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민족의 대명절인 설날입니다. 우리민족은 설날이라는 새해 첫날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설날에는 일찍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먼저 조상님들께 감사를 드리는 차례를 올립니다. 차례상을 준비할 때는 좋은 음식 자재들을 구입해 정성을 다해 준비를 하고는 합니다.

 

이렇게 설날 아침에는 온 가족이 모여 조상님들의 이야기를 하고 덕담도 주고받습니다. 차례를 마친 가족들은 성묘를 하러 갑니다. 이때도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을 싸들고 가는 것이죠. 이런 설날에 마련하는 음식은 남다르다는 생각입니다. 새해 첫날에 처음으로 입에 대는 음식이기 때문에 조상님들만이 아니고 식구들에게도 소중한 음식일 수밖에 없습니다.

 

 

변해가는 세상, 그래도 명절인데

 

아침에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조금은 황당하기도 합니다. 세상을 살다가 보면 어쩌다가 명절날에 집에 있질 못해 본의 아니게 차례를 지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잇는 곳에서 물 한 그릇이라도 정성스럽게 놓고 조상님께 감사를 드리던 버릇에 있어서인지, 저는 늘 설날 차례는 지극한 정성이 우선이란 생각을 합니다.

 

하긴 요즈음은 종교적인 이유로 인해 차례를 지내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조상이 없는 후손이 생길 수 있을까요? 차례는 지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조상님들께 대한 감사는 드려야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하고 종교가 다르다고 조상님들까지 귀신 취급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본인이 귀신의 자식이란 이야기인데.

 

잠시 딴 길로 나갔습니다. 전화 한 통을 받고나서 참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친구야 나 동해안으로 왔는데 너무 좋다. 너 시간되면 이리로 와라

명절인데 동해안을 어떻게 갔어. 너 장남이잖아?”

그런데 식구가 이번에는 좋은 곳에 가서 지내지고 해서 올라왔다

그래, 어차피 갔으니 잘 놀다가 와라

 

이번 명절 연휴는 4일이나 됩니다. 고향을 찾아 가는 사람들은 가족들을 만난다는 설렘으로 고생인줄 알고 가겠지만, 서울이 고향인 저희같은 사람들은 오히려 경계가 좋은 곳으로 나가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차례는 어떻게 하려고?”

펜션에서 지내려고

음식 준비를 할 수 있나? 제기도 없을 텐데

여기 명절음식 배달해 주는 집에다가 마쳤는데, 상과 제기도 함께 빌려준단다.”

 

 

세상이 좋아진 것일까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요즈음 명절 음식 배달업체가 성행한다고 합니다. 명절 하루 동안, 동해안 같은 곳에 업체는 엄청난 매상을 올린다는 것이죠. 모드 콘도나 펜션을 빌려 그곳에서 묵으면서 배달 제수음식을 주문해 차례를 지낸다고 합니다. 장에를 나가도 요즈음은 제수음식 중에 전 등을 만들어 포장을 해서 팔기도 합니다.

 

장에서 사서 쓰는 사람들이야 그래도 일부는 자신들이 조리한 것으로 상차림을 할 테니 무엇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렇게 해다가 주는 음식으로 조상님들께 차례를 지낸다는 것이 도통 이해가 가질 않네요. 정성을 다해 섬겨야 할분들 아니던가요?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친구 녀석이 모처럼 가족들과 함께 한 나들이에 찬물을 끼얹기 싫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네요. 아무리 세상이 변한다고 해도, 인간에게는 지켜야 할 도리라는 것이 있는데 말이죠. 문제는 제가 너무 변하지 않고 사는 것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제 살아가는 방식이 그런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음식을 조리한 사람들이 정성이 있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이천보 고가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만든다. 추운 날씨 탓인가 문은 모두 비닐로 막았고, 마당은 왠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조선조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진암 이천보가 살았던 집이니, 그 이전부터 집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이천보는 숙종 24년인 1698년에 태어나, 영조 37년인 1761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런 점으로 보아 이천보가 이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면, 이곳은 300년 이상 된 고가일 것이다. 그 오랜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켜 온 이천보 고가. 가평군 상면 연하리 226번지에 소재하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55호이다.

 

 

안채는 사라지고 사랑채가 안채로 쓰여

 

이천보 고가에는 안채가 없다. 6·25 동란을 거치면서 안채가 불타 없어졌다는 것이다. 아마 안채가 있었다고 하면 더 멋진 집이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현재 남아있는 건축물은 사랑채와 행랑채다. 행랑채 맞은편 건물은 최근에 지은 듯하다. 현재 대문으로 사용하고 있는 일각문이 원래 대문의 자리였는지는 모르겠다. 사랑채와 행랑채는 ㄱ(기억)자형으로 사이를 벌려 자리한다. 사랑채의 정면 담에 일각문을 내어, 현재는 그 일각문이 대문을 대신하고 있다.

 

안채로 사용하는 사랑채는 고종 4년인 1867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ㅡ(일)자형으로 지어진 사랑채는 정면 6칸, 측면 1칸 반으로 지어졌다. 동향인 사랑채는 잘 쌓은 장대석 기단 위에 높이 45cm 정도의 사다리꼴 주추를 사용했다. 사랑채를 마주하고 좌측에 보이는 목조건물인 누마루 방은 고종 때 사랑채를 중건할 때 붙여지은 것으로 보인다.

 

사랑채는 좌로부터 마루의 끝과 맞춘 누마루 한 칸과 방, 마루방인 대청과 두 개의 방이 연이어 있다. 누정과 같은 형태로 붙인 누마루는 3면을 창호로 둘렀으며, 여름이면 문을 모두 열어 바람을 맞게 만들었다.

 

일반적인 누정과 같은 누마루는 밖으로 돌출이 되는데 비해, 이천보 고가의 누마루 방은 건물 밖으로 돌출이 되지 않았다. 그런 모습에 집 주인의 나아가지 않는 겸손함이 배어있다. 사랑채에는 상고당(常古堂)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항상 옛것을 기억하라는 뜻인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수령 300년의 향나무가 고가의 연륜을 알려주고

 

이천보 고가 누마루방 뒤에는 경기도 기념물 제61호로 지정된 향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이 향나무 한 그루로 인해 이천보 고가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고가가 6·25 동란 시에 화를 입었음에도 이 향나무는 온전하게 살아남았다. 그래서인가 이 향나무의 모습이 더욱 신비롭기만 하다

 

수령이 300년이 넘었다는 이 향나무는 가슴높이의 둘레가 84cm에 높이가 15m나 된다. 이 향나무는 이천보의 선조가 심은 것이라고 전한다. 그런데 이 나무의 수령이 이천보 고가의 연륜을 알려주고 있다. 이천보는 1698에 태어나 1761년까지 생존했다.

 

이 나무를 이천보의 조상이 심은 것이라고 하면, 결국 이천보 고가는 300년이 훨씬 지났으며, 이 향나무의 수령도 300년 이상이어야 한다. 각종 공해에 잘 견디어낸다는 이천보 고가의 향나무. 아마 이 집안의 끈질김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돌담 벽으로 멋을 낸 행랑채

 

행랑채는 안마당에서 바라보면 우측에 방이 두 칸이 있고 부엌이 있다. 부엌 좌측에는 헛간과 곳간이 있다. 이 행랑채 곳간 쪽의 벽은 돌로 만들었다. 집 주위를 두른 담장은, 사랑채에서 볼 때 집안의 전체 분위기를 아늑하게 만들어주는 듯하다. 또한 무료하게 맨 벽을 바라보기 보다는, 돌담 벽으로 꾸며 나름대로의 멋을 부렸다.

 

 

6·25 동란 때 불이 나서 안채 등이 소실이 된 이천보 고가. 전체적으로는 집 구조가 어떻게 꾸며졌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 사랑채와 행랑채의 위치로 보아, 안채의 경우 행랑채 뒤편에 자리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일부가 소실이 되는 바람에 고택으로서의 가치가 높지 않다고 하여 지방 문화재자료로 지정이 되어있지만, 한 때 이 고가의 모습은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을 것 같다.

 

 

 

아픔의 세월이 느껴져

 

300년이 더 지난 이 이천보 고가의 사랑채 뒤에 있는 향나무나 행랑채의 담 벽, 이층으로 쌓은 장대석의 기단 등을 보아도 이 집이 얼마나 운치가 있었던 집이었나를 가늠케 한다. 그러나 일각문 앞에 문화재 안내판이 없었다면, 그저 어느 시골의 토호쯤이 살았을 그런 집으로 알았을 것이다. 집은 주인을 닮는다고 했던가?

 

 

실록에는 이천보가 병으로 죽었다고 되어 있으나, 실은 장헌세자의 평양 원유사건에 책임을 느껴 음독자살했다고도 전한다. 강직한 이천보의 성격상 그런 책임을 쉽게 넘길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마 이 집이 퇴락해 버린 것도, 그런 주인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있었음은 아닌지. 긴 세월 사랑채 뒤에서 온갖 역사의 소용돌이를 다 지켜 본 향나무는 알고 있으려나?

한가위인 추석은 우리나라에서는 설 다음으로 치는 큰 명절이다. 추석에는 차례상을 차리고 조상들에게 감사의 예를 표한다. 이런 차례를 두고 어느 종교에서는 우상숭배다 무엇이다해서 차례 자체를 지내지 않기도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도 참 어이없는 일이다. 조상에게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셔서 고맙다고 예를 올리는 것을, 무슨 종교적인 차원으로 된다, 안 된다는 논할 것인가?

지금 종교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번 추석연휴는 오늘부터 치면 4일이나 된다. 긴 연휴이다. 어제부터 쉬는 곳도 있었다고 하니, 5일간이나 쉬게 된다. 그래서인가 동해안 지역의 콘도는 거의 예약이 끝났다는 이야길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곳에 놀러가서 추석을 어떻게 지내고들 올까? 하는 점이다.

사진 / 다음 이미지

얘들아, 너희 같으면 이 차례상 즐겁게 받겠냐?

속초 등 동해안 지역에는 이 때쯤 되면 여기저기 걸리는 현수막이 있다. 설과 추석 등 명절 때만 되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현수막이다. 바로 '4인 기준 차례상 00만원' 등이란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다. 차례를 지낸 제수를 돈만 내면 다 알아서 배달까지 콘도로 해준다는 것이다.

지난 해인가 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자신의 친척이 동해안으로 명절 연휴에 갔다가 차례상을 시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상을 받아놓고 보니, 도저히 그 음식으로 조상님들께 차례를 올리지 못하겠다라고.  물론 음식이야 그런데로 괜찮지만, 조상님들께 음식을 모두 사다가  차례를 지낸다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더라는 것.

할 수 없이 장에 나가 몇 가지만 준비를 하고, 과일 등도 간다하게 몇 가지만 사서 조촐하게 상을 차리고 예를 올렸다는 것이다. 아마도 조상님들꼐서 그 조촐한 상을 더 즐겨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밖을 보니 연신 차례를 지낼 음식을 배달하는 차량들이 들락거리고 있더라는 것. 자신도 그 음식을 시키기는 했지만, 그런 모습을 보니 정말 어이가 없더라는 것이다.

간단하게 차려도 정성들인 상을 차려야


연휴에 가족끼리 경치좋은 곳을 찾아 즐기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요즈음은 콘도에도 웬만한 기물은 다 준비가 되어있다. 어느 곳에서는 부탁을 하면 상과 제기를 빌려주는 곳도 있다고 한다. 장에나가 가족끼리 제사를 모실 음식 등을 준비해, 오손도손 둘러 앉아 제수를 마현한다면 그 또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린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어차피 음식을 차려놓고 조상님들께 차례를 지내고나면, 그 음식은 모두 가족들이 먹게 되어있다. 집에서 차례를 모시는 사람들이야,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해 많이 준비를 한다고 하지만, 가족끼리 여행을 갔다면 그 식구들이 먹을 수 있는 것만 차리면 되기 때문이다. 조촐하게 차려도 정성을 드린 음식, 아마 조상님들은 그 음식을 더 즐겨 감흥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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