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지금 86세인데, 어린 시절에 그러니까 17~18살 때 편수 노릇을 했어요.”

 

행궁동 생태교통 시범지역, 화성옥 옆에 있는 쌈지공원에서 짚공예 체험을 지도하고 있는 이원근옹은 고향이 화성이라고 하신다. 현재의 오산인데 수원으로 옮겨 자리를 잡은 지가 30년이 되었다고 하신다.

 

편수란 초가지붕을 이을 때 우두머리를 말하는 것이지. 어린 시절에 이미 편수노릇을 햇지. 예전에는 집들이 모두 초가를 이었으니까, 일도 상당히 많았고

 

그렇게 많던 초가집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 때 새마을운동을 시작하면서 지붕개량을 하는 바람에 일감이 줄었다는 것이다. 오늘(92)부터 쌈지공원에서 생태교통을 찾아오는 관람객 중에서, 짚공예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가르쳐 준다는 것이다.

 

짚공예에 대해서는 전문가

 

이원근 옹은 곁에 서 있는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경기도당굿에서 화랭이가 놀리는 의딩이)를 며칠이 걸려서 만들었다고 하신다. 짚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예전에는 한양을 올라갈 때 짚신을 신고 다니잖아. 그럼 밤새 짚을 꼬아서 새끼를 꼬고, 그 다음에 짚신을 만들어야지. 짚신이란 것이 그렇게 오래 신을 수가 없는 것이거든. 한 이틀 신으면 다 헤어져 버리는 것이야

 

그래서 한양에 과거를 보러 가려고 하면 하루 종일 걷고, 잠을 자러 들어간 집에서 불을 켜놓고 짚신을 삼는다고 한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걸어서 한양에 도착하려면 많은 짚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짚신을 오래 신을 수 있는 것으로 아나본데 그렇지 않아. 짚신을 아무리 잘 삼아도 이틀이 안가. 많이 걸으면 하루에도 떨어지거든. 그래서 괴나리봇짐에 짚신을 달고 다니는 거야. 그것이 떨어지기 전에 다시 짚신을 또 삼아야하거든.”

 

짚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끝이 없이 이야기를 하신다. 터주가리와 업가리 이야기가 나오자 소리까지 곁들여가면서 설명을 하신다.

 

 

예전에는 장독대 곁에 터주가리나 업가리를 만들어 놓았어. 터주가리는 집을 지키는 터주신이 있는 곳이고, 업가리는 가운데를 비워 놓으면 그 안에 족제비나 구렁이 등이 기어들어가 업이 되는 것이지. 그래서 소리도 전하는 거야. 족제비업은 뛰어들고 구렁이 업은 기어들고 하면서 부르는 소리가 있지

 

이원근 옹의 이야기를 듣다가 보니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르겠다. 예전에는 짚이 상당히 많이 이용이 되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체험으로 밖에는 만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새끼를 꼬는 체험을 해야 하는데, 구해 놓은 짚이 없어 걱정이라고 하신다.

 

초가지붕도 용어부터 알아야 헤

 

초가지붕 위에 올리는 이엉을 엮을 때도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시는 이원근 옹.

 

사람들이 내가 이엉을 엮는 것으로 보고 어떻게 배웠느냐고 물어보는 거야. 배우긴 무엇을 배워. 그저 어르신들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한 것이지. 그래서 이런 것을 만드는 사람은 머리가 좋아야 해. 머리가 나쁘면 아무리 알려줘도 소용이 없어

 

초가지붕 한 칸을 잇자면 엮어서 만든 짚더미 7마름이 필요하단다. 열 칸이면 70마름의 발이 필요하다고. 10칸의 지붕을 잇는다고 하면, 트럭으로 한 차 분량의 짚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초가지붕의 제일 위인 용마루 위를 덮는 것을 용두재라고 하지. 그것은 4겹으로 덮어야 해. 그리고 짚을 덮은 다음에 고사새끼라는 것으로 잘 동여야 하거든. 그래야 바람에 날아가질 않지. 고사에는 속고사와 겉고사가 있는데 겉고사는 지붕을 덮은 후 밖으로 새끼줄로 엮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그래야 바람에 날아가지 않고 단단히 고정이 되니까

 

끊임없이 이야기를 풀어내시는 이원근옹. 아직은 정정하시다고 하시면서 체험을 하러 온 사람에게 새끼를 잘 꼬는 법을 가르치신다. 생태교통 지역을 돌아보는 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그런 이원근 옹을 유심히 바라본다. 이원근 옹의 손놀림은 점점 더 빨라지고.

짚은 우리민족의 삶속에서 땔 수 없는 관계를 갖는다. 예전에는 행랑채에 묵는 행랑아범이나 하인들이 밤에 등불을 밝히고, 손을 마주 비벼가면서 새끼를 꼬는 모습들을 볼 수가 있었다. 그러다가 새끼를 꼬는 도구를 이용하게 되었고, 1960년대에는 새끼를 꼬는 두발기계까지 나와 농촌의 일손을 거들어 주고는 했다.

이런 짚을 이용한 공예는 이 시대에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짚공예’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하는데, 남원시 산동면 부절리를 ‘짚두레마을’ 마을이라고 부른다. ‘두레’란 공동작업으로 하는 품앗이를 말하는 것으로, 짚공예를 공동으로 작업을 한다는 뜻이다.

가마니짜기를 할 때는 틀 앞에 앉은 분이 왼손에 짚을 들고 있다

흥부제에서 만난 짚두레마을 어르신들

10월 8일과 9일 양일간 남원에서는 흥부제가 열렸다. 이 흥부제에 산동면 부절리의 어르신들이 손수 만든 짚공예 작품들이 선을 보였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짚을 이용해 가마를 짜는 시연도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신기한 듯 걸음을 멈추고 쳐다본다. 가마니 짜기도 그리 쉬운 작업은 아니다.

어르신들이 가마니를 짤 때는 한 분은 한 손에 짚을 들고, 가로대를 연신 남은 한 손으로 아래로 쳐서 단단하게 만든다. 또 한 분은 대나무 끝이 갈고리처럼 생긴 것을 줄 사이로 집어넣어 가마를 짜는 분의 손에 있는 짚을 걸어 당긴다. 두 사람이 일심동체처럼 움직이지 않으면 제대로 짜이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에 앉은 분은 대나무 끝이 휘어진 것을 이용해 가마니 틀의 줄 사이로 밀어넣어 상대편의 손에 있는 짚을 잡아당긴다.

두 사람이 함께 호흡을 해야만 하는 가마니 짜기. 그것을 보면서 세상 모든 일은 그렇게 상부상조해야 이루어진다는 교훈을 얻는다.


다양한 제품과 화려한 수상내역이 돋보여

짚두레마을에서 생산하는 짚공예품은 50여 가지가 훨씬 웃돈다. 짐승을 형상화한 꿩, 소, 악어, 돼지로부터 동구미, 모자, 소신, 또아리, 벽서리, 두지, 꽃병, 짚신, 야경막, 짚방석, 홀치기망태, 소멍, 맷방석, 삼태기 등 다양한 제품들을 짚으로 만든다. 그런가 하면 한지로 만든 꽃병과 핸드백, 먹통구리, 사모와 짚으로 만든 밥상, 심지어는 솥까지 있다.

그동안 수상내역을 보면 짚두레마을이 얼마나 많은 곳에서 이름을 떨쳤는지 알 수가 있다. 대상 2회, 전국 1위 한차례와 최우수상 8회, 금, 은, 동상 각 4회, 우수상 12회 등 70회에 가까운 수상내역을 자랑한다. 마을의 어르신들이 작업을 도맡아하는 산동면 부절리. 마을에서는 이런 어르신들의 솜씨를 이어간다고 하니, 다음 세대에도 이 아름다운 공예는 맥을 이을 수 잇을 것이다.






짚두레마을에서 만든 다양한 모습의 짚공예품

짚은 우리 생활에 아주 오래 전부터 요긴하게 쓰였다. 우선 짚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초가집의 이엉 엮기이다. 추수가 끝나는 가을이 되면 초가지붕을 새로 덮는데, 짚을 엮어 씌우고 맨 위에는 용마름을 얹는다. 그 외에도 소의 사료로 사용하는가 하면, 각종 도구 등을 만들기도 했다. 새끼를 꼬는가 하면 광주리, 짚신, 삼태기, 망태기, 다래끼, 채반, 멍석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짚으로 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짚을 사용하는 것은 제작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사용을 하는 기간이 짧아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없지도 않아, 점차 짚을 이용해 제작한 도구 등이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짚을 이용해 도구 등을 제작하려면 일일이 수공예품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짚공예를 할 수 있는 어르신들이 세상을 떠나자 자연쇠퇴 되기도 했다.


‘호랑이 한 마리 사가시려우’

전주 경기전 안 서재마루. 열심히 짚을 이용해 무엇인가를 만들고 계시는 분들이 계시다. 한 분은 연신 판소리 한 대목을 불러가며 손을 놀린다. 그 옆에는 직접 만들었다는 짚공예품들이 나열이 되어있다. 일반적인 소품이 아니라 멧돼지, 호랑이 같은 동물들이다. 그 짚으로 만든 동물들을 보다가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이 우스워서 웃은 것이 아니고, 짚으로 만든 호랑이의 표현력 때문이다. 코털을 세우고 입을 쩍 벌린 호랑이는, 금방이라도 포효를 할 것만 같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빨이 날카롭고 혓바닥까지 있다. 외국인들은 신기한 듯 들여다보다가 연신 카메라에 담아낸다. 어린 아이 하나가 호랑이가 무섭다고 칭얼댄다. 옛날이야기라도 들은 것일까?



짚을 만지면 손이 거칠어진다. 그러나 예전에는 이렇게 직접 제작을 했다. 멧돼지와 돼지의 표현이 재미있다.

‘호랑이 한 마리 사가시려우?’농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을 듯하다. 일일이 새끼를 꼬아, 그것으로 제작한 호랑이다. 몇 날을 저 호랑이 한 마리를 만들기 위해 소일을 했을 것이다. 그런 것을 가격으로 따질 수는 없다. 그저 그 호랑이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어르신의 미투리는 신어도 좋을 듯

그 옆에는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 한 분이 연신 손을 놀리고 계시다. 앞에 보니 <김형철 할아버지의 수공예작품>이라고 쓰여 있다. 짚신이며 미투리, 소쿠리 등이 보인다. 비닐과 짚을 섞어 손수 제작하신 미투리가 눈길을 끈다. 당장 신어도 좋을 듯하다.


전주 경기전 안 서재마르에서 짚공예를 하시는 김형철 어르신과 수공예품인 미투리

짚공예의 역사는 상당히 길다. 『고려도경』에 보면 짚신을 만들 때는 삼이나 왕골 등을 섞어서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려도경은 전 40권으로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 인종 1년인 1123년에 고려를 방문하여, 당대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군사, 풍속, 예술, 기술, 복식 등을 정리한 책이다.

누구나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 많은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짚공예. 이제는 실생활에 사용하기 보다는, 집안을 장식하는데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만큼 짚공예가 점차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기전 서재 마루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호랑이도,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 호랑이의 떡 벌린 입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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