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걸린 그림을 보고 있노라니 참 이상한 것이 하나 있다. 모든 그림 안에 의자가 하나씩 자리를 잡고 앉았다. 왜 이 작가는 이렇게 의자를 그림 안에 그렸을까? 수원 팔달구 지동교 옆에 자리한 영동시장 2. 가을비가 참 억세다 할 정도로 쏟아지는데, 3일 오후 아트포라 갤러리인 아라를 들려보았다.

 

작가 백기영(, 42. 당수동 거주)씨는 그림을 그린다. 그 그림 속에 의자가 들어있다. 그리고 그 의자를 시작이라고 표현을 했다. 왜 그런 표현을 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작가의 의도를 알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질문을 던졌다. ‘왜 그림 속에 의자가 있는가?’. 돌아오는 대답은 간단했다. 의자가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처음은 자리인 의자로 시작된다.

 

어릴 때 초등학교에 처음 들어가면 어머니들이 아이들이 자리를 찾아봅니다. ‘우리 아이 자리가 어디지?’ 라는 질문과 함께요. 그 자리에는 반드시 의자가 있습니다. 결국 그 자리라는 것이 의자를 말하는 것이죠.”

 

그래서 백기영 작가가 생각하는 의자란 시작이라고 한다. 백기영 작가의 작품 사이에 이런 글귀가 보인다.

나의 시작은 의자와 함께(My start is with chair)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의자들

어린 시절, 학교 다니고, 연애를 하고, 일을 시작하고, 잠시 쉴 때도

우리는 늘 의자와 함께 하였다.

지금 있는 자리가 불편하거나 힘들더라도 그 자리에서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을 생각해보자라는 글귀이다.

 

 

제가 한 10년 정도 직장생활을 했어요. 그러다가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하니까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꼈죠. 결국은 제 의자가 없다는 거예요. 의자가 없다는 것은 제가 편히 쉬거나, 일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의자가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를 깨달은 것이죠.”

 

처음으로 연 미술전시회

 

914일까지 아트포라 갤러리 아라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는 백기영 작가. 본인은 굳이 작가라는 표현을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을 이야기한다. 전시회 취재를 한다고 하니 조금은 의아한 얼굴로 바라본다. 자신이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기사를 쓸 수 있느냐는 것이다. 차근차근 설명을 해 준 다음에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수원 토박이인 백기영 작가는 초, , 고를 모두 수원에서 나온 토박이이다.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를 하고 있지만 전공은 건축이란다. 그런데 무엇을 만들고 나서 그곳에 그림을 그리기를 좋아했다고, 특히 아이들의 방을 꾸밀 때는 이것저것 직접 그려 넣어 아름답게 꾸미기도 했단다. 그러다가 전시를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이렇게 제 이름을 갖고 전시회를 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제 그림이 워낙 독특해서인지 친구들도 처음에 의자를 그린 그림을 보고 무슨 뜻이냐고 질문을 많이 합니다. 저는 의자는 곧 시작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아이가 처음으로 어머니를 떠나서 만나게 되는 것이, 초등학교의 의자이기 때문에 의자가 곧 시작이라고 알려주기도 하죠.”

 

 

백기영 작가의 의자를 보고 있노라니 묘하게 빠져든다. 아마도 그 의자가 시작이고, 우리가 가장 편하게 앉아있을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의자. 작가의 의자에는 이런 말들이 쓰여 있다.

 

신입사원, 입사를 축하합니다.’

부장님, 승진을 축하합니다.’

그래, 시작하는거야 1, 2’

많은 사람들이 갤러리 아라를 찾아 그 의자에 얽힌 이야기 하나쯤 만들어 보기를 권유한다.

앞으로는 맑은 물이 흐르고, 바위와 각종 꽃나무들이 함께하는 정자 광제정.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30호인 광제정은 임실군 삼계면 세심리에 자리하고 있다. 광제정은 조선 초기에 양돈(1461∼1512)이 후천리 광제마을에 처음 지었으며, 지금 건물은 양돈선생의 후손 양성모가 1871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광제는 양돈선생의 호다. 양돈선생은 서울에서 생원, 진사를 지내다가 무오사화를 피해 아산방(현재, 봉현리)에서 은거하였는데 문장과 덕행이 뛰어났다고 전한다. 성종 9년인 1478년에 소과에 합격한 양돈선생은 남효온 등이 천거하여 조정에서 여러 차례 관직을 내렸으나, 모두 사양하고 이곳에서 자연을 벗 삼으며 여생을 보냈다.

 

 

벼슬도 마다한 광제 양돈선생

 

양돈선생이 죽자 마을 사람들은 그의 학식과 덕망을 추모하기 위해 정조 12년인 1788년에 아계사(阿溪祠)를 지어 위패를 모셨다고 한다. 그만큼 당시 선비들은 양돈선생의 덕목을 흠모하였던 것 같다. 정자 안에 걸린 게판에는 김인후, 기정진 등이 남긴 글이 걸려 있다.

 

광제정을 찾은 것은 요즈음 세태에 젖어든 마음을 씻기 위해서다. 이제 대선이 며칠 밖에 남지 않았다. 새 내각을 구성하게 되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높은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자신의 허물까지 억지로 덮어가면서 난리를 피우는 모습을 보일까 궁금하다.

 

 

양돈선생은 그렇게 주변사람들이 그 문장과 덕행이 아까워 벼슬길에 오를 것을 종용하였으나, 끝내 사양을 하였다고 하지 않던가? 더욱 이곳이 ‘세심리’라니. 마음을 깨끗이 닦아내어, 그런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물질과 권세에 초연하고 싶어서였나?

 

요즘 사람들이 배워야 할 덕목

 

사람들은 누구나 다 출세를 지향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자리에 앉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적당히 배를 불릴 수 있으면 마다하지 않고, 주변 것들을 먹어치운다. 참 그 배는 많이도 들어가는가 보다. 그러나 오늘 광제정의 주인 양돈선생은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는 자리를 준다고 하는데도 마다하지 않았던가.

 

 

요즘 사람들은 이런 선생을 바보라고 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세상이 변했으니 그것과는 관계가 없노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양돈선생은 그러한 모든 것이 부질없는 것임을 일찍 알고 계셨던 것이 아니었을까? 아마도 한창 열을 올리며 대선후보 주변에서 얼굴굳히기에 들어간 많은 사람들이, 양동선생의 마음만 같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라북도 지역 정자의 특징 그대로 지녀

 

광제정을 한 바퀴 돌아본다. 크지 않은 정자는 바위 곁에 올려놓았다. 정자의 가운데 방을 마련하고, 사방을 마루로 놓았다. 천정은 중앙부분이 아래로 돌출되었는데, 양편에서 달려드는 용머리가 그 속으로 들어갔다. 희한한 것은 그 용의 몸 등에 붙어있는 거북이다. 왜 거북이를 이곳에 두었을까?

 

 

세상사 싫어지면 그 거북이 등에 올라타 멀리 떠나고 싶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자연을 벗 삼아 더 오래 살고 싶어서였을까? 광제정 곁을 흐르는 냇물은 맑기만 한데, 냇가에 커다란 노거수 위에 한 마리 이름 모를 새가 퍼덕이며 날아간다. 아마 곧 닥칠 눈보라를 피해 어디 깊은 산속으로라도 들어가려는 것인가 보다.


세상 머 있어. 그냥 살다가 가는 거지 뭐"

사람들을 만나면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그냥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 같지만 사실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가슴 속에 묻어 둔 말을 하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복 받은 인생이란 생각을 한다.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대고 살다가 보면, 깊은 병이 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인생이란게 머 있어. 그냥 사는 거지”

하긴 누구나 다 자신만의 소중한 삶이 있다고 하지만, 그 소중한 삶이라는 것도 사람마다 가치가 다르다. 성공을 했다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는 부를 축적하거나, 아니면 명예를 얻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이 성공을 한 것일까? 사람들은 제각각 나름대로의 기준을 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과연 어떤 것이 성공한 삶일까? 늘 그것이 궁금하다.


인생살이에서 세 번째 스카우트가 되다

세상을 살면서 ‘스카우트’라는 말을 들어보았다. 이번에도 스카우트가 되었다고 할 수 있으려는 가는 모르겠다. 벌써 세상을 살면서 세 번째인 듯하다. 남들이 말하는 스카우트와는 좀 다르다. 하지만 있던 자리에서 ‘필요한 사람’이기에 데리고 왔다니, 이런 것도 스카우트라고 보아야 할까?

나이가 60이 넘어 이렇게 자리를 옮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리를 옮겨놓고 나서도 조금은 걱정스럽다. 나를 필요로 하는 데서, 과연 나에게 주어진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죽어라고 일을 해보아도 결과가 나쁠 수도 있다. 그런 경우 기대를 했던 분들에게 더 실망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필요한 곳이 있다

사람마다 제각각 성정이 다르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능력도 다르다. 그 능력이라는 것이 과연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둘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런 능력을 발휘할 곳이라면, 기대를 해봄직도 하다. 하기에 사람마다 각기 필요한 곳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런 것을 두고 각자에게 주어진 ‘달란트’라고 이야기를 하는가 보다.


자리를 옮겼다. 많은 고민을 하다가 옮겨 온 곳이다. 이곳에서 과연 내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으려는 가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 하나만 갖고도 행복하다. 아직은 처음 시작하는 것이라 몸이 피곤할 수도 있다.

인생은 60부터 라는데...

자리를 옮긴다고 하니 주변에서 걱정을 한다. 그리고 차분히 노후대책을 세우라는 것이다. 하지만 난 아직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아니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는 말이 더 맞을 듯하다. 그래서 그냥 살다가 후에 어디 조용한 곳으로 들어가, 숨죽인 듯 살고 싶다는 말을 하고는 한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세상 머 있어. 그냥 살다가 가는 거지” 이런 나를 두고 사람들은 참으로 세상 편하게 산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의 속이 과연 편안한 것일까? 아마도 그 누구보다도 속이 더 타버렸을 것만 같다. 그저 내색을 하지 않을 뿐이지.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말이 있지 않던가? “인생은 60부터 라고” 그 말이 나에게는 적격인 듯하다.

모처럼 옮겨 온 자리에서 창밖을 보니 멀리 지리산이 바라다 보인다. 이렇게 날이 좋은 날 천왕봉이라도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다. 인생의 마지막 자리가 될지도 모르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왜 답사가 어렵다고 생각을 하세요?"
“어렵죠, 날도 안 좋은데. 가만히 앉아서도 글은 쓸 수 있잖아요?”
“저는 앉아서 쓰는 그런 글을 쓸 줄 몰라요”
“아니 한 때는 방송국에서 일도 하셨다면서요?”
“예, 그러기는 했죠. 그래서 더욱 더 방송에 대한 글은 쓸 수가 없어요.”

아는 분이 전화를 하셨다. 늘 블로그를 보고 있다는 분이다. 그런데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 분은 나를 보고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남들처럼 약지 못하다고 퉁명스레 이야기를 한다. 남들처럼 약은 짓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홍성군 홍주성 안에 소재한 여하정

난 내 길을 가렵니다. 그냥 놓아두세요.

언젠가도 그랬다. 죽어라하고 발품을 팔고 적지 않은 경비를 들여서 글을 쓰면, 이건 만날 저 꽁다리에서 허우적거리기가 일쑤다. 하루 종일 방문객이라고 해보았자. 고작 100명 안팎이다. 슬그머니 열도 뻗치고 성질 급한 내가 참기도 어려워, 가끔은 불쾌한 이야기를 내뱉기도 했다. 그러나 대안이 없지 않은가?

배운 것이 무엇이라고, 내가 할 일은 그것뿐이다. 그리고 판단은 그것을 운영하는 분들이 알아서 하면 된다. 한 사람이 들어와도 좋단 생각이다. 그저 꼼꼼히 글을 읽고, 그것으로 인해 우리 문화재에 대해 조금만 이해를 더 해줄 수만 있다면 만족한다. 무엇이 더 필요할까? 여기저기 광고를 붙이는 것도, 다 부질없음을 알고 있다. 어차피 방문객도 저조한 블로그에 무슨 딱 부러진 수입이 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원주 부론면 정산리에 있는 석장승. 눈이 쌓여도 답사는 계속된다.

푸념은 늘 즐겁답니다.

난 가끔 이렇게 푸념을 늘어놓는다. 아마 그것마저 하지 말라고 한다면, 열이 뻗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요즈음 우리들은 우리의 문화재나 전통문화에 대해서는 참으로 남의 것을 들여다보듯 한다. 그런데 비해 드라마나 연예인의 이야기에는 많은 관심을 보인다. 그러다가 보니 그런 기사를 메인에 띠우고. 그것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영업이다. 영업은 당사자들의 고유권한이다. 이러쿵저러쿵 침범을 해서는 안 된다.

“그래도 연예기사는 TV만 보고도 쓸 수 있잖아요?”
“아뇨. 그것도 무지 노력을 해야 합니다. 머리도 아프고요”
“그래도 그런 것을 쓰셔야 득이 될 텐데요.?”
“그 득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데요?”
“....”

괴산 삼방리 마애여래좌상. 눈길에서 죽을 뻔한 일도 수 십차례이다.

물론 그 득이란 수입을 말하는 것인 줄도 안다. 하지만 난 그것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문화재를 답사하고, 그것을 잘 다듬어 글을 쓰는 것이 좋다. 그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책을 쓴 것이 20여권이 넘는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쓴 것은 단 한 권도 없다. 그저 한 사람이라도 더 우리 것에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문화재란 우리의 정신적인 지주이기 때문에, 오늘도 그 줄을 놓지 않으려는 혼자만의 아집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그것이 나이길 바란다.

이번 답사에도 비가 오네요!

답사를 하는 날이 다 좋을 수많은 없다. 어떤 날은 국지성 호우가 쏟아지는 날에도 강행군을 해야만 한다. 때로는 태풍이 오는 날 답사를 나갔다가 길까지 잃은 적도 있다. 눈이 발목을 넘어 무릎까지 차 있어도 들어가야 한다. 때로는 길이 사라진 곳도 있다. 그래도 들어간다, 그것이 답사의 어려움이자 묘미이기도 하다.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로 들어가는 길. 한 겨울이라고 답사를 멈추면 무슨 글을 써야할까?

이번 답사에도 비를 만났다. 이 계절이면 늘 만나는 비다. 이젠 그 비도 반갑다. 함께 동행을 할 수가 있으니. 차라리 비가 내리는 날이 더운 날 몸에서 쉰내가 나는 것보다는 좋지 않을까? 그렇게 답사를 하고 정리를 해서 글을 쓴다는 즐거움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다. 그런 행복이 있어 남들이 들려주질 않아도 답사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항상 갓 찌어낸 찐빵처럼 따끈한 기사를 쓰기 위해서.

송강 정철이 속미인곡을 집필했다는 담양 송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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