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 있다면 정녕 그럴 수만 있다면

갓난 아기로 돌아가

어머니 자궁 속으로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은 때가 왜 없으리

삶은 저 혼자서

늘 다음의 파도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가든 길 돌아서지 말아야겠지

그동안 떠돈 세월의 조각들

여기 저기 빨래처럼 펄럭이누나

가난할 때는 눈물마저 모자랐다.

 

어느 밤은

사위어가는 화롯불에 추운 등 쪼이다가

허허롭게 돌아서서 가슴 쪼였다.

또 어느 밤은

그저 어둠 속 온몸 다 얼어들며 덜덜덜 떨었다

 

수원 광교산 자락에 자리를 튼 고은시인의 두고 온 시의 힌 부분이다. 이런 시 한수가 딱 어울리는 계절이 돌아왔다. 아침저녁 조금은 찬바람이 불어오고, 산과 들녘이 물들어가는 이런 계절에 누군가 아름다운 시 한 수 낭송을 한다면 제격이지 않을까?

 

 

공연예술로 자리 잡은 시낭송

 

시낭송은 공연예술로 자리를 잡았다. 전국에는 많은 시낭송을 하는 모임들이 있어, 이제는 어느 지역을 찾아가던지 시낭송이라는 장르가 그리 낯설지 않다. 이런 시낭송을 하는 낭송가들은 모임을 만들어 시낭송을 즐기고는 한다. 이런 가을에 맞는 시낭송회가 열렸다. 수원시 행궁동에 자리하고 있는 대안공간 눈의 넓지 않은 정원에서 19일 오후 330분부터 수원 시울림 시낭송회가 열린 것이다.

 

시울림 시 낭송회는 20129월에 창단이 되었다. 시울림 시 낭송회는 그동안 많은 곳을 찾아다니면서 시낭송을 통해 양로원과 병원, 그리고 따듯한 시를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다니면서 시낭송으로 마음이 아픈 이들을 치유하는데 앞장서왔다.

 

시낭송을 시작하기 전 시울림의 황혜란 회장은

우리는 시낭송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디든지 마다않고 찾아간다. 앞으로도 시낭송으로 인해 아픈 마음을 치유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곳을 찾아다닐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시울림 시낭송회 회원들이 전국대회의 시낭송 경연대회에 나가 많은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고.

 

 

8명의 낭송가들이 들려 준 아름다운 시

 

담장이가 담벼락을 타고 오르면서 가을빛에 물들어 가는 날, 대안공간 눈의 마당에는 2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 중에는 행궁동 벽화골목을 찿아 왔다가 들린 사람도 있다. 이날 시낭송은 모두 8명이 들려주었다. 박승준의 사회로 윤창원의 하모니카 연주로 시낭송회가 시작이 되었다,

 

이날 8명의 낭송가들은 조병화 시인의 늘 혹은을 처음으로 낭송한 양응자 낭송가부터, 안도현 시인의 연탄 한 장을 낭송한 윤병선 낭송가, 유영석의 사랑 그대로의 사랑을 낭송한 박종순 낭송가에 이어 심춘자(마종기의 우회의 강) 추명순(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정미경(고은의 두고 온 시), 황혜란(서정주의 자화상), 등의 순으로 자신이 선택한 시를 낭송했다. 끝으로 시울림 시낭송회 부회장인 이숙희의 누가 오어사 가는 길을 묻는다면으로 한 시간 정도 진행된 시낭송을 마쳤다.

 

 

가을이 깊어가는 날 8명의 낭송가들이 들려준 아름다운 시. 낭송을 하는 사람들은 계절과 장소, 그리고 배경음악 등에 따라 그 낭송의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한다. 이 가을에 이런 작은 시낭송 자리를 여기저기 마련할 수 있다면, 이 가을이 더 풍성해질 것만 같다.

 

모든 사람들이 더불어 즐겁다고 하면, 그 즐거움을 누군가 선물을 해야만 한다. 춤과 소리의 재능으로, 혹은 글과 말의 재주로 말이다. 그런 즐거움을 주는 무대가 마련되었다. ‘생태교통 수원2013’ 평생학습축제에 일환으로 마련된, ‘44(四人四色) 인문학 콘서트 호호화락(好好和樂)’의 무대가 바로 그것이다.

 

행궁 광장에 설치된 특설무대에 올려 진 호호화락은, 사단법인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의 주관으로 이루어진 무대였다. 시인들의 시낭송, 재담, 구연동화와 재인청 춤으로 이어진 무대였다. 사람과 사람의 화합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확인하고, 그 위대함을 실현하고자 한다는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의 취지에 맞춘 무대였다.

 

 

난장을 이끌지 못했던 무대

 

44색이라는 뜻에 맞게 네 가지의 서로 다른 장르의 문화가 무대에 올려 진 호호화락. 첫 번째 단락은 시낭송이었다. 그러나 비가 그친 후 따가운 햇볕으로 인해 오랜 시간 객석에 않아있기도 힘든 터에, 지루한 시낭송과 관람객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시(英詩)낭독으로 인해 그나마 앉아있던 관람객들까지도 자리를 떠나기도 했다.

 

두 번째 무대는 배수옥 일행이 보여준 재담이었다. ()경서도 창악회 경기도지회장 배수옥 일행이 무대에 올린 서울시 지정 무형문화재 제38호 재담소리 장대장네 재담굿, 우리의 전통 개그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꽹과리와 장고, , 태평소 등의 악기가 풍장을 울리면서, 시낭송으로 조용했던 무대가 왁자해졌다.

 

 

재담소리란 서울과 경기 지역의 대표적인 연희예술이다. 단순한 재담이 아니라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를, 익살과 해학으로 풀어가면서 소리와 연기로 관객과 호흡하는 민속극의 한 장르이다. 재담이란 단순한 말을 주고받는 만담과는 다르다. 한 마디로 재담이란 재주가 섞인 말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가 있다.

 

914() 행궁광장에는 한편에는 평생학습축제를 위한 각종 부스들이 자리를 하고 있고, 한편으로는 주민자치박람회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비가 그치고 난 뒤 생태교통 현장을 찾은 많은 관람객들이 몰려다니고 있었지만, 그들을 무대 앞 객석으로 이끌어 들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재담으로 인해 모여들었던 관객들은 동화구연이 시작되자 또 다시 자리를 떠나는 모습들이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난장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두기에는 조금은 역부족이었던 무대구성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조용한 공간에서 했더라면 충분히 박수를 받을만한 구성이었지만, 난장에서는 역시 무리였다.

 

재인청 춤으로 마무리를 한 무대

 

윤영옥 등이 출연해 들려준 동화구연은, 권선동의 유래와 팔달산 유래 등을 동화구연으로 들려주었다. 그리고 이어서 고성주와 문하생들이 출연한 재인청 춤이 추어졌다. 재인청교방무의 화려한 춤에 이어 고성주의 한량무가 호호화락의 대미를 장식했다.

 

 

고성주는 어릴 때부터 재인청의 고 운학 이동안 선생에게서 많은 재인청 춤을 직접 사사받은 장본인이다. 18세에 신내림을 받은 후 무업(巫業)을 하면서도, 꾸준히 재인청 춤을 가르치고 추어왔다. 집에는 재인청 춤을 전승시키기 위해 무용실까지 마련하여,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는 운학 이동안 재인청 춤의 춤꾼이다.

 

비록 생태교통과 평생학습축제, 주민박람회장에 모은 사람들을 무대 앞 객석으로 가득 채우지는 못했지만, 나름 의미 있는 무대였다. 1시간 30분 가까이 진행된 이날 44색 인문학 콘서트 호호화락은 또 다른 무대예술의 다양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다시 길 위에 선다

다행이다 햇살들은 천지사방에 흩어져 있다

 

그리하여 ‘헛제삿밥’으로 산 자들 제사 지내고

돌아오기 위해 이 길을 간다.

 

어디더라? 여기가

만난 듯한 구름, 저 산꼭대기의 잘생긴 소나무

바람과 함께 산중에 들어

있는 듯 있는 듯 내 돌아갈 근원을 본다.

 

가쁜 호흡 뒤에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길들이 숨어 있지만

어쩔거나! 이 또렷한 경계(境界)들을

무량수전, 안양루 오르는 계단 가운데 앉아

나 아직 적멸을 생각하지 않는다.

 

허나 오늘은 무애(無碍)

스스로의 빛남

막을 길 없다

 

 

김우영 시인의 ‘부석사 가는 길’이란 시이다. 12월 28일 밤,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에 소재한 ‘장호원 숯불갈비’라는 식당 안 한편 방안에서는 조촐한 모임이 있었다. 벽에는 ‘제2회 <수원시인상> 시상식 / 수상자 김우영 시인’이란 글귀가 보인다. 이날 모임은 수원시인협회 회원 25명 정도가 모여 송년회 겸으로 마련한 시상식 자리였다.

 

시상식이라고 찾아 간 자리가 식당

 

이날 수상을 한 김우영 시인은 벌써 안지가 20년이 훌쩍 지났다. 한참 동안이나 보지 못하다가 수원으로 다시 자리를 옮긴 후 조우를 했다. 그리고는 곧잘 함께 어울려 막걸리 잔을 부딪치고는 한다. 그러다가 시상식이 있다고 해서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 바로 식당이었다. 시인들이라 그런가? 역시 시상식장도 좀 특이하다.

 

 

송년회를 겸했다고 하는데, 식당을 빌려 시상식을 한다는 것은 꽤나 생소하다. 사실 김우영 시인은 고등학생 때 시집을 낼 정도로, ‘시의 신동’이란 칭찬을 들었던 시인이다. 1957년 화성시 봉담 출생으로, 1978년에 원간문학 신인상 시 부분 당선으로 등단을 했다. 그리고는 지역 언론에서 문화통으로 자리를 잡았다.

 

수원사랑의 주간을 역임하였으며, 중부일보의 문화체육부장을 거쳐 늘푸른 수원의 편집주간, 그리고 현재는 사단법인 한국경기시인협회 부이사장으로 수원시 인터넷 홍보지인 ‘e-수원 뉴스’의 편집주간이다. 그동안 수원문학상, 경기문학상, 오늘의 경기시인상, 한하운문학상, 수원시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시종일관 잔치집 같은 시상식

 

이 날 시상식은 수원시인협회 임애월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이 되었다. 먼저 임병호 회장의 선정경위 발표 및 인사에 이어, 세종대 석좌교수인 정순영 시인의 축사, 그리고 수상자인 김우영 시인의 약력보고와 시인상 시상식으로 이어졌다.

 

수원시인협회 임병호 회장은 선정경위를 통해 “김우영 시인은 한국문단에서는 물론 수원문학을 위해서도 큰 일을 했다. 김우영 시인은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문영이 높았지만 잘 나서지를 않는 과묵한 사람이다. 약관에 전국 동인지인 ‘시림(詩林)을 주재한 사실에서도 잘 입증된다. 김우영 시인을 수상자로 선정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고 했다.

 

시상식을 마친 후 김우영 시인은 수상소감을 “부끄럽다. 창작활동에 소홀한 요즘이라 사양했지만 결국 받아들였다. 더는 게으르지 말라고 주는 상이라는 말에 말문이 막혔다. 앞으로 열심히 창작활동을 하겠다.”고 했다.

 

 

시상식 후에는 시인들의 시낭송까지 곁들여졌다. 식당에서 열리는 시상식도 놀랍지만, 술 한 잔에 취흥에 겨워 시낭송까지 이어지는 시인들의 시상식. 그동안 숱한 시상식을 다녔지만, 이런 시상식은 또 처음이다. 아마도 앞으로 이런 시상식을 볼 기회는 그리 많지는 않을 듯하다. 시 한 줄 못 쓰는 위인인지라 그런 자리가 조금은 버겁기 때문이다.

가을 단풍을 보고 흔히 이야기들을 하는 것이 '산이 불탄다' 라는 표현을 한다. 그렇게 불이 타는 듯한 아름다움을 보기란 하늘에 별따기다. 그 아름다움이 도대체 어느 정도이기에 불이탄다는 표현을 하는 것일까? 그렇게 많이 설악산을 찾아가고 단풍이 절경이라는 곳을 다 찾아보았지만, 아직도 불이 탄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러나 오늘 모악산 고찰에 오르면서 내가 만난 단풍은 바로 불이탄다는 그런 단풍이었다. 사람들은 그 단풍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 정신이 없다. '불타는 단풍' 은 내일이 최 절정이라는 모악산 산사의 단풍은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 지난 주에 비해 훨씬 더 붉어진 단풍은 아름다움을 논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 붉은 단풍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놀라을 정도로 붉은 단풍. 그리고 노랫소리. 박수를 치며 즐거워 하는 사람들. 오늘 모악산의 고찰 대원사에는 불우한 어린이를 돕기 위한 사단법인 굿월드 자선은행이 주관하는 '유성운 통기타 가을 콘서트'가 열렸다, 등반에 나선 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박수를 치며 즐거워 한 것도, 아마 붉게 타는 단풍이 곁에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7일에도(일요일) 오전 11시 30분과 오후 1시 30분 두 차례 음악과 함께 시낭송을 산사에서 즐길 수가 있다. '붉은 단풍이 불타는 것을 보고 싶거든 모악산으로 가라' 고 이야기를 하고 싶다. 최절정인 모악산 단풍을 즐겨보기를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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