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물레방아라고 하면, 무엇인가 애틋한 사랑이야기 한 대목쯤 생각을 하게 만든다. 물레방아는 우리의 재래농기구 중 탈곡이나 정미 또는 제분 등에 이용되었던 도구이다. 물레방아는 돌확이나 맷돌, 절구, 디딜방아, 연자방아· 등과 함께 사용이 되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늦게 생겼다고 본다. 또한 물레방아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물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마을을 흐르는 하천 등의 옆에 자리하게 된다.

 

물레방아는 바퀴를 가로지르는 방아굴대 양쪽에 있는 눌림대가, 바퀴가 물의 힘으로 돌아갈 때 살개목을 눌러 방아공이를 들어 올렸다가 내리 찧는 것이다. 대개 물레방아의 양편에 방아공이를 연결하기 때문에, 두 개의 방아공이가 번갈아가면서 방아를 찧게 된다.

 

 

너와로 꾸민 신리 물레방아

 

삼척시 도계읍 신리에는 중요민속문화재 제33호인 신리 너와집이 있다. 이 집을 찾아 들어가다가 오른쪽에 길 밑으로 보면, 냇가에 너와지붕을 올린 물레방아가 보인다. 일반적으로 물레방아는 방아의 기능을 갖고 있지만, 신리 물레방아는 사람이 기거할 수 있는 작은 공간과 외양간, 그리고 물레방아와 곡식을 쌓아두는 곳간으로 구분이 되어 있다.

 

하천 쪽으로 내려가면 방앗간을 들어가는 문이 있고, 우측으로는 외양간이 마련되어 있다. 문의 좌측으로는 반 칸 정도의 작은 방이 하나 딸려있으며, 이곳의 앞부분만 흙벽으로 바르고, 나머지는 모두 판자로 벽을 처리하였다. 두 개의 방아공이가 방앗간 안에 놓여 있는 신리물레방아. 뒤편으로 돌아가면 수차가 있고, 위에는 말라버린 물길이 나 있다. 물레방아 뒤편에 내를 건너는 쇠다리가 놓여있으며, 물은 한참 위편에서 끌어들인 듯 하다.

 

 

 

사람이 살았던 물레방아

 

신리 물레방아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있어서, 주변을 살피는데 마을 주민 한 분이 밭을 갈고 계시다. 물레방아에 대해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잠시 곡괭이질을 멈춘 마을 분은 물레방아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신다.

 

“여기 물레방아가 멈춘 지는 얼마나 되었어요?”

“한 15년 전만 해도 물레방아를 사용을 했죠.”

“그런데 요즈음은 사용을 안 하는 것 같아요?”

“어르신 한 분이 사셨는데, 연세가 들고 힘이 벅차니까 그만 두신 것 같아요. 그 어르신도 10여 년 전에 돌아 가셨구요.”

“그 이후에는 사용을 하지 않았나요?”

“아무래도 그 어르신이 생활을 하시는 것이 힘이 드셨으니까요. 원래는 어르신이 생활을 하기 위해 지은 집이었는데, 물레방아를 만든 것이니까 마을 사람들도 사용을 했죠.”

“물이 다 말라버렸네요”

“물길을 막아놓아서 그래요. 물길만 터놓으면 지금도 물리 흘러들어요.”

 

 

여기저기 다니면서 물레방아를 본 적은 많지만, 이렇게 사람이 기거하는 물레방아는 보지 못한 것 같다. 이곳에서 혼자 사셨다는 어르신의 생활이 그리 편치 않았다는 것은 한눈에 보아도 알만하다. 좁은 방은 어른 한 사람이 발을 펴고 눕기도 버거울 듯하다.

 

물레방아를 여기저기 살펴보면서 생각을 한다. 보수를 한다고 해도 이대로 놓아두면 물레방아의 기능도 사라질 판이란 생각이다. 물길을 다시 열어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정겨운 소리를 들을 수는 없을까? 그저 형태만 보여주는 많은 민속자료들. 그러나 신리 물레방아는, 어느 물레방아도 따를 수 없는 특징을 갖고 있다. 물레방아도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물길을 방아로 보내는 수로를 통나무를 파서 만든 것도 특이하다.

 

 

평생을 물레방아 간에서 혼자 외롭게 보내신 어른의 체취가 묻어있는 신리 물레방아. 너와집으로 꾸몄다는 것도 특이하지만, 그보다는 물레방앗간 안에 생활공간이 있었다는 점이 더욱 특이하다. 신리 물레방아를 그냥 마른 채 보존할 것이 아니라, 물을 다시 흘려 정겨운 방앗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흔히 너와집이라고 하면, 먼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집이 생각난다. 그것은 그 집의 분위기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와가나 초가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신리에 가면 너와집이 몇 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이 되어있다. 그 중 김진호 가옥을 찾아 너와집의 이모저모를 알아본다.

우선 너와집이란 그 지붕의 재료가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너와’란 널판으로 만든 기와로 풀이를 할 수 있다. 산간지역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소나무나 전나무 등을 길이 40~70cm, 혹은 80~110cm 정도로 자르고, 그것을 폭 30cm, 두께는 3~5cm 정더러 자른다. 그렇게 자른 널빤지 형태가 바로 너와가 되는 것이다.



150년 전에 지어진 김진호 가옥

정면과 측면이 각각 3칸 정도인 김진호 가옥은 150년 전에 지어진 집이다.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지만, 집은 말끔하게 수리가 되었다.(올 초에 답사를 했을 때는 낡은 곳이 보였다) 너와집은 방의 담벼락을 뺀 나머지 벽은 모두가 나무로 만든 판벽이다. 아마 이곳의 땅들이 돌이 많다보니 흙보다는 오히려 나무를 채취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인 듯하다.

지붕은 안에서 보면 하늘이 드러나 보일 정도이다. 그러나 나무를 이리저리 맞물려 놓아 큰 비가 아니면 그렇게 새지는 않는다고 한다. 또한 굴피나무 껍질을 벗겨 그 안에 덥기 때문에 비가 새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붕은 너와를 이은 다음 긴 나무를 얹어 고정을 시킨다. 기와 아래는 역시 둥근 통나무로 서까래를 사용한다.



지붕을 올린 모습(위), 지붕 밑의 서까래(가운데) 그리고 집안에서 올려다 본 지붕
 
실내는 보기보다 온기가 돌아

밖으로는 대문 옆에 화장실이 있다. 돌출된 이 화장실 안으로는 외양간이 자리한다. 대문은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데, 문은 좁은 편이다. 바람을 막기 위해서 일부러 문을 작게 만든 듯하다. 안으로 들어가면 좌측에는 외양간이 있고, 우측으로는 부엌이 있다. 부엌은 별도의 문이 없으며,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부엌으로 출입을 할 수가 있다.



대문 옆에 자리한 화장싱(위) 대문, 그리고 집안에 있는 옛 기물(아래)

방은 모두 세 개로 들어서면서 좌측에는 사랑방이 있고, 별도의 판마루가 깔려있다. 가운데는 샛방이 있다. 부엌 뒤편으로 안방이 있으며, 그 앞에 마루를 놓았다. 판자벽에는 사방에 문을 내어 습기가 차는 것을 막았다. 이 집에는 과거에 사용을 하던 싸리로 역은 후 방충효과를 위해 쇠똥을 발라 곡식을 저장하는 채독이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피나무 속을 파내 나무통을 만들어 무나 배추를 저장하는 김치통이 있다.

실내에 들어가면 밖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아늑함이 있다. 아마 불씨를 보관하는 ‘화터’기 아궁이 옆에 있기 때문인가 보다. 밖으로 나 있는 문은 대개 조그맣게 내었는데, 이것은 산간지방의 매서운 겨울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요즈음에는 일부러 너와집을 찾아 민박을 하고, 너와집의 체험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예전 이곳에서 실생활을 하던 분들은 불편했을 것도 같다. 우리의 전통가옥의 한 형태인 너와집. 중요민속자료 제33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 너와집의 또 다른 모습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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