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날마다 공사야

아니, 이 사람아 이렇게 좋게 만들어주는데 왜 불평이야

그래도 그렇지 이 공사비는 다 누가 내는 것인데?”자네가 다 냈나? 이 사람아, 수원이기 때문에 이렇게 변화하는 거야.”

 

두 사람이 행궁동 수원천 변에 앉아 주고받는 말이다. 도대체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지가 궁금하다. 그렇다고 분위기가 그냥 끼어들기도 수월치 않다. 잠시 주변을 돌아보니 왜 이런 대화를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간다. 화홍문서부터 매향교까지 수원천 옆 도로변에 버드나무 주변을 꾸미고 있는 공사가 한창이다.

 

 

멋진 의자도 수원천 경관을 더해

 

선생님 이렇게 나무로 막아놓으면 나무가 숨을 쉴 수가 있어서 더 푸르게 잘 자랍니다.”

그래도 이건 낭비 아닌가요?”

이렇게 멋진 의자에 앉아 수원천을 내려다보세요. 얼마나 경치가 좋습니까?”

그런 그려

 

사람들은 가끔 마음에 없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꼭 그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다. 그런 불만 속에 주변이 더 좋아질 수도 있으니. 화홍문에서 매향교까지 늘어진 버드나무가 무더위를 식혀준다. 새롭게 조성한 의자에 앉아본다. 수원천 물가에 자라난 풀들과 함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수원이기 때문에 변화하는 거야.”

라는 말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 ‘수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다라는 말이 얼마나 자신감이 넘치는 말인가? 그저 그런 말도 들어도 힘이 불끈 솟는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이런 날에 공사를 하는 인부들이라고 지치지 않을 것인가? 하지만 그런 와중에 더 아름다운 수원을 만들기 위해 비지땀을 흘린다. 그저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으로 대신할 수밖에.

 

관광객들은 어디로 다니라고?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라 했던가? 말에 비유를 한 고사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생긴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수원천을 따라 매향교를 옆 횡단보도를 건넌다. 잠시만 걸어도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이런 날 멀지 않은 거리지만 걷는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렇게 차를 대놓으면 사람들은 어디로 다니지?”

, 아무 생각도 없이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자신이 편하자고 어떻게 이런 짓을 해

아니 이런 차들은 다 견인해야 되는 것 아냐.”

 

 

조금 전 기분 좋았던 기억이 사라진다. 무슨 일인가해서 보았더니 화성을 관람하기 위해 외지에서 온 관광객이다. 행궁을 돌아보고 전통시장을 찾아가다가 남수문 곁에서 길이 막혔다는 것이다. 틀림없이 인도인데 차들을 대놓아 길이 막힌 것이다.

 

나라고 별수 없다. 차를 피해 차도를 내려 돌아가는 수밖에. 날이 무더운데 은근히 짜증이 난다. 그리고 보니 이렇게 차를 대놓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상습적으로 이렇게 인도를 막아 차를 새워놓는다. 무더운 날 이렇게 차로 인도를 막아 놓으면 좋아할 사람이 없다. 왜 자신만 생각하는 것인가?

수원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란 말이 창피한 일이다.

남원 시내를 돌아다니려면, 목숨 하나를 더 달고 다녀야 한다. 그나마 중심가에는 인도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그러나 그 인도라고 하는 것도 사람이 다니기에는 영 불편하다. 양편으로 개구리 주차를 시켜놓아 사람들이 통행을 하기가 불편한데, 그 와중에 물건까지 길에 내 놓은 얌체족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체국을 들렸다가 일부러 운동도 좀 할 겸 걸어오는 길이다. 그런데 통행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금을 그어 놓은 황색선 안에, 제집인양 차들이 주차를 하고 있다. 겨우 상점이 있는 안으로 들어가 보려고 했으나, 틈이 생기지를 않는다. 할 수 없이 차가 서 있는 밖인 차도로 걷는 수밖에.

사람이 다녀야 하는 곳에 버젓이 서 있는 차들과 오토바이

내 목숨 좀 지켜주시오. 제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빵’하는 경적음이 울린다. 놀라 뒤를 돌아보니 운전자가 인상을 쓰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차도로 걷고 있었던 것. 그러나 나도 차도로 걷고 싶어 걸은 것이 아니다. 어디로 갈 때가 없으니 할 수 없이 차도로 걷고 있었던 것.

그런데도 인상 쓰고 경적 울리는 이 기사 분. 차가 없으면 그냥 집안에 처박혀 있으란 표정이다. 딴 때 같으면 운전자를 끌어내어 패대기라도 쳤을 판이지만, 내가 차도로 걸었으니 무엇이라고 하겠는가? 그저 미안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는 수밖에.


사람이 다닐 곳이 없어 위험한 차도로 다니고 있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이 걸어야 할 곳은 차들이 서 있고, 정작 사람들은 모두 서 있는 차를 비켜 차도로 걷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어떻게 사람들이 차를 피해 차도로 걸을 수가 있을까? 그나마 젊은 사람들은 빨리 피하기라도 하지만, 노인분들은 어쩔 것인가? 뒤에서 빵빵거리면 어쩔 줄을 모른다.

차를 대놓지 못하게 하던지. 아니면 짐을 밖으로 못 내놓게 하고 차를 바짝 대지 못하게 하던지. 사람들이 걷는 길을 만들어 주던지. 아무런 조치도 없이 이렇게 사람들이 차도로 걸을 수밖에 없는 모습. 참 불안하기 이를 데 없다.

어르신들은 어쩌라고. 목숨 좀 지켜주시오 제발

'나 목숨 하나뿐이오. 제발 내 목숨 좀 안전하게 지켜주시면 안 되겠오?'


부처상은 언제 최초로 만들어졌을까? 전하는 바에 의하면 석가모니가 성불 한 후, 한 때 도리천에 올라가 그곳에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설법을 하였는데, 밧사국의 우드야나왕이 지상에 부처가 없는 것을 허전해 하였다고 한다. 우드야나왕은 그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150cm 정도의 여래상을 만들어 공양하였는데, 이것이 최초로 만들어진 불상이라는 것이다.

그 때 만들어진 여래상의 법의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여래상과는 다른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런 최초의 여래상과 같은 법의를 걸친 석불입상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바로 보물 제1436호로 지정된 농산리 석불입상이다. 경남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산53번지에 소재한 이 석불입상은 통일신라 때 조성된 것이다.

보물 제1436호 농산리 석불입상은 석불과 강배가 일석으로 조형되었다

최초의 밧사국 여래상과 같은 법의

이 석불입상의 법의는 양쪽 어깨에 걸쳐, 가슴 위로 몇 갈래의 U자형 주름을 그리면서 내려온다. 이 법의는 허리부분에서 Y자 형으로 갈라졌다가, 두 다리에 밀착되어 작은 U자를 그린다. 그리고 종아리 부분에서 다시 큰 V자를 그리며 마무리를 짓는다. 바로 이런 형태의 법의가 밧사국의 우드야나왕이 최초로 조성한 여래상과 같은 형태라는 것이다,

이런 법의의 표현법의 형태를 보고, 인도 우드야나왕의 여래상 형식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우드야나상의 법의 형태는 몇 곳에서 보이고 있는 석불입상의 법의 형태이다. 통일신라 때 조성된 석불입상에서 이런 법의의 형태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이것은 당시의 특징적인 석불입상의 조형 형태라고 것을 알 수가 있다.



인도 밧사국의 우드야나왕이 최초로 만든 여래상과 같은 법의를 입고 있다.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한 석불입상

농산리 석불입상은 산 속에 자리하고 있다. 길을 가다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이정표조차 찾을 수가 없다. 도로에서 산속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몇 개의 이정표가 길 안내를 하고 있다. 자칫 딴 곳으로 빠지기 쉬운 산길이기 때문이다. 농산리 석불입상을 들어가기 전에는 커다란 바위들이 보인다. 그리고 넓게 마련한 공지에 석불입상이 서 있다. 석불입상을 찾아간 날은 아직 눈이 녹지 않아, 여기저기 흰 눈이 보인다.

농산리 석불입상은 광배와 받침대까지 모두 갖추고 있는 완전한 형태의 모습이다. 바위를 원추형으로 쪼아서 불상과 광배를 하나의 돌에 조각을 하였다. 알맞은 형태의 이목구비와 상투가 듬직하게 자리하고 있다. 얼굴은 온화한 미소를 띠우고 있으며, 적당히 벌어진 가슴으로 인해 날렵한 인상을 준다.



받침돌은 마모기 되었다.

당당한 어깨에 잘록한 허리, 그리고 법의 속에 드러난 사실적인 몸매 등이 이 석불입상의 조각이 뛰어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조형미는 뛰어난 입체감을 보여주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광배의 한편 쪽이 떨어져 나갔다는 것이다.

통일신라시대 뛰어난 예술성이 돋보여

이 석불입상의 광배는 몸 전체를 감싸고 있다. 광배에는 불꽃 무늬를 새겼으며, 석불입상이 딛고 서 있는 받침대에는, 연꽃잎이 아래로 행하고 있으나 심하게 마멸이 되었다. 이 석불입상에서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바로 발이다. 발은 몸과 광배를 조각한 돌과 떨어져, 받침돌에 발을 조각하였다. 그래서 발과 몸이 떨어져 있다.


발은 몸에서 떨어져 받침돌 위에 조각하였다. 뒤편은 자연석 그대로 놓아두었다.

통일신라 사대에 조성된 농산리 석불입상. 전날 내린 눈으로 인해 여기저기 눈에 쌓이고, 12월 11일의 날씨는 차갑다. 더구나 숲속에 있는 석불입상을 만나기 위해 들어간 곳에는 주변 나무에 가려 햇볕조차 들지 않는다. 옷자락을 여미게 하는 산바람이 차갑지만, 쉽게 석불입상 주변을 떠날 수가 없다.

한 해에 몇 명이나 이곳을 찾아오려나. 그래도 누군가 관리하고 있는 듯하다. 주변이 말끔히 청소가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인도 첫 여래상과 같은 형태의 법의를 입고 있는 농산리 석불입상 앞에서 잠시 머리를 숙인다.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덕전리에는 고담사라는 절이 있다. 이 절 뒤편에는 화강암 바위를 그대로 깎아 불상을 새긴 마애불이 자리하고 있다. 한 눈에 보아도 거대마애불이다. 이런 거대 마애불은 고려시대의 작품에 많이 나타나는데, 이 마애불 역시 고려 초기인 10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전통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왜 이렇게 거대한 마애불을 조성했을까? 아마 그것은 국운의 융성함과 더불어, 고려라는 나라의 국권을 상징한 것인지도 모른다. 보물 제375호로 지정된 함양 덕전리 마애여래입상은 바위 면을 다듬어 조각한, 전체 높이 6.4m에 불상 높이가 5.8m나 되는 거대한 마애여래불이다.



함양군 마천면 덕전리 고담사 뒤편 암벽에 새겨진 보물 제375호 마애여래입상

염주와 화염의 문양으로 돌린 두광

고담사 뒤편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입상은, 훼손이 되지 않은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오랜 풍광에도 아름답게 보존이 되고 있는 모습에서 고마움을 느낀다. 이 마애불의 특징은 바로 광배와 대좌까지 온전히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배 모양의 광배는 두광과 신광까지 모두 볼록하게 조각을 하였다. 연주와 화염의 문양을 돌려 조각을 한 마애불은 보기에도 화려하다.

불상을 받치고 있는 대좌는 연꽃 봉우리처럼 조각을 한 상좌가 있고, 그 밑에는 탑의 기단부와 같은 모습으로 하대로 구분이 되어있다. 특히 하대에는 석탑에서 보이는 우주와 탱화가 표현되어 있으며, 고려시대 탑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안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렇게 하나하나 세세하게 표현을 하였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받침에는 상좌와 하대가 표현이 되어있다. 하대에는 석탑의 기단부와 같이 우주와 탱주, 안상 등이 나타난다. 두광와 신광은 연주와 화염의 문양을 조각해 화려하다.

조금은 균형이 안맞는 덜 세련된 조각수법

길고 큰 전신에 비해 나발과 육계는 작은 편이다. 하지만 가늘게 감은 듯한 눈과 두툼한 꼭 다문 입등은 강력한 인상을 풍긴다. 적당히 표현된 코와, 어깨까지 늘어진 귀 등은 위엄스러움을 담고 있다.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며 넓은 어깨에는 대의를 걸쳤는데, 가슴에서 한 번 꼬여 양편으로 늘어진 것이 망토와 같은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은 인도에서 시작이 되어 중국을 거쳐, 통일신라시대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전체적인 형태의 조각기법에서 덕전리 마애여래입상이 통일신라의 마애불 조각기법을 따른, 고려 초기의 작품이라고 보는 이유다. 발은 크고 두툼한데 비해 손은 작은 편이다. 그런데 손을 조각한 수법이 색다르다. 몸에 비해 도드라지게 조각이 되어 있다. 아마 손이 작게 조각이 된 것도 저렇게 위로 도드라지게 조각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금은 비례가 맞지 않는 손과 발

덕전리 마애불 앞에서 세상을 위해 참배를 하다.

전국 이곳저곳을 답사하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문화재들. 이렇게 온전히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덕전리 마애여래입상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인다. 세상을 구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도 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문화유산들. 그리고 훼손되고 도난당한 문화재들. 이런 아픔을 위한 반성의 참배다. 누구 하나 돌아보지 않은 이 산 중 깊은 곳에서 천년 세월을 꿋꿋하게 지켜졌다면, 무엇인가 신비스런 힘이 있지나 않을까하는 생각에서다.


그 굳게 다문 눈이며 입이, 그리고 왼손을 들어 무엇인가를 알려주고자 하는 모습이 덕전리 마애여래입상 앞에서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뒤돌아 산을 내려오면서도 몇 번이고 돌아보게 되는 마애불. 아픔을 당하고 있는 세상의 모든 이들을 위해 기원을 해본다. 이제는 제발 몇 사람들을 위한 세상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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