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예술공원로 103번길 4 (석수동 212 - 1)에 자리한 보물 제4호인 중초사지 당간지주.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시기가 당간에 적혀있어, 조성연대를 자세히 알 수 있는 소중한 문화재이다.

 

당간에 지주명이 명기되어 있어

 

당간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보력 2년(신라 흥덕왕 1년, 826년) 세차 병오년 8월 초엿새 신축일에 중초사(中初寺) 동쪽 승악의 돌 하나가 둘로 갈라져 이를 얻었다. 같은 달 28일 두 무리가 일을 시작하여, 9월 1일 이곳에 이르렀으며, 이듬 해 정미년(827년) 2월 30일에 모두 마쳤다. 이 때의 주통은 황룡사의 항창화상이다. 상화상은 진행법사이며, 정좌는 의설법사이고, 상좌는 연숭법사이다. 사사는 둘인데 묘범법사와 칙영법사이다. 전내유내는 둘인데 창악법사와 법지법사이다. 도상은 둘인데 지생법사와 진방법사이며, 작상은 수남법사이다.」

 

 

이로 인한 내용으로 보아 당시 중초사에는 많은 무리의 승려들이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크고작은 직분을 갖고 있는 승려만 보아도 10여명이 넘기 때문이다. 당시는 국통 밑에 주통과 군통이 있었는데, 중초사에 주통이 있었다는 것은 중초사가 작은 사찰이 아닌 위치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당시에 절의 살림을 맡아하는 원주(정좌), 교육을 담당하는 교무(사사), 자금의 츨납 및 사무를 관장하는 재무(상좌) 등이 있었다는 것은 소임을 맡지 않은 승려들이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중초사에서 승악(현재의 관악산을 뜻한은 것으로 보임)에서 8월 6일 돌을 취하여, 28일에 두 개의 돌을 두 무리가 나누어 중초사로 운반을 시작하기 시작하였으며, 9월 1일에 중초사에 도착을 한 것으로 적고 있다.

 

 

 

 

부처와 보살의 공덕을 기리는 불구

 

당간이란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하기에 절의 입구에 세워 부처와 보살의 공덕을 기리는 이 당간은 당과 당간, 그리고 지주로 구분이 되어있다.

 

안양 중초사지 당간지주는 양 지주가 원래 모습대로 85㎝ 간격을 두고 동서로 서 있다. 이곳을 중초사터라고 하는 것은 서쪽지주의 바깥쪽에 새겨진 기록에 따른 것이다. 현재 지주의 기단은 남아있지 않고, 다만 지주 사이와 양쪽 지주의 바깥에 하나씩 총 3장을 깔아서 바닥돌로 삼고 있는데, 이 역시도 원래의 모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기단 위에 당간을 세우는 받침은 지주 사이에 돌을 마련하고 그 중심에 지름 36㎝의 둥그런 구멍을 뚫어서 마련하였다. 양쪽 지주에 장식적인 꾸밈이 없으며, 윗부분을 둥글게 다듬은 흔적이 있어 시대가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간구멍을 각각 지주의 상·중·하 세 곳에 뚫었다.

 

굳게 닫힌 문, 한 바퀴 돌아오니 활쫙 열려

 

2012년 3월 3일 안양으로 향했다. 이것저것 석수동 인근에 있다는 문화재들을 촬영한 욕심에서이다. 먼저 중초사터를 찾아 들었으나, 당간지주와 석탑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철문에는 굳게 잠을통이 걸려있다. 한참을 밖에서 애를 태우며 서성거리고 있는데, 마을 주민들이 토요일이면 12시에 문을 걸고 담당자가 퇴근을 한다는 것이다.

 

근 30분 이상을 안양시청과 구청, 동사무소 등에 연락을 취해 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잘 모르겠음’이란다. 어딜 가나 문화재를 이렇게 홀대하는 것에 가장 분통이 터진다. 더욱 요즈음은 주말과 휴일이면 문화재 답사를 다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이렇게 잠겨 있는 문화재를 볼 때마다 참 답답하다.

 

근처에 있다는 석수동 마애종을 먼저 찾아보고 돌아오는 길에 보니, 당간지주가 있는 곳에 사람들이 있다. 걸음을 빨리해 쫒아가니 굳게 닫힌 철문이 열려있다. 아마도 그 안에 건물이 볼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밖에서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소중한 문화재를 만난 것이다.

 

 

 

 

중초사지 당간지주는 섬세하지는 않아도, 단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서쪽 지주의 바깥쪽에 새겨진 명문은 모두 6행 123자로 해서체로 쓰여졌다. 이 글에 의하면 신라 흥덕왕 1년(826) 8월 6일에 돌을 골라서 827년 2월 30일에 건립이 끝났음을 알 수 있다. 당간지주에 문자를 새기는 것은 희귀한 예로, 만든 해를 뚜렷하게 알 수 있는 국내에서 유일한 당간지주이다.

 

중초사가 어떤 절이었는지, 지금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주변 가까운 것에 마애종들을 볼 때 아마도 당시 중초사란 절은 상당한 규모의 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한 중초사가 당간지주와 삼층석탑만을 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수많은 우리의 문화재들이 이렇게 제대로 된 기록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져간 것이다.

‘마애불’이란 커다란 바위 암벽의 면에, 부조나 선각 등으로 불상을 새긴 것을 말한다. 마애불이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마애종이 있다는 것은 그리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 않은 듯하다. 마애종이란 암벽에 새긴 종을 말하는 것이다. 안양시 만안구 석수1동 산32에는 바로 이 마애종이 있다.

석수동 산 32번지라고 해서 산을 연상할 필요는 없다. 석수동 마애종은 주차장이 있는 평지에 남서쪽을 향한 암벽에, 장방형의 목조 가구와 그 안의 종을 새긴 것이다. 현재 누각을 지어 이 마애종을 보호하고 있으며,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마다 안내판을 유심히 들여다보고는 한다. 아마도 이들에게도 마애종이라는 것이 낯설기 때문인가 보다.


종의 모양을 세밀하게 표현 해

누각 안 바위 암벽 면에 새겨진 마애종의 모양은 오랜 세월 풍화로 그리 선명하지는 않다. 상단의 보 중앙에는 쇠사슬을 달아 종을 걸어 둔 모양을 새겨 표현하였다. 그런데 그 모양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동종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굵은 쇠사슬로 매단 종의 상단은 용뉴와 음통이 확연하게 표현을 하였다.

종의 상단에는 장방형 유곽을 2개소에 배치하였는데, 그 안에 각각 9개의 원형 유두가 양각되어 있다. 이 또한 일반적인 종에서 볼 수 있는 모습 그대로이다. 종신의 중단에는 연화문이 새겨진 당좌를 표현하고, 하단에는 음각선으로 하대를 표시하였다. 아마도 이 마애종을 새긴 장인이 종에 대한 많은 지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종을 치고 있는 승려, 생동감 있게 표현 해

종의 오른쪽에는 종을 치고 있는 승려상을 조각하였다. 이 승려상의 모습은 지금의 승려들과 다를 바가 없다. 이 마애종을 조각하였을 당시의 모습도 지금과 같았던 것일까? 다만 그 법의의 형태가 현재의 승려복이기 보다는 흔히 부처상에서 보이는 그런 법의와 흡사하게 표현을 하였다. 긴 막대를 사용하여 종을 치는 모습은 당장이라도 종소리가 울려 퍼질 듯하다. 목조 가구의 위쪽에는 3개소에 화반을 표시하였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이 안양시 석수동의 마애종은 현존하는 마애종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종의 세부 표현에 있어 청동제와 다를 바 없어, 종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주변의 중초사지 유적과 연관성을 생각해 볼 때, 고려시대 초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이 곳은 이 마애종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근에는 고려시대의 절터인 중초사지가 자리하고 있으며, 이 중초사지는 그동안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문헌자료에만 남아 있던, 안양사 7층 전탑 터가 2010년에 확인되기도 했다. 그 이전 2009년에는 이 일대의 발굴조사 과정에서 안양사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기도 헸다. 이곳 일대에 고려시대에 안양사가 위치한 곳이라는 것이다.

저 마애종이 울리면 새 세상이 올까?

한참 마애종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돌아보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이야기를 하는 말소리가 들린다.

“저 마애종이 울리면 세상이 바뀌려나? 제발 좀 그랬으면 좋겠네. 사람들이 좀 편하게 사는 세상이 왔으면”



뒤를 돌아다보니 등산객인 듯한 사람들이 안내판을 보면서 하는 소리이다. 속으로 그 말에 백배 공감을 한다. ‘제발 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아마도 이 마애종을 바위에 새긴 장인도 그런 마음으로 새긴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니 저 종을 치고 있는 스님의 모습이, 지금이라도 종을 칠 듯한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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