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우리는 각처에서 열리는 많은 행사를 보면서 지역적 특성이 강한 우리 것이 너무나 홀대를 받는 것은 아닌가 염려가 되기도 한다. 우리의 문화는 백리부동풍(百里不同風)’이라고 하여서 그 지역마다 각기 다른 풍속과 문화예술을 지니고 있다. 즉 살아가는 방법과 주위환경, 그리고 역사적, 시대적 배경을 민속 창출의 요인으로 삼아 각 처마다 다른 형태의 풍속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하기에 우리는 적어도 한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살던 사람들이 딴 곳으로 이주를 하면, 3대 정도를 지나야 그 곳의 풍습을 익히고 그 지역의 토착 풍속과 동화된다고 한다. 그 예로 판소리의 경우 전라도 사람의 성음이 틀리고, 경상도 사람의 성음이 틀리다. 또한 경기도 사람의 성음이 달라 각기 그 지역 나름의 창제(唱制)를 갖고 있다는 것이 보편적인 견해이다.

 

각 지역마다 환경에 따른 문화가 창출돼

 

풍물을 보더라도 기 지역에 따라 각기 처해진 바대로 다른 음악성향을 띠우고 있어 우리는 웃다리농악, 호남좌도농악, 우도농악, 삼천포농악(영남) 등 지역의 다른 색을 보이고 있는 농악을 볼 수가 있다. 춤 또한 지역적으로 각기 특색 있는 춤의 형태가 있고, 그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람들의 태가 다르다고 표현을 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이다.

 

그러나 요즈음 우리는 문화를 지켜가야 할 사람들의 문화를 망치는 행위를 보거나, 우리 것인지 남의 것인지, 우리 지역 것인지 남의 마을 것인지, 있었는지 만들어졌는지. 구분도 되지 않는 그러한 것들을 너무나 흔히 접할 수가 있다. 전통예술은 그 지역에서 함께 그 행위를 하고 살아가던 사람들의 정서가 그 안에 송두리째 담겨있는 것이기에 더욱 소중하다고 볼 수있다.

 

 

그런대도 일부 사람들에 의해서 지역의 정서가 사라진 전통예술이 마치 그 지역에 오랫동안 뿌리내리고 있었거나, 혹은 전혀 다른 정서인데도 불구하고 그 지역의 것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수 없이 오랜 시간동안 그 지역에 전해지면서 자연적이고 순차적인 변화를 거치면서 그 지역민의 정서를 내포하고 있는 아름다운 전통예술이야말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지역적 특성이 사라진 전통은 자긍심을 죽이는 행위

 

그러나 우리의 정서도 없고, 그 지역적 사고도 없는 예술은 이미 전통이 아니다. 더욱 그런 것들 - 지역적 정서도 없고, 특성도 없으며, 현대적 냄새가 나는 그러한 것들 - 은 더 이상은 우리가 방관을 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없애고 민족적 자긍심을 죽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런 행위는 어찌 보면 매국적 행위라고 볼수도 있다. 민족적 자긍심을 죽이는 행위는 그 자체가 바로 망국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미 일제에 의해서 문화말살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수 없이 많은 전통문화예술이 훼파되고, 얼마 남지 않은 부분을 지켜가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이즈음의 현실이다.

 

 

이제는 스스로에게 묻기를 원한다. 관리를 하는 행정부서의 담당자는 우리 것에 대해서 얼마나 애착을 갖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는지. 문화를 지켜가야 할 당사자들은 그 지역적 사고를 지닌 예술적 행위를 하고 있으며, 양심을 속이는 일은 없는지. 타 지역의 정서를 갖고 있으면서도 가장 그 지역사람인체 하고, 나 몰라라 하는 행위는 하지 않고 있는지.

 

전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통인체 가면을 쓰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것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으면서도 우리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우리 것인 양 탈을 쓰지는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스스로 답을 내리시길 바란다. 그리고 더 이상은 우리의 정서가 내포되어 있지 않고, 지역의 특성이 없는 그러한 국적불명, 지역불명의 문화를 내세우는 행위는 삼가 하기를 바란다. 그 길만이 스스로가 이 나라 사람임을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2002219일부터 1년이 넘는 시간을 경기, 인천 지역을 돌아다녔다. 지난 자료를 정리하다가 만난 경기 옛소리 기행자료라는 파일을 찾아낸 것이다. 이 파일에는 1년이 넘는 시간을 매주 경기, 인천 지역에 거주하는 소리꾼들을 찾아다니면서, 그들이 생활을 하고 소리에 젖은 사연을 소개를 한 것이다.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으로 경기일보에서 매주 1회씩 문화면 한 면을 통째로 내주었다. 그렇게 1년을 보내는 동안 55회에 걸쳐 소개를 한 자료가 고스란히 보관이 되어있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이렇게 정리를 했지?’ 싶을 정도로 정리를 한 것이다. 55회에 걸쳐 만난 소리꾼만 해도 근 100여 명에 이른다.

 

 

사진과 자료, 신문까지 스크랩

 

사실 이 자료 속에 소리꾼 중 많은 분들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 2002년이면 벌써 10년이 지난 세월이고, 당시에 소리꾼들의 연세가 70세가 넘은 분들이 상당수가 계셨기 때문이다. 그 자료를 하나하나 들춰보면서 생각에 젖는다. 당시에는 참 피곤한 작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매주 지면을 채우기 위해 몸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소리꾼을 찾아 길을 나서야 했다. 그 이전에 이미 방송에서 10여년 가까운 세월을 옛소리 소개를 했기 때문에, 소리꾼을 찾아 길을 나서는 데는 이미 이골이 나 있던 참이다. 하지만 정해놓은 기간 동안 빠트리지 않고 글을 쓴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난 자료를 하나하나 들추어본다. 지금 같으면 사진을 찍어 외장하드에 보관을 하고, CD에 정리를 하면 끝이 난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것을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찍은 사진을 모두 현상을 해야 하고, 자료를 모두 받아 와 파일에 저장을 해 놓았다. 그리고 신문까지 빠트리지 않고 저장을 했으니, 자료치고는 완벽한 자료가 되었다.

 

 

좋은 자료의 보관은 큰 재산이 된다.

 

자료 맨 앞에 보니 당시 썼던 기획서가 보관되어 있다. 그것을 들춰보니 기획의도부터 예산까지 일일이 적은 것이 보인다. 그 기획의도에 보니

경기 인천 지역은 오래 전부터 많은 소리가 전승이 되고 있는 곳으로 지역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경기도는 과거 판소리의 한 유파인 중고제가 전승이 되던 지역이며, 현재까지 전해지는 속요(俗謠) 또한 중고제의 음률로 불러지고 있는 것이 상당히 있어 그 중요성을 알게 한다. 그런가 하면 조선조 말까지 이 지역에 전해지던 재인청은 각 기예인들이 모인 집단으로 대단위 숭신조합(崇神組合)이었으며, 그들의 소리가 이 지역에 전승이 되고 있는 속요에 많은 영향을 끼쳐서 이 지역의 소리를 윤택하게 만들었다(이하 하략)고 적고 있다.

 

기획의도 말미에는 한 지역에 전승이 되는 속요는 그 지역민의 심성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으며, 특히 그 지역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속요는 사회상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좋은 자료가 된다. (중략) 속요가 지니고 있는 내면의 세계를 도출시켜 경기도민의 전통예술에 대한 우수성을 고취시키고, 자긍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한다.’고 적고 있다.

 

 

10년이 지난 세월이다. 하지만 지금 보아도 참 자료정리를 잘했다고 스스로 감탄을 한다. 55회에 걸친 사진과 관련 사진, 그리고 신문기사까지 있으니 완벽한 자료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료가 생명이다. 한 번 쓰고 버려야 할 것이 있는가 하면, 두고두고 사용해야 할 자료가 있는 밥이다. 이렇게 정리를 한 자료는 강산이 한 번 변한 세월, 지금은 더욱 가치가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된 셈이다.

 

자료정리의 중요성은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자료가 생명이다라는 말은 그래서 명언이라고 생각이 든다. 오늘 이 소중한 자료 덕분에 경기도의 역사 한 페이지를 찾아냈으니 말이다. 그리고 가슴 뿌듯한 것은, 그 자료 속에 소리꾼들의 소리가 몇 개가 경기도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55회에 걸친 기사내용을 사진과 함께 틈틈이 게재하겠습니다)

굴뚝 이야기, 알고 보면 흥미롭다. 옛 고택 답사를 하면서 옛 집에서 보는 것들이 비단 굴뚝만 흥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굴뚝도 굴뚝이지만 옛 집에는, 집집마다 나름대로의 볼거리들이 많이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다음으로 미루고, 우선은 굴뚝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굴뚝이 그냥 연기를 빼는 용도로만 사용이 되었을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다. 굴뚝을 보면 나름대로의 형태에서 그 지역적 특색이나, 집 주인의 성품, 심지어는 그 집안의 가세를 짐작할 수도 있다. 왜 굴뚝에서도 그런 특색이 있다고 보이는 것일까? 물론 추론일 수도 있겠지만, 그 나름대로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위는 강원도 고성 왕곡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담장굴뚝이다. 아래는 속초 김근수 가옥의 담장 안에 연도를 뺀 굴뚝이다, 아마도 심한 바람을 이겨낼 수 있도록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지역에 따른 굴뚝의 형태

굴뚝은 여러 가지 기능을 한다고 앞서 설명을 한 적이 있다. 그러한 굴뚝은 강원도 동해안 등 3 ~ 4월 심한 바람이 부는 곳에서는 굴뚝을 별도로 조형을 하는 것이 아니고, 대개는 담장 안에 연도를 이어 굴뚝을 만든다. 굴뚝도 상당히 견고하게 쌓는 편이다. 아마도 그러한 것들은 바람으로 인해 굴뚝이 넘어가지 않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위는 경기 양평의 이항로 생가의 굴뚝이다. 가운데는 전북 고창의 인촌생가의 낮은 굴뚝이며, 아래는 익산 가람 이병기 생가의 굴뚝이다. 내룍이라 그런지 굴뚝이 낮게 조성이 되었다.


서해안 인접 지역 역시 상당히 견고한 굴뚝을 조성한다. 이곳도 바람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와는 달리 내륙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굴뚝들이 나타난다. 지역으로 보면 경상도 지방의 굴뚝이 화려하고 크다. 이렇게 화려하게 굴뚝을 조성하는 것은, 이 지역의 고택들이 상당히 넓고, 큰 편에 속하기 때문이다. 즉 굴뚝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집 자체가 크기 때문이다.

경기도 지역과 충청남도 지역의 굴뚝들은 대개가 낮다. 집이 넓다고 해서 굴뚝을 높게 만들지를 않는다. 이런 것은 그 지역의 특징이다. 이렇게 낮은 굴뚝을 조성한 것은, 일기가 비교적 순탄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위는 서천의 이하복 가옥의 굴뚝이다. 아래는 부여 민칠식 가옥의 굴뚝이다. 큰 집에 비해 낮은 굴뚝을 조형했다. 


가세에 따른 굴뚝의 형태

집안의 가세를 보려면 광을 보라고 했다. 오래도록 권력을 잡았던 집인데도 불구하고, 곳간채가 작은 집이 있는가 하면, 안채나 사랑채는 그리 크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곳간채가 상당히 큰 집들이 있다. 이런 경우 그 집의 굴뚝을 보면 상당히 높게 축조가 되었다. 바로 부의 상징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만 같다.



위는 강원도 강릉 지역이 대표적인 선교장의 굴뚝이다. 가운데는 경남 거창의 정온 생가의 굴뚝이며, 아래는 함양 오담고택의 굴뚝이다. 굴뚝이 높게 조형되었다.


또 오랜 세월동안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드나 든 집들을 보아도 굴뚝이 높이 솟아있다. 그만큼 많은 불을 땠다는 것이다. 많은 양을 불을 때려면 아무래도 낮은 굴뚝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굴뚝의 형태는 단순히 불을 때고 그 연기를 뿜어대기 위한 용도만으로 사용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동안 200여 채 이상의 고택을 답사하면서 나름대로 분석을 해보면, 굴뚝 하나에도 그 집안의 내력이 함께 자리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위는 서산 김기현 가옥의 굴뚝이며 아래 좌측은 전주 학인당의 굴뚝이고, 우측은 충북 괴산 청천리 고가의 굴뚝이다. 굴뚝이 높고 화려하게 조성이 되었다.


집안에서 음식을 조리하고 난방을 하기 위한 조형물인 굴뚝. 아마도 지금까지 보아온 고택의 몇 배를 더 답사를 하고나면, 나름대로 ‘굴뚝의 미학’ 정도 한 권쯤은 쓸 수 있지는 않으려는지. 그래서 고택답사의 발길은 늘 바빠진다.(연재 끝)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