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글을 쓰기 위해 전국을 내 집처럼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다. 글이야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던지, 지자체 문화관광 페이지를 보면 설명과 사진 등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죽자 사자 전국을 돌아치고 있는 것일까? 물론 답사를 하는 블로거들마다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다르다. 문화재가 늘 그 자리에 있다고 해도, 그것이 항상 같은 모습으로 있는 것일까? 그렇지가 않다. 지난번에는 멀쩡하던 문화재가 심하게 훼손이 된 경우도 있고, 어떤 것은 낙서로 인해 볼썽사납게 변하기도 한다. 심한 경우에는 문화재 안에 술병이 나뒹굴고 있기도 하다.

경주 굴불사지 사면석불 - 일제에 의해 훼손이 되었다고 한다.(2008, 9, 25 답사)


문화재 관리,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문화재가 있다. 종류만 해도 상당하다. 물론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것들이야 잘 간수가 되고 있지만, 노출이 되어있는 것들을 보면 심각한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경우 해당 지자체에 이야기를 하면, 대개는 판에 박은 대답을 듣는다. 한 마디로 인력이 부족해 일일이 돌아보지를 못했다는 대답이다.

어느 곳을 찾아가면 아예 문화재를 유도할 수 있는 간판 하나가 없는 곳도 있다. 도대체 문화재가 어디 있는지를 알 수가 없다. 한 번에 찾을 것을 수십 번을 되묻고 다녀야만 한다. 날이 덥거나, 눈비가 오는 날, 아니면 추운 겨울에는 사람조차 만날 수가 없으니 답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심지어는 문화재 안내판 글씨가 하나도 알아볼 수 없는 곳도 있다. 안내판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일까? 덩그러니 서 있는 안내판 글씨는 다 지워지고, 내용에 오자도 상당수가 발견이 된다. 문화재 보호나 보존을 이웃집 지게작대기 취급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경우에는 천불이 난다.

충주 숭선사지 발굴현장. 발굴을 하다가 그대로 방치가 되어있다 (2009, 9, 22 답사)


문화재 블로거 그들은 무엇을 하는가?

다음 뷰에는 30만 명 가까운 블로거가 있다. 물론 그들이 다 글을 쓰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중에서 문화재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는 문화재 블로거는 몇 사람에 불과하다. 그만큼 문화재 블로거 노릇을 하기가 만만치가 않기 때문이다. 문화재를 답사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필요로 하고, 적지 않은 경비가 들어간다.

그렇다고 누가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다. 오직 문화재 하나를 더 많이 알리고, 그 문화재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알려주기 위해 발을 벗고 나선 사람들이다. 거기다가 문화재 답사를 하기 위해서는 입장료 또한 만만치가 않다. 한주에 한번 꼴로 일 년을 다녀보니 주차료며 입장료를 합쳐 2~3백만 원 정도가 들어간다.

그런 경비를 스스로 부담하면서 그들이 하는 것은,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것이다. 그렇다고 문화재에 글을 열나게 써 보았자, 그것이 노출이 되는 것도 아니다. 순식간에 뷰에서 조차 사라져 버린다. 그럼에도 왜 그들은 길에 나서는가? 그것은 문화재를 보는 마음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시간과 돈, 그리고 마음까지 허비를 해야 하는 것이 문화재 블로거들이다.

여주 신륵사를 찾은 외국인들. 문화재를 보러 오는 외국인들이 점점 늘어가는데,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빵점이다.( 2009, 10, 9 답사)


문화재청장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문화재를 포스팅 하는 블로거들이 답사를 다니다가 보면, 가끔 문화재 훼손 현장을 만나게 된다. 만류를 하다가 시비가 붙기도 하고, 심지어는 패거리들에게 심한 행패를 당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왜 문화재를 찾아다닐까? 그것은 소중한 문화재를 지켜내기 위함이다. 관계기관에서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들에게는 너무 버거운 일들이 많다. 길을 나서면 기본적으로 드는 경비에다, 곤욕까지 치루기도 한다. 문화재 훼손 현장을 보아도 입을 다물어야만 한다.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그런 모습을 글로 올리는 것뿐이다. 시간을 쪼개가면서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는 문화재 블로거들. 그들 때문에 소중한 문화재를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에 비해, 그들이 받는 물질적, 정신적 고통이 너무나 크다.

이럴 때 생각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만일 그들에 문화재에 관한 급박한 상황에서 보여 줄 수 있는 <문화재 지킴이> 증명이라도 있으면, 그렇게 곤욕을 치르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문화재청장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말 문화재를 사랑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들여서라도 문화재를 지켜내려고 하는 블로거들에게, 증명서 하나라도 발급해 준다면 더 열심을 내지 않을까요? 누가 하라고 시켰냐? 라는 대답보다는, 긍정적인 판단을 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일선에서 발로 뛰며 문화재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블로거들에게 이 정도는 해주셔야 한다는 것이 속좁은 제 생각입니다.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에 소재한 외암리 민속마을은,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자료 제236호로 지정이 되어 있다. 그리고 마을 안에는 충청지방의 양반집과 초가가 한데 어우러져, 우리의 기옥구조나 실생활 등을 볼 수 있는 전통의 마을이다. 조선조 경종 3년인 1723년에 이간 선생이 지은 <외암기>에는 마을 이름을 '외암'이라 기록한 사실이 있어, 외암의 명칭이 이때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외암리 민속마을은 우리나라에서 집단으로 한 마을이 중요민속자료로 정해진 몇 곳 안 되는 곳 중 한 곳이다. 경주의 양동마을, 순천의 낙안마을과 강원 고성의 왕곡마을 등이 이렇게 집단으로 지정이 되어 있지만, 외암리 민속마을은 수도권에서 가장 가까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 민속마을 외암리 민속마을은 우리나라에서 집단으로 한 마을이 중요민속자료로 정해진 몇 곳 안 되는 곳 중 한 곳이다

 

입장료 징수에 맞는 관람이 이루어져야

 

외암리 민속마을은 사진작가 등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이곳은 아산시민들은 주민등록증 등을 보여주면 무료로 관람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외지인은 경우 성인들은 2000원의 관람료를 지불하여야만 한다. 문제는 이렇게 관람료를 지불하고도 몇몇 집은 밖으로만 관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느 민속마을 등에 들어가면 그 안에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다. 그저 수박 겉핥기식으로 밖으로만 맴돌다가 나온다면, 굳이 관람료를 지불해야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외암리 민속마을의 경우 마을 안에 중요민속자료로 지정이 되어 있는 집이거나, 그 외에 몇 집은 아예 문을 걸어두거나, 개인의 소유임을 써 붙이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주 양동마을의 경우 누구나 관람료 없이 마을을 돌아볼 수가 있다. 물론 몇 집은 사생활이 침해받는 것을 싫어 출입을 제한한다는 문구가 보이기도 한다.

 

▲ 건재고택 중요민속자료인 건재고택. 문이 굳게 닫혀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 건재고택 담 밖에서 본 건재고택, 아름다운 정원 등이 있어 외암리에서도 가장 뛰어난 고풍을 자랑하는 집이다.

 

만일 관람료를 받았다면 그만큼의 충분한 관람을 책임져야만 한다. 사람이 살기 때문에 생활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하면, 하루에 몇 시간만이라도 개방을 하거나, 안내자의 안내를 받아서라도 관람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렇게 꼭꼭 닫혀있는 집들은 관람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관리소 측의 대답이다. 물론 주차료로도 그만한 돈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여주 세종대왕릉이나 효종대왕릉의 경우 주차는 무료이다. 그리고 두 곳의 능을 관람하는 대도 대인의 경우가 일괄 천원이다. 2000원을 받든지 얼마를 받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외지에서 온 관람객들을 위한 서비스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충 꾸며놓은 시설물, 외국인들에게 미안해

 

▲ 물레방아 마을 입구 다리건너에 있는 물레방아. 그러나 그 기능을 잃었다

▲ 디딜방아 공이가 찧는 부분은 다 망가지고 낙엽만 수북하다.

 

외암리 마을에서 관람료를 지불하고 다리를 건너면 좌측에 물레방아가 있다. 물은 흐르는데 정작 방아는 찧어지지 않는다. 가까이 가서보니 물의 힘으로 수차가 돌아가면, 방아를 움직여야 하는데 연결되는 부분이 연결이 안 되어 있다. 마을을 돌다가 보면 디딜방아와 연자방아도 보인다. 그런데 이 방아들 역시 대충 모양만 꾸며 놓았다. 디딜방아 공이가 곡식을 찧는 부분은 무너져 있고 가득 낙엽 등이 쌓여져 있다.

 

외암리 민속마을은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디딜방아를 돌아보다가 눈살을 찌푸린다. 무엇이라고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대충 들어보니 어떻게 여기서 방아를 찧느냐는 것이다. 그저 보여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고, 그들이 실제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모습만 갖춘 이런 것들을 볼 때,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다.

  

보이지 않는 안내판 정비해야

 

 
▲ 안내판 글이 다 지워져 알아볼 수 없는 안내판

▲ 외국인들 민속마을 관람을 하고 있는 외국인들. 좀 더 신경을 써서 제대로 된 마을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마을을 돌다가 보면 집 앞에 그 집이 어떤 집이었나를 안내하는 안내판들이 있다. 여러 성씨가 살았으나 조선조 명종 때 예안 이씨인 이사종이, 세 딸만을 둔 진한평의 첫째 사위가 되면서 이곳으로 이주했다. 그 후손들이 크게 번창하면서 동족마을이 된 곳이 바로 외암리 민속마을이다. 그러다 보니 마을 내에는 종손집, 참판댁, 송화댁 등 가호가 붙은 집들이 있다. 이렇게 집집마다 명칭이 붙으면서 그 내력을 설명한 안내판이 집 앞에 놓여있다.

 

그러나 그 중 몇 곳의 안내판은 글이 지워지고 훼손이 심해 알아볼 수가 없다. 마을의 여기저기서 보수를 하느라고 주변이 부산하다. 관람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모든 것을 제대로 갖추어 놓아야 우리 것을 제대로 알릴 수가 있다. 무엇인가 부족한 듯한 모습에서 우리 민속마을의 아름다움이 제 가치를 잃는다면, 차라리 보여주지 아니함만 못한 것이 아닐까? 제대로 된 관리가 이루어져, 민속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더 기분 좋은 관람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출처 : 오마이뉴스 / 2010,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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