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전설을 가진 미륵과 암구멍

 

마을에 들어가 이야기를 찾다가 보면, 어떤 때는 참 황당할 때가 있다. 전혀 다른 이야기들을 한 마을에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문암리에 위치한 백도해수욕장. 이 곳은 여름철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는 곳이다. 백도라는 섬은 마을 앞 멀지 않은 동해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 바위가 하얀 빛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백도가 이렇게 흰 빛을 띠는 이유는 수많은 새들이 그 섬에 배설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름철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드는 곳. 백도해수욕장은 민박집들이 바다와 가까이 있어 이용하기가 수월하며, 백사장의 길이가 400m 정도에 폭이 50m 가까이 되기 때문에, 바다와 모래밭의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가 있는 곳이다.

 

 

 

미륵이야? 아님 문인석이야?

 

백도해수욕장에서 해안가 도로를 따라 동북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철문이 있다. 그 안은 군부대이기 때문에 일몰시간이 되면 이 철문을 닫아버린다. 그 철문을 들어서면 동해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 있는 두 기의 석물이 있다. 마을에서는 이 석물을 미륵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 석물은 어디로 보아도 묘 앞에 세우는 문인석의 모습이다.

 

이 두 기의 석물에 전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재미있다. 이 두 기의 석물을 문암리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삼아 , 마을에서 위하고 있다고 한다. 바다를 보고 있는 석물은 아주 오랜 옛날 신라의 영토인 백도에 고구려가 침범을 해, 전투를 하다가 전사를 한 신라의 장군이 한을 품고 죽은 자리에서 바위가 솟았는데 그 바위가 솟은 곳을 미륵동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전설과 연결이 되는 것이 바로 이 미륵불로 모시고 있는 문인석이다. 예전에 삼척부사의 부친이 사망하여, 묘를 쓰고 앞에 석물을 세우려고 하였단다. 그런데 집 앞을 지나가던 스님 한 분이 고성 문암마을을 찾아가 문인석을 만들면, 가문이 크게 번창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삼척부사는 그 말을 듣고 바로 문암마을로 찾아가, 문인석 2기를 만들 것을 부탁하였다.

 

그런데 문인석을 다 만든 후에 배에 실어 부친의 묘가 있는 삼척으로 옮기려고만 하면, 바람이 심하게 불고 파도가 몰아쳐 도저히 갖고 갈 수가 없었다. 결국 삼척부사는 이 문인석을 부친의 묘로 옮기지 못하고 포기를 하고 말았다. 그런 이유로 그 문인석은 문암리에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 기의 문인석 미륵동의 바위로 만들었을까?

 

이 이야기를 들으면 마을에 전하는 이야기가 자연히 연결이 된다. 즉 삼척부사의 부탁으로 만든 두 기의 문인석은 바로 신라의 장수가 억울하게 죽은 곳에서 솟아난 미륵동의 바위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곳을 떠나지 못해, 옮기려고만 하면 바람을 일으키고 풍랑이 치게 했을 것이란 생각이다.

 

이 문암리를 지키는 두 기의 문인석을 마을 사람들이 미륵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보아도, 그랬을 것이란 생각이다. 마을에 전하는 전설을 들어보면 시대에 따라 달라지지만, 그것은 묘하게 연결이 되어 정리가 된다.

 

이 두 기의 미륵인 문인석이 일제강점기에 갑자기 마을에서 사라지고 말았단다. 마을에서는 6,25 한국동란 후에 다방면으로 고생을 하다가 하나를 찾아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파도에 의해 바닷가 모래밭에서 찾아냈다는 것이다. 결국 이 미륵불들은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일제 때 수많은 문화재들이 일본으로 수탈을 당했기 때문에, 문암리를 떠나지 않기 위해 미륵불이 스스로 몸을 감춘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 구멍들은 어떻게 이렇게 생겼지?

 

22일에 찾아간 문암리. 미륵불 앞에는 누가 치성이라도 드린 듯, 북어와 떡이 보인다. 치성을 마치고 이곳에 두고 간듯하다. 문암리 두 기의 미륵물이 서 있는 옆, 바닷가에 서 있는 바위들도 묘하게 미륵이 서 있는 모습이다. 그러고 보면 문암리라는 이곳은 온통 미륵불 투성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미륵동이라고 했던 것일까?

 

그곳을 지나쳐 양편에 바위가 서 있는 곳을 지나 백도항 쪽으로 나가면 등대가 보인다. 그 좌측 바위를 보면, 누구나 그 앞에서 사진 한 장을 찍고 싶다. 온통 크고 작은 구멍들로 바위가 요란스럽다. 어찌 저렇게 생긴 것일까? 그런데 이 문암리에는 암서낭에 남근을 깎아 바치는 제의가 정월 초사흘에 있다고 했다.

 

 

남근을 닮은 미륵과 암구멍이라는 무수한 바위들. 참 묘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생각이다. 음양학으로 생각해도 문암리라는 곳이 범상치 않다는 생각이다. 예전에 이곳의 이름이 만호가 살 터전이라고 해서 만호리라고 했다던가? 언제 시간이 나면 정초에 치러진다는 문암리 서낭제에 한 번 다녀와야 할 것만 같다. 일몰 시간이 가까워 발길을 돌리면서도, 그 희한한 바위에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은 무엇 때문이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때론 참 행복한 일이다. 너무 허기가 진 상태에서는 오히려 음식의 맛이 반감이 된다고들 한다. 그래서 대충 배가 고파지기 시작할 때 먹는 음식이 가장 맛이 있다는 것. 그런데 배가 고프지 않은 데도 음식이 맛이 있다면, 그야말로 정말 맛이 있거나 혹은 특별한 음식일 것이다.

 

나란 인간이 워낙 맛집 블러거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이웃인 맛집 전문 블로거들의 글을 늘 보기는 하지만, 그렇게 정성을 들여 리뷰를 작성하지 못한다. 그저 답사를 다니다가 배가 고파 식당에 들렸는데, 우연히 그 집 음식 맛이 좋으면 먹다가 사진 몇 장을 찍어 올리는 것이 다이기 때문이다.

 

 

‘짬뽕 한 그릇 먹자고 거기까지 가’

 

태풍이 올라온다고 난리들을 피우는 날인 8월 27일 갑자기 강원도에 볼일이 생겼다. 일을 하다말고 부랴부랴 챙겨서 강원도로 달려가 일을 보고 난 후, 아침을 든든히 먹었는데도 속이 출출하다. 마침 점심시간도 되었고 하니 밥을 먹어야 하는데, 동행을 한 분이 ‘짬뽕을 아주 특별하게 잘 하는 집’이 있다는 것이다.

 

전날 먹은 술로 인해 숙취도 가시질 않았겠다. 고성군 공현진에 있다는 중국집을 찾아갔다. 속초에서 7번 국도를 타고 고성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죽왕면 소재지를 지나 좌측에 철새도래지인 송지호가 보인다. 그곳을 조금 지나치면 일출이 아름답다는 공현진리가 나오고, 마을 안 찻길이 휘어지는 곳 좌측에 ‘수성반점’이 있다.

 

 

 

 

이 수성반점의 짬뽕이 바로 추천하는 음식이라는 것이다. 허름한 길가 중국집에서 무슨 특별한 요리가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안으로 들어가 보았자 비좁고 날이 더우니, 길가에 있는 평상에서 먹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오징어 한 마리가 짬뽕 그릇에 ‘풍덩’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짬뽕이 나온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특별한 것 같지가 않다. 그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짬뽕이다. 그런데 가격도 만만치가 않다. 짬뽕 한 그릇에 6,500원이라니. 이 시골구석에서 가격도 착하지 않은 평범한 짬뽕 한 그릇에 많은 돈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그래도 음식을 시켰으니 어찌하랴, 배도 출출한 김에 짬뽕을 한 번 뒤집어 보았다. 그런데 이게 뭐야. 바닥에 깔린 것이 해물이다. 어림잡아 오징어 한 마리를 통째로 집어넣은 듯하다. 국물도 얼큰한 것이 일품이다. 이곳을 소개한 분은 ‘이 집 짬뽕에는 오징어가 두 마리가 통째로 들어있을 것’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그 말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정말 그랬으니 말이다. 먹어도 먹어도 오징어가 또 나온다, 아마 한 마리를 통째로 썰어 집어넣은 듯하다. 세상에 짬뽕 먹다가 턱이 다 아파보기는 또 난생 처음이다. 결국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곳을 들리는 분이 있으면 턱 한 번 아파보라고 권하고 싶다.

 

 

세상에 짬뽕 한 그릇 먹다가 턱이 다 아파보기는 난생 처음이다. 결국 시골 허름한 집의 짬뽕 가격 6,500원이 비싼 것이 아니었다. 알고 보면 아주 착한 가격이기 때문이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