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명창 노경미가 불교 범패(梵唄) 음반 깨침의 소리’(신나라 뮤직)를 발표했다. 음반에는 범패 복청게’, ‘천수바라’, ‘도량게’, ‘다게’, ‘향수나열’, 그리고 사다라니바라등 총 11곡이 실려 있다. 모두 홋소리로 부른 범패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 서울시 지정 무형문화재 제21호 휘몰이잡가 이수자인 노경미는 경기소리꾼이다. 범패를 부르는 범패 소리꾼이 아니라 40년 넘는 세월 동안 민요와 잡가를 주업으로 해왔다. 그런데 그녀의 공연 무대에는 여타 경기 소리꾼들과는 다른 레퍼토리(연주곡목)가 늘 고정적으로 오른다. 하나는 범패이고, 하나는 휘몰이잡가다.

 

불교의 성음인 범패

 

범패(梵唄)는 불가의 성악을 말한다. 범패는 말 그대로 인도 바라문(婆羅門.브라만)의 소리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부처의 소리()를 의미한다. 범패는 가곡, 판소리와 함께 3대 성악곡으로 분류됐다. 홋소리, 짓소리, 화청으로 구분되며, 이 가운데 화청을 제외한 홋소리와 짓소리는 전문 범패승이 아니면 좀처럼 부르기 힘든 소리라서 범패승조차도 웬만하면 축약해 부르고 끝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노경미는 화청에 더해 홋소리 범패를 공연 무대에서 선보여 왔다.

 

그녀의 범패가 처음부터 대중들의 눈과 귀를 잡아맨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의 경기소리를 듣고자 했던 많은 청중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세속과 소통하며 대중화된 화청이나 소릿조 회심곡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원곡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한테 원곡은 때론 낯섦 그 자체였다.

 

하지만 노경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원곡이 갖는 가치와 중요성을 관객들한테 전했고, 이런 노력이 결국 관객의 마음을 열게 했다. 그녀가 부르는 범패는 종묘제례악, 가곡, 판소리 등과 함께 영산재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원형 예술 보존과 창조적 계승에 대한 노경미의 남다른 열정과 고집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경기소리꾼의 특징이 살아있어

 

노경미의 범패는 종교적인 원숙미, 불교적 신비감에 더해 수십 년 이상 지켜온 경기소리꾼만이 지닌 특유의 시김새에서 나오는 음악적 정갈함과 단아함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런 이유로 어쩌면 범패승들이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음악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래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범패라고 할 수 있다.

 

노경미의 불교음악이 여타 불교음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이유 중 하나는 그녀의 음악성에 더해 국보급 반주자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점 때문이다.

 

노경미는 민요나 잡가와 달리 불교음악 연주만큼은 최고의 기량을 가진 연주자만을 고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원형을 제대로 알고 있는 연주자들의 소리에 그녀의 목소리를 태울 때 묘음(妙音)이 완성되고 그것이 사바(娑婆)의 대중들을 움직일 수 있다 믿고 있으며, 이러한 음악철학이 그녀의 불교음악에 내재해 있다.

 

이번 음반 작업에서도 그녀의 이 같은 음악 철학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대금과 피리는 대금산조 인간문화재인 이생강 명인과 그의 아들이자 대금산조 전수교육조교인 이광훈이, 북과 태징은 김포 승가대학교 교수이자 쌍암사 주지인 성마 스님이 각각 연주했다.

 

또한, 장고 및 꽹과리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휘몰이잡가 인간문화재인 박상옥 명창이 반주했다. 이 밖에도 태평소에 김필홍, 장고에 이관웅, 가야금 오주영, 해금 신현석, 건반 김쥬리 등 중견급 명인들이 참여했다.

 

 

노경미가 소리꾼이 된 배경은 부친의 시조창이나 상엿소리, 할머니의 민요 가락 등을 들으며 자란 환경이 크다. 그녀는 이미 나이 20대에 대중가요 음반을 취입할 정도로 음악에 대한 열정이 뜨거웠다.

 

20대 중반부터 김경희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웠고 박상옥 명창에게는 휘몰이잡가를 배워 이수자가 되었으며 이은주 명창에게는 경기12좌창을 사사해 경기민요 이수자로 활동하고 있다. 실기뿐 아니라 학구열도 높아 늦은 나이에 대학원을 졸업하기도 했다.

 

노경미의 소리는 언제 들어도 높고 시원한 발성이 인상적이며 긴 호흡으로 다이내믹을 살려 나가는 역동성이 가히 일품이다. 25회 전주대사습놀이 민요부 장원, 전국국악경연대회 대구국악제 종합 명인부 대상, 그리고 그의 이름을 걸고 꾸준히 개최해온 개인발표회 등을 통해 그의 공력을 느낄 수 있다.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인 경기민요는 서울과 경기도지방에서 전승되는 민요이지만, 여기서의 경기민요는 경기긴잡가를 가리킨다. 잡가는 가곡이나 가사와 같은 정가와 대비되는 속가(俗歌)라는 뜻으로 쓰였으나, 오늘날에는 속가 중에서도 긴 형식의 노래를 앉아서 부르는 것을 잡가라 한다.

 

긴잡가라 함은 경기잡가 가운데 느린 장단으로 된 12잡가를 말한다. 경기긴잡가는 유산가, 적벽가, 제비가, 소춘향가, 선유가, 집장가, 형장가, 평양가, 십장가, 출인가, 방물가, 달거리 등 12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산가는 산천경치를 노래한 것이고, 소춘향가, 집장가, 십장가, 형장가는 판소리 춘향가의 내용을 따서 사설을 지은 것이다.

 

이와 같이 판소리의 한 대목을 끌어 낸 경기긴잡가 중 적벽가는 판소리 적벽가와 비슷하고, 제비가는 판소리 흥보가와 내용이 통하지만 이들 잡가가 판소리 곡조로 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일부 사설을 따왔을 뿐이다. 평양가, 출인가, 방물가, 달거리는 서민적인 인정, 사랑 등을 노래하고 있다.

 

경기긴잡가의 장단은 흔히 느린 6박 도드리장단이나, 좀 느린 3박 세마치장단으로 된 경우가 많다. 선율은 서도소리제인 수심가토리와 경기소리제인 경토리가 뒤섞인 특이한 음조로 되어 있다. 경기긴잡가의 특징은 경기도 특유의 율조로, 대개는 서정적인 긴사설로 구성되었으며 비교적 조용하고 은근하게 서민들의 애환을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 시대에 우리가 흔히 경기민요라 하는 것은, 긴잡가 외에 경기도 지방에서 전해지는 수많은 민요들을 총 망라하여 경기민요라고 지칭하고 있다. 이러한 경기민요를 감칠맛 나게 표현한 음반이 출시가 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경기민요와 화려한 관현악의 어울림 시도

 

경기민요 소리꾼 최영자씨가 소리와 관현악이 어우러진 경기민요 음반 관현악과 함께 하는 경기소리를 신나라뮤직에서 17일 출반했다. 그동안 경기소리의 멋과 우수성을 널리 알려온 소리꾼 최영자씨는,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로 명창 이은주, 이춘희 선생에게 사사했다.

 

이번에 새로 출반한 음반은 특별한 재주나 기교가 없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부를 수 있는 소박한 경기민요를 화려한 국악 관현악 반주를 통하여 감칠맛 나는 소리로 재탄생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특히 풍부한 음향을 위해 33인이 동원된 국악 관현악단과 호흡을 맞춘 특색 있는 연출은, 경기민요를 민중의 삶 속으로 파고드는 대중음악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민요를 부르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해온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음반 관현악과 함께 하는 경기소리1장의 CD로 구성돼 있으며, 경기소리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금강산타령’, ‘노랫가락’, ‘청춘가’, ‘궁초댕기’, ‘뱃노래’, ‘잦은 뱃노래등 총 14곡이 수록돼 있다.

 

 

인고의 고통으로 점철 된 지나 온 세월

 

우리 소리에 내재하는 흥과 멋과 한을 충실히 표현해온 최영자씨의 목소리와, 관현악의 웅장한 음향이 최적의 조화를 이룬 경기소리라는 점에서 출반부터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소리꾼 최영자씨는 이번 음반 발표를 계기로 소리꾼으로 사는 삶을 숙명으로 여기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녀의 지난 이야기를 들어보면 소리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지난 세월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소리를 배우면서 고통을 엄청 받았어요. 소리를 늦게도 시작했지만 소리가 될 만하니까 신병이 왔어요. 20여 년 전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하는데,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면 척추가 아파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였어요. 병원을 찾아가도 의사는 아무런 병도 없다고 하고, 고통만 더 심해지고요. 나중에는 정말 죽을 것 같더라고요

 

 

설사를 3년이나 계속하고 제대로 거동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남편에게 제발 나 좀 죽여 달라.’고 울면서 매달리기도 했다는 것. 그러다가 내림은 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북한산 문수사 등을 찾아가 3천배를 올리기 시작했단다. 3천배를 하면서도 제발 나를 좀 데리고 가달라고 애원을 했다고.

 

그렇게 10년이라는 시간을 고통을 참아가면서 살아왔다. 남들에게 이야기조차 할 수 없는 나날이 계속되고, 소리를 해도 기운이 없어 제대로 성음을 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저요, 무대에 올라가서 가사도 까먹고는 했어요. 그것도 큰 무대에서요. 선생님과 선배들의 나무람은 그렇다 치고라도, 후배들까지 무시를 하는데 견딜 수가 없었죠. 그렇게 고통 속에 살다가 찾아 간 곳이 김혜란 선생님이예요. 거기 가서 서울굿을 선생님께 배우면서 조금씩 소리가 나아지기 시작한 것이죠.”

 

최영자씨는 삶의 고통이 없었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리를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세상에서 피하고 싶은 현실, 그리고 남들에게 말 못할 고통. 하지만 소리가 있어 함께 걸어갈 수 있었다고 토로한다.

 

 

앞으로 소리공양을 하고 살아갈 것

 

김혜란 선생님께 제가 이제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 음반을 내야겠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선생님께서 녹음실에 와서 소리를 밖으로 끄집어내도록 도와주시기도 하고요. 선생님께는 지금도 공부를 하러 다니고 있어요. 관현악에 맞추어 소리를 하다가 보니 민요의 굴곡진 맛을 제대로 표현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제가 마음속에 서원을 한 것은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이죠.”

 

무대에 오르면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고, 소리를 하면 굿판처럼 신명이 난단다. 그런 만큼 그녀 자신의 소리가 단 한 사람일지라도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소리꾼의 진정한 행복이라고 밝혔다. 한 사람의 소리꾼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긴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이제 진정한 소리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고, 그 소리로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기를 바라고 있다.

 

제 음반을 절 종무소에 갖다드리고, 그것을 팔아 기금으로 사용을 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서원도 했기 때문에, 그 약속은 꼭 지키고 싶어요. 그동안 남들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아픈 과거를 털어놓으니 속이 다 후련하네요.”

 

민요는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는 노래이다. 먼저 우리는 민요 이전에 속요(俗謠)에 관해서 알아보아야 한다. 민요는 어느 소리가 정형화된 가사와 음률을 갖고 있는 것이지만, 그 이전의 소리는 정형화 되지 않은 소리이다. 이것은 창자의 기예력에 따라 사설과 음률이 항상 변할 수 있는 소리의 형태를 말한다.

 

속요의 형태는 다양하다. 예전 소리들은 주로 일노래 중심이었다. 우리 속요의 대다수가 작업과 무관하지가 않은 것은, 그만큼 민초들의 삶속에 녹아있던 응어리진 소리가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농사를 지으면서 부르던 농사소리, 밭을 매면서 하는 밭 매는 소리, 여인네들이 김쌈을 하거나 집안일을 하면서 부르는 시집살이 등. 이런 많은 류의 소리들이 모두 일노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전통 민요를 재해석 한다

 

여성 민요그룹 아리수. 아리수는 아리랑+나무()=아리랑 나무를 뜻한다. 전통 민요에 뿌리를 내리고, 지금 이 시대의 민요를 추구하며 국악이 대중음악의 한 축이기를 희망한다. 수원 화성박물관에 기반을 두고 토요무대에서 만날 수 있었던 아리수는 전통 민요의 재해석을 바탕으로 민요의 현대화에 앞장을 서 온 민요그룹이다.

 

2005년도에 창립을 한 아리수는 그동안 3기 단원들이 활동을 하고 있다. 100회 이상의 무대공연에서 이들이 보여 준 민요에 대한 열정과 끼는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칭찬을 하고 있다. 아리수는 대부분이 20대 젊은 소리꾼들이지만 적어도 15년 이상 경기소리, 남도소리를 공부한 전공자들이다. 평론가들에게 ‘21세기 민요 창조그룹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주목받고 있다.

 

 

이런 여성 민요그룹 아리수가 3집 정규음반인 여성, 아리랑 꽃으로 흩날리다를 발매했다. 이 음반에는 전통 소리를 바탕으로 여성을 주제로 한 노래들이 수록되어 있다. 전통 민요를 재해석하여 1, 2집을 발표했던 아리수는 3집 음반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하였다. 음반을 제작한 아리수 왕규식 대표는 시즌의 첫 번째 이야기는 여성이고, 두 번째 이야기는 일(노동), 세 번째는 자연(생태)을 담은 앨범을 일 년에 하나씩 발표하여 시즌3을 완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닮아 내

 

이번 음반에는 모두 7곡이 수록되어 있다. 이 곡들을 살펴보면 그 형식과 내용이 다양하다. 타이틀곡이자 첫 곡인 여성 비나리는 전통 비나리 형식을 빌려 고대부터 현대까지 여성의 삶을 살펴보며 기원을 노래했다. 전통 타악 장단에 기타, 건반 등을 배치하여 풍성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 창작판소리 나아줌씨 이야기는 우리 사회 아줌마의 일상과 애환을 담았다. 다른 곡들도 여성의 세대별 이야기를 전통 민요와 창작곡으로 노래했다. 10, 20대는 멋진 여자’, 아이를 낳은 어머니는 자장가 형식의 아름다운 선물’, 40대 이상은 사랑은 나의 힘에 담았고, 옛 여인의 사랑을 창부타령으로 노래했다. 또 하나 주목할 곡은 엉겅퀴야이다. 이 노래는 1984년 창립하여 활동했던 민요연구회의 민영 시인의 시 엉겅퀴 꽃이다.

 

 

엉겅퀴야 엉겅퀴야 철원평야 엉겅퀴야

난리통에 서방잃고 홀로사는 엉겅퀴야

갈퀴손에 호미잡고 머리위에 수건쓰고

콩밭머리 주저앉아 부르느니 님의이름

엉겅퀴야 엉겅퀴야 한탄강변 엉겅퀴야

나를 두고 어디갔소 쑥국소리 목이메네

 

민영 시 엉겅퀴 꽃의 사설이다. 흡사 과거 시집살이와 같은 음구로 되어있는 이 시는 그저 부르지도 못한 임에 대한 절절한 사연이 담겨있다. 아리수가 민요연구회의 맥을 이어서 활동한다고 표방하고 있는 만큼, 이 곡을 재편곡하여 수록한 것은 현대 민요의 계보를 이어간다는 뜻이다. 이번 앨범은 여성의 역사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다양한 음악 장르로 꿈과 희망을 담아낸 셈이다.

 

이번에 발매가 된 여성 민요그룹 아리수의 제3집인 여성, 아리랑 꽃으로 흩날리다에 큰 기대를 거는 것은, 이들이 그동안 무대에 올렸던 많은 작품들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오늘 민영 시인의 시를 노래한 엉겅퀴야가 듣고 싶은 것도, 암울한 이 시대에 더 깊이 있는 소리 한 자락이 그리워서이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면 그리운 어머니

한평생을 자식 위해 살다 가신

우리 어머니

바다와 같은 사랑 제게 주시고

온 몸이 부서져라 일만 하시다

이 자식 효도 한 번 못 받으시고

밤하늘 별이 되어 저를 비추네

어머니 아~ 어머니 보고 싶은

우리 어머니

 

가수 이채영. 올 해 나이 47세에 음반을 냈다. 음반에는 시인 같은 인생, 허수아비 사랑, 보고 싶은 어머니, 토요일 오후 등 4곡이 노래와 MR로 수록되어 있다. 이름이 생소한 이채영이라는 가수는 과연 누구일까? 올 5월에 늦깎이로 첫 음반을 냈다는 그녀. 재능봉사로 노래를 하고 있는 가수 이채영에게 깊은 인생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처녀 때의 꿈인 가수를 접고 호주로

 

“아마 저는 어머니의 재주를 이어받은 것 같아요. 어머니께서 옛 노래를 잘하셨다고 하는데, 저도 어릴 적부터 노래를 좋아 했죠. 처녀 때는 가수가 될 꿈도 키워보았지만, 결혼을 하고 호주 시드니로 이주를 했어요. 그곳에서도 시드니 가요제에 나가 수상을 하기도 했고, 노래봉사도 했죠. 그러다가 2002년에 한국으로 아이들과 함께 나왔는데, 다시 시드니로 돌아가지 않고, 시민권을 포기했어요.”

 

그 때부터 혼자의 몸으로 아들 2명과 막내인 딸을 데리고 가장 노릇을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사업을 하기도 했지만, 세상 물정을 잘 모르다가 보니 가까운 지인에게 속아 많은 것을 잃었다고.

 

 

“아마 그 사람도 지금은 속이 편치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별별 일을 다 해 보았죠. 어차피 숨길 것도 없잖아요. 내가 누군지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는데, 무엇을 숨기겠어요. 그러나 아직 남을 아프게 한 적은 없어요. 그러면 잘 산 것이 아닌가요? 저는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쳐요. 공부 잘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인성이라고요. 사람답게 살라는 말이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그래서 수원에 와서 세류동에 거주하면서 안 해 본 일이 없단다. 전에는 잠시나마 세류지킴이 예능국장을 맡아도 보았고, 그 뒤 재능봉사를 하고 다닌다고 한다.  아마도 요양원을 찾아다니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기 때문인가 보다.

 

“저는 어머니가 늘 그리워요. 그래서 제 음반에도 ‘보고 싶은 어머니’라는 곡이 들어있어요. 어머니께서 요양원에서 돌아 가셨어요. 제가 갈비집을 하다가 이리저리 다 날리고 너무 힘들어서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셨는데, 건강이 많이 악화되셨어요. 제대로 찾아뵙지도 못했는데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더 깊은가 봐요. 지금도 요양원에 재능봉사를 하러 찾아가서 어르신들을 보면 가슴이 뭉클한 것이 많이 아파와요.”

 

1년이면 보훈처 등에 20회 정도 봉사를 다니고 있지만, 생활을 해야 하다 보니 더 자주는 못 간다는 것이다. 그런 것조차 미안하다고 말을 할 만큼 심성이 착한 그녀이다. 앞으로도 재능기부로 봉사를 계속하겠다는 그녀는, 봉사를 하고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시인 같은 인생을 살고픈 여인 이채영

 

속속들이 말 못하는 이 내 사연을

저 구름이 알아줄까 바람이 알아줄까

지나간 세월이 야속하지만

미련도 후회도 없을 것이다

막아보고 잡아 봐도 세월만 흐르네

남은 인생 사랑도 주고 정도 주다가

저 바람이 알려주는 길을 가면서

시인처럼 바람처럼 살자구

 

음반에 수록되어 있는 ‘시인 같은 인생’이란 노래의 가사이다. 어쩌면 이 노래는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 하는 노랫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모든 아픔을 다 훌훌 털어버리고 재능기부로 남은여생을 보내고 싶어 하는 늦깎이 가수 이채영.

 

 

“지금은 나아졌지만 처음에 요양원에 노래봉사를 갔을 때는 눈물이 나서 노래를 제대로 부르지도 못했어요. 어머니 생각이 나서요. 그래서 앞으로도 딴 곳은 몰라도 요양원 봉사는 계속하려구요.”

 

7월 24일(수) 수원시 팔달구 월드컵 경기장 내 컨벤션 웨딩홀에서 열린 장애인들에게 삼계탕을 대접하는 자리에서 만난 가수 이채영은 무대 위에서도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그곳에 어머니를 그릴 수 있는 많은 어르신들이 함께 하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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