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이 되면 주말이 바빠진다. 특별히 중요한 취재거리가 없으면 산행을 하기 때문이다. 산을 오르는 가장 큰 이유는 몸에 정말 영약이라는 산삼을 캐는 일이겠지만, 꼭 산삼이 아니라고 해고 자연에서 얻는 것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영지버섯이며, 장수버섯 그리고 더덕 등도 캘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는 참 열심히 산을 다녔다. 그 덕분에 괘 많은 양의 산삼을 캘 수 있었다. 산삼이라는 것이 그렇게 눈에 잘 보이느냐고 사람들이 묻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눈에 잘 띠는 데야 무엇이라고 설명을 하겠는가? 그저 전생에 남들에게 조금 좋은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스스로에게 자문을 한다.

 

먹지 않는 산삼 왜 힘들여 캐는데?

 

이렇게 질문을 한다면 딱히 할 말이 없다. 그저 주변에 몸이 아픈 사람들이 많다가보니, 그들에게 한 뿌리씩을 나누어 준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도 좋기 때문이다. 이제 조금 있으면 산삼이 눈에 띨 계절이다. 이 계절이 되면 주말에 괜히 마음이 바빠진다. 산으로 오르고 싶기 때문이다.

 

산삼이 영약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런 귀한 산삼을 사람들에게 그냥 준다고 하면 설마하는 눈으로 바라본다. 가져가라고 해도 선뜻 받지를 않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세상이 팍팍해진 것일까? 아니면 그 뒤에 무슨 조건이라도 있을까봐 그런 것인지. 그럴 때는 괜히 내 마음까지 즐겁지가 않다.

 

 

하긴 남들이 생각해도 이해하기가 쉽지가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렇게 힘들여 산행을 해서 캐는 산삼이 아니던가? 남들처럼 등산로로 다니는 것도 아니다. 계곡을 타야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길도 없다. 때에 따라서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렇게 채취한 산삼을 정작 본인이 먹지 않고 남을 준다고 하니, 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올해도 다를 바 없이 산행을

 

생각하기 나름이다. 산삼을 캐서 그것이 내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줄 수 있는 것이다. 남의 것을 내가 대신 캐서 전해준다고 마음을 먹으면, 하나도 아깝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남의 것을 내가 갖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나쁜 마음이란 생각이다.

 

세상의 논리란 참 간단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복잡하게 머리 굴리지 말고, 필요하면 본인이 산을 올라가 캐면 된다. 산을 탈 수가 없으면 조용히 나와 운이 맞기를 기다리면 된다. 조바심을 가질 것도 없고, 재촉을 할 필요도 없다. 사람이 욕심이 과하다보면 스스로 망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욕심을 버리고 오르는 산

 

산이 좋아 산을 오른다. 그리고 그곳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은 역시 내 몸이다. 몸이 스스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좋은 환경에서 계곡을 흐르는 물 한 모금으로도 장이 청소가 되는 듯하다. 어찌 이런 즐거움을 마다할 것인가?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산을 오르기에 충분하다.

 

산에 오르기 전에 미리 줄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딱 필요한 양만을 찾아 나선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날은 딱 필요한 만큼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산삼이 영물이라고 하는 것일까? 그런데 조금 더 욕심을 내면 단 한 뿌리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굳이 많은 것을 욕심내지는 않는다.

 

이제 산행의 계절이 왔다. 올해는 또 누가 행운을 잡을 것인지. 그리고 누가 필요한 것인지를 살펴야 할 때이다. 남을 위해서 오르는 산행이지만, 그것은 곧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산행에서 더 많은 건강을 찾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충청남도 부여군 내산면 저동리 계향산 산33-5에 소재한 미암사에는. 거대 와불과 함께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71호인 부여 저동리 쌀바위가 소재한다. 쌀 바위는 산중턱에 있는 높이 30m의 거대한 자연석 바위를 말하는 것으로, 암반의 표면이 하얗다. 이 쌀바위가 있어 절 이름도 미암사(米巖寺)로 부른 듯하다.

 

미암사를 들린 것이 벌써 몇 년 전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많이 변해 있겠지만, 그 당시 쌀바위 보다도 절 경내에 누워있는 와불에 더 놀랐다. 얼마나 와불이 컸으면, 그 좌대 아래에 법당을 조성할 수 있었을까?

 

 

세계최대 와불을 조성한 미암사

 

와불은 흔히 열반상이라고 한다. 부처님이 열반을 하실 때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화신불 8불 중에 하나인 와불은 부처님이 입멸하는 상이기도 하다. 부처님이 80년간 중생을 교화하고 인연이 다하여, 중인도 구시나가라의 사라쌍수에서 하루 낮 하루 밤을 대열반경의 설법을 마치셨다.

 

대열반경을 마치신 후 머리는 북쪽으로 얼굴은 서쪽으로 향하고, 오른쪽 옆구리로 누워 입멸을 하셨다. 미암사의 와불은 그 형상을 표현한 것으로 길이 27m에 높이 6m, 6m나 되는 거대 와불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발바닥에는 전륜과 음자 1만 팔천여자를 새겼다고 하는데, 이 와불을 조성하는 동안 동지섣달인데도 개나리꽃들이 노랗게 피어있었다고 한다.

 

 

쌀바위에 얽힌 전설

 

백제의 역사와 함께 유원한 내력을 지닌 미암사쌀바위는 많은 전설과 일화를 가지고 있다. 일명 음겨석, 촛대바위, 부처바위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며 그 형태를 비유하여 붙여진 듯하다. 미암사 경내에 높다랗게 솟아있는 쌀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에 한 노파가 대를 이을 손자를 얻기 위하여, 절에 찾아와 식음을 잊고 불공을 드렸다. 오직 손자가 잘 되기만을 바란 노파가 지성으로 불공을 드리고 있자니, 비몽사몽간에 관세음보살이 현몽을 하였다. 관세음보살은 노파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면서, 호리병에서 쌀 세 톨을 꺼내어 바위에 심었다. 그리고 말하기를

 

이 바위에서 하루에 세끼 먹을 쌀이 나올 것이니, 아침과 점심, 저녁을 지을 때 이 쌀을 가져다 짓도록 하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노파서 놀라 꿈에서 깨어보니 바위에서 쌀이 나오고, 그 쌀로 밥을 지어 손자에게 먹일 수 있어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욕심 많은 노파가 더 많은 쌀을 얻기 위해 부지깽이로 구멍을 후벼 팠더니, 쌀은 나오지 않고 핏물이 흘러 주변이 핏빛으로 물들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전설은 전국에 산재해 나타나는 쌀바위의 전설과 공통적인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다만 그 행위를 한 인물이 다를 뿐이다. 금강산 화암사 입구에 있는 높다랗게 솟은 봉우리를 쌀바위라 하는데, 이곳에도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미암사는 노파가, 화암사는 스님이란 존재가 다를 뿐이다.

 

이러한 쌀바위에 대한 전설은 인간의 욕심에 대해 경계를 하라고 교훈을 주는 것이다. 인간들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하고, 온전한 생활을 하라는 쌀바위의 전설.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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