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뉴스를 보니 국보 제147호인 울주 ‘천전리각석’에 낙서가 발견되었다고 난리들이다. 낙서를 한 추정시기가 지난 3월에서 7월 사이로 추정하고 있다는데, 벌써 한참이나 지난 다음에야 관할 지자체에서 포상금 1,000만원을 걸고 낙서범을 찾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각석 주변에 CCTV 있는데도 불구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 녹화도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울산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산210에 소재하는 ‘울주 천전리각석’은 태화강 줄기인 내곡천 중류 기슭 암벽에 새겨진 그림과 글씨이다. 위와 아래 2단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내용이 다른 기법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조각이 가득하다.

사진출처 / 울산포커스의 사진을 인용했습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것을 매번 말로만
 

국보를 비롯한 각종 문화재에 대한 낙서가 어디 어제 오늘 일이던가? 수도 없이 많은 문화재들이 낙서와 훼손에 멍이 들고 있다. 그런데도 관계당국은 매번 가중처벌이니 무엇이니 해대면서, 이런 일이 왜 자꾸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문화재청에서는 숭례문 화재 후 재난 예방 및 대응체계강화를 위해 목조문화재 방재시설 구축 예산을 증액하였으며, 중요목조문화재 150건에 대한 안전경비인력을 558명으로 증원 배치했다고 한다. 또한 '문화재보호법' 등을 개정하여 문화재 훼손범 가중처벌 규정과 문화재별 화재대응 지침서를 마련하였다고 하는데, 어째서 국보인 천전리각서에는 CCTV가 멀고, 녹화도 안된 것인지 모르겠다. 이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현재까지 밝혀진 것은 어른 가슴 높이에 돌멩이로 긁은 듯한 방법으로 ‘이상현’이라고 적혀있다는 것이다. 경찰에서도 범인을 잡기 위해 지난 8일에 수사에 착수를 했다고 한다. 도대체 이렇게 낙서를 하는 인간들을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수백 년에서 천년 이상을 지켜온 소중한 문화재이다.


국보인 김제 금산사 미륵전에 적힌 낙서들. 파고 쓰고 별 짓을 다했다. 국부는 마음대로 보수를 할 수도 없다. 밑에 '문화재가 아파해요'라는 글이 속이 아리다.(2006, 5, 26 답사자료)


낙서나 훼손이 되면, 그것은 다시 원상태로 되돌릴 수가 없다. 복원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과거의 장인의 혼이 깃들어 있을 것인가? 단지 외형적인 모습만 흉내를 낼 뿐이란 생각이다. 진정한 복원이란 장인의 혼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수도 없이 문화재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쇠귀에 경 읽기일까?

어느 누구도 그런 심각한 문화재 훼손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하지 않은 듯하다. 그런 무관심이 불러온 결과가 바로 이런 것이다. 오래 전에 블로그에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때도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사람들. 그들도 방관자라는 생각이다. 그 글의 일부를 다시 보자.

부끄러운 낙서 천국 대한민국

(전략)김제 금산사의 미륵전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그런데 그 벽을 보면 정말 가관이다. 남녀 두 사람이 이름을 적어 놓고 영원히 사랑을 하자고 부언을 달았는가 하면 언제 자신이 다녀갔다고도 파 놓았다. 어느 것은 문화재를 일부러 훼손시키기 위한 문구도 있다. 종교적인 것이 있는가 하면 그저 파 놓고 간 것도 있다. 도대체 낙서를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면 저희 집으로 가서 벽에 대고 마구 그리거나 마룻바닥 혹은 거실에라도 파 놓던지 왜 꼭 문화재나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에다가 낙서를 하는 것일까?

(중략)전국 어디를 가나 여기저기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낙서는 그 도를 넘고 있다. 문화재고 머고 가리지를 않는다. 이런 낙서의 버릇은 무속적 사고에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과거 사람들이 많은 질병으로 목숨을 잃거나, 재앙으로 인해 사고가 잦을 때는 커다란 암석이나 단단한 쇠붙이 등에 이름을 적어 놓으면 그 바위나 쇠붙이처럼 오래 간다고 하여 명산의 바위에다 이름을 새겼다고 한다. 그런 후에는 많은 치성을 드렸겠지만 그런 곳에 이름을 적고 오래 살았는지, 아니면 출새를 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자신의 이름을 그 곳에 적고 출세를 하고 싶다거나 사랑을 오래 지속하고 싶다거나 하는 발원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아마 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한마디씩 안 좋은 소리를 하고 지나간다면 오히려 좋아지라고 한 짓이 더 나빠질 것만 같다. 우리는 흔히 ‘입 살이 보살’이라는 속담에서 그런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보물인 완주 화암사의 우화루 벽에 가득한 낙서. 어른의 팔을 뻗쳐도 닫지 않는 높이에도 낙서가 되어있다. 도대체 어떻게 그 높이까지 낙서를 한 것일까?(2008, 3, 27 자료)

사람들의 입에는 살이 있다는 소리다. 악담을 들으면 그만큼 자신에게 해롭다는 사실이다. 낙서를 한 것을 보고 한 마디씩 모두 악한 말을 하고 간다면 그 자신들에게 결코 좋은 일이 생길리가 없다. 욕을 많이 먹으면 명이 길어진다고 하는데 그도 괜한 소리다. 지지리 궁상을 떨면서 명만 길어지면 무엇을 할 것인가?

이제는 제발 어디를 가나 버릇처럼 하는 낙서에서 좀 벗어나자. 어느 아는 분이 이런 소리를 하셨다. 낙서를 아무 곳에나 하는 사람들은 세상살이가 낙서판만큼이나 편하지가 않고 시끄러워진다고 말이다. 이젠 해외에까지 낙서를 하는 짓거리가 비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말로는 문화민족이니 어쩌니 운운하면서 속내는 비문화적인 일을 일삼는 몇몇의 사람들 때문에 정말 문화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자숙하였으면 좋겠다.

내 나라의 문화를 내가 지키지 않으면 과연 누가 지켜낼 것인가? 아름다운 내 강산을 낙서투성이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준다면야 후에 무슨 지탄을 받을 것인가? 낯부끄러운 짓일랑 이제 그만하고 있는 그대로 자연과 문화를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져보자.(끝)

울산 울주군 두서면 구량리 860에 소재한 천연기념물 제64호인 울주 구량리 은행나무는 아픔의 나무다. 이 은행나무는 수령이 550년 정도가 되었으며, 조선 초기에 이지대 선생이 심은 나무라고 전해진다. 이지대 선생은 고려 말기의 정치인인 익재 이제현 선생의 4세손이다. 선생은 이 나무를 한양에서 갖고 와 연못가에 심었다고 한다.

현재 나무 앞에는 한성부 판윤인 죽은 이공의 유허비가 서 있다. 현재는 연못은 사라지고, 주변이 논밭으로 변해버렸다. 이 나무는 마을의 정자목으로 밑 부분의 한쪽이 썩어있다. 구량리 은행나무의 둘레는 8.4m 정도이며, 높이는 22.5m이다. 이 나무는 2003년 태풍 매미 때 부러져 나무의 한쪽이 사라져 버렸다.


한성판윤을 지낸 이지대 선생

이지대 선생은 조선 태조 3년인 1394년에 경상도 수군만호로 있을 때, 왜구가 탄 배를 붙잡았다. 그 공으로 인해 한성판윤까지 벼슬이 올랐다. 그러나 1452년 수양대군이 김종서 황보인 등을 죽이고 안평대군까지 강화로 유배를 보내자,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구량리 은행나무가 있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7번 국도에서 나무가 서 있는 구량리까지 찾아가는 길은 버거웠다. 그러나 하나의 천연기념물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걸음을 재촉한다. 마을 옆 논 한가운데 서 있는 은행나무는 한편을 지지대로 받쳐 놓았다. 아마 그 쪽이 매미 때 훼손이 된 곳인가 보다.



은행나무의 위용에 눌리다.

은행나무 한 그루가 주는 감동을 받아 본 적이 있는가? 나무를 보는 순간 나에게 밀려 온 것은 바로 위엄이었다. 나무의 크기도 그렇거니와 한쪽 편이 잘려나갔음에도 그 위용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감히 이 자연 앞에서 누가 함부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나무 앞에 선 한성판윤 이지대 선생의 유허비도 색다르다.

구량리 은행나무를 보면서 자연은 스스로 치유를 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태풍 매미에 상처를 입고서도 푸른 잎이 무성히 달려있다. 그런 아름다움이 더욱 가슴을 뛰게 한다. 스스로 치유를 하고 550년 세월을 버텨 온 구량리 은행나무.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참으로 인간이 하찮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나무에 대한 또 다른 전설은 없었을까? 마을 주민들에게 은행나무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태풍 매미에게 한편을 훼손당한 구량리 은행나무

한성판윤 이공 유허비와 제단석

아들을 점지하는 은행나무

“어르신 저 은행나무를 마을에서 위하지는 않나요?”
“왜요. 마을에서는 저 나무를 신성시 하죠”“저 나무에 전설은 없나요?”
“저 은행나무를 훼손하면 그 사람은 해를 입어요. 그래서 저 은행나무 주변에는 사람들이 잘 들어가지 않아요”
“또 다른 전설은 없나요?”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 저 은행나무에 가서 아들을 낳는다고 하죠”

아들을 점지하는 구량리 은행나무. 태풍에 가지가 찢어지는 아픔을 스스로 치유를 한 나무에는, 많은 사연이 전하고 있다. 천연기념물이 있다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 곳에는 항상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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