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의 주변이 정리가 빠르게 진행이 되고 있는 가운데, 유독 남수문에서 창룡문 구간인 지동구간이 가장 늦은 듯하다. 이미 장안문 외곽부터 창룡문을 거쳐 동일치 사이는 주변이 모두 정리가 되어, 화성을 찾는 관광객들이 성의 외곽을 따라 화성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도록 탐방로가 생겼다.

 

지난 해 4월에 문화재청은 관보에 문화재법 제 27조 및 제34조 규정에 따라, 수원시 팔달구 지동 270-66번지 등 167필지 13,520를 사적 제3수원 화성의 보호구역으로 추가 지정하는 사항을, 같은 법 시행령 제11조 제4항의 규정에 따라 예고한 바 있다.

 

예고사항을 보면

. 대상문화재 : 사적 제3호 수원 화성

소재지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장안동 1-2번지 일원

. 보호구역 추가지정 면적 : 167필지 13,520(지번별 면적조서 붙임)

. 추가지정 예고사유

성곽 연접지역을 보호구역으로 추가 지정하여 무분별한 개발을 방지하고, 지형을 회복함으로써, 수원 화성의 역사 문화환경을 보호하고자 함.

. 관리단체 : 수원시 등이다.

 

 

보호구역 안에 창룡문로 7길 폐쇄해야

 

문제는 일부가 문화재 보호구역 안에 들어가 있는 도로의 이용이다. 창룡문로 111번 길은 창룡문 주차장 위에 게이트볼 장부터 성벽으로 난 길을 따라 성벽 밑으로 지하도로가 있는 홍련사 까지다. 이곳부터는 창룡문로 7번 길로 바뀌어 봉돈, 동이포루 앞을 지나 동삼치 앞가지 이어진다.

 

문제는 이 도로는 일반 차도가 아닌 문화재 보수 등을 위한 차량들이 이동을 하는 도로로 알고 있다. 다만 그 도로에 인접한 거주자들은 이 도로를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창룡문로 7번 길이 주변을 이용하는 많은 차량들의 주차장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이 길을 따라 걷다가 보면 평소에도 30대가 넘는 차들이 이 길을 주차장으로 이용한다.

 

 

더구나 뻔질나게 이 길을 이용하는 많은 차들을 볼 수가 있다. 문제는 이 길이 차량에 소통되는 도로가 아닌, 한편이 막혀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지동 순대타운 앞에서 오르는 길은 막혀있고, 이곳을 이용하려면 창룡문 주차장부터 일부러 이곳까지 차를 끌고 들어와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주차 공간으로 많은 운전자들이 시용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봉돈 외벽 균열 심각해, 차량 진입 막아야

 

현재 수많은 차들이 주차를 하거나 이동통로로 사용하고 있는 창룡문호 7번 길은 차도가 아니다. 지난 해 문화재청이 문화재보호구역을 지정 고시 할 때 이 길은 빠져 있었다. 이 말은 이미 창룡문로 7번 길은 문화재구역 안(기 조경 공사가 끝난 외곽 산책길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에 포함이 되어있다고 버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차들이 주차를 하기 위해 이동을 하는 창룡문로 7번 길에는 화성의 봉돈이 소재하고 있다. 현재 봉돈은 외벽에 길게 균열이 보이고 외벽을 쌓은 벽돌은 부식되어 쪼개져 있는 상태이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도 해도 보기가 좋지는 않다. 아마도 이런 균열이나 부식된 벽돌의 형태가 이곳을 지나는 수많은 차령들과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란 생각이다.

 

화성은 사적이자 세계문화유산이다. 보수를 한지가 오래 된 시설물들이 지금도 상당수가 보수를 요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 화성의 주변 정비를 소홀이 해 화성에 조금이라도 피해를 준다면 당연히 예방을 해야 함이 당연하다. 창룡문로 7번 길의 용도를 정확하게 알아본 후 거주자 외의 차량들은 출입통제를 함이 마땅하단 생각이다.

 

날이 춥다. 이렇게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 사람들은 움직이기가 만만치가 않다. 혹 감기라도 거릴까봐 밖에 출입을 했다가도 일찍 귀가를 한다. 집에 들어오면 나가기가 귀찮아진다. 추운날씨는 아무래도 사람들이 웅크려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추운 날에도 자리를 지키고 계신 분들이 있다.

 

수원 화성 남문인 팔달문에서 지동교 사이에는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이곳은 버스정류장을 비롯해 지동교 방향으로 들어오면서 길 한편에 보면 항상 자리를 잡고 계시는 분들이 있다. 나름 자신의 자리가 있는 듯, 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바로 노점상들이다. 자신의 점포가 없이 길가에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작지만 소중한 물건들이 있어

 

노점상들이 파는 물건은 다양하다. 하지만 이 노점상들 중에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들이 파는 물건들은 거의 농산물들이다. 잡곡이며 야채, 나물 등으로부터 별별 것들이 다 있다. 그 중에는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는 것들도 가끔 만날 수가 있다. 사실 이런 노점상 할머니들을 사진을 찍고 취재를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노점에서 다양한 것들을 팔고는 계시지만 엄연히 자식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분들은 어떤 질문에도 답을 하지 않으시려고 한다. 고작해야 한 두어 마디가 고작이다.

 

할머니 날이 추운데도 나오셨네요.”

집에 있으면 몸만 아프니까 움직여야지

물건은 누가 갖다 주시나요?”

차로 운반할 때도 있고, 더러는 이곳 가까운 곳이 맡기고 다니기도 하고

, 자녀분들이 이렇게 추운 날 나오신다고 하면 말리지 않으세요?”

“............”

 

이상하게 자녀들이나 가족들 이야기만 나오면 그때부터 함구를 하신다. 이럴 경우 대개 이 할머님들은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굳이 자식들까지 들춰가면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으신 것이다.

 

 

자리 좀 지키게 했으면 좋겠어!”

 

무슨 말일까? 이곳에서 노점상을 하시는 분들 중 팔달문 옆 버스정류장 쪽에서 장사를 하시는 분들은 지동교 쪽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장사를 하시는 할머니들보다 유난히 물건이 적다. 왜일까? 그것은 단속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적은 물건을 얼른 보따리에 싸서 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장사를 하는 것도 서러운데, 가끔 단속반들이 오면 얼른 보따리에 싸서 숨어야 해. 봐달라고 해도 신고가 들어와서 어쩔 수 없다는 거야. 시장에서 파는 물건들도 아닌데 너무 할 때도 있어. 그냥 자리라도 좀 편하게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채 말끝을 맺지 못하신다. 어떤 날은 하루에 몇 번씩 쫓겨 다니기도 했다고 하신다. 단속반들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버스정류장이나 상가 앞거리에서 노점은 단속대상이기 때문이다. 팔달문 상가 조정호 회장은 어차피 낮 시간에 차 없는 거리로 운영이 되는데, 이곳에 노점상들이 장사를 할 수 있으면 좋은 볼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양성화를 시켜주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하지만 해당 기관에서도 나름 고충이 있다는 것이다. 심심찮게 노점상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민원으로 접수가 되는 전화를 받으면 단속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

 

관광상품으로 양성화 시킬 수는 없을까?

 

하지만 물건이라 봐야 얼마 되지도 않는다. 대개 변두리에서 생활을 하시는 분들이라 버스를 이용해 나오시기 때문에 많은 양이 아니다. 그저 한 보따리 정도를 이고 나오셔서 길에 깔아놓는 것이 고작이다. 물건도 우리가 도심을 벗어나면 논밭두렁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것들이다. 직접 농사를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 노점상을 자주 이용하시는 주부들도 계시다.

 

 

이 할머님들 물건이 정말 싸고 좋아요. 직접 농사를 지으신 곡물과 들과 산에서 채취한 나물들을 잘 다듬어서 갖고 나오시잖아요. 가끔은 진한 시골 된장도 살 수가 있어요. 이분들이 무슨 점포를 갖고 계신 상인들처럼 많은 것을 파시는 것도 아닌데, 이분들이 조금 편하게 장사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침부터 겨울비가 추적거리고 온다. 오늘도 할머니는 우산 하나 펼쳐놓고 쭈그리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만 바라볼 것이다. 그러다가 해질녘이면 어디론가 가버리신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은 하루쯤 쉬셔도 될 텐데. 비가 오는 겨울날이 반갑지가 않다.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묵리 55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11호인 용덕사 석조여래입상이 있다. 이 불상은 이동면 천리 75번지 적동저수지 입구 저수지 하단 제방 좌측 안쪽에 있었던 것이다. 1960년대 초 저수지 축조 공사를 시작하면서, 저수지 입구 좌측으로 옮겨 정측 1칸의 전각을 짓고 안치 했었다. 후에 용덕사로 이전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약수가 좋은 절 용덕사

 

용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다. 용인시 이동면의 성륜산 서쪽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용인에서 45번 도로를 이용해 이동면에서 318번 지방도를 이용하면 찾아갈 수가 있다. 용덕사 뒤편 산언덕으로 오른 곳에 있는 극락전 뒤 바위에, 암굴이 있어 일명 굴암절이라고도 한다.

 

용덕사가 위치한 성륜산은 용인의 남쪽, 안성과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은 높은 산들이 연달아 이어지고 있는 높고 깊은 산이다. 절은 이 산의 중턱에 위치하여 맑고 깨끗한 공기와 탁 트인 시원한 풍광, 그리고 맑은 약수를 자랑으로 삼고 있다. 절 안 곳곳에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석축과 유물들이 있어 유서 깊은 사찰임을 보여준다.

 

절에 전해지는 기록에는 용덕사가 신라 문성왕 때 염거(廉居)화상에 의해 창건되었고, 신라 말에 도선국사에 의해 중창된 것으로 전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기록에는 전하지 않고 있으나 절에 전하는 유물들로 미루어 보아 고려시대에는 상당히 번창했던 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절 아래 이동면 일대의 땅 대부분이, 용덕사에 속해 있었을 정도의 사세를 자랑했다고 한다.

 

 

통일신라 말의 석조여래입상

 

용덕사 석조여래입상은 머리에는 육계의 흔적이 있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법의는 통견이며 양쪽 팔에서 흘러내린 천의는 발끝에 닿아있다. 가슴 앞에서 둥글게 원호로 나타나는 의문(衣文)이 길게 처지면서 하반신에서 양 다리에서 타원형의 주름을 만들면서 흐른다. 도식화된 이러한 형태의 옷주름 표현은 8세기 이후의 불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수결은 시무외여원으로 보이나 오른손에는 보주를 쥐고 있다. 수인과 옷주름 등으로 볼 때 전체적으로 옷주름이 도식화된 경향을 일부 보이고, 신체는 부피감 없이 다소 경직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형태는 통일신라 불상양식을 계승하면서 고려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작품으로 보인다.

 

 

지용화수화형의 수인이 이채로워

 

용덕사의 석조여래입상은 미륵전 안에 모셔져 있다. 예전 신라시대에는 거밀현의 관아에 모셔졌던 석조불상으로 추정된다. 이 여래입상은 거창 양평동 석불입상, 예천 동본동 석불입상에서 나타나는 장신화 경행을 보이고 있다. 이런 점으로 보아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가는 시기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 속조여래입상은 지용화수화형의 수인을 하고 있어 이채롭다. 왼손은 여원인을 취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까지 끌어올려 만개하지 못한 꽃봉오리를 잡고 있다. 이 불상은 미륵도상 연구에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석조여래입상이 왜 관아에 있었을까? 이래저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너무 많아 문화재답사는 늘 궁금증이 커 간.

 

날이 더워도 너무 덥다. 조금만 움직여도 등줄기로 땀이 흐른다. 한 낮의 기온은 30도를 넘어, 그늘에 있어도 후텁지근하다. 하물며 그늘이 없는 뙤약볕으로 돌아다닌다는 것은, 아무리 취재라지만 쉽게 지칠 수밖에 없다. 8월 3일(토), ‘생태교통 수원2013’이 열리는 행궁동 일대를 세 시간 가까이 돌아다녔다.

 

행궁동 골목을 돌아본다. 사람들을 만나 그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를 실감하고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함이다. 그런데 골목길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이 더위에 누가 골목길에 나와서 있을 것인가? 그늘도 없는 곳에서. 행궁 앞으로 돌아와 토요상설공연을 관람하고 난 뒤, 다시 행궁동으로 향했다.

 

 

수원천은 시민들의 좋은 피서지

 

행궁동 벽화골목까지 다 돌아보고 나서 수원천으로 내려왔다. 이렇게 후텁지근하고 땀이 나는 여름에는, 아무래도 물소리라도 들으면 더위가 조금은 가시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장맛비가 그치고 난 뒤 하천 바닥에 있던 앙금이 씻겨 내려가면서 수원천은 물이 상당히 깨끗해졌다. 7월 중순 때만 해도 물이 탁해 보이지 않던 물고기들도 뚜렷하게 보인다.

 

사실 수원천은 멀리 피서를 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피서지이다. 오후가 되면 그늘이 지는 수원천에 놓인 다리 아래 피서객들이 모여든다. 이들은 자리를 펴고 앉거나 누워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수원천에 발을 담가 세족으로 피서도 한다. 그런데 늘 이렇게 수원천 변을 걸으면서 한 가지 걱정스러운 것이 있었다. 바로 물고기들이 상류와 하류로 이동을 할 수 있는 어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나 좀 어떻게 올라가게 해줘요.”

 

그동안 수원천을 따라 걸을 때마다 그런 우려를 했지만, 아직 한 번도 큰물고기가 이동을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흡사 나누어져 정해진 부분에만 살아가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데 3일 오후 수원천을 걷다가 그동안 우려만 했던 모습이 실제로 목격이 되었다. 크기가 거의 80cm이상이 되는 물고기 한 마리가 돌로 경사지게 만든 구조물을 오르려고 하는 것이다. 작은 물고기들이야 당연히 물살을 가르고 위로 오를 수 있었겠지만, 이 큰 물고기는 중간에 그만 갇히고 말았다.

 

돌로 쌓은 경사진 축대로 흐르는 물의 양이 이렇게 큰 물고기가 이동을 하기에는 무리였다. 거의 몸이 반 이상이나 물 밖으로 나왔다. 한참이나 숨을 헐떡이며 오도 가도 못하고 있던 물고기. 입을 벌름거리면서 어떻게든 그 돌 틈에서 빠져 나가려고 허우적거리지만, 그도 만만치 않은 듯하다.

 

 

대형물고기 이동 어로 조성해야

 

수원천에는 큰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상류와 하류로 이동을 할 수 있는 어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다만 어도를 대신한 경사지게 돌들을 틈이 나게 쌓아올려, 그 사이로 물이 흐르게 하여 그것으로 어도를 대신하고 있다. 하지만 작은 물고기들이야 그 사이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이렇게 큰물고기들은 틈에 끼여 이동을 할 수가 없다.

 

물의 양이 많지 않은 물길을 따라 위로 오르려고 애를 쓰던 큰물고기. 한참만에야 겨우 밑으로 내려갔지만, 위로 올라가고 싶은 것인지 한참이나 경사면 밑을 떠나지 않고 있다. 수원천은 자연천이다. 하기에 많은 물고기들이 이곳에서 산란을 하고, 때가되면 생명들이 다시 이곳에서 한 생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렇게 상하류로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는 어도가 없어, 한 구간에 갇혀 살고 있는 듯하다.

 

 

물은 아래로 흐른다. 아래로 흐르는 물은 경사진 하천을 따라 내려간다. 그런 곳에 마련한 경시지게 쌓은 축대. 하지만 그것은 어도가 아니다, 어도란 물고기들이 마음대로 상 하류로 이동을 할 수 있도록 물길을 깊이 내주어야 한다. 수초가 자라고 물고기들이 유영을 하고, 이곳에서 깨어난 오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수원천. 이곳 물길 경사면 한 편에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이동을 할 수 있는 어도를 마련해 주기를 바란다.

 

9월 한 달 동안 행궁동 일원에서 열리는 ‘생태교통 수원2013’. 65만 명이 찾아올 것이라고 하는 생태교통 때, 많은 사람들이 수원천을 따라 걸을 것으로 보인다. 그럴 때 행여 이런 모습이 목격된다면, 자연하천이라는 수원천과 생태도시 수원의 명성에 누가 되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절에는 어마나 많은 사부대중이 살았던 것일까? 공양간에서 밥을 하기 위해 사용했다고 전하는 개태사 철확을 보면서, 어림짐작을 하려고 해보지만 이해가 가질 않는다. 논산시에 소재한 개태사는 고려 태조인 왕건이 세운 사찰로, 철확은 이곳 주방에서 사용했다고 전하는 철로 만든 대형 솥이다.

 

이 철확은 벙거지 모자를 뒤집어 놓은 모양으로, 지름이 약 2m에 둘레길이 6.28m, 높이 97이다. 조선시대에 절이 없어지면서 벌판에 방치된 채 있던 것을, 가뭄 때 솥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 비가 온다고 하여 여러 곳으로 옮겼다가, 일제강점기 때 서울에서 열린 박람회에 출품된 후 새로 건립한 지금의 개태사에서 보존하고 있다.

 

 

우주정에 얽힌 뜻은?

 

그러고 보니 개태사를 다녀온 지가 꽤 오래되었다. 가끔은 답사를 하고도 바로 글을 올리지 못하면, 이렇게 늦어질 수가 있다. 개태사에는 몇 기의 문화재가 전하고 있어, 그것들을 소개하다가 보니 철확의 소개가 늦어져 버렸다. 사실은 개태사를 찾아간 것도 철확 때문이었지만, 주객이 전도가 된 셈이다.

 

어쨌거나 문화재를 소개한다는 것은 순번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도 조금은 자위를 해본다. 개태사 철확은 경내 한편에 우주정이라는 전각을 세우고, 그 안에 보관을 하고 있다. 전각 안을 꽉 채우고 있는 철확을 보면서, 이 전각의 이름이 우주정이라는 것이 이해가 간다.

 

 

우주를 담을 만한 우물이라는 뜻인지? 그렇게 큰 철확을 보관하고 있다는 뜻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철확의 크기로 따진다면, 어찌 그 안에 우주인들 담을 수 없을 손가? 아마도 이 큰 철확에 우주를 담을 수 있는 수많은 사부대중들의 마음이 함께 했는가도 모르겠다.

 

초심을 지키는 것은, 문화재 답사의 즐거움

 

문화재를 만난다는 것은 늘 즐겁다. 그것은 나도 모르던 것을 하나씩 배워나간다는 생각 때문이다. 다 아는 것을 돌아보는 것과, 모르는 것을 하나씩 깨우치면서 돌아보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그래서인가 참 답사를 다니면서 못된 버릇 하나가 생겼다. 몇 번씩 찾아간 문화재도 안내판부터 찬찬히 읽어 내려가는 것이다. 한 마디로 아무 것도 모르는 양, 초심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함이다.

 

 

사실 초심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답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누가 하라고 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불이익을 당하는 것도 아니다. 하기에 초심을 잃어버린다면 시간 뺐기고, 물질 남아나지 않는 답사를 벌써 그만 두었을 것이다. 늘 새로운 것을 만나고, 늘 그것을 마음속에 담아두면서 길을 걸어야 제대로 답사를 할 수아 있다.

 

개태사 철확을 만났을 때도 그랬다. 개태사는 아마도 5회 이상은 찾아갔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대전에서 방송 일을 할 때부터 들리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확을 보는 순간 참으로 반가웠던 것은, 그 오랜 시간동안 여기저기 끌고 다녔음에도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깨어지고 많이 떨어져나가 온전한 모습을 아니라고 하지만, 그나마 남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솥 안에 동전 한 닢을 던져보다. 둔탁한 금속소리가 난다. 벌써 누군가 그곳에 동전과 지전을 던져 넣었다. 그 사람들은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나는 그저 마음속으로 천년만영 잘 견디고 있기를 빌어보았다. 다음에 또 이곳을 찾아왔을 때도, 지금 그모습 그대로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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