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가끔은 뒤를 돌아다 봅니다. 그저 내가 지난 날을 어떻게 살아왔나? 그리고 남은 시간은 어떻게 마무리를 할까를 깊이 생각해 보고 싶어서이기도 합니다. 15일 오전과 오후 하루에 두번의 행사를 치루고나니, 거의 추주검 상태로 변했다는 것이죠. 역시 나이는 속일 수 없는 것이란 생각입니다. 이제 점점 기운이 떨어져간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죠.

사람은 가끔은 지난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도대체 나는 어떻게 찾아볼 수 있을까가 궁금해졌다는 것이죠.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해서 나를 찾아보았습니다. 지금 다음뷰나 오마이뉴스에 보이는 나란 인간 말고, 또 어떤 나를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 궁금하기도 했고요.


나이 20대에 작곡을 시작하다

가장 오래된 자료는 1970년에 <동아음악콩클 작곡부분>에 입상을 하면서 동아일보에 보도가 된 자료입니다. 벌써 40년이 지난 나를 인터넷에서 발견을 한 것이죠. 그리고 이어서 여러 해 작곡에 몰입하면서 여기저기 이름이 보이고 있습니다. 1979년 국립무용단 정기공연, 제1회 대한민국 무용제, 1982년 인천시립무용단 창단공연 등의 자료가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만나볼 수가 있습니다.




제일 위 신문은 1970년 동아일보입니다. 나눔 단 아래 첫 번째 신문은 동아일보 1979년 5월 신문으로 국립무용단 정기공연 작곡을 맡아했을 때, 두번 째는 1981년 제3회 대한민국 무용제 때 기사입니다. 그리고 밑은 1982년 인천시립무용단 창단공연인 '굴레야'를 작곡했을 때 신문기사입니다.
 
그동안 관현악, 중주곡, 무용음악 등 한 30여곡은 작곡을 한 듯합니다. 그 때의 악보는 하나도 갖고있지 못해 아쉽지만, 국립국악원 자료실과 문예진흥원 자료실에 자료가 남아있다고 하네요. 그렇게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작곡가 사전이라는 책이 1999년에 발간이 되었는데, 그 책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1985년부터 책을 쓰기 시작해, 그 동안 저서 20여권

아마 책을 쓰면서 가장 많이 쓴 것은 일년에 4권인가를 썼습니다. 일년 동안 답사를 마치고 나면, 책상앞에 앉아 글만 쓴 것이죠. 1985년인가 이천에서 처음으로 '거북놀이'라는 책을 쓰고나서, 안성남사당풍물놀이도보, 용인의 내고장 민속, 대전의 한밭의 옛노래 등 지역의 전통문화와 민속, 무속 등에 대한 책을 열심을 내어 썼죠


그동안 쓴 책들이 20여권이 되는데, 일부만 몇 권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 책들은 거의 품절이 되어서 도서관에서나 만나볼 수가 있다고 하네요.

책을 쓴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더욱 지역의 책을 한 권 쓰기 위헤서는 제가 다루는 부분의 특성상, 지역 전체를 마을마다 돌아다니면서 현장에서 채록을 해야하기 때문에 그만큼 노력을 필요로 하죠. 

마을마다 다니면서 어르신들께 일일이 부탁을 드리고 가사를 녹취하고, 악보까지 곁들이기도 합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보아야 한 두곳이 고작이죠. 그렇게 만들어낸 발로 쓴 책들입니다.
 

네이버에서 책 한권을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품절이 되어서 이제는 구할 수조차 없는 책이 되어버렸네요.

 

위는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책의 목록입니다. 그리고 아래는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있는 책입니다.

살다가 보면 내가 무슨 일을 해왔는가가 정말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하루 종일 지쳐 자리에 들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지난 시간의 흔적을 보고 싶어 찾아낸 내용들입니다. 참으로 숨 가쁘게 살아온 세월이었네요. 별로 편안하게 쉬어 본 적이 없는 듯합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바쁜 걸음을 걸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이제 문화재에 대한 열망으로 당연히 또 그런 세월을 살아야 할테죠.

'그것이 사람사는 것 아닌가요?'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봅니다.

모처럼 마음 편하게 기차에 올랐다. 그저 단 며칠이지만, 세상 시름 모두 내려놓고 쉬러가는 길이다. 기차에서부터 몸을 축 늘어트린다. 3일간이지만, 세상에서 피곤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다. 잠시 눈을 붙인 것 같은데, 벌써 내릴 때가 되었다. 아마도 그동안 이일저일로 쌓였던 스트레스가 사람을 지치게 만든 것인가 보다.

역에서 내려 차를 타려고 택시 승강장 쪽으로 걸어가는데 누군가 부르는 것 같다. 뒤를 돌아보니 낯선 남자 하나가 쫒아온다.

“선생님 저 모르시겠어요?”
“잘 모르겠는데요.”
“벌써 한 8년 된 것 같네요. 잘 모르실거예요”
“죄송합니다만 기억이 나질 않아서요. 누구신지?”
“저 예전에 역전에서 노숙하던 사람입니다. 선생님께 매번 술값을 달라던”
“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도시. 그 안에는 별별일이 다 있게 마련이다.

밥 대신 술을 사달라던 사람이

그렇게 이야길 듣고 보니 얼굴이 조금 떠오르는 듯도 하다. 하지만 그때는 정말로 몰골이 추했을 때고, 지금은 이렇게 멋진 신사가 되어있으니 알 수가 있나. 잠시 이야기를 하자고 근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이 아니시면 저는 아마 지금도 역에서 노숙을 하고 있을 겁니다.”
“아니,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그나저나 지금 몇 살이세요?”
“저 지금 마흔 일곱입니다. 이름은 ○○○이구요”
“그래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하네요.”

쉴 새 없이 퍼붓는 질문에 이 분 웃어가면서 이야기를 한다. 당시 매년 연말이 되면 내가 하는 일이 있었다. 세상에서 많은 분들게 너무 많이 받았다고 늘 미안한 생각이 들었을 때다. 조금이나마 남에게 베풀겠다고 생각을 한 것이 털목도리와 털장갑, 양말 그리고 과일과 빵 등을 봉지에 담아 50봉지 정도를 준비해, 역에서 노숙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는 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이 이런 것 말고 10,000원만 달란다. 술이나 한 잔 먹겠다고 하면서. 그래서 돈을 주었더니, 이 사람이 역에서 만날 때마다 술값을 달라는 것이다. 노숙을 하면서 오죽이나 힘이 들면 그럴까하고 이해도 하지만, 심한 것 같아 혼을 낸 적이 있다. 나이도 별로 많지 않은 사람이 이게 무슨 짓이냐고, 술 먹을 돈으로 밥을 먹고 힘을 내 살아갈 궁리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준 것이다.

그 뒤로 그 사람을 역에서 볼 수 없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어디로 갔는지 그 뒤로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선생님께서 그렇게 혼을 내시고 난 뒤 처음에는 더러워서 살아보겠다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선생님 원망을 하면서요. 그런데 돈이 모이고 방이라도 얻고 보니, 선생님의 마음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어서 여기저기 찾았는데 영 소식을 듣지 못하겠대요.”

세상은 음지가 양지가 되고, 양지가 음지가 된다고 했던가? 그 일 이후 난 그곳에서 사람들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고, 그 고장을 떠나버렸다. 그리고는 그쪽으로 몇 년을 발길도 돌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신수가 훤해진 사람을 만난 것이다. 역시 세상은 이래서 재미가 있는 것인지.

아마도 이 사람은 무슨 이유로 노숙을 했는지는 몰라도 심성이 착한 사람이었나보다. 그렇게 바로 일어설 수가 있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노숙인들이라고 다 탓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마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나도 남들에게 아픔을 당한 것이, 다 이렇게 마음을 아프게해서 나도 그런 일을 당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결국 그 모든 것이 그대로 받는 업보는 아닐까 모르겠다. 

“선생님 연락처 하나 주세요. 제가 아이들하고 꼭 한 번 찾아뵙고 싶습니다. 제 아내도 선생님을 꼭 만나고 싶어합니다”

명함 한 장을 건네주고 돌아 나오면서, 어쩌면 이것이 올 한가위 선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도 이 사람이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 아닐는지. 날이 잔뜩 흐렸는데도, 기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맑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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