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지 뒤로 구층석탑이 보인다

 

아무리 장마가 들었다고는 하지만, 하루 종일 퍼부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충남 청양군의 문화재를 답사하겠다고 나선 까닭은 바로 대치면에 있는 장곡사 때문이다. 절은 그리 크지 않지만, 이곳은 유일하게 대웅전이 두 곳이 있는 절이기 때문이다. 장곡사를 나와 칠갑산을 옛 길을 넘어 찾아간 정산면 서정리에 있는 ‘청양 서정리 구층석탑’.

 

멀리서도 도로 옆 벌판 한 가운데 서 있는 구층석탑이 보인다. 사실 청양군의 문화재를 답사하면서는 딴 곳의 두 배가 더 힘들었다. 우선은 도로에 안내를 유도하는 안내판이 서 있지 않은 것도 그렇지만, 쏟아 붓는 듯한 장맛비로 인해서 찾아가는 길도 낯설고, 사진을 촬영하는데도 어려움이 따랐기 때문이다.

 

비가 잠시 소강상태에 들었을 때 연꽃을 찍느라... 

 

주변에는 400년이 지난 백련지가 조성되어

 

충남 청양군 정산면 서정리 16-2에 소재한 보물 제18호인 ‘청양 서정리 구층석탑 (靑陽 西亭里 九層石塔)’은, 공주에서 청양 방향으로 23㎞ 정도 떨어진 벌판 가운데에 서 있다. 이 탑이 있는 부근에 고려시대에 ‘백곡사(白谷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나, 주위에 기와조각 등이 흩어져 있을 뿐 다른 유물들은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한다.

 

이 구층석탑 주변에는 백련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이 백련지는 조선 선조 20년인 1587년에 송담 송남수가 정산 현감으로 재임을 할 때, 정산현 좌측에 연못을 만들고 만향정이라는 정자를 세우면서 심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런 내용으로 보면 이 백련지는 400년이 훨씬 지난 백련지이다.

 

고려 초기에 조성된 구층석탑

 

정산면 서정리 구층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9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한 면에 2개씩의 안상을 돌려 새겼는데, 바닥선이 꽃모양으로 솟아올라 있어 고려시대의 양식상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위층 기단에는 네 모서리에 양우주를 돋을새김 하였고, 면의 가운데에는 기둥 모양인 탱주를 돋을새김 하였다.

 

기단의 위로는 알맞은 두께의 돌을 덮개석으로 안정된 모양새를 띠고 있다. 이 구층석탑은 탑신의 1층이 지나치게 크다. 하지만 2층부터는 높이가 크게 줄어들었지만, 넓이는 그리 좁아지지 않아 우아한 느낌이다. 덮개석인 지붕돌은 층급받침은 1층은 5단, 나머지 층은 3단씩으로 조성을 하였으며, 네 귀퉁이가 약간씩 추켜 올라가 있다.

 

서정리 구층석탑은 전체적으로 신라시대부터 이어져 온 석탑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나, 9층이나 되는 층수로 인해 형태가 매우 높아져 안정감은 조금 부족해 보인다. 이 구층석탑은 각 부분의 세부적 조각양식이나 기단의 안상을 새긴 수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탑의 기단부에는 한 면에 두개씩의 안상을 새겼다 

 

천년세월 그 자리에 서 있어 고맙다

 

몸돌인 탑신부는 몸돌과 덮개돌인 옥개석이 각각 한 개의 돌로 되어 있는 이 탑은, 1층 몸돌의 크기에 비해, 2층 몸동부터는 높이가 급격히 줄어들었으나 우아하게 체감되어 있다. 몸돌의 덮개석 역시 탑신에 따라 아름다운 체감비율로 되어 있으며, 상륜부는 현재 모두 없어진 생태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석탑의 형식이 신라시대부터의 전형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상하의 비례가 아름답다. 서정리 구층석탑은 고려시대 초기에 조형된 균형이 잘 잡혀간 거탑의 일종이다. 고려시대에는 석불이나 마애불, 탑 등을 이렇게 크게 조성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강한 국권의 상징은 아니었을까?

 

옥개석의 사방 끝에는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나 있다

 

변 백련지에 핀 백련과 아우러져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서정리 구층석탑. 천년 세월을 그렇게 한 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상륜부만 사라진 채 잘 보존이 되어있어 고맙기만 하다. 잠시 소강상태에 있던 장맛비가 다시 ‘후두둑’하며 쏟아지기 시작한다. 더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한 가지라도 많은 문화재들을 만나기 위해 길을 재촉한다. 다음에 만나게 되는 문화재는 어떤 것일까? 기대를 하면서 빗길을 달린다.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 이곳이 어디라고 하면 잘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원주 거돈사지라고 한다면 웬만한 사람들은 '아! 그곳'하고 알 수도 있다. 부론면 소재지에서 정산리로 가는 고갯길은 넓지가 않다. 가다가 큰 차라도 만나면 비탈 옆으로 바짝 차를 붙여야만 할 때도 있다. 어제부터 내린 눈이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다행히 명절 때라 고향으로 찾아올 사람들 때문에 도로에 눈은 말끔히 치워졌다.

 

석장승 2기가 길 가에 서 있어

 

삼거리에서 정산1리를 지나 2리로 들어가면 마을회관이 나온다. 그곳을 지나면 우측에 석장승 2기가 마주하고 서 있다. 장승은 길을 가운데 두고 마주서게 자리를 잡지만, 정산 2리의 석장승은 길가 우측에 마주하고 있다. 길에서 보면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 지하여장군이고, 길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 천하대장군이다.

 

 

이 석장승의 옆에는 각각 솟대를 세워놓았다. 천하대장군은 사모를 쓰고 눈과 코는 돋을새김을 하였다. 그리고 이빨을 큼지막하게 선각으로 처리를 하였다. 복판에는 네모나게 자리를 내고 천하대장군이라 한문으로 썼으며, 허리 부분을 금줄로 묶어 지하여장군과 연결해 놓았다. 지난해 친 금줄은 낡고 색이 변했지만, 이 마을이 장승제를 거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하여장군은 비녀를 꽂은 형상이다. 그리고 눈과 코 이빨은 천하대장군과 다름이 없다. 복판에는 지하여장군이라 한문으로 음각을 하고, 허리에 금줄을 묶어 천하대장군과 연결을 했다. 그리고 또 한 줄은 각 장승과 함께 있는 솟대에 연결을 했다. 금줄은 왼새끼를 꼬아 두르는데, 한번 두른 금줄은 다음 해에 새로운 제를 지낼 때까지 그대로 놓아둔다.

 

천하대장군인 숫장승은 귀가 크고 눈과 코를 돋을새김을 하였다

지하여장군은 비녀를 지른 형태로 조형을 하였다. 솟대와 함께 서 있다.

솟대는 위에 기러기를 올린다. 기러기는 멀리 날 수가 있다고 하여. 멀리서 오는 액을 막는다는 뜻이다.

 

거돈사지 앞에도 장승이

 

정산2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정산 3리가 된다. 이곳에는 사적 제168호인 거돈사지가 있다. 신라 때에 창건된 거돈사는 임진왜란 때에 소실이 되었다고 한다. 거돈사를 들어가기 전 우측에 폐교가 된 학교가 있다. 그 담장 밑에 나무로 만든 목장승이 여러 기가 서 있었다. 눈길을 달려 온 것도 기축년을 보내고 경신년을 새롭게 맞는 날에, 묵은 것을 장승에 빌어 다 털어버릴 생각에서다. 그리고 눈이 쌓인 목장승의 모습을 담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한 5 ~ 6년 전인가 이곳 거돈사지를 찾았을 때 만났던 목장승군. 아마 7 ~ 8기나 되어 보이는 목장승들이 서로 어깨를 기댄 채 돌무지 위에 서 있었다. 그 목장승군이 그렇게 정겨워보였다. 그러나 그 자리에 가니 목장승이 보이지가 않는다. 그 대신 정산 2리의 석장승과 같은 장승이 이곳에도 마주하고 서 있다.

 

매년 해를 거르지 않고 제를 지내는 정산리. 그런데 왜 목장승을 없애고 석장승으로 대체를 한 것일까? 물론 목장승은 매년 새로 깎아서 세워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래서 바꾼 것일까?

 

정산3리 거돈사지 앞에는 이런 목장승이 서 있었다.

 목장승을 대체한 정산 3리의 석장승

천하대장군. 밑에 기단을 놓고 그 위에 장승을 얹었다.

 

기단을 놓고 그 위에 장승을

 

정산 3리의 장승은 색다르다. 먼저 기단인 네모난 기단석을 놓고 그 위에 장승을 세웠다. 천하대장군은 폐교 담장 쪽에 서 있고, 지하여정군은 길 쪽으로 서 있다. 이곳도 두 장승이 마주하게 놓았는데, 지하여장군은 길을 등지고 서 있다. 전체적인 모습은 정산 2리의 장승과 다름이 없다. 그런데 이 장승들을 보니 특이한 점이 있다.

 

솟대가 나무를 깎아 대를 세우고 그 위에 기러기를 올린 것이 아니고, 장승의 머리 위에 크게 기러기를 깎아 올려놓았다. 천하대장군의 머리 위에는 검은 색 기러기를, 지하여장군의 머리 위에는 붉은색 기러기를 올려놓았다. 허리춤 밑으로 묶은 금줄도 서로 연결이 되지 않았다. 몇 년만에 찾아온 정산리. 바쁘게 달려와 목장승 머리에 쌓인 눈을 보고 싶었는데, 그 대신 이렇게 돌로 깎아 색다르게 변한 장승을 보게 되다니.

 

천하대장군의 머리 위에는 검은 기러기를 올렸다

지하여장군의 위에는 빨강 기러기를 올려 놓았다.

 

그러나 그런 형태를 중시하는 것은 아니다. 장승을 세우고 정성을 드리는 것은, 모두 마을의 안녕을 빌기 위함이다. 이곳 정산리의 주민들과,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이 모두 평안한 경인년이 되기를 바란다. 눈이 쌓인 곳에 발을 묻고 있는 장승들. 그 차디찬 석장승의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듯하다. 계사년에는 좋은 일만 생기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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