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까지 지낸 선조를 둔 파평윤씨의 후손들이, 사랑채를 짓는데 재활용을 했다고 하면 이해가 가는 일일까? 물론 추증으로 영상이 되긴 했지만, 조선조에 양반들의 세도가 하늘을 찌를 시기에, 딴 곳에서 옮겨온 목재를 이용해 사랑채를 꾸몄다. 사랑채의 기둥에는 그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 52에는 충남 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된 윤황선생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이 집이 처음에 지어진 해는 정확하게 전해지지가 않으나, 윤황(15721639) 선생의 6대손인 윤정진이, 조선조 영조 때 지금의 자리로 옮겨 종가로 내려오고 있는 집이다.

 

이 집은 자형 사랑채와 자형 안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구조는 튼 자형 평면을 갖추고 있다. 사랑채 뒤편으로는 담을 쌓아 안채와 구분하고 있으며, 좌측으로는 자형의 안채가 자리하고, 우측으로는 l 자형의 행랑채가 자리하고 있다. 안채의 우측에는 높게 앉은 사당채가 자리하고 있다. 윤황선생의 고택은 화려하지 않으며, 간결하게 지은 옛 전통 가옥으로 중부지방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선생의 심성을 닮은 사랑채

 

윤황선생은 조선조 선조 5년인 1572년에 태어나서, 인조 17년인 1639년에 세상을 떠난 문신이다. 자는 덕휘, 호는 팔송으로, 선조 30년인 1597년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인조 때에는 동부승지, 이조참의, 전주부윤을 지내기도 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에는 척화를 주장하였다. 1637년 김상헌, 정온 등이 병자호란 때 화의를 반대했다는 죄로 청에 붙잡혀 갈 때, 윤황 선생은 자신이 대신 잡혀 가겠다고 했으나 허락받지 못하였다. 선생의 사후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남을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겠다고 자처할 수 있는 윤황선생의 고택. 앞으로는 - 자형의 사랑채가 6칸으로 마련되어 있다. 가운데 다섯 칸이 있고, 좌우측에는 반 칸의 높임마루를 한 방이 있는데, 사랑채를 바라보며 좌측은 앞으로 돌출이 된 작은 공간이고, 우측은 측면으로 툇마루를 달아낸 누정 방으로 꾸몄다. 중앙 좌측의 두 칸은 온돌방으로 했으며, 이어 두 칸의 대청을 두었다. 대청은 두 칸 다 네 짝 문을 달아냈다.

 

이 집은 딴 곳에서 옮겨왔다고 하는데, 대청의 기둥을 보면 목재를 재활용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대청 앞으로 나란히 선 네모난 기둥들의 위편을 보면, 나무를 끼웠던 흔적들이 있다. 당시 파평 윤씨들의 가문에서 이렇게 나무를 다시 재활용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세도를 부리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남을 위해서 스스로를 버릴 줄 아는 윤황선생의 자손답게 집을 옮겨 지으면서도 절약을 했다는 것이다.

 

 

낮은 굴뚝에 얽힌 의미

 

뒤편으로 돌아가면 배수로를 내었는데, 연도가 그 배수로를 지나 낮은 굴뚝과 연결이 된다. 굴뚝을 이처럼 낮게 만드는 이유는 대개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 첫째는 낮은 굴뚝을 바라보면서 늘 그 굴뚝처럼 낮은 곳에서 사람들을 위하라는 뜻이다. 종가집들의 굴뚝이 하나 같이 낮은 이유가 바로 그렇다. 집안에 모든 사람들만이 아니라, 세상 누구에게도 겸손하라는 것을 일러주는 교훈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방역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대개 한옥에서 소나무나 참나무 등을 이용해 불을 지핀다. 나무를 넣기 전에는 낙엽 등을 이용해서 불씨를 만드는데, 그때는 연기가 많이 나게 된다. 그 연기들이 낮은 굴뚝에서 뿜어져 나와, 집안 곳곳에 병충해를 잡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 한옥에는 그 작은 것 하나하나도 다 용도가 있다는 것이다.

 

 

화려하지 않은 안채의 정숙함

 

윤황고택의 안채는 화려하지 않다. 그저 분칠을 하지 않은 맨 얼굴처럼 정숙하다. 자 형으로 꺾인 안채는 좌측에 부엌과 안방, 윗방을 두고, 꺾인 부분에 대청과 건넌방을 두고 있다. 사랑채와 같이 안채의 대청에도 창호를 달았다. 그리고 우측 맨 끝 방은 높임마루를 놓고, 그 밑에 한데 아궁이를 내었다.

 

이렇게 높임마루를 놓았을 경우 그 측면에는 낮은 툇마루를 놓기도 하는데, 윤황 선생의 고택은 그 흔한 툇마루마저 없다. 그저 치장을 하는 것을 최대한으로 억제한 집이다.

 

뒤편으로 돌아가며 보수를 하면서 새로 쌓은 듯한 축대가 있다. 그 축대 한편에 장독대가 놓여있는데 일반적인 종가의 장독대와는 다르다. 그저 평범한 민초의 장독대와 다를 바가 없다. 무엇하나 보기 좋게 만들기 위해 치장을 하지 않은 집. 그래서 집은 주인을 닮는다고 한 것일까? 윤황선생의 고택이 바로 그러하다.

 

 

자연이 녹아있는 사당채와 연못

 

윤황선생 고택 사당채는 양편에서 오를 수가 있다. 사랑채 뒤에서 일각문을 통해 사당으로 오르는 길은, 제의를 지낼 때 종친들이 사랑채에서 바로 오를 수 있도록 낸 길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길은 안채 뒤편 계단을 통해서 사당채로 오르는 길이다. 역시 담장에 일각문을 내었다. 이 문은 안채에 있는 부녀자들이 음식을 나를 때 동선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랑채에 앉아 좌측 높임마루에서 보면 그 앞쪽으로 작은 연못이 있다. 주변이 정리가 안 돼 연못을 식별하기조차 쉽지 않지만, 아마 이 연못에는 꽃이 피고 물고기들이 유영을 했을 것이다. 자연을 그대로 닮은 집. 그리고 자연을 위한 집. 논산 윤황선생의 고택은 집 안에 그렇게 자연이 녹아 있었다.

 

버려진 각종 고물과 폐타이어. 그리고 온갖 쇠붙이와 가죽가방, 심지어는 운동화까지 있다. 남들이 버린 이런 폐품들이 새 생명을 찾았다. 작가 파브르 윤에 의해 작품으로 둔갑을 한 것이다. 96() 생태교통 수원2013이 열리고 있는 수원 행궁 광장. 이 날은 자원순환의 날로 기념식이 열리고 있었다.

 

작가 파브르 윤은 정크아트공작소 대표이다. 한국 정크아트협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작가는 그동안 많은 곳을 찾아다니면서 정크아트 전을 열었다. 정크아트란 일상생활에서 나온 부산물인 폐품을 활용하여 제작한 미술 작품을 말한다. <junk>란 폐품, 쓰레기, 기타 버려진 잡동사니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를 활용한 미술작품을 '정크아트'라고 한다.

 

 

1950년대에 일기 시작한 정크아트 작품

 

정크아트란 폐품을 소재로 하지 않는 전통적 의미의 미술이나, 각가지 폐품을 만들어내는 현대 도시 문명에 대한 비판을 담아내고자 하는 작품들이다. 즉 자원의 재활용이 아닌 고급화된 미술품에 대한 비판을 담아내고자 노력한 것이다. 1950년 이후 산업 폐기물이나 공업 제품의 폐품에서 작품의 소재를 찾으려는 작가들이 미국과 유럽에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정크아트의 작가로는 부서진 자동차 부품을 이용한 체임벌린(Chamberlain)과 자동차를 압축하여 쌓아올린 세자르(C'esar), 금속이나 나무, 폐타이어를 이용하여 거대한 건축물을 만든 수베로(Mark di Suvero) 등을 들 수 있다. 그밖에 많은 정크아트 작가들이 활동을 하고 있다.

 

많은 정크아트 전을 가진 작가 파브르 윤

 

이번에 생태교통 지역인 행궁광장에서 정크아트 전을 갖는 작가 파브르 윤은 2006년 함평 나비축제, 대전 과학엑스포, 청남대 야외전시 등을 열었고, 2007년 예술의 전당 공모전 당선 전시, 2008년 마포 자원순환 테마전시, 10차 람사르협약 당사국 총회 초대전 등에서 전시를 가졌다.

 

 

2009년에는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 1회 자원순환의 날 행사, 2회 대한민국 콘텐츠페어 등에서 전시를 가졌다. 2010년 제2회 자원순환의 날 리싸이클링 아트전, 환경퍼포먼스 공연, 2011년 제3회 자원순환의 날 정크아트 전 등 다수, 2012년 포천 아트밸리 정크아트 전 등 다수, 2013년 반기문 UN평화공원 내 상설전 등을 가졌다.

 

이렇게 활발한 정크아트 전을 가진 작가의 작품 수십 점이 생태교통 현장에서 이곳을 찾아 온 사람들과 만났다. 한 관람객은

폐자재를 갖고 이렇게 생동감이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니 정말 놀랍다. 작가들은 좋은 재료를 이용해 작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렇게 폐자재를 갖고 작품을 만든다고 하면, 자원의 순환에도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행궁 광장에 전시가 되어있는 작품들은 폐타이어로 제작한 말과 악어, 타조, 나비, 공작, 드럼 등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관람을 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것들이 신기한 듯, 만져보기도 하고 심지어는 두드려도 본다. 폐품의 무한한 변신인 정크아트 전. 쓰레기가 변해 예술작품으로 거듭 난 정크아트가 자원순환의 날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는 듯하다.

 

오늘 생태교통에 와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워갑니다. 화석연료가 고갈이 된 후 우리가 어떻게 대처를 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자원의 재활용이라는 정크아트 작품을 보면서, 앞으로 더 아끼고 모든 것을 귀하게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찾아왔다는 이아무개(, 17)군의 말처럼, 우리가 생태교통 수원2013’에서 배워갈 것은 단순히 생태교통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51일부터 시작한 수원시의 쓰레기와의 사랑과 전쟁선포.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수원시는 각종 계도 등을 통해 쓰레기 줄이기에 최선을 다해왔다. 각 동별로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모든 방법이 다 동원되었다. 그리고 종양제 봉추 사용과, 재활용품의 철저한 분리배출 등을 위해 노력을 했다.

 

우선 쓰레기가 과연 줄어들기는 했을까? 처음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지 않거나, 제대로 분리가 되지 않은 쓰레기는 수거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골목마다 쓰레기들이 넘쳐나기 시작했고, 냄새가 진동을 했다. 더욱 올해는 5월에도 기온이 높아 마구 버린 쓰레기들의 부패가 빨라 냄새가 더 했다.

 

 

현저히 줄어든 무단투기

 

한 마디로 이 쓰레기와의 전쟁이 성공을 했느냐?고 물으면 성공쪽에 가깝다고 볼 수가 있다. 선포 이후 당분간은 아무 거리낌 없이 무단투기를 하거나 종량제봉투 미사용, 재활용품 분리수가가 안된 경우가 허다했다. 그 후 한 달 같은 거리를 다니면서 계속 눈여겨보았다. 지금은 어떠할까?

 

우선은 쓰레기의 양이 줄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종량제 봉투에 담아 내어놓는 쓰레기들이 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쓰레기 적치장 주변에 있는 주민들은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지 않은 무단투기를 스스로 감시하기 시작했다. 쓰레기가 수거되지 않으면 결국 그 피해는 적치장 주변 사람들이 당하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시의 쓰레기와의 사랑과 전쟁 선포가 참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쓰레기 처리로 인해 소중한 세금이 그렇게 많이 들어가는 지도 몰랐고요. 그런데 지금 한 달이 지나서보니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 기회에 종량제봉투를 사용하지 않거나,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고 쓰레기를 내다 놓는 사람들의 의식을 완전히 바꾸어야 할 것 같아요.”

 

쓰레기 적치장 근처에 살고 있다는 정아무개(, 59)는 처음 쓰레기가 쌓여 그 냄새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가, 스스로 무단투기자에게 종량제봉투 사용을 권장하기도 했단다.

 

무단투기 뿌리 뽑아야

 

같은 지역을 매일 한 달간 눈여겨보았다. 처음 얼마동안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무단투기를 한 쓰레기들에 경고 스티커를 부착하고 그대로 쌓아놓았다. 골목 여기저기에 쓰레기들이 점차 쌓여가고, 냄새는 진동을 했다. 적치장 주변 사람들은 무단투기를 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시작했고, 스스로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의 방치는 곤란했어요. 냄새도 냄새지만 가득 쌓인 쓰레기더미가 정말 불쾌했거든요. 그래서 주변 주민들 스스로가 분리정리를 해 놓아 수서가 가능하게 만들었고요

 

적치장 앞에서 장사를 하는 윤아무개(, 45)의 말이다. 스스로가 무단 투기자들을 감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재활용 쓰레기들은 분리를 해 담아 놓는다고 한다. 그래서 수거를 해 가기 때문이다.

 

이 기회에 종량제봉투를 사용하지 않거나, 분리를 하지 않는 재활용 쓰레기의 투기는 뿌리를 뽑아야 할 것 같아요. 무단투기가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밤늦게 슬그머니 와서 버리고 가거든요. 정말 자체적으로 CCTV를 달아 쓰레기와의 전쟁을 끝내야한다고 생각해요

 

한 달 동안 눈여겨 본 거리. 쓰레기는 많이 줄어들었고, 종량제봉투의 사용지가 늘었다. 그러나 곳곳에 아직도 검은 비닐봉투에 넣어 내다버린 쓰레기들이 보인다. 그리고 투명한 봉투에 넣어 분리를 해서 내다놓아야 하는 재활용쓰레기들도 함께 섞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질 때까지 한 판 전쟁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수원은 지금 쓰레기와의 한 판 전쟁과 사랑을 겪고 있다. 길가마다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지 않거나 마구 섞어 버린 쓰레기를 수거하지 않아, 여기저기 쓰레기더미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일부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그런 시의 방침을 비난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한 번 겪어야 할 홍역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무분별한 쓰레기의 무단투기를 방치하란 말인가? 그리고 언제까지 그런 몰지각한 양심으로 인해, 시민들의 혈세를 탕진하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이렇게 쓰레기와의 한 판 승부를 하고 있는 요즈음, 쓰레기를 이용해 예술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바로 영동시장 2층에 있는 아트포라 회원들의 쓰레기 재활용 소식이다.

 

 

아파트, 주택가에서 들고 온 쓰레기들

 

아트포라 공간 한편 바닥에 비닐천을 깔고, 그 위에 물감 칠을 한 조형물들이 놓여있다. 여행용 가방도 있고, 버려진 흔들의자도 보인다. 그런가하면 부수어진 새장들과 마네킹도 있다. 그런 것들이 모두 쓰레기로 버려진 것들이다. 그런데 이 쓰레기를 주어다가 칠을 하고, 여러 가지 치장을 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무엇이 그립습니까?’

이 쓰레기들의 제목이다. 쓰레기더미에서 주어 온 물건들이 새롭게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것이다. 가방은 옛 여행이 그리운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마네킹은 칠이 되어 머리위에 나비를 부쳤다. 어릴 적 동심을 그리워하는 것이란다. 산과 들을 뛰어다니면서, 자연을 벗 삼아 놀던 어린 시절. 마네킹은 바로 나 자신의 어린 시절이 된 것이다.

 

흔들의자 위에는 곰 인형 한 마리가 놓여있고, 흔들의자 다리 밑에는 스키가 붙어있다. 스키를 타러 다닐 때를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버려진 아기침대는 다시 조형이 되었다. 어린 아기 때, 혹은 자신의 어린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그렇게 쓰레기가 예술작품으로 승화되어 새 생명을 얻었다.

 

 

버리면 쓰레기 모으면 자원은 철칙

 

이 작품들은 아트포라의 빈 공간을 채워줄 것이라고 한다. 혹은 시장 안과 지동교 인근에 조형물로도 설치가 된다고 한다. 행궁 앞에서 벌어지는 수원화성국제연극제 한 편에 쉼터로도 이용된다고 한다. 아트포라 회원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기가 막힌 발상이다. 쓰레기가 예술작품으로 다시 생명을 얻었다는 것이다.

 

버리면 쓰레기가 되지만, 모으면 재활용할 수 있는 자원입니다’. 이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점점 아름답게 변해가는 작품들을 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자원을 길거리에 버리고 있는가를 반성해야 한다. 쓰레기와의 전쟁은 결국은 바보 같이 버려진 양심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젊음의 손길에서 생명을 얻어

 

이렇게 주어 온 쓰레기들을 빈 공간과 쉼터의 예술작품으로 만드는데 열심인 젊음들이 있다. 비로 수원영리더스아카데미 회원들이다. 수원에 주소지를 둔 학생들이거나, 수원에 소재한 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로 구성된 봉사단체이다.

 

현재 영리더스아카데미 회원들은 수원의 네 곳에 나뉘어 봉사를 하고 있다. 지동교 위에서 열리는 일요체험장과 영동시장과 아트포라, 수원역전시장, 그리고 생태교통수원2013’의 현장이다. 영동시장에는 모두 15명의 영리더스아카데미 회원들이 봉사를 하고 있으며, 이들은 전통시장과 예술을 접목시켜 새로운 시장문화를 창출하는데 기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저희들은 그동안 아트포라와 영동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고민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시장에 오셔서 길을 묻거나 점포를 물어보시기도 하죠. 그래서 저희들이 토의를 거쳐 시장점포 지도와, 길 입구 표지 등을 제작할 것을 시장 측에 건의도 했습니다.”

 

 

영동시장 아카데미의 김주연(중앙대) 단장의 설명이다. 이날 쓰레기재활용 예술작품을 만들기에는 이금희(아주대), 신혜미(경기대), 인덕근(아주대), 김성빈(한신대), 임수영(동방여대) 등이 작업에 참여를 했다. 젊음의 손길에 의해서 버려진 쓰레기들이 새롭게 변화를 하고 있는 현장이다.

 

이들 작업에 참여를 한 젊음들은 이야기를 한다.

봉사를 하다가 보니 자신감이 생기고 매사에 당당해졌다

절친한 사람들과의 만남만 있었는데, 폭 넓은 사교력이 생겼다

낯가림이 심했는데 매사에 자신감을 얻었다

기획 등을 할 수 있는 실력이 생겼다

잊고 있었던 미술적 재능감을 되찾았다

 

봉사도 하고 자신이 사회에 나아가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응용력이 생겼다는 젊음들. 이들의 손길에서 변화한 볼품없던 쓰레기들의 새생명 얻기. 이 시대에 우리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닐까? 행궁 광장과 시장통에서 만나볼 생명들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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