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에 잔뜩 흐리더니, 아침부터 겨을비가 추적거리기 시작한다. 어제 밤늦게 여주장을 보러나갔다. 장을 본 것은 아니고, <여주중앙로 문화의 거리>라는 재래시장에 설치한 루미나리에를 촬영하기 위해서다. 화려한 갖가지 색을 자랑하는 입구부터 눈이 현란하다. 요즈음 재래시장이 변하고 있다. 물론 그 변화가 바람직하기도 하지만, 일부에서는 장에서 보이는 정감이 사라지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비가 온다고 밥 안 먹간디?

 

어제 미리 연락을 취해놓고 장의 변화를 취재하기 위해 여주장으로 나갔다. '여주상권 살리기 추진위원회' 박흥수(남, 65세) 씨와 김동호씨를 만나보기 위해서다. 겨을비는 차다. 이 비가 오는데도 천막을 치고, 그 위에 비닐을 덧씌우는 사람들. 5일장이야 5일에 한번, 5일과 10일, 15일과 20일, 25일과 30일, 한 달에 여섯 번이 열리는 장이다. 매일 나오는 것도 아니고 5일에 한 번씩 장으로 오니, 오늘 일당은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비가 오는데도 손님을 기다리는 할머니 한분. 작은 파라솔 하나를 의지해 나물과 곡물 몇 가지를 놓고 자리를 지키신다.

 

 

"할머니 비가 오는데 이렇게 앉아계세요"

"장날인데 어쩌겠어. 비가 와도 기다려봐야지"

"물건은 좀 파셨어요."

"비가 와서 그런지 도통 손님이 없네."

"오늘 같은 날은 손님도 없을 텐데, 일찍 들어가세요. 감기 걸리시겠네요."

"뭔 소리여. 비 온다고 밥 안 먹간디?"

 

할머니는 오늘 장에 나온 차비라도 끝내 벌어 가셔야 한단다. 저런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찡하다. 겨울비는 추적거리는데 오한이 오시는지, 몸을 으스스 떨고 계시다. 어머니의 마음이 저런 것일까?

 

'경기도에서 두 번째인 여주장 많이 변했죠'

 

약속한 장소에 가서 잠시 기다리고 있으려니 박흥수씨가 들어온다. 그동안 여주장을 취재하러 많은 언론사 사람들이 찾아왔었다고 한다.

 

  
점포위주의 장사를 하는 문화의 거리에 여주 5일장이 선 모습.

 

"경기도에서는 성남 모란장이 가장 크고, 그 다음이 여주장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비록 그 세가 많이 축소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예전의 명성을 지키고 있는 장입니다. 근동에서는 가장 크죠. 40 ~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주 인구가 별 차이가 없으니, 그 전 생각을 하면 정말 큰 장이죠"

 

여주장은 두 곳으로 나눠진다. 한 곳은 <여주중앙로 문화의 거리>로 명명된 재래장으로, 여주농협부터 순화당 사거리까지 320m 구역이다. 이곳이 바로 밤이 되면 루미나리에 불빛이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은 점포가 있는 분들이 '여주 상권살리기 추진위원회'를 조직해 장의 발전을 도모한다. 그리고 여주읍 하리 쪽의 5일장이 서는 곳에는 또 다른 상인연합회가 관리를 한다. 문화의 거리 상인연합회는 현재 회원이 150명 정도다.  

 

"저 어릴 적에는 아버님이 이곳에서 시계도 고치시고, 심지어는 지퍼라이터도 고쳤어요. 원래 장을 돌아다니시면서 물건을 파는 장꾼이었는데, 이 자리에 좌판을 벌이시고 물건을 팔고 수리도 하셨죠. 그 가게를 제가 물려받은 겁니다."

 

김동호씨의 말이다. 그 말에 이어 박흥수씨도 자신의 가게도 어릴 적에 보면 작은 포목 몇 필을 파는 가게였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2대에 걸쳐 여주장을 지켜온 사람들이다. 박흥수씨는 장을 지키는 풍속도 바뀌어 가고 있다면서.

 

여주장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박흥수씨(좌)와 김동호씨(우)

 

"지금은 장 사람들이 선진화가 되어 가는가 봐요. 전에는 연세가 드셔도 점포를 지키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요즈음은 연세가 좀 드시면 자식들에게 다 물려주시고는 장에 나오시지를 않아요. 그래서 연세 드신 분들이 자꾸만 보이시질 않으니 그도 한 걱정입니다. 혹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 해서요."

 

50년 전만 해도 장작도 팔고 물장수도 있던 여주장인데

 

여주장이 얼마나 변했느냐고 물었다. 50년 전만 해도 여주 장에는 나무를 해 갖고 와 파는 사람들이 길거리에 몇 십 미터씩 줄을 이었다고 한다. '그 장작도 돈이 없는 사람들은 사서 떼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그것뿐이 아니라 물장수가 있었는데, 여주 남한강 물을 그대로 떠다가 팔았다는 것이다. 지금 같아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이야기다. 지금 우리가 보는 남한강물을 어찌 그대로 떠다가 식용수로 사용을 할 수 있을까?

 

"예전에는 강물이 상당히 맑았어요. 그래서 그냥 강물을 떠다가 그 물로 밥도 하고 그랬죠. 그때 물장수들이 있었는데, 그저 밥만 먹여주면 물은 얼마든지 길어왔으니까요. 밥이라도 먹는 것이 그 당시에는 최고였죠."

 

박흥수씨는 옛 생각이 나는지 눈을 지그시 감는다. 하기야 내가 살던 서울에서도 어린 시절 개울가를 흐르는 물에서 고기도 잡고 수영도 하고 놀았으니, 이곳이야 얼마나 맑았을까? 이야기를 끝내고 나무를 팔던 거리를 알려주겠다고 일어선다. 비는 아직도 추적거리고 온다.

 

 여주장에 비가온다. 상인들은 파라솔과 천막, 비닐 등으로 비를 피한다. 그래도 5일장은 파장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 장날마다 만나는 사람들 때문이다.

  
장작을 팔던 거리. 이 거리 수십미터에 나무장사들이 줄을 지었었다


"지금은 노점상을 하시는 분들 중에도 상당한 부자들이 많아요. 저분들 중에는 중국에 공장을 갖고 계신 분도 있고요. 장이 많이 변했죠. 다양한 물건을 접할 수 있으니까요. 예전에는 빈대떡 같은 먹거리가 많았는데. 심지어는 도롱뇽 알도 팔았어요. 눈이 좋아지는 약이라고 해서"

 

한바탕 웃고 만다. 하지만 옛 정취를 찾겠다고 발전 없는 장을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 변해버린 장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풍물과 함께 깊은 정도 함께 사라졌다는 것이다. 비는 추적거리고 오는데, 할머니는 그때까지도 자리를 지키고 계시다. 5일장날마다 만나는 사람들이 있어, 파장 때까지 기다리셔야 한단다.


눈이 내리고 난 10일, 여주 5일장을 찾았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오면 걱정이 되는 분들은, 난전을 펼치고 있는 어르신들이다. 눈을 대충 치운 장거리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몇 가지 안 되는 물건을 펴놓고,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계시는 할머니들이 보인다.

 

하늘이 하시는 일인데

 

"할머니 추운데 나오셨네요, 춥지 않으세요?"

"좀 춥네."

"이나저나 왜 5일 장날마다 이렇게 눈이 오거나 비가 오네요."

"그러게, 올해는 계속 그러네."

"많이 파셨어요?"

"아직 개시도 못했어. 이나저나 하늘이 맘이 상하셨나."

 

좌판에 벌려놓고 있는 물건을 보니 몇 가지되지도 않는다. 깻잎과 새로 뜯은 냉이, 그리고 동치미무와 짠지무가 전부다. 이것을 들고 장마다 나오시는 할머니께 함자를 여쭤보기도 죄스럽다.  

 

"냉이는 어디서 캐셨어요?"

"집 근처에서 캤지"

"집이 어디신데요?"

"내양리"

 

▲ 할머니의 난전 몇 가지 되지도 않는 물건을 펴시고 장사를 하신다

 

여주 장날만 나오신다는 할머니

 

몇 가지 되지도 않는 물건을 벌여놓고 계신 할머니는, 장 한쪽 끄트머리 사람들의 왕래도 드문 곳에 자릴 펴고 계시다. 그렇게 하루 종일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어도, 이쪽은 왕래가 드문 곳이니 팔릴 것 같지도 않다.

 

"여기서 많이 파실 수 있겠어요?"

"아는 사람들은 오지. 이 짠지무는 식당을 하시는 분이 4만원 어치나 사셨어. 맛이 있다고. 사가서 양념해 놓으면 정말 맛있어"

"오늘은 좀 파셨어요?"

"이것 좀 사가, 남자가 개시하면 잘 팔려"

"그 깻잎 오천 원 어치만 주세요."

 

깻잎을 담고 계시는 할머니는 여주 장날만 나온다고 하신다. 이만한 물건을 갖고 어떻게 이 장 저 장을 다니겠느냐는 할머니는, 이렇게 작은 물건이나마 파는 것도 다 하늘이 하는 일이라고 하신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장날마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오는 것도 다 하늘이 하는 일이요, 많은 사람들을 보내고 안 보내는 것도, 다 하늘이 정해 놓은 일이라는  것이다.

 

▲ 깻잎 덤으로 깻잎을 듬뿍 담아주시는 할머니는 이렇게 일기가 고르지 못한 것도 모두 하늘의 뜻이란다.


할머니의 하늘은 왜 마음이 상하셨을까?

 

그런 할머니의 하늘은, 오늘이 장날인데도 눈이 오고 날이 춥게 만들었다. 연세가 드신 분이 추위에 몸을 웅크리고 계시면서도, 날씨 탓을 하지 않으신다. 할머니의 하늘은 과연 무엇일까?

 

"깻잎 많이 담지 마세요."

"먹을 만큼은 주어야지. 개시를 잘 주면 하루 종일 손님이 많아."

"많이 파세요. 추운데 불이라도 좀 지피시지 않고."

 

할머니는 모든 것이 다 하늘이 알아서 하신다고 말씀을 하신다. 인간이 마음대로 일을 저지르면 결국 그것은 인간에게 재앙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눈이 많이 오는 것도, 비가 많이 오는 것도 다 인간들 스스로가 하늘의 뜻을 거역했기 때문이라는 것. 과연 할머니의 하늘은 어떤 것일까? 장을 돌면서 내내 생각을 해보아도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할머니의 하늘은 듬뿍 물건을 더해 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 작은 난전 여주 5일장 한편 끄트머리 사람들의 왕래도 드문 곳에서 장사를 하시는 할머니의 마음은 하늘을 닮으셨다는 생각이 든다,
 

(출처 : 오마이뉴스 / 2010, 3, 11)

2월 5일, 며칠 안남은 설 대목을 준비하고 있는 여주 5일장. 다른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장을 찾았다. 아무래도 설이 10여 일 밖에 남지 않았으니, 꼭 장을 보지 않는다고 해도 이것저것 알아보려는 사람들로 더욱 붐빈다. 양평, 이천 등 가까운 곳에서 온 사람들까지, 모처럼 활기를 띠는 여주장이다.

 

여주 전통 5일장은 경기도에서는 성남 모란장 다음으로 큰 장으로 손꼽힌다. 5일장 날이 되면 장 주변의 주차장은 물론, 인도에까지 난전이 서는 바람에 통행이 조금은 불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것이 5일장의 북적이는 재미 중의 하나이다. 고함치는 소리, 흥정하는 소리, 심지어는 작은 스피커까지 들고 나온 판이니 소음도 만만치가 않지만, 사람들은 그런 북적임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하다.

 

5일장의 아름다운 부부장꾼

 

▲ 족발 보기에도 먹음직스런 족발이 군침을 돌게한다. 두 사람의 정성이 있어서 인지, 더욱 맛이 좋다고 한다.
 

 

여주 5일장 한 복판에 족발을 파는 난전이 있다. 두 사람의 남녀가 열심히 족발을 썰고, 그릇에 담아낸다. 벌써 여주 장에서만 3년 넘게 한 자리에서 족발을 팔고 있는 오재현(남, 46세), 방영심(여, 42세) 부부. 여주 5일장을 찾는 사람들이라면 이들 부부의 금슬을 늘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사업을 하다가 실패를 했죠, 누구나 다 그런 실패 한 번쯤은 하는 것 아닙니까? 그대로 무너질 수가 없어서, 족발 장사를 시작을 한 것이 벌써 6년째네요. 여주 장에서 장사를 시작한 것은 올해로 3년이 되었고요."

 

말을 하면서도 연신 족발 썰기를 멈추지 않는 오재현씨. 남들이 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부부가 함께 장에 나와 장사를 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여주 장을 돌아다니면서 몇 번을 보았지만, 한 번도 얼굴을 찌푸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저 늘 웃는 모습으로 손님들을 대한다.

 

"5일장을 돌면서 보면 지난해보다 많이 힘들다는 것을 피부로 느껴져요. 하지만 열심히 하다가보면, 그 또한 힘이 들어도 보람이 있으니까요. 5일장을 돌면서 하루 종일 서 있다는 것이 여간 힘이 들지가 않아요. 그래서 4일은 장을 돌고, 하루는 쉬고 있죠. 그렇지 않으면 체력이 달려서 할 수가 없어요."

 

네 곳의 장을 돌고, 하루는 쉬어

 

▲ 썰기 이야기를 하면서도 밀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연신 족발을 썰고 있다.

▲ 족발 여주장이 다니는 5일장 중에서 단골이 가장 많다고 한다.


오재현씨 부부는 여주 5일장을 비롯해, 충북 단양의 매포장, 충남 천안의 성환장, 그리고 충북 괴산 등 4곳의 5일 장에서 장사를 한단다. 현재 충주에 거주하면서 이 네 곳을 4일 동안 돌고, 하루를 쉬어 다시 장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하루에 70 ~ 80개 정도를 파는데, 하루 종일 쉴 수가 없어요. 다음 장은 대목장이라 아무래도 수량을 좀 더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요즈음은 그래도 단골이 많이 생겨서 많이 좋아진 편이죠"

 

주변의 상인들은 이들 두 사람의 부부가 정말 열심히 산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부부가 다니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저는 네 곳을 모두 돌지는 못해요. 집안일도 해야 하기 때문에. 여주장과 괴산장만 돌고, 매포와 성환은 장이 좀 작다보니 아이들 아빠가 혼자 다녀요."

 

그렇게 혼자 남편을 장으로 보내고 나면, 늘 마음이 편치가 않다고 한다. 남편이 썰어 놓은 족발을 포장을 하면서 방영심씨가 하는 말이다. 힘이 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힘이 들기는 하지만 같이 다니니 오히려 즐겁다고 웃음을 짓는다. 언제나 손님이 오면 웃음으로 대하기 때문에, 5일장을 함께 나오는 장꾼 중에서는 소문이 자자하다.

 

5일장의 장꾼들은 끈끈한 정이 있어

 

▲ 대담 장사를 마칠 시간이 오후 7시. 오재현, 방영심 부부와 대담을 하는 기자.

 

"5일장을 다니면서 장사를 하시는 분들끼리 모이고 있어요. 이렇게 난전을 하고 있지만, 이분들과 만나면 오히려 점포를 지니고 계신 분들보다 더 정이 깊어요. 아무래도 여기저기 다니면서 장사를 하기 때문에, 힘이 들어 더욱 정을 느끼는 것 같아요."

 

주변의 난전을 하는 상인들과 속 깊은 우대관계를 갖고 있다는 오재현씨. 그래서 장에 나온다는 것이 단지 물건을 팔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함께 장사를 하는 분들이 보이지를 않으면, 내색은 하지 않아도 걱정이 많이 된다고 한다.

 

"저 부부를 보면 참 부지런도 하지만, 어째 저렇게 금슬이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3년 넘게 보아왔지만 힘이 들기도 할 텐데, 한 번도 낯을 붉히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우리 5일장의 보배죠."

 

장마다 나온다는 한 할머니의 칭찬이다. 앞으로 이 부부가 이루고자 하는 일이, 꼭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도 그 때문이다. 모처럼 여주 5일장에서 아름다운 부부를 만나, 보는 사람도 기분이 좋다. 역시 웃으면서 산다는 것은 자신만이 아니고, 주변이 모든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것 같다. 오후 7시가 넘어 어둠이 깔린 장터에서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 아름디운 부부. 얼굴에는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그 아름다운 미소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출처 : 오마이뉴스 / 2010, 2, 6)



여주장은 5, 10일 장이다. 아침 일찍 김장장을 취재하기 위해 여주장으로 향했다. 500여 년 전통을 자랑하는 여주장은 경기도 지역에서는 성남 모란장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장으로 알려져 있다. 1960년대만 해도 여주에는 11곳의 5일장이 있었으나, 5일장이 급격히 쇠퇴하면서 현재는 여주장을 비롯 가남장과 대신장만 그 명맥을 유지하는 실정이다.

 

예전과 같지 않은 5일장에는 한숨만 나돌아

 

김장장이라고 하지만 예전 같지가 않다. 예전 장이 들어섰던 골목에는 장사꾼의 노점 대신 차들이 주차가 되어 있다. 한편에서 깨며 조, 찹쌀, 기름 등을 파는 아주머니 한 분은 흥정을 하다가 말고 한숨을 내쉰다.

 

"이것들 다 집에서 농사 지으신 거예요?"

"아니지. 마을에서 사람들이 팔아달라는 것도 있고, 내가 농사를 지은 것도 있고."

"장사하신 지가 얼마나 되셨어요?"

"한 30년이 넘었네. 벌써 그렇게 지나버렸어."

"예전 같지가 않은가 봐요."

"턱도 없어. 그래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하루에 10만원은 쉽게 벌어갖고 들어갔어. 그런데 요즈음은 일당 벌기도 힘들어."

"일당을 얼마나 치세요?"

"3만원."

 

참 간단한 물음과 대답이다. 하지만 그 안에 예전과는 다른 장 분위기가 담겨 있다. 돈을 벌기 위해 눈속임은 하지 않는다는 아주머니는, 연신 지나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사라고 소리를 지르지만 정작 물건을 흥정하는 사람들은 많지가 않다.

 

  
▲ 깨, 팥, 기장, 보리 등 각종 곡물류 하루 종일 팔아도 일당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지나는 사람들을 불러보지만 흥정이 되지 않는다

  
▲ 기름 술병에 담은 기름. 들기름은 직접 짠 것이고, 콩기름은 수입 콩을 썼다고 하신다. 양심을 속이지는 않는다고 강조를 하시면서

 

그놈의 대형마트 때문에

 

장을 돌다가 김장거리를 파는 장사꾼에게 물어보았다. 어째 김장장인데도 물건이 많이 나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팔리지 않는데 잔뜩 쌓아놓기만 하면 뭘 하겠느냐는 대답이다.

 

"예전 같지가 않네요. 김장장이라는데."

"말도 말아요. 요즈음 사람들 김장 잘 안하잖아요. 여기저기서 김치를 만들어 판매를 하지를 않나. 이젠 김장도 한 겨울 양식이 아닌가 봐요."

"그래도 김치들은 먹어야 되지 않나요?"

"요새는 대형마트인가 무엇인가에서 배추 몇 포기만 사도 다 배달을 해주는데, 굳이 장에 나오겠어요. 앞으로 이 장사도 집어치워야 할 것 같아요."

 

답답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장 풍속도가 변해감을 알 만하다. 그 오랜 세월 서민들 먹을거리를 해결해 주던 5일장이 그나마 버티다 이제는 대형할인점에 밀려 더 빠르게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 김장장 예년에 비해 물량이 많이 줄었다

  
▲ 마늘 마늘을 팔고 있지만 정작 판매는 부진하다고 한다. 이젠 사람들이 집에서 김치를 담그는 것조차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란다

  
▲ 썰렁한 장거리 예전 장이 들어서 발디딜 틈이 없던 장거리는 주차장이 되어버렸다

 

마늘을 까는 손에서 어머니를 느끼다

 

철물점 앞을 지나는데 시끄럽다. 물건을 샀는데 중국 것이라며 바꾸어 달라고 할아버지 한분이 역정을 내신다. 요즘 중국 것 아닌 게 어딨냐는 말에 씁쓰레하다. 주변을 둘러본다. 정말 중국제 철물, 중국제 그릇, 중국제 옷, 중국제 신이다. 중국 어느 시장을 방불케 한다. 세상이 점점 우리 것을 잃어버린다는 생각에 두려움마저 느낀다.

 

할머니 한 분이 마늘을 까고 계시다. 남들은 장갑이라도 끼는데, 그나마 맨손으로 마늘을 까신다. 그 손을 보면서 갑자기 코끝이 찡해온다. 투박하기만한 손. 굳은 살이 박인 마디. 까맣게 때가 낀 손톱. 어릴 적 찬물에 손이 시린지 호호 불어가며 김장을 담그시던 어머니가 그 손에 계셨다. 아무리 둘러봐도 내가 살만한 물건은 없다.

 

"많이 파셨어요?"

"아직 개시도 못했어."

"언제 다 팔고 가신데."

"그러게 말야. 오후에는 비가 온다고 그러는데. 하나라도 팔아야지."

 

그 하나라도 말에 가슴이 답답하다. 연세가 꽤 드신 것 같은데, 새벽 일찍 장에 나오셔서 아직도 하나도 팔지 못하셨다니.

 

 

"좀 일찍 나오셔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셨으면 많이 파셨을 텐데."

"아무 자리나 차지할 수가 없어. 이 자리도 다 임자가 있는 것이니까."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집에서 만든 두부라고 하기에, 두부 두 모를 사들고 돌아선다. 속으로는 그저 '오늘 다 팔고 가세요'라고 생각하지만 밖으로는 말도 꺼내지 못한다. 어머니 생각이 나서다. 괜히 눈물이라도 왈칵 쏟아질 것만 같다. 정이 넘치던 5일장은 그렇게 어머니 모습만 느끼게 만들고 말았다. (출처 : 오마이뉴스 / 2009,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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