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일 년이 끝나 가면 무엇인가 자신의 일 년 동안 발자취를 기억하고는 한다. 남들은 7대 뉴스네 10대 뉴스에 하지만, 참 그렇게 바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난 그렇게 많은 뉴스거리가 없는 듯하다. 고르고 또 골라보았자 단 5개가 전부이다. 그것도 우격다짐을 만들어 달랑 5개의 나름 의미 있는 거리를 찾은 듯하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법도 틀리다. 그리고 그것을 즐기는 방법 역시 다르다. 누구는 무엇을 어떻게 했느냐는 남들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본인만의 사고요, 본인이 이것이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라 생각한다. 하기에 나 스스로 이것을 내가 2013년의 5대 뉴스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으로 올 한 해를 정리하고자 함이다.

 

 

1. 오마이뉴스 명예의 전당에 오르다

200895일에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하나 보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2009928일부터 본격적으로 오마이뉴스에 문화재 답사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2년에 1,000번째 기사를 송고를 했다. 그리고 오늘까지 1,239개의 기사를 썼다. 222일 오마이뉴스에서 기자에게 주는 최고의 상인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아마도 이 날은 내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인생의 한 정점을 찍은 날이라고 생각된다.

 

 

2. e수원뉴스 특별시민기자되다

2013225일 수원으로 올라 온지 14개월. 지난해 813일부터 e수원뉴스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름 많은 활동을 해서인가 225e수원뉴스 특별시민기자로 위촉을 받았다. 1년 동안 열심히 기사를 쓰라는 격려일 것이다. 그래서인가 꽤 많은 곳을 찾아다니면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썼다. 2013년 한 해 동안 430건의 기사를 썼다. 지금 생각해도 1년이라는 시간이 언제 지났는지,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 모르겠단 생각이다.

 

 

3. 대단한 산삼한 뿌리를 캐다

남들이 생각하면 웃을 수도 있다. 얼마나 이야깃거리가 없으면 산삼을 캔 것을 다 이야기를 하는가 하고. 하지만 2013년 한 해 정말 열심히 산행을 했다. 그리고 많은 것을 자연에서 얻고 많은 사람들과 나누었다. 5117구짜리 산삼 한 뿌리를 캤다. 남들은 어쨌냐고 묻는다. 혹 팔아먹은 것은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함께 산행을 한 아우가 꼭 필요한 것이기에 주어버렸다. 내가 캔 것 내가 주었는데 이유가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4. ‘생태교통 수원2013’에 살다

9월 한 달 참 지겨우리만큼 날이 뜨거웠다. 연일 30도를 웃도는 더위 속에서 살았다. 한 달 동안 차 없는 거리의 시범을 보인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 ‘생태교통 수원2013’은 전 세계가 주시하는 가운데 수원에서 열린 국제적인 환경 프로젝트이다. 한 달 동안 생태교통 프레스센터를 거의 혼자 지키며, 소소한 사람들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전했다. 오늘 내 블로그(http://rja49.tistory.com) 보니 121개의 생태교통 관련 글이 남아있다. 생태교통의 세세한 것까지 기록을 한 나름대로의 자산이란 생각이다.

 

 

5. ‘258의 사람을 만나다.

사람들은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것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혹은 왜 만나야 하는지도 나름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올 한 해 나는 어떤 사람들을 만났을까? 돌이켜보면 2013년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나적은 없을 듯하다. 14일 남수동의 허름한 국밥 집에서 막걸리 잔을 놓고, 임애월 시인과 함께 한 후 올 한해 기사를 쓰면서 내가 만난 사람들이 자그마치 258. 적지 않은 사람들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과의 교분도 쌓인 것이 아닐까? 세상은 어차피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사는 것이니 말이다.

 

사는 것은 흥미롭다. 그리고 그 삶의 이야기 속에 한 해가 저문다. 이제 2013년이 딱 이틀 남았다. 그 이틀 동안 한 해를 정리하는 날을 삼아 근신을 해야겠다. 언제나 맞이하는 새해지만, 2014년은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이 필요한 듯해서이다.

섬 한 끝이 나를 불러

다시 돌아와 선

애월리 바닷가

 

不感

마른 생각 하나

솔숲에 묻는다.

 

꼭 손바닥만 하던

나의 열일곱,

시간은 늘

위태로운 몸짓으로

바다의 둥지 속으로 풀려가고

 

해풍에 절은 기다림이

점박이 나리꽃으로 붉던 날

억새꽃 마른 꽃대로

일어서던 섬이여(하략)

 

 

임애월의 시집 <정박 혹은 출항>에 실린 다시 애월리에서라는 시의 한 부분이다. 2013년 새해 들어 첫 만남을 가진 시인 임애월(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석천리 거주, , 54). 그녀를 만난 곳은 허름한 수원천변의 한 선술집이다. 그런 곳을 마다않고 선뜻 자리를 함께 해준 임애월 시인의 본명은 홍성열(洪性烈)이다.

 

제가 필명을 임애월(林涯月)이라고 사용하면서, 사실은 많은 분들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셨을 것 같아요. 숲과 물가 그리고 달, 그 세 가지를 아우르는 이름이거든요. 제주를 그리는 애월이란 호를 많은 분들이 시용하고 싶어 하셨는데, 제가 먼저 필명으로 사용을 하서 정말 죄스럽기도 하고요

 

책 읽기를 좋아했던 섬소녀

 

시인 임애월은 제주 출신이다.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15년 정도가 되었다. 정식으로 등단을 하기도 전에, 그 이전부터 벌써 문인지에 시가 실릴 정도였다. 그만큼 차곡차곡 쌓아왔던 어릴 적 책읽기가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었는가 보다.

 

기자님은 어릴 때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저희가 살던 곳은 어릴 적 교과서 외는 책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어요. 책을 읽는 것이 행복해 오빠들이 만화책을 빌려오면, 그것을 보고 자려고 밤늦게까지 졸린 눈을 부비며 기다리고는 했죠. 그래도 정말 재미있는 책은 국어 교과서였어요. 제가 초등학생 때 오빠가 중학교를 다녀서 오빠 국어책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죠. 오빠가 고등학생일 때는 제가 중학생인데 고등학교 교과서를 보고는 했어요.”

 

어릴 적부터 책읽기가 좋았다는 섬 소녀 임애월은 그렇게 글과 접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한 후 서울을 거쳐 수원으로 화서 정착을 했다. 아이가 중학교를 다닐 때 어머니회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수원문화원(당시 심재덕 원장)에서 백일장이 있다고 주변에서 나가보라는 권유를 했다.

 

벌써 20년이나 지났네요. 수원에서 하는 백일장은 초, , , 일반으로 나뉘어졌는데, 당시 일반부는 전국에서 많은 분들이 참가를 했어요. 거기서 운 좋게 시 부분 장원을 한 것이죠. 그 뒤 임병호 선생님께서 하시는 문학 강의 등을 듣게 된 것이 본격적으로 시를 배우게 된 계기가 되었고요. 등단은 1999년에 했는데, 그 이전인 1998년에 경기시학에 글이 실리고는 했어요.”

 

시인이 되어 정말 행복하다

 

임애월 시인은 감성으로 시를 쓴다고 한다. 시상(詩想)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는 주저없이 여행을 떠난다고. 그곳에서 만난 모든 것이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글쎄요, 사람들은 흔히 시인을 영감설과 장인설로 나누고는 하는데, 저는 영감설 쪽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저는 어떤 지시에 의해서 80% 이상의 시를 쓰고 있으니까요. 시는 억지로는 되지 않잖아요. 오히려 억지로 글을 쓰려고 하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듯도 하고요. 그저 어느 순간 떠오르는 시어를 적어갈 때가 가장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듯해요

 

 

그저 막걸리 한 잔 앞에 놓고 이야기를 하는데도 즐겁다. 시를 쓰면서 가장 좋은 일이 무엇인가를 물어보았다.

 

세상 모든 사람은 직업을 가지면 정년이라는 것의 올무에 갇히게 되죠. 하지만 시인은 그런 것이 없어요. 저는 시인이 되어서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나이가 아무리 먹어도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해요. 물론 시를 쓴다는 것이 생활에 수단은 되지 않겠지만, 기댈 수 있다는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죠. 시는 자신과의 대화라고 하잖아요. 이 다음에 더 나이가 먹어도 나 자신을 들여다 볼 수가 있다는 것이죠.”

 

표정조차도 정말 행복해 보인다. 그 동안 <정박 혹은 출항><어떤 혹성을 위하여> 등 두 권의 시집을 펴냈다. 시를 쓰면서도 지역에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 임애월 시인은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와 수원시인협회 이사, 국제 PEN 한국본부 경기자역위원회 사무국장, 유네스코 경기도협회 이사, 기전문화연구회 연구위원 등을 역임하고 있다.

 

수원문학상과 경기문학인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임애월 시인. 시인이어서인가? 마주 앉아 있으니 시인의 고향 제주 바닷가의 한적한 길을 걷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절반쯤 버리고 나니

바다가 보였다

남양만의 밀물이

가슴 속으로 흘러왔다.

 

임애월 시인이 살고 있는 화성시 우정읍 석천리를 그린 시이다. 늘 그렇게 자연과 대화를 하고 사는 임애월 시인. 언젠가는 그녀를 졸라대 바람을 따라 길을 나서고 싶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