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늘 행복이란 것을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정작 나는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가 않다. 가진 자들은 더 많이 움켜잡으려고 눈을 벌겋게 뜨고 잡으려고만 하다가 보니, 행복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또 없는 사람들은, 늘 안타깝게도 찌든 생활에 시달려 행복이라는 단어조차 모르는 듯하다.

 

과연 행복이란 것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의 행복이란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를 말한다.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순간순간 누구나가 느낄 수가 있다. 내 남편이 승진이 돼서, 혹은 내 남편이 나에게 선물을 해서, 우리 아내가 정말 아름다워서, 혹은 자녀들이 좋은 소식이 있어서 등, 순간의 기쁨과 행복은 누구나 가질 수가 있다.

 

산행 후 찾아간 지인의 시골 집

 

가끔 여주를 간다. 좋아하는 아우부부가 사는 이집은 정말로 찾아가는 순간부터 돌아오는 시간까지 행복하다. 하지만 꼭 이집만 행복한 것은 아니다. 지난주에 3일간 산행을 했다. 여기저기 몇 곳을 돌아다녔다. 남들처럼 등산을 간 것이 아니다. 주변에 몸이 안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이다.  

 

 

지난 목요일(530) 길을 떠나기 전 3일간 비가 내렸다. 숲으로 들어가니 땀이 비 오듯 한다. 습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은 미끄럽다. 자칫 발이라도 잘못 짚거나 힘의 안배를 못하면, 그저 미끄러져 어디가 까지기 일쑤이다. 그런 날 산을 오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럴게 묻는다. “돈도 안 되는 짓을 왜 그렇게 힘들여 가면서 하느냐?”. 하지만 빈말이라도 사람들과 약속을 했으니,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산행을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산을 오르내리며 채취한 산더덕 등을 가져다가, 주위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준다.

 

그리고 61() 수원에서 두 곳을 돌며 일을 마친 후, 세 사람이 다시 길을 나섰다. 요즈음 주말마다 함께 산에 올라 땀을 내는 수원시의 팀장 한 사람과, 용인시 원삼이 고향이라는 또 다른 팀장이다. 그곳을 가서 산을 두 곳이나 옮겨가면서 산을 뒤졌지만 허탕을 치고 말았다. 하기야 갈 때마다 무엇인가를 갖고 올 수 있다면, 그것은 전문적인 사람들이나 가능한 일일 테니까 말이다.

 

이렇게 행복한 밥상을 받았다.

 

1일 오후에 출발을 했기 때문에, 원삼 길을 안내해 준 지인이 알려주는 산을 세 시간 이상 돌아보았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다. 지인이 그곳 고향마을에 형님들이 살고 계시다고 한다. 6형제 중에 막내인 지인은 주말이면 이곳을 내려와 형님들을 돕기도 한다고. 그 집으로 가서 잠시 숨을 돌리고 있자니, 마늘 쫑을 따러가잔다.

 

 

마늘이 쫑이 나올 때 따주어야 마늘이 실하게 자란다는 것이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밭을 나가니 마늘이며 양파, 감자 등을 심어 놓은 밭에는, 둘째 형님과 셋째 형님 내외가 열심히 마늘 쫑을 따고 계셨다. 가르쳐 주는 대로 따라해 보지만, 농사일이라는 것이 그리 만만치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저녁 대접을 하겠다고 하면서 잠시 하던 일을 마치고, 지인의 셋째 형님네 집으로 돌아왔다. 그동안에 둘째 형님은 면으로 나가 돼지고기를 사오시기도. 집 앞 마당에는 금방 상이 차려졌다.

 

이 반찬들은 모두 셋째 형님 내외분이 직접 농사를 지은 것입니다. 장에 나가 사온 것은 하나도 없어요. 향수님께서 직접 다 반찬을 준비하신 것이죠.”

 

지인이 직접 텃밭에서 따온 상추까지 푸짐하게 한 상 차려졌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면에 나가 사온 돼지고기가 맛있는 냄새를 풍기면 익어가고 있고.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은 반찬들이 좋다. 고소한 쌈이 좋다. 표고버섯을 잘라 넣고 끓인 된장찌개가 일품이다. 어떻게 한 그릇을 먹었는지 모른다. 가장 행복한 밥상을 받은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밭에서 캐온 양파와 마늘 쫑까지 자루에 넣어 주신다. 땀을 흘리며 지은 농산물이라 그냥 받아오기가 죄스럽다. 하지만 나눌 줄을 아시는 이분들은, 이것저것 더 가져가라고 하신다. 이분들이 정말 행복하게 사시는 분들이 아닐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바로 나누어 줄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 나눔의 행복이 모든 사람들이 느꼈으면 한다. 대가없는 나눔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기 때문이다.

요즈음처럼 날씨가 쌀쌀할 때는 무엇인가 좀 따듯한 것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타고난 천성이 ‘살아생전 굶는 한 끼, 저승에서도 못 찾아먹는다’리고 늘 생각하는 인사인지라, 하루 세 끼 밥은 꼭꼭 찾아먹는 편입니다. 가끔 답사를 나가 제 시간을 못 맞추기는 해도, 그래도 끼니를 거르지는 않습니다.

 

새벽까지 글을 쓰다가 보니, 아침을 해먹는다는 것이 조금은 불편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묵은지가 있으니, 따듯한 버섯찌게라도 끓여야겠다고 생각을 하죠. 저희는 생각이 나면 바로 실행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인사인지라, 가릴 것 없이 시작을 했죠. 요즘 같은 날씨에 제격이라고 스스로를 칭찬을 해가면서. 암튼 아무도 못 말립니다.

 

 

1. 준비

 

준비라야 머 있습니까? 집안에 있는 재료 이용합니다. 거창하게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마침 며칠 전에 ‘e수원뉴스’ 시민기자 한분이 묵은지를 한 통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묵은지 맛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마치 어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담아낸 듯하죠. 거기다가 강원도 깨끗한 바닷물로 간수를 해 담은 된장이 있습니다.

 

이 된장 맛을 보신 분들. ‘대한민국 최고의 장이다’라고 할 정도니까요. 거기다가 버섯과 파, 두부는 늘 냉장고 안에 조금씩 준비를 해놓고 있습니다. 조미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는 나로서는 머 이 정도만 가져도 충분합니다.

 

 

먼저 버섯을 잘라놓고 파는 썰어 준비를 합니다. 물론 두부도 잘라놓습니다. 그리고 냄비에 묵은지와 된장을 아래 깝니다. 그래야 물이 끓으면 된장이 골고루 잘 퍼지니까요. 사람들은 두부를 나중에 넣습니다. 허나 저는 먼저 집어넣습니다. 그래야 두부에 간이 잘 밴다는 나름대로의 되먹지 않은 고집 때문입니다.

 

2. 조리

 

조리라고 해서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물을 끓이다가 김이 나기 시작하면 버섯과 파를 집어 넣습니다. 그리고 물이 끓기 시작하면 잣과 다진마늘을 조금 넣어줍니다. 잣은 씹히는 맛이 일품이고, 마늘을 천천히 넣으면 묵은지의 맛과 잘 어우러지기 때문이죠.

 

 

팔팔 끓기 시작하면, 미리 준비를 한 밥도 뜸이 들 때가 됩니다. 그럴 때쯤 밥을 먹기 위해 밑반찬을 준비합니다. 냉장고 안에는 그대로 꽤 여러 가지 반찬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계바늘 방향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멸치볶음, 깻잎, 젓갈, 양파짱아치입니다. 젓갈을 좋아하는 고로 꼴두기젓, 밴댕이 젓, 그리고 게도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먹기만 하면 됩니다. 항상 ‘밥은 잘 먹고 다니자’가 제 주장입니다. 남들보다 더 많이 걸어야하고, 남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잘 먹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단 생각입니다 . 아침은 유난히 신경을 써서 먹습니다. 아침이 든든해야 하루 종일 잘 돌아다니니까요. 11월 13일 오늘 아침 제가 먹은 밥상입니다.

사람들은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한다. ‘글을 쓰고 싶어도 잘 못 쓰겠다.’ 이런 말은 공감이 가는 말이다. 사실 글을 쓴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란 생각이다. 글은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남에게 전달하는 수단이다. 하기에 그 글을 보는 사람들이 당시의 분위기에 공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남들이 공감을 하는 글을 쓴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글을 써야 하는데 마땅한 소재가 없다’는 것. 이 말에 대해서는 조금은 의아하게 생각한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는 이해가 되지만, 글을 쓸 소재가 없다는 것은 이해가 가질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블로거들의 글재간은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그래서 글을 쓰는 모든 블로거들이 존경스럽기도 한 것이고.


파종과 결실의 즐거움

남들이 물어보면 난 ‘문화블로거’라고 서슴없이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가끔은 ‘진정한 문화블로거’인가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기도 한다. 내 욕심은 언제까지라도 문화블로거로 남고 싶다. 그래도 가끔은 문화가 아닌 글을 쓰기도 한다. 그것은 문화재를 답사하다가 만나게 되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삼기 때문이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그 모든 것이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때로는 남들이 참 재미없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해 절집 마당 뒤편에 양파를 심었다. 겨우내 자란 양파가 잎이 시들해진다. 장마가 곧 닥친다고 하는 소식에, 양파수확을 한다고 서두른다. 절집을 찾은 신도 몇 분이 양파 밭으로 달려가 양파 수확을 시작한다. 단단하게 잘 여문 양파들이 흙속에서 나와, 밭고랑에 늘어서 있다. 그 잎을 잘라내고 손수레에 담는다.



그것을 찍으려고 하니, 양파를 수확하던 사람들이 한마디 한다.

“저 처사님은 날마다 사진만 찍네.”
“제가 원래 하는 일이 그래서요”
“사진은 그만 찍고 얼른 양파부터 날라다 주세요”
“다 담으면 이야기 하세요. 걱정하시지 말고”

손수레에 하나 가득 담겼다. 선원사 운천 주지스님이 직접 그 손수레를 끌어다 양파를 그늘에 펴 놓는다. 그래야 썩지 않고 오래도록 보관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날이 따가운데도 밭고랑을 옮겨 다니면서 양파 수확을 하는 사람들이나, 손수레에 담아 나르는 스님이나 모두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수확의 기쁨이란 것이 그런 것인가 보다.

나는 다음 생애에도 문화블로거이고 싶다.

어떤 것이나 글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남들처럼 화려한 글 솜씨를 갖지 못했기에, 이 이상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무리인 듯하다. 문화재에 재한 글을 쓰라고 한다면, 조금은 더 잘 쓸 수 있을 것도 같다. 하지만 그것도 내 생각이다. 평가는 보는 이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생애에는 힘자라는데 까지 문화블로거로 살고 싶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다음 생애에서도 문화블로거를 하고 싶다. 그만큼 블로거라는 것이 매력이 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글 소재는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그 소재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를 한다는 것 또한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블로거로써 살아온 세월이 벌써 7년이 지났다. 남들처럼 계속하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블로거로써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나이다. 때로는 속이 상한 적도 있고, 모든 글을 삭제시켜 버리기도 했다. 문화를 대우하는 것이 허접하기 때문이다. ‘문화연예’를 같은 분류 안에 넣어놓고, 연예가 모든 글의 대부분인 것도 조금은 안타까운 생각이지만, 이제는 그런 것조차 초연해졌다.


그저 내가 좋아 택한 블로거 생활이다. 그리고 ‘바람이 머물 듯’ 전국을 다니다가 문화재가 보이면 그곳에서 발을 멈춘다. 블로그를 운영하기 전부터 돌아다닌 세월이 벌써 30년을 훌쩍 넘겨버렸다. 그런데 아직 전국의 문화재를(개인이나 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는 문화재를 제외하고) 아직 그 절반도 찾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다음 생애에서도 난 문화불로거로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 글쓰기가 어렵다고 하기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다음 생애까지 들썩여야만 했다. 글을 감칠 맛나게 쓰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런 ‘양파’의 소재 하나도 귀하게 여긴다. 그런데 하물며 문화재랴. 그저 글을 이렇게 쓸 수 있고, 남들이 보아준다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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