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동막리 1332번지 신흥사에 가면 기형목(奇形木)이란 기이한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삼척시 제51호 보호수로 지정이 된 나무인데, 수령이 200년 정도라고 한다. 단지 수령 200년 정도 된 나무가 무엇이 그리 기이하기에 호들갑을 떠느냐고 핀잔을 주시는 분들도 있겠으나 내막을 알고 보면 누구나 수긍이 갈 것이라고 본다.

 

태백산 신흥사는 신라 때의 고찰이다. 신라 제51대 진성여왕 3년에 범일국사께서 창건을 하였다고 하니, 벌써 2천년이나 된 고찰이다. 그 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영담선사께서 중건한 후 몇 차례 중수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흥사를 찾는 길은 삼척시에서 동해고속화도로를 타고 내려가다가 보면 근덕 해수욕장을 지나 동막(東幕)이라는 마을에 다다른다. 여기서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꺾어 계곡을 따라 4가량 올라가면 양평중학교가 있고, 여기에 신흥사 입구가 나온다. 우측 개울에 걸린 좁은 다리를 건너 200m 정도를 가면 신흥사가 되는데 일주문을 보면 너무나 작아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안개산 자락에 자리한 신흥사

 

태백산의 대표적 사찰 가운데 하나로 조선시대에도 사격이 이어져 규모 있는 사찰로 유지되었는데, 요사인 심검당과 설선당은 중요한 건축물 가운데 하나다. 신흥사가 자리한 곳은 태백산의 줄기가 뻗어 내린 곳으로, 안개산(707m)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 지명은 국립지리원에서 발간한 지도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근덕면과 노곡면의 경계에 걸쳐 있는 신흥사는, 안개산이 거의 끝나는 곳에 자리하여 사역이 비교적 평탄하고 넓은 편이다. 그러면서도 산사의 정취가 듬뿍 배어있는 절집으로 아름드리나무가 주변에 가득하다.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그칠 줄을 모른다. 몇 번인가 망설임 끝에 길을 나서기로 작정을 했으니 장비를 챙겨들고 차에 올랐다. 미리 주지 스님께 연락이 되었기에 서둘러 신흥사를 찾았다. 지역에서 봉사를 많이 하시는 스님은 출타를 하셔야 한다는 기별을 받았기 때문이다. 설선당에 있는 스님의 방으로 가서 차를 대접받으며 담소를 나눈 후 여정이 바쁘신 듯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스님은 이것저것 하나라도 챙겨주신다. 책이며 달력이며 하나하나 주시다가 그것도 부족했는지 스님이 드실 고구마까지 주신다. 산사 살림살이를 아는 나로서는 그러한 스님의 마음씀씀이에 오히려 죄스럽기만 하다. 절집 여기저기를 카메라에 담고 있으려니, 스님은 보호수가 참 대단한 나무라고 알려주신다.

 

배롱나무가 소나무를 품었다

 

200198일자로 삼척시 보호수로 지정이 된 배롱나무를 보는 순간 입이 벌어진다. 세상에 어찌 이런 나무가 있을 수가 있을까? 안내판에는 수령이 200년에 높이 5m, 둘레 1m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수종에는 배롱나무(소나무)라고 기록을 했다. 배롱나무라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소나무라는 소리일까? 아래 설명을 보면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08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 신흥사 경내에 위치하고 있는 배롱나무에 소나무가 자연적으로 생육공생이라고 설명을 하고 있다.

 

나무를 찬찬히 살펴본다. 아무리 보아도 그 해답이 나오지를 않는다. 배롱나무에서 소나무가 자란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소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린 것도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모습으로 나무가 생육을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질문을 하고 답을 구해보아도 이해가 안되기는 마찬가지이다. 나무의 형태를 보면 배롱나무 위에 소나무가 얹혀있는 형태다. 아래는 배롱나무인데 그 중간에서 소나무 줄기가 솟아나 자라고 있다.

   

나무를 찬찬히 살펴보다가 이것이 이 절집의 마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고개가 숙여진다. 더불어 사는 삶, 어떠한 어려운 난관이 닥친다 하더라도, 아무리 고통스런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서로가 더불어 삶을 살수만 있다면 이렇게 기이한 모습으로도 살아갈 수 있음을 알려주는 것은 아닐까? 아마 세상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한 나무인 것 같다. 빗속에 길을 나서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몇 번인가 배롱나무 주위를 돌면서 마음으로 다짐을 한다. 더불어 사는 삶을 살아가자고.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산다. 그 사람들은 생김새부터, 마음 씀씀이가 다 다르다. 그러니 몇 사람만 모여도 말이 많아 질 수밖에 없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면 속이라도 편할 것을, 세상 사람들은 남의 일에는 왜 그렇게 오지랖이 넓은지 모르겠다.

 

세상살이가 어디 쉬운 일이 있겠는가? 그런데 그 많은 세상 사람들 중에는 꼭 있어야 할 사람도 있고, 있어서는 안 될 사람도 있다. 요즈음은 딱 그런 사람들이 구별이 되는 듯 하다. 물론 있고 없고는 나름대로의 판단이겠지만. 

 

연리목과 같은 세상은 왜 안 돼?

 

연리목이라는 것이 있다. 연리목은 그렇게 흔히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니다. 나무와 나무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한 부분이 합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나무와 나무가 합해지면 '연리목(連理木)'이라 하고, 가지와 가지가 합해지면 '연리지(連理枝)'라고 한다. 동일한 수목이 합해지는 것이야 그럴 수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전혀 다른 나무가 하나로 합해지는 것은 보기가 힘들다.

 

제천 청풍문화재단지 안에는 소나무 연리목이 있다. 연리목은 두 그루의 나무가 하나로 합해지기 때문에 남녀 간의 사랑을 상징한다고 한다. 하지만 어디 사랑뿐이겠는가? 세상 인간사 모두가 그렇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같은 부류도 있고, 전혀 다른 부류도 있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도 있고,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어디 한 군데 정도는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이 공통점이 합해지면, 인간사의 연리목이 된다는 생각이다.

 

나하고 생각이 다르다고 아니면 내가 하는 일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고, 매일 헐뜯고 싸움질이나 하고 있으면, 그 어디 세상사는 멋을 아는 사람들이라고 할 것인가? 요즈음 돌아가는 세상이 그렇다. 그저 뒤숭숭하다. 한 짓을 안했다고도 했다가, 나중에는 생각해보니 한 것 같기도 하단다. 한편에서는 눈물을 흘리는데, 한편에서는 조금은 초연하다.

 

예전 우리의 생활 속에 '목도'라는 것이 있다. 산에서 큰 나무를 베어 들고 오려면 여러 사람이 줄을 묶어 양편에서 들어야 한다. 굵고 큰 나무일 때는 20명이 넘는 사람이 양편으로 갈라져, 나무에 묶은 끈을 어깨에 메고 날라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목도를 하는 사람들은 발을 똑 같이 맞추어야 한다. 만일 한 사람이라도 발이 틀리면, 제대로 나무를 옮길 수가 없다. 거기다가 큰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

 

소리 한 자락에서 좀 배워봐

 

오동나무 열매는 감실감실

큰애기 젖퉁이는 몽실몽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갈 때

큰맘 먹고 넘어가 발발 떤다.

 

덜크덩 쿵덕쿵 찧는 방아

언제나 다 찧고 밤마실 갈까

밤마실 가기에 즐기더니

홍당목 치마가 열두챌세

 

목도꾼들이 사로 소리를 주고받으면서, 무거운 나무를 어깨에 메고 내려오면서 하는 소리다. 목도소리라고 하는 이 소리는 힘이 드는 것을, 조금이나마 잊기 위해서 하는 소리다. 또 오랜 시간 집을 떠나 산에서 힘든 작업을 하는 남정네들이 부르는, 은근한 소리이기도 하다. 우리소리 안에는 그런 은근한 내용들이 많이 있다. 역시 소리도 좀 야해야 제 맛이 나는가 보다. 이렇게 서로가 하나가 되는 소리를 들으면, 연리목이 생각이 난다. 생각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른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큰 나무를 옮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연리목이 아니라, 서로 다른 나무가 하나가 되는 연리목이 생각이 난다.

 

삼척시 근덕면 동막리에 있는 신흥사 경내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연리목이 잇다. 이 나무는 연리목 수준을 넘어선다. 줄기가 서로 합해진 것이 아니라, 배롱나무 위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수령이 200년이 넘고, 나무의 높이가 5m 가 넘는다. 그런데 어떻게 배롱나무 위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을까? 배롱나무에 솔 씨가 떨어져 자란 것 같다고 하지만, 정확한 것은 알 수가 없다. 그저 이렇게 상생을 하는 나무라는 것만으로도 희한하다.

 

목도소리에서 인생살이의 참 멋을 좀 배워 보시게나.

 

이 배롱나무를 닮을 수는 없는 것일까? 아니다, 같은 부류라고 해도 서로가 아웅 거리는 모습을 보면, 이렇게 다른 수종이 한데 자라는 것을 바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저 같은 수종이라도 함께 연리목이 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다.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신흥사의 배롱나무와 소나무 같이 살기를 바라지만.

 

울타리 꺾으면 나온다더니

행랑채 달아도 왜아니 나와

담넘어 갈 때는 큰 맘 먹고

문고리 잡고서 발발 떤다

 

산중의 기물은 머루다래

인간의 기물은 사랑일세

염천봉 꼭대기 호드기소리

신도안 갈보가 다 모여든다.

 

매일 아침 보는 뉴스도 지겹다. 토막살인, 근친상간, 강제추행, 강간살인... 등. 어떻게 세상에 좋은 소식은 별로 없고, 그저 눈만 뜨고 나면 이상한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 일어나고, 정작 조용해야 할 사람들만 나와서 난리를 친다. 그런 것 말고 이렇게 좋은 소리나, 연리지 같은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다. 오늘 목도소리 한 번들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 제발 국민들을 기만하지 말고, 이렇게 조금은 야스러운 소리를 하면서, 힘없는 국민들을 위해 발 좀 맞추면 누가 머라고 하나?

 

매번 마음도 바꾸고, 말도 잘 바꾸는 사람들. 이렇게 두 나무가 함께 실듯이 세상을 살면 얼마나 좋을까? 


양양군 현남면 인구리 7번 국도에서 해송천로를 따라 상월천리 방향으로 난 지방도를 따라 가다가 보면, 인구2리 길가에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두 그루 다 처진 소나무와 같이 아래로 가지를 내리고 있다. 이 중 길가에서 볼 때 뒤편에 있는 소나무는 흡사 정이품송을 닮았다.

길을 가다말고도 희귀한 나무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미인지라, 차에서 내려 소나무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그런데 소나무를 보니 가슴 높이 정도에 큰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보인다. 어떻게 된 일인가하여 밑동서부터 자세하게 살펴보니 틀림없는 연리목이다. 두 그루의 나무가 함께 자라다가, 이곳부터 연리목이 되었는데, 밑과 위가 완전히 붙어버렸다.



정이품송을 닮은 소나무의 밑에 구멍이 나 있다

희귀한 연리목, 나무의 생김새도 아름다워

이 나무가 여느 나무와 달라 보이는 것은 모양도 아름답게 생겼지만, 연리목이라는 점이 더욱 특이하기 때문이다. 밑동을 보아도 한 나무인지 두 그루의 나무가 붙어있는 것인지 구별이 쉽게 되질 않는다. 다만 나무의 구멍이 난 부분을 보니 그 안에 표피가 잇는 것을 보아, 이 나무가 한 그루가 아닌 두 그루가 붙어있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나무를 촬영하고 난 후, 길 건너 배추밭에서 일을 하고 계시는 마을 분들이게 이 나무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저 뒤편에 소나무가 혹 수령이 얼마나 되었는지 아세요?”
“저희들은 잘 몰라요. 어르신들 이야기로는 500년이 지났다고도 하는데”
“저 나무에 혹 전설 같은 것은 없나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나무의 구멍을 살펴보니 연리목인 듯하다.

양양군의 아름다운 나무로 선정되어

더 이상은 물을 수가 없다. 일손을 놓지 않고 대답을 하시는 분에게, 자꾸만 질문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남면사무소에 문의를 하였더니, 양양군 내에 있는 소나무 품평회에서 이 나무가 아름다운 나무로 선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이렇게 아름답게 자란 소나무가 그리 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마 모르기는 해도 이 나무에는 애틋한 사랑이야기 한 편쯤은 전해지고 있지 않을까?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소나무다. 더구나 두 나무가 붙은 연리목이라는 데에는 한 가지 사랑이야기라도 만들어 주고 싶다.


밑동에도 가운데가 떨어진 것이 보인다. 이 나무는 양양군 소나무 품평회에서 아름다운 나무로 선정이 되었다고 한다.

돌멩이 하나 나무 한 그루에도 전설을 붙이기를 좋아하는 우리민족이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나무에 마을에서 전해지는 이야기가 없다니 이해가 가질 않는다. 아마 이 나무에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을 텐데, 혹 잊은 것은 아닐까? 그런 이야기 한 가지 듣지 못하고 떠나는 발길이 내심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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