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천에 걸린 남천교가 허름한 옛 모습을 버리고 새롭게 태어났다. 차량들이 통행할 수 있는 다리 한편에, 커다란 팔작지붕의 정자를 올려놓아 새롭게 조성을 한 것이다. 총 연장 82.5m의 길이에 왕복 4차선으로 조성을 한 남천교. 그 다리 위에 지어진 정자는 멀리서보면 마치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무지개다리(홍예교)로 조성한 남천교는 동서학동과 교동을 잇는 전주천에 걸린 다리다. 이 다리는 한옥마을의 관문으로 앞으로 전주의 새 명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홍예교로 조성한 남천교는 가운데로 전주천이 흐르고, 양편으로는 산책로가 나 있다.

자연천으로 조성한 전주천. 남천교 위에서 바라본 정경이다.

 

누각을 떠받들고 있는 남천교는 길이 82.5m에 폭 25m 크기로, 옛 오룡홍교의 모습을 담은 전통성과 한옥마을 초입의 관문성, 조망성, 공간 효율성을 반영한 3경간 아치교량 구조로 가설했다. 중앙으로는 전주천이 흐르고, 양편으로는 전주천을 걸을 수 있는 산책로를 내어놓았다. 가을이 되면 전주천 주변을 가득채우는 억새와 함께 더욱 아름다운 모습을 보일 듯하다.

 

남천교 위에 자리한 정자는 지난해 10월초 12억6천만 원을 들여 길이 27.5m에 폭 4.8m, 높이 6.53m 규모에 팔작지붕 형태로 건립되었다. 누각에 사용한 기둥과 지붕, 석가래 등 모든 재료는 국내산 육송을 사용했다.

 

남천교 위에 조성한 정자. 길이 27.5m나 되는 웅장한 정자이다.

팔작지붕으로 조성한 정자는 기둥과 지붕, 석가래 등 모든 재료는 국내산 육송을 사용했다.

 

옛 남천교는 한국전쟁 이후인 1957년 12월 전주천 상류에 준공된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교량으로, 완산구 교동~서학동은 물론 인근 임실, 순창, 남원 등지로 오가는 가교로 자리해왔다. 그러나 가설된 지 50여년이 지나면서 낡고 오래돼 최근 한옥마을 일대 관광객과 주민, 차량 통행이 날로 늘어나자 이를 철거하고 새로운 교량의 건설에 나섰던 것이다.

 

4일 오후, 갑자기 무더워진 날씨에 사람들도 늘어지고 있는데, 남천교 아래에는 일가족인 듯한 사람들이 전주천에서 열심히 무엇인가를 잡고 있다. 자연천으로 깨끗하게 조성한 전주천에서 올갱이를 잡고 있다고 한다. 맑은 전주천과 남천교, 이제 또 다른 전주의 명소로 자리를 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남천교 밑을 흐르는 전주천에서 가족들이 올갱이를 잡고 있다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에 소재한 외암리 민속마을은,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자료 제236호로 지정이 되어 있다. 그리고 마을 안에는 충청지방의 양반집과 초가가 한데 어우러져, 우리의 기옥구조나 실생활 등을 볼 수 있는 전통의 마을이다. 조선조 경종 3년인 1723년에 이간 선생이 지은 <외암기>에는 마을 이름을 '외암'이라 기록한 사실이 있어, 외암의 명칭이 이때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외암리 민속마을은 우리나라에서 집단으로 한 마을이 중요민속자료로 정해진 몇 곳 안 되는 곳 중 한 곳이다. 경주의 양동마을, 순천의 낙안마을과 강원 고성의 왕곡마을 등이 이렇게 집단으로 지정이 되어 있지만, 외암리 민속마을은 수도권에서 가장 가까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 민속마을 외암리 민속마을은 우리나라에서 집단으로 한 마을이 중요민속자료로 정해진 몇 곳 안 되는 곳 중 한 곳이다

 

입장료 징수에 맞는 관람이 이루어져야

 

외암리 민속마을은 사진작가 등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이곳은 아산시민들은 주민등록증 등을 보여주면 무료로 관람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외지인은 경우 성인들은 2000원의 관람료를 지불하여야만 한다. 문제는 이렇게 관람료를 지불하고도 몇몇 집은 밖으로만 관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느 민속마을 등에 들어가면 그 안에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다. 그저 수박 겉핥기식으로 밖으로만 맴돌다가 나온다면, 굳이 관람료를 지불해야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외암리 민속마을의 경우 마을 안에 중요민속자료로 지정이 되어 있는 집이거나, 그 외에 몇 집은 아예 문을 걸어두거나, 개인의 소유임을 써 붙이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주 양동마을의 경우 누구나 관람료 없이 마을을 돌아볼 수가 있다. 물론 몇 집은 사생활이 침해받는 것을 싫어 출입을 제한한다는 문구가 보이기도 한다.

 

▲ 건재고택 중요민속자료인 건재고택. 문이 굳게 닫혀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 건재고택 담 밖에서 본 건재고택, 아름다운 정원 등이 있어 외암리에서도 가장 뛰어난 고풍을 자랑하는 집이다.

 

만일 관람료를 받았다면 그만큼의 충분한 관람을 책임져야만 한다. 사람이 살기 때문에 생활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하면, 하루에 몇 시간만이라도 개방을 하거나, 안내자의 안내를 받아서라도 관람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렇게 꼭꼭 닫혀있는 집들은 관람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관리소 측의 대답이다. 물론 주차료로도 그만한 돈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여주 세종대왕릉이나 효종대왕릉의 경우 주차는 무료이다. 그리고 두 곳의 능을 관람하는 대도 대인의 경우가 일괄 천원이다. 2000원을 받든지 얼마를 받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외지에서 온 관람객들을 위한 서비스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충 꾸며놓은 시설물, 외국인들에게 미안해

 

▲ 물레방아 마을 입구 다리건너에 있는 물레방아. 그러나 그 기능을 잃었다

▲ 디딜방아 공이가 찧는 부분은 다 망가지고 낙엽만 수북하다.

 

외암리 마을에서 관람료를 지불하고 다리를 건너면 좌측에 물레방아가 있다. 물은 흐르는데 정작 방아는 찧어지지 않는다. 가까이 가서보니 물의 힘으로 수차가 돌아가면, 방아를 움직여야 하는데 연결되는 부분이 연결이 안 되어 있다. 마을을 돌다가 보면 디딜방아와 연자방아도 보인다. 그런데 이 방아들 역시 대충 모양만 꾸며 놓았다. 디딜방아 공이가 곡식을 찧는 부분은 무너져 있고 가득 낙엽 등이 쌓여져 있다.

 

외암리 민속마을은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디딜방아를 돌아보다가 눈살을 찌푸린다. 무엇이라고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대충 들어보니 어떻게 여기서 방아를 찧느냐는 것이다. 그저 보여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고, 그들이 실제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모습만 갖춘 이런 것들을 볼 때,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다.

  

보이지 않는 안내판 정비해야

 

 
▲ 안내판 글이 다 지워져 알아볼 수 없는 안내판

▲ 외국인들 민속마을 관람을 하고 있는 외국인들. 좀 더 신경을 써서 제대로 된 마을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마을을 돌다가 보면 집 앞에 그 집이 어떤 집이었나를 안내하는 안내판들이 있다. 여러 성씨가 살았으나 조선조 명종 때 예안 이씨인 이사종이, 세 딸만을 둔 진한평의 첫째 사위가 되면서 이곳으로 이주했다. 그 후손들이 크게 번창하면서 동족마을이 된 곳이 바로 외암리 민속마을이다. 그러다 보니 마을 내에는 종손집, 참판댁, 송화댁 등 가호가 붙은 집들이 있다. 이렇게 집집마다 명칭이 붙으면서 그 내력을 설명한 안내판이 집 앞에 놓여있다.

 

그러나 그 중 몇 곳의 안내판은 글이 지워지고 훼손이 심해 알아볼 수가 없다. 마을의 여기저기서 보수를 하느라고 주변이 부산하다. 관람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모든 것을 제대로 갖추어 놓아야 우리 것을 제대로 알릴 수가 있다. 무엇인가 부족한 듯한 모습에서 우리 민속마을의 아름다움이 제 가치를 잃는다면, 차라리 보여주지 아니함만 못한 것이 아닐까? 제대로 된 관리가 이루어져, 민속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더 기분 좋은 관람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출처 : 오마이뉴스 / 2010,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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