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전통시장에 대한 모든 것을 소개하는 책자가 발간이 된다. ‘수원전통시장 이야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자는, 186쪽에 달하는 소개책자로 수원시에 소재하고 있는 22개 시장의 모든 것을 알아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 수원시에서 발행을 할 이 전통시장 이야기는 수원박물관의 한동민 학예팀장과 e수원뉴스의 시민기자들의 집필로 이루어졌다.

 

1편 한국의 장시, 2편 수원의 시장, 3편 수원의 전통시장, 4편 전통시장의 주변이야기로 꾸며진 이 전통시장 이야기는, 각 시장마다 역사 및 개관, 상인회장 인터뷰, 전통시장의 특징 등으로 꾸며졌다. 김소라, 심춘자, 윤주은, 하주성 등 4명의 시민기자가 일일이 전통시장을 방문하여 그 시장에 갖고 있는 특징을 구분하여 집필한 것이다.

 

수원의 시장 역사 한 눈에

 

한국의 장시에서는 한국의 장의 역사와 변화를 다루면서 전통시장의 의미와 역사, 기능 등을 다루었다. 수원박물관 한동민 학예팀장의 기고로 받은 수원의 시장편에서는, 수원장의 전통과 특성에 대해서 일목요연하게 소개를 하고 있다. 삼남대로의 길목 수원, 경기남부 상권을 거머쥐다, 수원장의 특성 문안장과 문밖장, 수원경제를 이끌었던 수원우시장, 수원에 전통시장이 많은 이유 등으로 소개되었다.

 

각 시장의 소개는 그 시장의 역사와 개관 등이 소개되어 있다. 시장이 언제 생겼으며 회원 수는 몇 명인지, 그리고 그 시장의 주력상품은 무엇인지 등을 소개하고 있다. 상인회장의 인터뷰에서는 전통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을 하는 상인회장과 상인회의 노력 등을 적어나갔다.

 

 

각 전통시장을 소개하는 종목에서는 상인회마다 펼치고 있는 사업과 그 사업의 성과, 그리고 변화하는 시장과 앞으로의 전망 등을 세세하게 소개하였다. 각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일일이 발로 뛰어 쓴 소개이기 때문에, 시장의 정서를 파악하는데도 일조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수원의 각 전통시장의 주 판매상품 등을 알 수가 있어, 시장보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수원에 전통시장이 많은 이유

 

수원에는 전통시장이 다른 도시보다 많다. 왜 그럴까? 그것은 수원이 갖는 또 다른 자랑이라 할 수 있다. 역사 문화적 전통은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장이라는 것도 오랫동안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수원이라는 도시가 사람들의 아픔을 보듬고 치유할 수 있는 넉넉한 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신도시의 높다랗게 들어선 소수자본의 힘으로 세워진 쇼핑몰과 백화점 류와는 차원이 다른 깊이가 있다는 것이다.

 

 

수원박물관 한동민 학예팀장은 수원이 전통시장이 많은 이유를 정조 이래 경기남부 상권을 주도했던 역사적 전통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이유는 도시가 확장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수원의 문화적 저력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원은 도시변천사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도시이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적고 있다.

 

수원 전통시장의 활성화에 도움이 되길

 

수원 전통시장 이야기의 발간소식을 접한 수원상인연합회 최극렬 상인회장은

수원은 정조대왕이 화성을 축성할 당시부터 장을 형성한 역사가 깊은 곳이다. 지금은 비록 수원 전역에 22개의 인정시장이 분산이 되어 있지만, 예전 팔달문 안팎에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수원전통시장을 누구나 들여다볼 수 있는 역사가 책으로 꾸며졌다고 하니, 고맙고 반갑다. 이 책이 22개 전통시장의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한다.

 

 

전통시장이야기가 책으로 발간된다는 소식을 들은 전통시장의 한 관계자는

대형쇼핑몰과 백호점 등의 입점으로 인해 전통시장이 받는 피해가 클 것으로 보인다. 이럴 때에 이렇게 전통시장에 대한 책자가 발간이 된다고 하니 반가운 마음이다. 아무쪼록 이 전통시장이야기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전통시장에 대한 의미를 제대로 알고 많은 이용이 있기를 바란다.”고 한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자신을 이해하고 항상 서로를 생각하는 친구 두 사람만 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성공한 삶이라고 합니다. 늘 세상을 살아오면서 그래도 외롭지 않다고 느끼는 것은,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함께 있다는 것이죠. 엊그제인가 강원도 고성에 거주하시는 지인 한 분이 수원으로 오셨습니다.

 

지인이 거주하는 곳은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화진포 인근인데, 이번에 눈이 2m나 내린 곳입니다. 그곳에서 거의 20일 간이나 외부와 소통을 하지 못한 체 전화로만 안부를 묻고는 하다가, 이번에 20여 일만에 포클레인으로 길을 내고 단숨에 수원으로 달려왔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만으로도 콧등이 시큰해집니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시간을 따질 필요없어

 

사진을 찍어서 갖고 온 것을 보면 정말 쌓여있는 눈이 감당이 되질 않습니다. 몇 년 전인가, 저도 속초에서 한 3년 정도를 산 적이 있습니다. 그 해도 2월에 눈이 내렸는데 불과 몇 시간 만에 1m가 넘는 눈이 쌓여, 아침에 난리를 피운 적이 있습니다. 그 뒤 며칠 후에 수원에 일을 보러 나왔더니 20cm인가, 눈이 왔는데 교통대란이 일었다고 합니다.

 

많은 눈을 보다가 보니 별로 쌓인 것도 아닌 눈에도, 사는 환경에 따라 이렇게 차이가 납니다. 눈이 많이 내리는 강원도 영동지역 사람들은 그 정도 눈은 눈 취급도 하지 않는데 말이죠. 고성에 사는 지인은 수원으로 오다가 여주에 사는 동생과 동행을 했습니다. 늘 보고 싶은 사람들이죠. 그리고 만나면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남자들만의 모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통닭골목에 있는 집에서 만나 통닭 한 마리 시켜놓고 그저 술잔만 주고받습니다. 그리고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는 것인지 웃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남들이 들으면 별로 재미있는 이야기도 아닌데 말이죠.

 

 

그렇게 웃고 떠들다가 수원에 사는 동생까지 합세를 했습니다. 제가 늘 좋아하는 사람들 중 반은 모인 셈이죠. 그때부터 장소를 옮겨 이야기를 하면서 또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합니다. 수원의 아우네 집에서 하루를 묵으면서 이야기로 시간을 보냅니다. 딱히 모여야 할 이유도 없지만, 이렇게 한 번 모여서 술잔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행복입니다.

 

곁에 있어서 행복한 사람들

 

사람들은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합니다.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이죠. 이 날 자리를 함께 한 사람들은 세상을 살면서 비슷한 아픔을 함께 한 사람들입니다. 물론 그 아픔의 종류도 다르고 강도도 다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어느 누구 한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면 당장에라도 달려갈 수 있는 사람들이죠.

 

그런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알고 나면, 더욱 곁에 머무는 사람들이 소중해집니다. 그 소중함을 오래 간직한다는 것이 바로 사람의 도리가 아닌가 합니다. 먼 길을 눈을 헤치고 달려 온 지인. 불과 하루 저녁을 함께 보내고 또 황망히 길을 떠났습니다. 고작 아침 한 그릇을 함께 나누고요.

 

 

하지만 그 하루가 남들의 몇 날보다 더 소중한 것은, 바로 마음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몇 사람만 있다면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죠. 단순히 사회에서 아는 사람, 혹은 직장의 동료나 친구.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내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 말입니다.

 

아침에 휴대폰을 열어보니 고성에 사는 지인이 보내 준 눈 사진이 있습니다. 그 험한 눈길을 큰돈을 들여 포클레인으로 눈을 헤치고 달려온 길. 그리고 하루 만에 다시 돌아간 길. 그런 길을 함께 동행 할 사람이 곁에 있어 행복한 날입니다.

 

예전 장날이 되면 사람들은 장터로 향한다. 오죽하면 장날이 되면 마을사람은 장으로 가고, 도둑놈들은 마을로 간다.’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이는 장날이 되면 사람들이 장을 보기 위해 다 나가기 때문에 마을이 텅 빈다는 것이다. 그런 틈을 내려 도둑놈들이 마을로 숨어든다는 것. 웃지 못 할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웃음이 난다.

 

시장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지역에 있는 장이야 늘 만나는 사람들인지라 안면이 있다. 전통시장은 그 특성상 주변 사람들이 모이다가 보니, 어느 집에 숟가락이 몇 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터이다. 그러다가 보니 자연 모이면 선술집에 들려 막걸리 한 잔을 나누게 된다.

 

 

처녀총각들의 신상정보도 교환

 

서로가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보면, 자연 어느 마을에 어느 아들이 혹은 어느 집 딸이 헌기가 찼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문제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귀를 쫑긋 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중매를 잘하면 술이 석 잔이요, 잘 못하면 뺨이 세 대라 했던가?’ 이렇게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마당발로 불리는 사람들은 바쁘게 머리를 굴리게 된다. 어느 집에 아들은 대학을 나오고 인물이 장 생겼다는 둥, 혹은 어느 집 딸이 혼기가 꽉 찼는데, 미인인데다가 심성도 착하다는 둥. 이런 이야기가 술안주가 된다.

 

당사자들이나 그 아들딸을 둔 부모들은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다. 자기네들끼리 한참 맞춰보다가 배필이 될 정도라고 생각하면, 그 자리에서 중매를 서기로 약속을 해버린다. 장터가 중매 장소로 변하는 것이다.

 

 

실제로 장터에서 사돈이 되는 경우 허다해

 

장터에는 먹을 것들이 지천에 깔렸다. 요즈음도 장에 가면 많은 먹거리들이 있다. 허름한 선술집에 앉아 술 한 잔을 기울이다 보면, 이웃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도 모두 지기가 된다. 꼭 술 때문은 아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장이라는 특정지역이 사람들의 심성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술 한 잔을 함께 나누다가 보면 서로 집안 이야기들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보면 팔불출이 되기 십상. 자식자랑에 서로 열을 올리다가 보면 그 자리에서 사돈이 될 것을 약속을 한다. 상대방의 자녀도 보지 않고 술자리에서 한 약속이지만 항상 유효하다. 하기에 옛날 장터에서 주로 아버지들에 의해 많은 남녀가 부부가 된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끔 웃지 못 할 이야기들도 들린다. 술김에 타지에 있는 사람과 자녀들을 결혼을 시키기로 약속을 했단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 술이 깨고 보니 아무래도 상대방이 미심쩍었다는 것. 딸을 둔 아버지가 사위를 슬쩍 보기위해 장래 사돈이 될 사람의 집을 찾아갔단다.

 

 

절름발이 사위를 보아야 하나?

 

얼마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 집 대문을 열고 한 사람이 나왔다. 생김새나 나이로 보아 자신의 딸을 신랑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젊은이가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었다. 외모는 준수한데 발을 절다니, 색시의 아버지는 고민을 하다 못 해 집에 와서 부인과 딸에게 털어놓았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소. 난 사윗감이 절름발이인 것을 모르고 있었는데

부인은 펄펄 뛰었다. 헌데 당사자인 딸은 다소곳이 앉아 있다가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했다.

부모님끼리 맺어주신 혼사인데 그것도 제 팔자인가 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날을 잡으세요.”

 

아버지는 착하게 잘 자라준 딸을 절름발이에게 시집을 보내는 것이 못내 안타깝지만 딸을 그리로 시집을 보냈다. 그런데 결혼식장으로 들어오는 새신랑의 다리가 멀쩡한 것이다. 색시의 아버지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궁금해 넌지시 사위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오래 앉아서 책을 읽느라 발에 쥐가 나서 절름거렸다는 것. 착한 딸이 아니었다면 좋은 사윗감을 놓칠 뻔 했다는 것이다. 장바닥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서울에 자료조사를 할 일이 있어 이틀간이나 서울을 오가다가 보니, 문화재답사를 떠나기로 한 예정시간을 지나버렸다. 바쁘게 여장을 차리고 떠난 답사길.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고 하지만,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맑기만 하다. 고속도로를 달려 찾아간 충남 보령시. 사람들은 보령이라고 하기보다는, 대천이라고 말을 해야 더 빨리 알아듣는다.

 

보령시에는 많은 문화재가 있다. 사적인 성주사지에는 국보 1점과 보물 3, 그리고 다수의 지방 문화재가 있다. 성주사지에서 가까운 곳에는 석탄박물관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고 있다. 하루 만에 돌아본 문화재와 유적만 해도 상당하다. 고성(固城) 세 곳에, 석조물과 사찰, 고택과 문화재로 지정된 노송, 그리고 도미부인의 사당 등을 돌아보았다.

 

 

문화재답사, 쉽지 않은 일이다.

 

문화재답사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은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해야만 한다. 어디를 돌아볼 것인지, 또 동선을 어떻게 잡아야 가장 빠른 시간에 더 많은 것을 돌아볼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그 문화재를 만나면 무엇을 중심으로 촬영을 한 것인지 등을 세세하게 파악을 해두어야 한다.

 

또한 문화재 답사를 할 때는 가급적이면 한 지역을 중점적으로 답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짧은 시간에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지역을 답사를 하려고 생각을 했다면, 그 지자체를 먼저 찾아간 자료(문화재 장소와 지도 등)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자료를 기본으로 동선을 정해 답사를 시작해야 한다.

 

 

답사를 할 때는 어느 것 하나 빠트려서는 안된다. 답사지역을 들어가 문화재를 만나면 가장 먼저 볼 것은 바로 안내판이다. 그 안내판에는 문화재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와 있기 때문에, 어떻게 접근을 할 것인가를 사전에 파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문화재의 모든 것을 세세하게 촬영을 해두어야만 한다.

 

문화재 답사의 또 다른 즐거움

 

문화재 답사를 할 때 가급적이면 국도를 이용한다, 대개 문화재는 국도나 지방도 변에 이정표가 걸려있다. 그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면 처음에 예정하지 않았던 문화재를 만날 수가 있다. 그럴 때의 기분이란 바로 보물 하나를 얻은 듯하다. 답사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설명만으로 그 기분을 느낀다는 것은 어렵다.

   

 

문화재 답사의 즐거움이란 것이 어디 그것뿐인가? 처음으로 접하는 문화재에서 느끼는 수많은 상념들. 수천 년을 그 자리에서서 역사를 지켜 본 문화재와의 말 없는 대화. 그것은 오래도록 문화재를 답사하면서 생긴 나만의 버릇이다. 그렇게 대화를 하다가 보면, 문화재의 깊은 내면 속에 감추어진 이야기를 도출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 그 안으로 들어가 보자.

 

문화재를 오래도록 답사를 하다가 보면, 남들은 찾을 수 없는 것들을 찾아 낼 수가 있다. 학술적인 것이 아닌, 그 문화재에 얽힌 전설 등 이야기이다. 그런 이야기는 주변 마을에서 찾아낼 수가 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을 찾아낸다는 즐거움. 그것이 바로 문화재 답사의 진정한 즐거움이다.

 

 

비록 바쁜 일정으로 인해 힘들게 돌아본 답사 길이었으나, 그 안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수많은 역사속의 진실. 이런 것을 찾아다니는 것이 문화재 답사의 진정한 즐거움이다. 문화재란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더 가까이 다가가 많은 이야기를 할 때라야, 그 자리를 굳에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모정(茅亭)'이라 하면 어떤 정자를 생각할까? 모정이란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정자dl다. 또한 민초들이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 직접 지은 정자이기도 하다. 모정은 여름철에 농사를 짓다가,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짚이나 새(마른 풀) 등으로 지붕을 덮어 만든 작은 정자를 말한다.

 

모정은 농정(農亭), 농청(農廳) 혹은 양정(凉亭) 등으로도 부른다. 모정은 일반적인 정자들이 경관이 수려한 곳에 짓는데 비해, 논이나 밭 등의 주변에 짓는다. 주로 논농사를 많이 짓는 곳에서 볼 수 있는 모정은 농사일을 많이 하는 남성들이 많이 이용을 한다. 모정에서는 청·장년층의 농민들이 쉬는 시간을 이용해 이야기꽃을 피운다. 모정에서 나누는 대화는 양반가의 정자가 시를 짓고 세상을 논하는데 비해서,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주민 모두가 주인인 모정

  

모정에 모인 사람들은 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쉽게 대화를 할 수 있으며, 마을의 잡다한 이야기가 이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모정은 마을 공동체의 산실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정자 모정은 특별한 정자의 명칭을 붙이지 않는다. 혹은 멋들어진 이름을 붙이기도 하지만, 통상 모정이란 명칭으로 불린다.

 

대전시 무수동에 자리한 대전시 유형문화재 제29호 안돈권씨 유회당 종가

 

유회당은 권이진이 부모를 위해 지은 것이다.

 

대전시 중구 무수동에 가면 안동권씨 유회당 종가가 있다. 유회당은 영조 때 호조판서를 지낸 유회당 권이진(1668 ~ 1734)이 처음으로 터를 잡았던 곳이다. 이곳에는 종가 외에 권이진이 부모를 생각하여 지은 유회당이 있다. 이곳 무수동 대전 보문산 남쪽에 자리 잡은 종가 앞에 모정이 서 있다.

 

옛 전통이 살아있는 마을

 

무수동의 모정은 안동권씨 종가의 정원을 함께 어우르며 서 있다. 길가 곁에 서 있는 모정은 작고 소박하다. 모정 곁에는 연못이 있고, 가을이면 불게 물드는 나무들이 모정을 더욱 정답게 만들어 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무수동 모정. 요즈음에는 천편일률적으로 만들어 놓은 시멘트 모정이나, 기와를 올린 모정들이 옛 정취를 사라지게 만든다.

 

 

유회당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오다가 모정에 피곤한 발길을 맡긴다. 사대부가의 양반네들이 지은 화려한 정자는 사람을 가린다. 문을 달아 내거나 집 안, 혹은 근처에 있어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다. 하지만 모정은 다르다.

 

길을 걷는 사람이거나, 그 마을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누구나 그 모정을 이용해 피곤한 다리를 쉴 수가 있다. 그래서 모정은 담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문을 달지도 않는다. 그저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새 기운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모종이다. 

 

그래서 모정은 마을마다 논두렁이나밭두렁, 혹은 입구 정자 나무 그늘에도 하나씩 서 있었다. 지나는 사람까지도 반갑게 맞아들이고, 마음놓고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소이다. 무수동 모정에 걸터 앉나본다. 미처 새로 바꾸지 못한 초가의 짚 냄새가 정겹다. 어디를 가나 있었던 지역 공동체의 산실 모정. 그 정취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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