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후 1시부터 화성행궁 화령전에서 열린 5회 정조대왕 숭모 전국백일장 대회에서 뛰어난 글 솜씨로 선정된 입상자들의 시상식이 22일 오후 6시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있었다. 수원시인협회가 주최를 하고 정조대왕 숭모 전국백일장 집행위원회 주관, 수원문화재단이 후원한 백일장에는 500여명이 실력을 겨루었다.

 

이날 시상식에는 70여명의 수상자와 가족들이 참여를 했으며, 이번 백일장에는 대전을 비롯지방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참석을 해 실력을 겨루었다. 이날 시상식에는 임병호 경기시인협회 이사장을 비롯하여 김우영 수원시인협회 명예회장 등 시인들도 참석을 해 수상자들을 축하해 주었다.

 

5회 전국백일장에는 초등부에서 장원 구도윤(정자초 4)을 비롯하여 25명이 입상을 했으며, 중등부에서는 장원 김경모(천천중 3) 17명이 입상을 했다. 고등부에서는 안양예고 1학년에 재학 중인 유예정이 장원을 했으며, 그 외 17명이 입상을 했다. 대학, 일반부에서는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4학년인 염보라 양이 장원을 차지했으며, 그 외 16명이 입상을 했다.

 

 

해가 갈수록 글 솜씨들이 좋아져

 

인사말에 나선 수원시인협회 김광기 회장은 인문학 시대에 문학예술은 예술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다. 또한 산업분야에서 스토리텔링의 소재로 예술을 한층 발전시키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인사말을 했다. 이어서 축사에 나선 임병호 경기시인협회 이사장은 훌륭한 작품을 써준 여러분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해가 갈수록 글 솜씨들이 점점 좋아지고 있어 기쁘다앞으로 여러분들이 모두 열심히 글을 써 시인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초등학생부 참방부터 시상에 들어가 일반부까지 시상을 마친 후, 김우영 수원시인협회 명예회장이 수상자로 나선 장원 입상자들에게는 염태영 수원시장의 상장이 주어졌다.

 

오늘 우리 아이가 상을 받는다고 해서 함께 왔어요. 아이가 이렇게 상을 받는 것도 처음이지만 앞으로 글쓰기를 열심히 연습을 해 내년에는 꼭 장원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초등학교 입상자의 어머니라는 이아무개씨는 연신 아이가 대견스럽다고 즐거워한다.

 

 

뜻하지 않은 큰 상을 너무 고마움을 느낀다.

 

김우영 수원시인협회 명예회장은 이번 일반부의 장원은, 1등과 2등을 나누기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만큼 솜씨들이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웠다고. 시상식이 끝난 후 대학, 일반부 장원을 한 단국대학교 문예창착과 4학년인 염보라 양을 만나보았다.

 

어머니께서 몸이 불편하셔서 병원에 입원을 하셨었어요. 그런데 병원에 찾아가보니 같은 병실에 할머니 한 분이 입원해 계셨는데 거의 운명을 하시기 직전이었죠. 그런데 자식들이 아무도 돌보지 않는 거예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글 소재로 삼았죠. 요즈음은 홀몸 어르신들이 많이 계셔서 그런 문제를 갖고 글을 썼어요.”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 시인이 되고 싶다는 염보라 양은 점점 고령화가 되어가는 사회를 바라보면서 그런 모습들을 자연스럽게 글로 담아냈다고 한다. 시상식을 마친 후 한 어머니는

아이들이 이렇게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백일장을 마련해 주어서 감사하다. 앞으로 아이에게 더 많은 책을 읽도록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겠다. 그리고 내년에도 꼭 참석을 하여 더 실력을 쌓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한다.

 

조선시대 문예부흥을 일으킨 정조대왕의 혁신적인 위업과 문예사상, 효 정신을 계승하고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의 역사성을 널리 알리고자 개최하는 정조대왕 숭모 전국백일장. 이번 글 제목은 소리, 행궁의 가을, 보름달이 시제로 주어졌었다. 백일장에는 수원을 비롯하여 오산, 화성, 용인, 안양, 김포, 안성 등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참여했으며, 그 외에도 인천 대전, 춘천, 보령 등에서도 일반부에 참가를 해 전국백일장 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예로부터 시()와 서(), 그리고 그림(=)은 선비정신의 표상이었다. 이 세 가지를 떼어놓고는 문인예술을 논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세 가지가 한데 어우러져 일치된 경우를 삼절(三絶)’이라 했다. 23일 오후 3시 수원시 영통구 창룡대로 265에 소재한 수원박물관(한국서예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는 2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 , 화의 향연개막식을 가졌다.

 

이번에 전시회를 연 이 , . 화의 향연은 일찍 전시가 기획되어 있었지만, 진도 앞바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인해 그동안 미루어 왔던 기획전이다. 한국서예박물관이 주최를 하고, 수원문화원이 주관을 한 이 전시회 개막식애는 원로시인인 고은 시인을 비롯해, 염상덕 수원문화원장, 임병호 경기시인협회장, 김우영 수원시인협회장, 김정수박물관 사업소장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산수화 시인들 대거 참여

 

이번 기획전은 수원, 화성, 오산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시인 50명의 심상을 그린 창작시를, 서예와 문인화가들 50명이 맡아 서화를 그렸다. 시인 한 사람이 무두 2작품씩을 제출하여 추첨으로 선정한 시화 작가들 50명이 맡아서 작업을 한 것으로, 모두 100점의 묵향 가득한 서화작품으로 거듭나게 된 것.

 

이번 전시를 위해 수원시인협회에서 시인 50명을 선정하고, 서화가 3명으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에서 서화가 50명을 각각 선정하여 작업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서화가 나타나는 시각적 조형미와 시어가 전하는 함축된 뜻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이번 , , 화의 향연은 기획전시실에서 622일까지 한 달간 전시를 갖는다.

 

 

오늘 이렇게 삼절의 아름다움을 감상 할 수 있는 좋은 전시회를 갖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수원을 비롯해 화성과 오산 등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많은 시인들과 서화가들이 함께 작업을 한 것도 처음이지만. 이렇게 100점이나 되는 많은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큰 행복입니다. 대단한 기획전을 만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오산에서 구경을 왔다는 경아무개(, 44)는 꼼꼼하게 보고 가겠다면서 휴대폰으로 일일이 촬영을 하고 있다. 함께 왔다는 이아무개(, 45)

정말 대단한 구경을 하고 갑니다. 앞으로 이런 기획전이 더 많이 열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렇게 수원에서만 할 것이 아니라, 화성과 오산에서도 이 기획전이 연이어 열렸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기도.

 

 

고은시인 서장대에서등 수원관련 시 출품

 

시작에는 꼭 다음의 시작이 있으리라

해가 저문다

그 많은 것들에 사로잡혀 떠돌기보다

하나나 둘과 함께

고스란히 마음 드러내고 사는 삶 들이

저마다 이름 없는 불빛을 밝힌다.

 

고은 시인의 서장대에서 앞머리 부분이다. 고은 시인은 서장대에서와 원천호수에서등 두 편의 시를 출품했다. 고은 시인의 시는 근당 양택동 서화가가 글씨를 썼다. 수원시인협회장 김우영은 부석사 가는 길길 위에서두편을 출품하고, 글씨는 도암 김병학이 맡아서 썼다.

 

 

이렇게 시인 50명의 시를, 서화가 50명이 맡아서 글과 그림을 그렸으며, 이 작품들은 전시를 마친 뒤 한 편은 시인이, 한 편은 글과 그림을 맡아서 작업을 한 서화가가 소장하게 된다고 한다. 모처럼 지역에서 만날 수 있는 50명의 시인과 50명의 사화가가 작업을 한 , , 화의 향연’. 많은 분들이 수원박물관을 찾아 그 멋에 흠뻑 취해보기를 권유한다.

 

전국의 글께나 쓴다는 실력자들이 모였다. 97() 정조대왕의 어진을 모신 화령전. 2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서, 원고지를 받아들고 여기저기 흩어진다. 수원시인협회(회장 김우영)가 주관하는 4회 정조대왕 숭모 전국백일장의 모습이다. 이 행사는 수원시가 주최하고, 수원문화재단, 경기시인협회, 경기일보가 후원을 했다.

 

화성행궁은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후에 정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장헌세자라 하였고, 1899년에 의황제로 봉해졌다.) 혜경궁홍씨(사도세자가 의황제가 된 후 혜경궁홍씨도 의황후가 되었다)의 묘인 융릉에 전배하기 위하여 행행 때에 머물던 임시 처소이다. 정조 1310월에 이루어진 현륭원 천봉부터, 정조 241월까지 12년간 13차례에 걸친 원행을 정기적으로 행하였다. 이때마다 정조대왕은 화성행궁에 머물면서 여러 가지 행사를 거행하였다.

 

 

화령전은 정조대왕이 승하한 뒤 순조 1년인 1801년에, 행궁 곁에 건립하여 정조대왕의 진영을 봉안한 곳이다. 행궁은 사적 제478호로, 화령전은 사적 제115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화령전 안 운한각은 정조의 어진을 모신 전각이다. 화령전의 정전인 운한각의 앞쪽에는 악공들이 제사를 지낼 때 연주를 할 수 있는 월대가 있고, 장대석으로 쌓은 기단에는 세 곳의 계단이 놓여있다.

 

정조대왕을 기리며

 

오후 2시가 조금 넘어 시제가 발표되었다. 시제는 <자전거>, <100년 후>, <화령전>이었다. 아마도 생태교통 수원2013’ 기간이기 때문에 그 상징인 <자전거>를 시제에 포함시킨 듯하다. 열심히 휴대폰으로 검색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아마 화령전에서 열리는 백일장에, 시제에 백일장이란 제목이 있어 검색을 하는 듯하다.

 

 

백일장에는 오후 1시가 조금 넘자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행궁 앞 안내소에는 연신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바쁘게 움직인다. ‘100명 정도가 모일 듯해요라고 오전에 시인협회 김우영회장이 이야기를 했지만, 정작 시간이 되자 그 배가 되는 사람들이 백일장에 참가를 한 것이다.

 

초등학생부터 일반인까지 많은 사람들이 화령전 여기저기 흩어져 글을 쓴다. 풍화당 안에도 찾아들었다. 정조대왕의 어진을 모신 운한각의 뜰에도, 사람들은 열심히 시어(詩語)를 떠올리기 위해 고민을 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장원은 제가 차지해요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 학생이 보인다. 중학교 1학년이라는 남자아이는 진지하게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모습이 보인다. 시제를 무엇으로 잡았느냐고 물으니, 화령전이라고 한다. 화령전이라는 제목은 어린학생이 감당하기에는 조금 어려울 듯하다. 잘 쓸 수 있겠느냐고 몰었더니, 이 학생의 대답이 걸작이다.

 

 

장원은 이미 제가 맡아놓았어요. 저는 그동안 전국 백일장에서 여러 번 수상도 했고요.” 이 학생의 자신감이 도가 지나치는 듯하지만, 그런 자신감이 있다는 것이 대견하다. 그만큼 어려운 시제를 갖고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부인 듯한 한 사람은 연신 검색을 한다. 무엇을 검색하느냐고 물으니까, 자전거를 제목으로 잡았는데, 생태교통에 대한 검색을 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2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인 제4회 정조대왕 숭모 전국 백일장. 한 낮의 햇살이 아직도 따가운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저마다 열심히 글을 적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누가 장원을 차지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참가를 했다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는 한 학생의 말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섬 한 끝이 나를 불러

다시 돌아와 선

애월리 바닷가

 

不感

마른 생각 하나

솔숲에 묻는다.

 

꼭 손바닥만 하던

나의 열일곱,

시간은 늘

위태로운 몸짓으로

바다의 둥지 속으로 풀려가고

 

해풍에 절은 기다림이

점박이 나리꽃으로 붉던 날

억새꽃 마른 꽃대로

일어서던 섬이여(하략)

 

 

임애월의 시집 <정박 혹은 출항>에 실린 다시 애월리에서라는 시의 한 부분이다. 2013년 새해 들어 첫 만남을 가진 시인 임애월(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석천리 거주, , 54). 그녀를 만난 곳은 허름한 수원천변의 한 선술집이다. 그런 곳을 마다않고 선뜻 자리를 함께 해준 임애월 시인의 본명은 홍성열(洪性烈)이다.

 

제가 필명을 임애월(林涯月)이라고 사용하면서, 사실은 많은 분들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셨을 것 같아요. 숲과 물가 그리고 달, 그 세 가지를 아우르는 이름이거든요. 제주를 그리는 애월이란 호를 많은 분들이 시용하고 싶어 하셨는데, 제가 먼저 필명으로 사용을 하서 정말 죄스럽기도 하고요

 

책 읽기를 좋아했던 섬소녀

 

시인 임애월은 제주 출신이다.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15년 정도가 되었다. 정식으로 등단을 하기도 전에, 그 이전부터 벌써 문인지에 시가 실릴 정도였다. 그만큼 차곡차곡 쌓아왔던 어릴 적 책읽기가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었는가 보다.

 

기자님은 어릴 때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저희가 살던 곳은 어릴 적 교과서 외는 책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어요. 책을 읽는 것이 행복해 오빠들이 만화책을 빌려오면, 그것을 보고 자려고 밤늦게까지 졸린 눈을 부비며 기다리고는 했죠. 그래도 정말 재미있는 책은 국어 교과서였어요. 제가 초등학생 때 오빠가 중학교를 다녀서 오빠 국어책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죠. 오빠가 고등학생일 때는 제가 중학생인데 고등학교 교과서를 보고는 했어요.”

 

어릴 적부터 책읽기가 좋았다는 섬 소녀 임애월은 그렇게 글과 접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한 후 서울을 거쳐 수원으로 화서 정착을 했다. 아이가 중학교를 다닐 때 어머니회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수원문화원(당시 심재덕 원장)에서 백일장이 있다고 주변에서 나가보라는 권유를 했다.

 

벌써 20년이나 지났네요. 수원에서 하는 백일장은 초, , , 일반으로 나뉘어졌는데, 당시 일반부는 전국에서 많은 분들이 참가를 했어요. 거기서 운 좋게 시 부분 장원을 한 것이죠. 그 뒤 임병호 선생님께서 하시는 문학 강의 등을 듣게 된 것이 본격적으로 시를 배우게 된 계기가 되었고요. 등단은 1999년에 했는데, 그 이전인 1998년에 경기시학에 글이 실리고는 했어요.”

 

시인이 되어 정말 행복하다

 

임애월 시인은 감성으로 시를 쓴다고 한다. 시상(詩想)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는 주저없이 여행을 떠난다고. 그곳에서 만난 모든 것이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글쎄요, 사람들은 흔히 시인을 영감설과 장인설로 나누고는 하는데, 저는 영감설 쪽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저는 어떤 지시에 의해서 80% 이상의 시를 쓰고 있으니까요. 시는 억지로는 되지 않잖아요. 오히려 억지로 글을 쓰려고 하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듯도 하고요. 그저 어느 순간 떠오르는 시어를 적어갈 때가 가장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듯해요

 

 

그저 막걸리 한 잔 앞에 놓고 이야기를 하는데도 즐겁다. 시를 쓰면서 가장 좋은 일이 무엇인가를 물어보았다.

 

세상 모든 사람은 직업을 가지면 정년이라는 것의 올무에 갇히게 되죠. 하지만 시인은 그런 것이 없어요. 저는 시인이 되어서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나이가 아무리 먹어도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해요. 물론 시를 쓴다는 것이 생활에 수단은 되지 않겠지만, 기댈 수 있다는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죠. 시는 자신과의 대화라고 하잖아요. 이 다음에 더 나이가 먹어도 나 자신을 들여다 볼 수가 있다는 것이죠.”

 

표정조차도 정말 행복해 보인다. 그 동안 <정박 혹은 출항><어떤 혹성을 위하여> 등 두 권의 시집을 펴냈다. 시를 쓰면서도 지역에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 임애월 시인은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와 수원시인협회 이사, 국제 PEN 한국본부 경기자역위원회 사무국장, 유네스코 경기도협회 이사, 기전문화연구회 연구위원 등을 역임하고 있다.

 

수원문학상과 경기문학인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임애월 시인. 시인이어서인가? 마주 앉아 있으니 시인의 고향 제주 바닷가의 한적한 길을 걷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절반쯤 버리고 나니

바다가 보였다

남양만의 밀물이

가슴 속으로 흘러왔다.

 

임애월 시인이 살고 있는 화성시 우정읍 석천리를 그린 시이다. 늘 그렇게 자연과 대화를 하고 사는 임애월 시인. 언젠가는 그녀를 졸라대 바람을 따라 길을 나서고 싶다.

다시 길 위에 선다

다행이다 햇살들은 천지사방에 흩어져 있다

 

그리하여 ‘헛제삿밥’으로 산 자들 제사 지내고

돌아오기 위해 이 길을 간다.

 

어디더라? 여기가

만난 듯한 구름, 저 산꼭대기의 잘생긴 소나무

바람과 함께 산중에 들어

있는 듯 있는 듯 내 돌아갈 근원을 본다.

 

가쁜 호흡 뒤에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길들이 숨어 있지만

어쩔거나! 이 또렷한 경계(境界)들을

무량수전, 안양루 오르는 계단 가운데 앉아

나 아직 적멸을 생각하지 않는다.

 

허나 오늘은 무애(無碍)

스스로의 빛남

막을 길 없다

 

 

김우영 시인의 ‘부석사 가는 길’이란 시이다. 12월 28일 밤,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에 소재한 ‘장호원 숯불갈비’라는 식당 안 한편 방안에서는 조촐한 모임이 있었다. 벽에는 ‘제2회 <수원시인상> 시상식 / 수상자 김우영 시인’이란 글귀가 보인다. 이날 모임은 수원시인협회 회원 25명 정도가 모여 송년회 겸으로 마련한 시상식 자리였다.

 

시상식이라고 찾아 간 자리가 식당

 

이날 수상을 한 김우영 시인은 벌써 안지가 20년이 훌쩍 지났다. 한참 동안이나 보지 못하다가 수원으로 다시 자리를 옮긴 후 조우를 했다. 그리고는 곧잘 함께 어울려 막걸리 잔을 부딪치고는 한다. 그러다가 시상식이 있다고 해서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 바로 식당이었다. 시인들이라 그런가? 역시 시상식장도 좀 특이하다.

 

 

송년회를 겸했다고 하는데, 식당을 빌려 시상식을 한다는 것은 꽤나 생소하다. 사실 김우영 시인은 고등학생 때 시집을 낼 정도로, ‘시의 신동’이란 칭찬을 들었던 시인이다. 1957년 화성시 봉담 출생으로, 1978년에 원간문학 신인상 시 부분 당선으로 등단을 했다. 그리고는 지역 언론에서 문화통으로 자리를 잡았다.

 

수원사랑의 주간을 역임하였으며, 중부일보의 문화체육부장을 거쳐 늘푸른 수원의 편집주간, 그리고 현재는 사단법인 한국경기시인협회 부이사장으로 수원시 인터넷 홍보지인 ‘e-수원 뉴스’의 편집주간이다. 그동안 수원문학상, 경기문학상, 오늘의 경기시인상, 한하운문학상, 수원시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시종일관 잔치집 같은 시상식

 

이 날 시상식은 수원시인협회 임애월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이 되었다. 먼저 임병호 회장의 선정경위 발표 및 인사에 이어, 세종대 석좌교수인 정순영 시인의 축사, 그리고 수상자인 김우영 시인의 약력보고와 시인상 시상식으로 이어졌다.

 

수원시인협회 임병호 회장은 선정경위를 통해 “김우영 시인은 한국문단에서는 물론 수원문학을 위해서도 큰 일을 했다. 김우영 시인은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문영이 높았지만 잘 나서지를 않는 과묵한 사람이다. 약관에 전국 동인지인 ‘시림(詩林)을 주재한 사실에서도 잘 입증된다. 김우영 시인을 수상자로 선정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고 했다.

 

시상식을 마친 후 김우영 시인은 수상소감을 “부끄럽다. 창작활동에 소홀한 요즘이라 사양했지만 결국 받아들였다. 더는 게으르지 말라고 주는 상이라는 말에 말문이 막혔다. 앞으로 열심히 창작활동을 하겠다.”고 했다.

 

 

시상식 후에는 시인들의 시낭송까지 곁들여졌다. 식당에서 열리는 시상식도 놀랍지만, 술 한 잔에 취흥에 겨워 시낭송까지 이어지는 시인들의 시상식. 그동안 숱한 시상식을 다녔지만, 이런 시상식은 또 처음이다. 아마도 앞으로 이런 시상식을 볼 기회는 그리 많지는 않을 듯하다. 시 한 줄 못 쓰는 위인인지라 그런 자리가 조금은 버겁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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