직접 서명까지 해 주신다. 아이들을 워낙 예뻐하시는 스님은 아동문예 신인상 수상, 대전일보 신춘문예, 창주문학상, 녹색문학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스님 이 외상은 평생 못 갚으시겠네요?

 

어머니!

당신의 뱃속에서

열 달 동안이나 세 들어 살고서도

한 달 치 방세도 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몇 년씩이나 받아먹은

따뜻한 우유값도

한 푼도 갚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이승에서 갚아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저승까지

가지고 가려는 당신에 대한 나의

뻔뻔한 채무입니다.

 

 

외상값이라는 스님의 시이다.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 스님이 아닌 인생의 스승 같았다. 그저 수행을 하시는 분이기에 이런 시를 쓰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기에는 부족하다, 늘 무엇인가 남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하시는 스님이시기 때문이다. 현재 전주시 완산구 흥산남로 82에 사단법인 아이사랑 부모학교를 운영하고 계시는 스님은 부모도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늘 말씀을 하신다.

 

아이사랑 부모학교는 현재 안성, 김제, 군산에 분교를 두고 있으며, 익산시 서동로에는 예절교육원을 운영하고 있다. 열심히 음식을 나르고 빈 그릇을 치우느라 땀을 흘리고 계시는 소야 스님. 오랜만에 3일간이나 얼굴을 대하면서도 제대로 이야기조차 나누질 못하고 책만 한 권 받고 헤어졌다.

 

스님 이 책값은 반드시 이승에서 곡차로 갚겠습니다.”

‘커뮤니티란 무엇인가?

점, 선, 면의 미술이론을 넘어서는 느낌이요, 그 느낌의 소통이다.(중략)

우리의 환경은 현대화 되고 첨단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수원 화성으로 인해 문화적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소외되어 온 지동마을. 그러나 이번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 수원시와 함께 추진한 커뮤니티 아트 사이트 조성 계획 중, 지동 프로젝트 ‘생태 골목에 심다’ 벽화 프로젝트는 수원화성이 애물단지가 아닌 자랑거리가 되고, 세계문화유산을 품고 있는 마을이라는 자부심을 되찾게 해주었다.

주관단체와 작가, 마을 주민들의 진정한 커뮤니티 아트가 아닐까 생각한다(하략)‘

 

김수현 창룡마을 창작촌 고문(조각가. 현 충북대 명예교수)이 ‘커뮤니티 아트 사이트의 본 고장이 될 착한 지동을 기대하며’라는 글에 적은 내용이다.

 

지동 벽화작업 일일이 기록

 

올 6월에 발간한 책이다. 정확히 말하면 7월 지난주에 책이 배달됐고, 11일(목) 오전에 본 기자의 손에 책이 들려졌다. 그저 평범할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그러나 그 책을 받아든 순간 눈을 딴 곳으로 돌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 책이 만들어지기 까지 숱한 땀 냄새가 그 안에 배어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진 위. 좌측은 벽화길 조성 전 더럽고 습한 골목. 우는 벽화길 조성 후 달라진 모습

사진  아래. 좌측은 벽화작업 전 정비를 하는 벽. 우측은 현재 벽화 조성 후


 

‘생태 골목에 심다’라는 100P 남짓한 이 책은 그동안 지동골목에서 1년 6개월을 지내오면서 벽을 뜯어내고, 다시 바르고, 칠하고, 또 밑칠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코팅을 한 내용이 그대로 한편의 드라마처럼 엮어진다. 그것만이 아니다, 그동안 지동을 찾아와 숱하게 땀을 흘리며 봉사를 한 면면이 들추어져 있다.

 

지동마을 사람들을 변화시킨 벽화

 

이 책에는 지동의 모든 벽화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담아냈다. 골목길을 뛰어다니며 나비를 그리고,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린 꼬마들의 천진난만한 미소가 담겨져 있다.

 

 벽화골목에 많은 꼬마들이 모여들었다(위). 벽화를 그리기 위해 지동 골목에 온 자원봉사자들(아래)


 

‘지동골목에는 아이들이 없는 줄 알았다. 몇날 며칠을 골목을 다녀도 아이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어찌된 일일까? 동네에 아이들이 부쩍 많아졌다. 내 눈에만 그리 보이는 것은 아닌 것같다.

벽화는 유한하다. 그러나 벽화가 하는 일은 무한하다. ‘생태 골목에 심다’라는 주제로, 지동 골목에 녹색 비람을 일으키며 마을 주민들과 청소년, 꼬맹이들을 골목으로 쏟아져 나오게 하는데 성공...‘

 

지동 프로젝트 총괄작가 유순혜의 편집후기에 적힌 글들이다. 그리고 이어서 주민들의 말을 달아냈다.

 

“엄마, 고양이가 날 쫒아와”

“오빠! 자전거 타고 경주할까? 난 빨간 자전거, 오빤 파란 자전거”

“나는 포도 따다가 팔아야겠네..호호호”

“우리 집 꽃게는 해물탕 끓여서 동네잔치 해야지...하하하”

정말 그랬다. 지동마을에 대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서로 골목에 자리를 깔았다. 그 자리에 앉아 삼겹살을 구우며, 정담을 나누는 모습들이 보인다. 삭막하고 음습한 지동골목이 변화한 것이다. 꽃길이 조성되고 아름다운 벽화가 그려지면서, 그렇게 지동 사람들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연 것이다.

 

계절별로 정리한 프로젝트는 압권

 

지동 프로젝트 - ‘생태 골목에 심다’는 계절별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그 계절에 따른 벽화와 함께 계절별로 찾아 온 아마추어 화가들의 얼굴이 그득하다. 골목에 질펀하니 눌러 앉아 손을 흔들고, 벽에 착 달라붙어 열심히 그리는 사람들의 모습도 담았다. 서울여자대학 미술학과 학생들이 MT를 마다하고 지동으로 달려왔을 때, 지동 사람들은 맛있는 비빔밥으로 그들을 대접하였다.

 

지동은 이제 정이 넘치는 마을로 변해가고 있다. 사람들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는 부분 부분에 신문에 났던 기사를 실었다. e수원뉴스 하주성 기자의 글이 중간 중간에서 그림의 설명을 도와주고 있다. ‘벽화골목의 꼬마화가들’, ‘지동벽화골목의 자원 봉사자들’, ‘MT대신 벽화봉사를 하기도’, 수원 지동 벽화길, 퉁영 동피랑을 넘을 수 있을까?‘, ’벽화그림 하나가 사람들을 변화시켰다.‘ 등이다.

 

지동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보습. 골목길에 주민들이 자리를 깔고 삼겹살을 구우며 담소를 하고 있다


 

책은 봄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여름, 가을을 지나 겨울을 맞이했다. 땅 속 깊숙이 굴을 파고 들어간 짐승들이 잠을 잔다. 그리고 또 다시 봄을 맞이했다. 그 계절의 모든 작업들이 하나하나 소개되어 진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생태 골목에 심다’는 앞으로 영원히 지동 사람들과 함께, 또 다른 새 계절을 맞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섬 한 끝이 나를 불러

다시 돌아와 선

애월리 바닷가

 

不感

마른 생각 하나

솔숲에 묻는다.

 

꼭 손바닥만 하던

나의 열일곱,

시간은 늘

위태로운 몸짓으로

바다의 둥지 속으로 풀려가고

 

해풍에 절은 기다림이

점박이 나리꽃으로 붉던 날

억새꽃 마른 꽃대로

일어서던 섬이여(하략)

 

 

임애월의 시집 <정박 혹은 출항>에 실린 다시 애월리에서라는 시의 한 부분이다. 2013년 새해 들어 첫 만남을 가진 시인 임애월(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석천리 거주, , 54). 그녀를 만난 곳은 허름한 수원천변의 한 선술집이다. 그런 곳을 마다않고 선뜻 자리를 함께 해준 임애월 시인의 본명은 홍성열(洪性烈)이다.

 

제가 필명을 임애월(林涯月)이라고 사용하면서, 사실은 많은 분들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셨을 것 같아요. 숲과 물가 그리고 달, 그 세 가지를 아우르는 이름이거든요. 제주를 그리는 애월이란 호를 많은 분들이 시용하고 싶어 하셨는데, 제가 먼저 필명으로 사용을 하서 정말 죄스럽기도 하고요

 

책 읽기를 좋아했던 섬소녀

 

시인 임애월은 제주 출신이다.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15년 정도가 되었다. 정식으로 등단을 하기도 전에, 그 이전부터 벌써 문인지에 시가 실릴 정도였다. 그만큼 차곡차곡 쌓아왔던 어릴 적 책읽기가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었는가 보다.

 

기자님은 어릴 때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저희가 살던 곳은 어릴 적 교과서 외는 책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어요. 책을 읽는 것이 행복해 오빠들이 만화책을 빌려오면, 그것을 보고 자려고 밤늦게까지 졸린 눈을 부비며 기다리고는 했죠. 그래도 정말 재미있는 책은 국어 교과서였어요. 제가 초등학생 때 오빠가 중학교를 다녀서 오빠 국어책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죠. 오빠가 고등학생일 때는 제가 중학생인데 고등학교 교과서를 보고는 했어요.”

 

어릴 적부터 책읽기가 좋았다는 섬 소녀 임애월은 그렇게 글과 접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한 후 서울을 거쳐 수원으로 화서 정착을 했다. 아이가 중학교를 다닐 때 어머니회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수원문화원(당시 심재덕 원장)에서 백일장이 있다고 주변에서 나가보라는 권유를 했다.

 

벌써 20년이나 지났네요. 수원에서 하는 백일장은 초, , , 일반으로 나뉘어졌는데, 당시 일반부는 전국에서 많은 분들이 참가를 했어요. 거기서 운 좋게 시 부분 장원을 한 것이죠. 그 뒤 임병호 선생님께서 하시는 문학 강의 등을 듣게 된 것이 본격적으로 시를 배우게 된 계기가 되었고요. 등단은 1999년에 했는데, 그 이전인 1998년에 경기시학에 글이 실리고는 했어요.”

 

시인이 되어 정말 행복하다

 

임애월 시인은 감성으로 시를 쓴다고 한다. 시상(詩想)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는 주저없이 여행을 떠난다고. 그곳에서 만난 모든 것이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글쎄요, 사람들은 흔히 시인을 영감설과 장인설로 나누고는 하는데, 저는 영감설 쪽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저는 어떤 지시에 의해서 80% 이상의 시를 쓰고 있으니까요. 시는 억지로는 되지 않잖아요. 오히려 억지로 글을 쓰려고 하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듯도 하고요. 그저 어느 순간 떠오르는 시어를 적어갈 때가 가장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듯해요

 

 

그저 막걸리 한 잔 앞에 놓고 이야기를 하는데도 즐겁다. 시를 쓰면서 가장 좋은 일이 무엇인가를 물어보았다.

 

세상 모든 사람은 직업을 가지면 정년이라는 것의 올무에 갇히게 되죠. 하지만 시인은 그런 것이 없어요. 저는 시인이 되어서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나이가 아무리 먹어도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해요. 물론 시를 쓴다는 것이 생활에 수단은 되지 않겠지만, 기댈 수 있다는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죠. 시는 자신과의 대화라고 하잖아요. 이 다음에 더 나이가 먹어도 나 자신을 들여다 볼 수가 있다는 것이죠.”

 

표정조차도 정말 행복해 보인다. 그 동안 <정박 혹은 출항><어떤 혹성을 위하여> 등 두 권의 시집을 펴냈다. 시를 쓰면서도 지역에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 임애월 시인은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와 수원시인협회 이사, 국제 PEN 한국본부 경기자역위원회 사무국장, 유네스코 경기도협회 이사, 기전문화연구회 연구위원 등을 역임하고 있다.

 

수원문학상과 경기문학인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임애월 시인. 시인이어서인가? 마주 앉아 있으니 시인의 고향 제주 바닷가의 한적한 길을 걷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절반쯤 버리고 나니

바다가 보였다

남양만의 밀물이

가슴 속으로 흘러왔다.

 

임애월 시인이 살고 있는 화성시 우정읍 석천리를 그린 시이다. 늘 그렇게 자연과 대화를 하고 사는 임애월 시인. 언젠가는 그녀를 졸라대 바람을 따라 길을 나서고 싶다.

‘가볼만한 마을 앱 안에 다 모여 있네.’

아침 출근길에 책 한 권을 받아들고 하루 종일 좀이 쑤신다. 이 책 제목 한 번 나와 딱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길따라! 맛따라! 바람따라! 시골여행”이란다. 바람을 따라 맥없이 길을 나서는 것이야, 누구에게 절대 지지 않는다고 하는 내가 아니었든가? 그저 바람만 불어오면 영 다리가 절로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는 나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농촌진흥청(청장 박현출)의 국립농업과학원의 김상범 외 엮음으로 되어있다. 시골여행의 재미를 안내해주는 이 책은, 전국 200개 농촌마을의 관광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책의 이름도 정겹다. ‘길따라, 맛따라, 바람따라 시골여행’이란다. 이 책은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해 무료로 제공한다는 것이다.


애플리케이션으로 모든 정보를 한 눈에

전국의 200개 마을을 소개하고 있는 시골여행은 제주도까지 찾아가볼만한 마을들이 모두 수록이 되어있다. 먼저 마을의 목차에 이어서 모바일 앱 화면 및 기능설명부터 테마, 지역, 검색, 추천 등 4개 메뉴로 구성돼 사용자 편의에 따라 농촌마을을 찾아볼 수 있다. 농촌을 마을별로 소개하고, 행사와 축제, 시설, 경관, 자연환경, 농특산물, 전통자원 등의 정보를 제공한다.

테마메뉴에서는 놀거리, 먹거리, 볼거리, 살거리, 쉴거리, 알거리, 체험거리 등 7가지 주제별로 마을을 검색할 수 있으며, 지역메뉴로 들어가면 10개 시·도별로 나눠 수록돼 있다. 검색메뉴에서는 주소, 마을이름, 마을자원 등을 입력하면 가려는 마을을 손쉽게 찾을 수 있고, 추천메뉴를 클릭하면 농촌진흥청이 추천하고, 행사·축제가 열리는 마을을 알 수 있다.



당장 찾아가도 될만한 안내

앱에 소개된 전국 200개 농촌마을은 농촌진흥청에서 지정한 전통테마마을 141곳과, 농촌어메니티 조사를 통해 풍부한 자원을 보유한 마을 59곳이다. 시골여행 앱은 안드로이드 마켓과 애플 앱스토어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한편, 농촌진흥청은 사용자들의 빠른 이해를 돕기 위해 앱 사용방법과 기능에 대한 설명과 200개 농촌마을을 간략히 소개한 책을 앱과 같은 이름으로 발간했다. 이 책은 농촌진흥청 농업과학도서관(http://lib.rda.go.kr)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PDF 파일로 볼 수 있으며, 수량 범위 안에서 희망자에게 무료 배부한다.




농촌진흥청 농촌환경자원과 김상범 연구사는 “앞으로 국민들이 쉽고 편리하게 농촌마을을 여행할 수 있도록 유용한 농촌마을정보를 ‘시골여행 앱’을 통해 지속적으로 서비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 권의 책을 받아들고 설레는 마음. 아마도 봄이기에 이 책이 더 눈에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올봄 벌써 몇 곳을 찾아놓고 날자 계산을 하고 있다. ‘길따라 바람따라’ 훌쩍 떠나보려고.

차가운 날씨에 조그마한 짐을 실어 나르는 손수레 하나를 끌고, 이집 저집 앞에 쌓인 박스나 신문 등을 차곡차곡 정리를 하고 있는 어르신 한 분. 가끔 길가에서 뵈면 고개를 숙이고 지나치기도 하지만, 제대로 인사 한 번을 하지 못했다. 날이 상당히 추워졌는데도 어르신의 걸음은 여느 날과 다름이 없다.

“날이 추운데 오늘도 나오셨네요.”
“오늘이라고 다를 것이 없으니”
“춥지 않으세요?”
“조금 춥기는 하네. 그래도 아직은 참을 만 해”

추운 겨울 날 여주 5일장에서 만난 환경미화원 김기성씨. 눈이 쌓였는데도 자신이 히야할 일이고, 남들이 불편할까봐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정작 김기성씨는 몸이 불편했다.


어르신에게 물을 수도 없는 인생

감히 어르신에게 왜 이렇게 추운 날 고생을 하시느냐고 물을 수가 없다. 비록 폐지를 줍고는 다니시지만, 어르신에게는 남들에게서 볼 수 없는 무엇인가가 보인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딱히 이야기를 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조금은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라고나 할까? 그러고 보면 요즈음 이렇게 폐지 등을 거두러 다니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이 늘었다. 그만큼 세상살이가 힘든 것인지.

“추우신데 막걸리라도 한 잔 하실래요?”
“아녀, 그런 것 먹는다고 몸이 풀리지도 않을 테고. 괜찮아”
“따듯하게 입고 다니셔야죠. 바람이 찬데. 힘드시지 않으세요?”

질문을 해놓고도 참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당연히 춥고, 당연히 힘이 드실 것이란 생각을 왜 말을 하기 전에 미리 못하는 것일까?

“아녀. 얼른 볼일 보러 가. 괜히 바쁜 사람이 늙은이 걱정일랑 말고”
“예”
“난 괜찮아. 그래도 사는 것이 슬프지는 않아. 이렇게 움직일 수 있으니”

그 이상은 대화를 이어갈 수가 없다. 이렇게 추운 날 고생을 하시면서도, 사는 것이 슬프지가 않다는 어르신의 한 마디. 그 말이 심하게 충격으로 다가온다. 아직은 움직일 수 있으니, 힘든 세상살이가 슬플 일이 없다는 것이다.


나약한 우리네들, 괜한 불평만

그러고 보니 예전에 여주 5일장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 장을 돌다가 만난 청소부 한 사람. 장애가 있으면서도 눈이 잔뜩 쌓인 날 눈을 쓸고 쓰레기를 치우는 모습을 보면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힘이 들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나에게 돌아 온 대답은 날 부끄럽게 만들었다. 자신이 치우지 않으면 금방 길이 눈으로 인해 막혀 사람들이 불편을 겪게 된다고.

자신의 몸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이런 분들. 우리는 그동안 너무 낯 뜨거운 삶을 살지 않았는가 반문을 해본다. 아마도 세상에 불평만 늘어놓고, 그것도 모자라 속 좁은 생각까지 해가면서 살아온 지난 날. 목장갑 한 켤레가 다 헤어졌는데도, 움직일 수 있으니 슬프지 않다는 어르신의 말씀.

오늘 참 나 스스로에게 회초리를 대고 싶다. 심하게 질책을 하고, 심하게 아파하면서 반성을 할 수 있도록. 구부정한 어르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저 어르신이 이 세상의 선지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 모습을 차마 담아내지 못한다. 그것조차 송구스러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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