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일반인들하고는 달리 저희들은 직성이 강하다고 하죠. 신을 모시는 사람들이니까요. 아마 두 사람이 다툼이 일어난다고 하면 더 심하게 다툴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를 이해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으니까요

 

부부가 모두 신을 모시고 있다. 그것도 한 집에서 한 곳의 전안(신령을 모셔 놓은 신당)을 섬긴다. 이럴 경우 대개는 심하게 다투기가 일쑤라고 한다. 심지어는 모녀사이에도 전안을 차지하려는 신들 간의 싸움이 치열하다. 그런 시기와 다툼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20년 세월을 부부로 살아오면서 세상의 많은 아픔을 함께 하고 살았기 때문인가 보다.

 

막말로 시기를 하고 질투를 해서 서로 헤어졌다고 하면, 저 사람보다 더 잘나고 착한 사람을 만나라는 법도 없지 않습니까? 사실 신들의 문제라고 하지만 그것도 알고 보면 사람들의 구실에 지니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고 보아야죠.”

 

21일 오후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 97-139 ‘일월신당이라는 간판을 걸고 있는 곳. 이 집은 부부가 모두 신을 모시는 신제자이다. 막다른 골목길의 이층집 안에는 문 앞에서부터 각종 기물들이 눈이 띤다. 안으로 들어가니 넓지 않은 실내에 빽빽하게 신령의 물품들이 차 있다.

 

 

부부가 신내림을 한지 벌써 20

 

부부는 비슷한 시기에 신내림을 받았다고 한다. 남편인 이용수는 올해 53세이다. 신내림을 받은지 20년이 지났다. 부인인 김상희는 46세로 21년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이 부부가 되고나서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아직은 이렇다 할 문제는 만들지 않고 살아왔다.

 

저 사람이 많이 이해를 해주고 있어요. 아무래도 그런 이해가 없으면 함께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테고요. 같은 길을 간다는 것이 쉬울 것 같지만 사실은 남들보다 배나 더 어렵습니다. 그저 한 발 물러나 늘 양보를 하는 길만이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죠.”

 

그저 그런 남편이 고마워서 무슨 일을 하던지 두 사람이 함께 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서 살다가 수원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 3년 정도 되었다. 지금 자리에 오게 된 것도 부인인 김상희의 꿈에 이 집을 현몽을 했다는 것이다.

 

원래 저희 같은 사람들은 막다른 집을 들어가지 않잖아요. 길이 막힌다고 헤서요. 그런데 집 사람이 이사 오기 전에 미리 이 집을 보았다고 찾아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집으로 들어왔어요. 비좁아서 많이 불편하지만 그래도 참고 살아야죠.”

 

 

지독한 신병에 10세부터 귀신을 보았다는 김상희

 

남들은 제가 이런 소리를 하면 믿지 않겠지만 저는 10살부터 귀신을 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하면 그것이 다 맞고요. 이미 그때부터 신병이 시작된 것이죠. 17살부터는 벽에다가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바라춤을 춘다고 하기도 하고, 휴지를 들고 살풀이를 춘다고도 했어요. 그러다가 24살에 어머니 재수굿을 해주다가 신굿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들었죠.“

 

10세에 시작한 신병은 이미 14년이란 긴 시간을 괴롭혔다. 해마다 다리를 다치는가 하면 인대가 늘어나 걷기조차 힘들었다, 육신적인 신병과 함께 금전적인 신병이 온 것이다. 그때는 이미 깊어 질대로 깊어진 신병으로 인해 동자들이 눈에 보여 사탕을 사다놓기도 하고, 할머니들이 보여 자고 가라고도 하는 등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수도 없이 벌렸다.

 

 

잠옷 바람으로 나가서 한 걸립

 

정말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내림굿을 할 날짜를 잡았는데 수중에 갖고 있는 돈이 없잖아요. 당시는 이태원에 살았는데 제가 화장을 하고 잠옷을 입고 길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점을 보아주고 걸립을 한 것이죠. 그렇게 돈을 모아 수락산에서 내림굿을 받았어요.”

 

내림굿을 하고 난 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손님들이 찾아들기 시작한 것이야 신령을 모셨으니 당연한 것이지만 그렇게 다치고 아프던 다리가 싹 나은 것이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정말 이해를 할 수 없다고 한다. 간판도 달지 않고 13년간이나 사람들을 보면서 상당한 재물도 모았다고 한다.

 

사람들을 매일 만나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참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한 몇 년 쉬었어요. 너무 피곤하기도 하지만, 산다는 것이 버겁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수원으로 내려와 경기도당굿 이수자이신 승경숙 선생을 만났죠. 선생님의 굿을 보고 첫눈에 나도 이 길을 가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부부가 전수생으로 등록을 했다. 이 두 사람은 경기도당굿보존회 남부지부 공식 1기생으로 전수자 등록이 되었다. 앞으로 열심히 학습을 해 도당굿을 보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고 하는 이용수, 김상희 부부. 아무쪼록 이 집 대문 앞에 내 건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 경기도당굿 전수자라는 명호답게 지역의 문화를 지켜갈 수 있는 동량이기를 기대한다.

수원 전통시장에 대한 모든 것을 소개하는 책자가 발간이 된다. ‘수원전통시장 이야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자는, 186쪽에 달하는 소개책자로 수원시에 소재하고 있는 22개 시장의 모든 것을 알아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 수원시에서 발행을 할 이 전통시장 이야기는 수원박물관의 한동민 학예팀장과 e수원뉴스의 시민기자들의 집필로 이루어졌다.

 

1편 한국의 장시, 2편 수원의 시장, 3편 수원의 전통시장, 4편 전통시장의 주변이야기로 꾸며진 이 전통시장 이야기는, 각 시장마다 역사 및 개관, 상인회장 인터뷰, 전통시장의 특징 등으로 꾸며졌다. 김소라, 심춘자, 윤주은, 하주성 등 4명의 시민기자가 일일이 전통시장을 방문하여 그 시장에 갖고 있는 특징을 구분하여 집필한 것이다.

 

수원의 시장 역사 한 눈에

 

한국의 장시에서는 한국의 장의 역사와 변화를 다루면서 전통시장의 의미와 역사, 기능 등을 다루었다. 수원박물관 한동민 학예팀장의 기고로 받은 수원의 시장편에서는, 수원장의 전통과 특성에 대해서 일목요연하게 소개를 하고 있다. 삼남대로의 길목 수원, 경기남부 상권을 거머쥐다, 수원장의 특성 문안장과 문밖장, 수원경제를 이끌었던 수원우시장, 수원에 전통시장이 많은 이유 등으로 소개되었다.

 

각 시장의 소개는 그 시장의 역사와 개관 등이 소개되어 있다. 시장이 언제 생겼으며 회원 수는 몇 명인지, 그리고 그 시장의 주력상품은 무엇인지 등을 소개하고 있다. 상인회장의 인터뷰에서는 전통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을 하는 상인회장과 상인회의 노력 등을 적어나갔다.

 

 

각 전통시장을 소개하는 종목에서는 상인회마다 펼치고 있는 사업과 그 사업의 성과, 그리고 변화하는 시장과 앞으로의 전망 등을 세세하게 소개하였다. 각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일일이 발로 뛰어 쓴 소개이기 때문에, 시장의 정서를 파악하는데도 일조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수원의 각 전통시장의 주 판매상품 등을 알 수가 있어, 시장보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수원에 전통시장이 많은 이유

 

수원에는 전통시장이 다른 도시보다 많다. 왜 그럴까? 그것은 수원이 갖는 또 다른 자랑이라 할 수 있다. 역사 문화적 전통은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장이라는 것도 오랫동안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수원이라는 도시가 사람들의 아픔을 보듬고 치유할 수 있는 넉넉한 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신도시의 높다랗게 들어선 소수자본의 힘으로 세워진 쇼핑몰과 백화점 류와는 차원이 다른 깊이가 있다는 것이다.

 

 

수원박물관 한동민 학예팀장은 수원이 전통시장이 많은 이유를 정조 이래 경기남부 상권을 주도했던 역사적 전통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이유는 도시가 확장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수원의 문화적 저력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원은 도시변천사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도시이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적고 있다.

 

수원 전통시장의 활성화에 도움이 되길

 

수원 전통시장 이야기의 발간소식을 접한 수원상인연합회 최극렬 상인회장은

수원은 정조대왕이 화성을 축성할 당시부터 장을 형성한 역사가 깊은 곳이다. 지금은 비록 수원 전역에 22개의 인정시장이 분산이 되어 있지만, 예전 팔달문 안팎에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수원전통시장을 누구나 들여다볼 수 있는 역사가 책으로 꾸며졌다고 하니, 고맙고 반갑다. 이 책이 22개 전통시장의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한다.

 

 

전통시장이야기가 책으로 발간된다는 소식을 들은 전통시장의 한 관계자는

대형쇼핑몰과 백호점 등의 입점으로 인해 전통시장이 받는 피해가 클 것으로 보인다. 이럴 때에 이렇게 전통시장에 대한 책자가 발간이 된다고 하니 반가운 마음이다. 아무쪼록 이 전통시장이야기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전통시장에 대한 의미를 제대로 알고 많은 이용이 있기를 바란다.”고 한다.

에어컨도 없는 의원실에서 만난 경기도의회 최재연 의원

 

경기도의회 3층. 비교섭단체 의원실은, 의회 3층 브리핑실 맞은편에 자리한다. 말이 좋아 브리핑실 맞은편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3층의 맨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바로 옆 계단통로에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창가에 늘어놓은 종이컵 안에 꽁초가 그득해, 문만 열어도 담배냄새가 나는 곳이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아무도 없다. 그래도 같은 도의원인데 이곳은 완전히 한데라는 생각이 든다. 딴 방에는 더운 날씨에 들어가도 찬 냉기가 싸늘한데, 이곳은 그 흔한 에어컨 한 대가 없다. 후텁지근한 실내, 그리고 안내를 하는 직원 한명도 없다. 딴 교섭단체 의원들이 있는 곳과는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같은 도의원인데, 참 이러고도 동료라는 말을 할까? 말만 시작하면 ‘동료의원’을 찾는 분들의 속내가 갑자기 궁금해진다. 과연 동료의원으로 알고는 있는 것일까? 이 비교섭단체 의원실(직원도 에어컨도 없이 퀴퀴한 냄새가 나는 곳)에서 최재연(고양, 39세) 의원을 만났다. 요즘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교육위원들의 위원장 자리 배정을 놓고,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의견을 듣고 싶어서이다.

 

“이 비교섭단체 의원실은 직원도 한 명 없네요?”

“처음에는 비정규직 직원이 한 명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 직원도 빠져버렸어요”

“에어컨도 하나 없네요?”

“비교섭단체는 힘이 없으니까요”

 

자리싸움이 아닌 당연한 요구인데

 

최재연 의원은 7명의 자치적인 교육위원들이 교육위원장 자리를 놓고, 단식농성을 하는 경기도의회 1층 라비에 있었다. 인터뷰 요청을 하자, 비교섭단체 의원실로 자리를 옮겨 응했다.

 

- 교육위원들의 농성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자칫 언론이나 밖에는 자리싸움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의회기관이 통폐합되고 나서, 교육분야에 대한 자주성과 전문성이 무참하게 짓밟힌데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자 하는 것이다. 교육위원장은 당연히 교육전문가가 맡아야 된다는 것이고, 또한 교섭단체들과 함께 의논을 한 비교섭단체 10% 몫으로도 교육위원장 자리는 양보했어야만 했다.(경기도 의회에는 진보신당 5명, 무소속 1명, 교육위원 7명 등 13명으로 10%의 비교섭단체 의원이 있다) 그러한 것이 교섭단체들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는 것에 대한 분명한 의사표시라고 생각하면 된다. 자칫 이 농성을 자리싸움으로 몰아가지 말았으면 좋겠다.

 

- 비교섭단체 의원님으로서는 의정활동에 어려움이 많을 텐데?

그렇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상임위에 들어가도 일을 하기가 수월하지 않다. 지난 전기 의정활동을 하면서 예결위에서 활동을 했지만, 전체 생각을 알 수 없으니 그저 정해진 것을 통보받는 것으로 마친 듯하다. 쉽게 이야기를 하면 비주류의 생각은 아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도 그래도 열심히 의정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비주류의 의사도 반영시킬 수가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것으로 믿는다.

 

 

- 후반기 의정활동은 어느 상임위에서 활동을 하고 싶으신지?

나는 원래 건축이 전공이다. 하기에 도시환경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이번에도 상임위를 신청할 때 1순위를 도시환경위에 신청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교섭단체들이 자신들의 상임위 배정을 다 해놓고(교육위원 7명은 당연직 교육위원회), 남은 자리를 배정한다. 그저 의장이 어느 위원회로 배정을 하는가에 따라 상임위가 결정이 된다.

 

- 의정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지?

아무래도 아이가 어리다가 보니 1박 2일로 현장을 나갈 때면 빠질 수밖에 없는데. 남자 분들은 그런 고충을 모르니까 그러려면 무엇 하러 의원을 하느냐고 핀잔을 줄 때가 가장 부담스럽다. 아마 아이에게도 그렇고 현재는 빵점짜리 주부일 수밖에 없다. 그런 고충을 좀 이해하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외에는 그저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의정활동에 전념을 하고 있다.

 

 

- 앞으로 의정활동을 하면서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마을만들기 사업과 작은도서관 지원조례 등은 더 많은 생각을 하면서 발전시키고 싶다. 그리고 남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동성애자 인권조례와 대안학교 지원에 대한 정책 등은 더 많은 고민을 할 것이다. 특히 대안학교는 학교 밖 청소년 문제를 중점적으로 개혁해 나갈 생각이다.

 

무슨 질문을 하든지 자신의 의견을 조목조목 이야기를 하는 최재연의원. 그동안 의정활동을 하면서 5분 발언을 한 것을 보면, 언제나 외지고 남들이 찾지 않은 곳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팔당유기농산지 역사성 살리는 대책 논의를’(2010, 10, 5), ‘팔당 유기농단지 관련 도 대책마련 촉구’(2010, 12, 21), ‘도내 뉴타운사업 근본적인 재검토 마련 촉구’(2011, 3, 18), ‘장애인 이동권 보장 관련’(2011, 9, 19), ‘마을만들기 사업 관련’(2012, 5, 15) 등이다.

 

 

최재연 의원의 앞으로의 의정활동을 기대하는 것은, 아직은 그 누구보다도 열정이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 어려운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경기도 의회 최재연 의원. 인사를 할 때 받은 명함을 본다. 그 명함에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동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정든 은평구를 떠나다.

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과와 공과대학 건축학과에서 건축과 도시를 공부하다.

MBC 느낌표 기적의 도서관 설계담당을 하며 문화를 만나다.

Paris의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며 도시와 문화의 만남을 목격하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서 활동하며 진보정치운동에 빠지다.

8년 전 좋은 교육과 좋은 세상을 주고 싶은 아들을 만나다.

2011년 경기도 작은도서관 지원 조례를 발의, 제정하다.

 

(주) 이 기사를 '정치'로 송고를 하지 않고 '문화'로 송고한 것은, 정치적인 면 보다는 도시문화나 생활문화 쪽에 더 관심을 두고 싶어서입니다. 

(인터뷰)수원 중부어머니폴리스 연합 임수영단장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학교순찰을 돌고 있는 것이죠.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충실할 수 있도록 저희가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학교 폭력이나, 유괴 등에서 아이들을 지켜 내는 모임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4월 12일 오후, 수원시 장안구 율전로에 소재한 율전초등학교 교정에서, 학교 교내를 순찰하고 있는 임수영(여, 42세) 어머니폴리스 연합단장을 만났다. 임수영 율전초등학교 어머니폴리스단 회장은, 수원중부의 연합 어미니폴리스단의 단장으로 선임이 되었다.

 

-지난해에 이어 이번에 연합회 단장으로 선임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글쎄요. 축하를 받을 일인가요? 중책을 맡았기 때문에 책임감을 갖고 일을 하는 것 외에는 딴 것이 없는 것 같아요. 우리 아이들을 위한 일이니 최선을 다해야죠(웃음)“

 

- 일주일에 몇 번 씩이나 학교에 와서 봉사를 하는지?

저희 율전초등학교는 어머니 회원들이 많지가 않아서 일주일에 두 번 화요일과 목요일에 나와요. 12시 30분에 나와서 2시 정도까지 학교 안을 순찰합니다. 순찰을 하는 범위는 복도나 화장실 등, 학교 내에서 혹 일어날지도 모르는 폭력을 사전에 방비를 하자는 것이죠. 그리고 교정 안에 있는 작은 공원 등도 다니면서 유리조각이나 담배꽁초 등, 아이들에게 유해한 것은 없는지를 살펴봅니다.“

 

- 연합회는 어떻게 조직이 되어있나요?

현재 수원에는 2012년 4월 현재 세 개의 단체가 있습니다. 남부와 중부, 서부로 구분되어 있죠. 남부는 27개 학교에 1,653명의 단원이 있고, 저희 중부는 32개 학교에 1,355명의 어머니폴리스단원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부에는 21개 학교에 916명이 활동을 하고 있어요. 수원시 전체에는 80개 학교에 총 3,924명이 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죠.“

 

- 상당히 많은 분들이 활동을 하시는데, 활동하시는 일 때문에 일상생활에 어려움은 없으신지?

어머니폴리스단 활동을 하려면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죠. 아침 일찍 집안 식구들이 하루 먹을 것을 준비를 해놓고 나면, 나가서 활동을 해야 하죠. 저녁이면 집안 일이나 빨래 등을 정리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살죠.“

 

- 남편분이 반대는 안하셨는지?

처음에는 일을 해도 표시가 안 나는 것이라, 걱정을 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많이 이해를 하세요. 한 일 년 정도는 더 해도 되겠다고요(웃음). 우리 아이를 위해서 하는 일인데, 굳이 반대를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 일주일에 두 번만 활동을 하시는 것이 아니신 듯한데?

예, 율전초등학교에서 하는 순찰 등이 두 번이고요. 일주일에 한번은 연합단에서 신청을 한 학교에 가서 함께 봉사를 합니다. 그리고 청소년문화센터 등에서도 행사를 할 때 안내 등을 맡아서 장내정리를 하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보면 한 주일 내내 바쁘게 보내고 있죠.

 

 

상당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임수영 연합단장. 이야기를 하다가말고 아이들 하교시간이 되었다고 깃발을 들고 나간다. 율전초등학교 주변은 보기에도 아이들이 등, 하교를 할 때 상당히 위험한 곳임을 알 수 있다. 어머니폴리스단원과 함께 아이들을 일일이 길을 건너는 것을 도와주고 있는 모습에서, 자녀사랑을 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본다. 신호등도 없는 오거리에서 아이들은 늘 위험에 처해있다고 한다. 이런 오거리에서 오전 등굣길에는 녹색어머니회가 맡아서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고, 하교길에는 폴리스어머니회가 맡아서 한단다.

 

“누구나 다 내 자녀와 같이 소중하죠. 그래서 어머니폴리스단은 학교별로 ‘마미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학교나 통학로 주변 등을 순찰을 돌면서 학교폭력이아 유괴 등 대아동범죄 예방과 진압으로 아이들이 평온한 등, 하교와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죠.”

 

이야기를 하면서도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임수영 연합단장. 어깨에 메고 있는 가방 안에서 자료를 하나씩 꺼내서 설명을 한다.

 

“올해는 CYS-NET이란 지역사회청소년통합지원체계를 마련했습니다. 지역사회 내에 활용 가능한 자원을 모두 연계, 협력항녀 위기에 처한 청소년들을 발견, 구조, 치료를 하여 가정 및 사회로의 복귀를 시키는 사회안전망이죠. 저희 어머니폴리스단은 그 중 발견과 구조지원단에 속해 있습니다."

 

그런 사회봉사 외에도 일일찻집 등을 운영하여 그 수익금으로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주기도 한단다. 결국 내 자녀가 귀하면 남의 자녀도 귀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열심히 몸소 실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는 더 많은 활동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청소년상담센터 협약식이 연기되기는 했지만, 폴리스어머니봉사단과 청소년상담센터, 경목위원회 등이 협약식을 갖기로 했죠. 오늘도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학교폭력에 관한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건강하고 아름답게 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그 권리를 만들어 줄 수만 있다면, 누군가 조금은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죠. 저희 어머니폴리스단이 바로 그런 희생을 감당해 내자는 것입니다”

 

지난해에 이어 다시 중부어머니폴리스 연합단장으로 선임된 임수영 연합단장. 앞으로 활동을 하는데 더 많이 도와달라고 하면서 환한 웃음을 짓는다. 그 미소가 교정에 아름답게 개화를 시작한 4월의 벚꽃을 닮았다.

참 오랫동안 춤을 추어오면서, 나름대로 자신만이 갖고 있는 철학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다시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춤으로 표현하는데 있어, 세상살이를 하는데도 기본이 되었다. 항상 춤 속에서 생활을 하다가보면, 세상 모든 것이 춤과 연결이 되어 진단다. 춤꾼 김진옥은 그렇게 50년 이상을 춤 속에서 살아왔다.

 

4월 2일 용인시 기흥 민속촌 인근에 있는 경기도 국악당의 제1강습실. 장구를 둘러멘 사람들이 열심히 장단을 치면서 춤을 배우고 있다.

 

“손을 이렇게 끌고 오다가 아름답게 넘겨야지. 그래야 태가 아름답게 되지. 그냥 위로 올리면 그건 춤이 아냐”

 

 

어린 나이부터 춤을 시작해

 

춤을 추는 춤꾼들은 거의가 어릴 적부터 춤에 입문을 한다. 춤을 배우게 되는 계기 역시 흡사하다. 어머니들이 춤을 좋아해, 어머니들의 손에 이끌려 춤을 가르치는 학원에 발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12명의 강습생들에게 ‘정민류 교방장고촘’을 가르치고 있는 김진옥(여, 64세) 역시 어린 나이에 종로 5가에 있는 정민무용학원을 찾아간 것이, 벌써 50년이 넘는 세월을 춤과 함께 살아오게 된 계기이다.

 

“참 그동안 정말 열심히 춤을 추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남들이 무엇이라고 하든지 저는 제 나름대로의 길을 걸었다고 자부를 해요. 앞으로도 저는 제 춤 길을 갈 것이고, 몸이 움직일 수 있는 날까지는 제자들을 가르쳐야죠.”

 

 

 

그래서인가 강습생들에게도 길을 유난히 강조를 한다. 아마도 그런 자신이 평생을 쌓아올린 춤에 대한 열정이 그 말 한 마디로 함축되는 듯하다.

 

“아무리 바빠도 춤은 춤길이 있다. 그 춤길을 찾지 못한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춤이 아니다”

 

춤이 곧 인생일 수밖에 없어

 

다음 카페 ‘정민류교방춤보존회’에 소개된 김진옥 선생의 이력은 끝이 없다. 그만큼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요일과 금요일은 경기도 국악당에서 강습생들에게 춤을 가르치고, 대학 강의 등 하루 종일 빡빡하게 일정이 잡혀있다. 그런데도 그 많은 일정을 소화를 해내는 것을 보면, 춤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깊은가를 알 수가 있다.

 

 

 

명지대학교 사회교육원 무용과 객원교수, 국립한경대학교 사회교육원 전임강사, 정민류 교방춤 보존회 회장, 사단법인 한국국악협회 경기도지회 이사, 사단법인 한국무용협회 용인시지부 고문, 사단법인 대한어머니회 서울시연합회 안무장, 경기 토속민요 연구회 이사, 한.얼무용단 수원지부, 용인지부, 과천지부 예술총감독, 한맥예술단 예술감독, 서초 체육쎈타(YMCA) 한국무용 강사, 창무회 화랑 회원

 

카페에 소개된 이력의 앞부분이다. 그 밑으로는 한참을 내려가야 할 만큼 일 년에도 많은 공연무대에 섰다. 많게는 일 년에 10여 차례의 공연을 가질 만큼 대단한 활동을 한 것이다. 그렇게 벌써 30년이 넘는 세월을 무대 위에 올랐다.

 

“원래 정민선생님은 김해랑 선생님의 제자예요. 김해랑 선생님은 1953년도에 서울에서 사단법인 한국무용협회를 설립하시어 초대 이사장직과 마산 경남무용협회 초대 지부장을 역임하셨고, 우리나라 전통무용을 신무용으로 발전시키신 분입니다. 정민 선생님과 최현 선생님의 최초의 스승이기도 하시고요. 안타깝게 55세의 나이로 타계를 하셨죠.”

 

 

 

정민류 교방춤에 빠져

 

그런 김해랑 선생에게 사사를 한 고 정민 선생은 대구에 머물 때 밤마다 권번의 기생들을 찾아다니면서 춤을 배웠다. 당시 기생들은 교방이 폐청되고 난 후, 살아가기 위한 생계수단으로 권번이라는 기생조합을 만들기도 했다. 대구에서 교방춤을 배운 정민선생은, 북가락과 장고춤 등 나름 교방춤으로의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되고 있다.

 

“정민 선생님은 1928년 11월 4일 일본에서 태어나 2006년 1월 5일 79세 일기로 타계하셨어요. 5살 때부터 춤을 추기 시작한 선생은 광복이전부터 연극과 노래를 하면서 예능계에 데뷔하며 일본예술단에서 활동을 하였습니다. 1945년 제1회 영남예술제(현 개천예술제)에서 승무로 금상을 수상하였으며, 1955년부터 각 대학과 고등학교의 강사로 활동을 하면서 개인연구소를 설립하고 각 지방을 다니면서 크고 작은 공연을 열어 우리 춤의 보급에 앞장을 섰던 분이시죠“

 

 

그런 정민 선생에게 교방춤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다시 춤에 대한 열정이 생겼다고 한다. 이미 한영숙류 춤을 추는 사람들의 모임인 벽사춤 아카데미의 이사이기도 했던 김진옥 선생은, 벽사춤과 함께 정민류 교방춤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다.

 

“정민선생님의 교방춤은 정말 우리 민속춤의 아름다움을 모두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선생님은 대구에서부터 나중에 일본에 가신 후에도, 교방의 기생들에게 춤을 배우셨다고 합니다. 수십 가지가 넘는 교방춤을 그렇게 전수를 해주셨죠.”

 

정민류교방춤의 제1호 이수자이기도 한 김진옥 선생은 교방춤을 보급하고 알리는데 온 정성을 다하고 있다. 현재 정민류교방춤보존회는 서울본부를 비롯해, 부산광역시지부, 경기도지부, 인천남동지부, 경남지부, 전북지부, 김해지부 등이 있다. 해외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는 보존회 회원들은 일본 오사카본부를 비롯해 동경지부와 교토지부가 있으며, 미국 LA에도 본부가 있다.

 

“지난 해 추석 때는 미국에서도 공연을 가졌었습니다. LA에서 공연은 정말 감명 깊었죠. 1,300석을 꽉 메운 관중들이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올해는 차근차근 준비를 해서 보존회의 이름으로 정민선생님을 기리는 공연을 다시 한 번 무대에 올리려고 합니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동작 하나하나가 그대로 춤이 되어 버린다. 아마도 그래서 춤꾼들은 사는 일상이 춤이라고 하는가보다. 평생을 춤으로 살아온 김진옥 선생. 교방춤의 멋을 후대들에게 온전히 전할 때까지 무대 위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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