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인 경기민요는 서울과 경기도지방에서 전승되는 민요이지만, 여기서의 경기민요는 경기긴잡가를 가리킨다. 잡가는 가곡이나 가사와 같은 정가와 대비되는 속가(俗歌)라는 뜻으로 쓰였으나, 오늘날에는 속가 중에서도 긴 형식의 노래를 앉아서 부르는 것을 잡가라 한다.

 

긴잡가라 함은 경기잡가 가운데 느린 장단으로 된 12잡가를 말한다. 경기긴잡가는 유산가, 적벽가, 제비가, 소춘향가, 선유가, 집장가, 형장가, 평양가, 십장가, 출인가, 방물가, 달거리 등 12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산가는 산천경치를 노래한 것이고, 소춘향가, 집장가, 십장가, 형장가는 판소리 춘향가의 내용을 따서 사설을 지은 것이다.

 

이와 같이 판소리의 한 대목을 끌어 낸 경기긴잡가 중 적벽가는 판소리 적벽가와 비슷하고, 제비가는 판소리 흥보가와 내용이 통하지만 이들 잡가가 판소리 곡조로 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일부 사설을 따왔을 뿐이다. 평양가, 출인가, 방물가, 달거리는 서민적인 인정, 사랑 등을 노래하고 있다.

 

경기긴잡가의 장단은 흔히 느린 6박 도드리장단이나, 좀 느린 3박 세마치장단으로 된 경우가 많다. 선율은 서도소리제인 수심가토리와 경기소리제인 경토리가 뒤섞인 특이한 음조로 되어 있다. 경기긴잡가의 특징은 경기도 특유의 율조로, 대개는 서정적인 긴사설로 구성되었으며 비교적 조용하고 은근하게 서민들의 애환을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 시대에 우리가 흔히 경기민요라 하는 것은, 긴잡가 외에 경기도 지방에서 전해지는 수많은 민요들을 총 망라하여 경기민요라고 지칭하고 있다. 이러한 경기민요를 감칠맛 나게 표현한 음반이 출시가 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경기민요와 화려한 관현악의 어울림 시도

 

경기민요 소리꾼 최영자씨가 소리와 관현악이 어우러진 경기민요 음반 관현악과 함께 하는 경기소리를 신나라뮤직에서 17일 출반했다. 그동안 경기소리의 멋과 우수성을 널리 알려온 소리꾼 최영자씨는,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로 명창 이은주, 이춘희 선생에게 사사했다.

 

이번에 새로 출반한 음반은 특별한 재주나 기교가 없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부를 수 있는 소박한 경기민요를 화려한 국악 관현악 반주를 통하여 감칠맛 나는 소리로 재탄생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특히 풍부한 음향을 위해 33인이 동원된 국악 관현악단과 호흡을 맞춘 특색 있는 연출은, 경기민요를 민중의 삶 속으로 파고드는 대중음악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민요를 부르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해온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음반 관현악과 함께 하는 경기소리1장의 CD로 구성돼 있으며, 경기소리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금강산타령’, ‘노랫가락’, ‘청춘가’, ‘궁초댕기’, ‘뱃노래’, ‘잦은 뱃노래등 총 14곡이 수록돼 있다.

 

 

인고의 고통으로 점철 된 지나 온 세월

 

우리 소리에 내재하는 흥과 멋과 한을 충실히 표현해온 최영자씨의 목소리와, 관현악의 웅장한 음향이 최적의 조화를 이룬 경기소리라는 점에서 출반부터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소리꾼 최영자씨는 이번 음반 발표를 계기로 소리꾼으로 사는 삶을 숙명으로 여기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녀의 지난 이야기를 들어보면 소리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지난 세월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소리를 배우면서 고통을 엄청 받았어요. 소리를 늦게도 시작했지만 소리가 될 만하니까 신병이 왔어요. 20여 년 전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하는데,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면 척추가 아파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였어요. 병원을 찾아가도 의사는 아무런 병도 없다고 하고, 고통만 더 심해지고요. 나중에는 정말 죽을 것 같더라고요

 

 

설사를 3년이나 계속하고 제대로 거동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남편에게 제발 나 좀 죽여 달라.’고 울면서 매달리기도 했다는 것. 그러다가 내림은 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북한산 문수사 등을 찾아가 3천배를 올리기 시작했단다. 3천배를 하면서도 제발 나를 좀 데리고 가달라고 애원을 했다고.

 

그렇게 10년이라는 시간을 고통을 참아가면서 살아왔다. 남들에게 이야기조차 할 수 없는 나날이 계속되고, 소리를 해도 기운이 없어 제대로 성음을 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저요, 무대에 올라가서 가사도 까먹고는 했어요. 그것도 큰 무대에서요. 선생님과 선배들의 나무람은 그렇다 치고라도, 후배들까지 무시를 하는데 견딜 수가 없었죠. 그렇게 고통 속에 살다가 찾아 간 곳이 김혜란 선생님이예요. 거기 가서 서울굿을 선생님께 배우면서 조금씩 소리가 나아지기 시작한 것이죠.”

 

최영자씨는 삶의 고통이 없었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리를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세상에서 피하고 싶은 현실, 그리고 남들에게 말 못할 고통. 하지만 소리가 있어 함께 걸어갈 수 있었다고 토로한다.

 

 

앞으로 소리공양을 하고 살아갈 것

 

김혜란 선생님께 제가 이제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 음반을 내야겠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선생님께서 녹음실에 와서 소리를 밖으로 끄집어내도록 도와주시기도 하고요. 선생님께는 지금도 공부를 하러 다니고 있어요. 관현악에 맞추어 소리를 하다가 보니 민요의 굴곡진 맛을 제대로 표현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제가 마음속에 서원을 한 것은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이죠.”

 

무대에 오르면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고, 소리를 하면 굿판처럼 신명이 난단다. 그런 만큼 그녀 자신의 소리가 단 한 사람일지라도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소리꾼의 진정한 행복이라고 밝혔다. 한 사람의 소리꾼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긴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이제 진정한 소리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고, 그 소리로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기를 바라고 있다.

 

제 음반을 절 종무소에 갖다드리고, 그것을 팔아 기금으로 사용을 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서원도 했기 때문에, 그 약속은 꼭 지키고 싶어요. 그동안 남들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아픈 과거를 털어놓으니 속이 다 후련하네요.”

지난 해 3월 3일 보물 제1709호로 지정이 된 방화수류정. 화성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방화수류정은 조선 정조 18년인 1794년에 건립이 되었다. 화성의 동북각루인 방화수류정은 전시용 건물이지만 정자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살린 전각이다. 방화수류정은 송나라 정명도의 시(詩) ‘운담풍경오천(雲淡風經午天), 방화류과전천(訪花隨柳過前川)’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방화수류정의 편액은 조윤형(1725~1799)의 쓴 글씨이다. 평면은 ㄱ자형을 기본으로 북측과 동측은 凸형으로 돌출되게 조영하여 사방을 볼 수 있도록 꾸몄다. 정조 때 축조한 방화수류정은 조선 헌종 14년인 1848년에 중수되었고, 일제강점기 이후 여러 차례 부분적으로 수리되었다.

 

 

 

용연이 꿈틀대다

 

방화수류정의 성 밖, 용머리바위 밑으로는 아름다운 용연이 자리하고 있다. 용연은 방화수류정 주변의 아름대운 경관을 살려, 반월형의 연못을 조성하고 그 가운데 인공 섬을 조성했다. 방화수류정과 용머리바위, 그리도 용연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이고 있는 이곳. 달이 떠오르면 ‘용지대월’이리고 하여 수원팔경의 하나로 꼽힌다.

 

예전에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는 유서 깊은 곳 용연. 이 용연이 꿈틀거리며 용틀임을 했다. 10월 4일 오후 8시부터 용연 주변에는 염태영 수원시장과 노영관 수원시의회 의장, 그리고 화성문화재를 참관하기 위해 수원을 방문한 각국 대사 일행, 수원시민 등 1,000여명이 용연 주위에 자리를 잡았다.

 

화성문화제의 전야제로 펼쳐진 ‘용연지몽(龍淵之夢)’은 명인들이 보여주는 꿈의 향연이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명인들이 보여주는 음악과 춤, 소리 등은 용연 주변에 모인 많은 사람들에게 방화수류정의 아름다운 야경과 더불어, 멋진 무대를 꾸며주었다.

 

명인들의 멋, 함께 느끼고 즐겨

 

이 날 무대에는 관악합주, 가야금 산조, 대금의 명인인 박용호(전 한예종 교수)의 청성곡에 맞추어 살풀이춤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어 한량무와 중요무형문화재인 경기민요의 보유자인 이춘희와 제자들이 들려주는 민요 한마당으로 이어졌다.

 

이 중에서 대금의 명인 박용호는 용연에 배를 띄우고 섬을 한 바퀴 돌아 관객들이 있는 곳으로 나타나자, 관람을 하던 사람들은 환호와 함께 박수를 치기도 했다. 정자동에 산다는 이아무개(여, 45세)는

 

“전야제라고 해서 구경을 했는데, 이런 공연인줄을 몰랐다. 이제는 화성문화제가 명실공이 정조대왕의 꿈을 품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수원에 살고 있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 고 했다.

 

10월 5일부터 7일까지 열리는 화성문화제에는 음식축제와 봉령사 전통사찰음식 전시 등 부수적인 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짚신신고 수원화성걷기와 정조대왕 능행차 등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준비되어 있으며, 화성축성 체험 등 많은 체험의 장도 마련되어 있다. 용연에서 꿈을 품기 시작한 제49회 화성문화제. 그 거대한 꿈을 함께 꾸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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