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길 둘

 

경기도청의 벚꽃이 만개를 했습니다. 그런 길을 따라서 걷다가 보면, 사람들은 괜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자연친화적인 길이나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한다는 것은 그래서인가 봅니다. 벚꽃 길을 벗어나 팔달산 위로 오르다가 보면, 진달래가 여기저기 소나무와 다른 색조를 띠며 피어 있습니다.

 

팔달산을 싸안고 있는 성곽. 화성은 그렇게 자연을 보듬어 안고 길게 누워 있습니다. 연분홍 진달래가 성벽에 기대다시피 피어 있습니다. 소나무 숲길을 따라 심호흡을 한 번 해봅니다. 짙은 솔향이 가슴으로 밀려들어 옵니다. 바로 이런 숲이 내음으로 인해 이 길이 좋아지는가 봅니다.

 

 

흙을 만나는 즐거움

 

사실 길이란 것은 어디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도심의 한 복판에서 먼지가 이는 흙길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입니다. 그 길을 밟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고 하니까요. 천천히 화성의 바깥 길을 남쪽으로 따라 걸어봅니다. 걷다가 눈을 돌려보니 진달래가 지천에 깔려 있습니다.

 

419(), 역시 4월의 꽃답게 푸른 소나무 숲 아래 그렇게 수줍게 피어있습니다. 4월에 만난 진달래는 언젠가 헤어짐에 눈물을 흘리던, 아련한 여인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 계절만 되면 한 번씩 몸살을 앓는 것도, 진달래를 닮은 여인 생각이 나기 때문인가 봅니다. 저만큼 화양루의 지붕이 삐죽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앞서가던 여인이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화양루 바깥 길을 돌아 다시 북쪽으로 성곽이 이어집니다. 그곳을 천천히 걸어봅니다. 화성을 바라보고 핀 작은 꽃들이 성벽을 기어오르기라도 할 것처럼 성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습니다.

 

자연을 만날 수 있는 화성 외곽 길

 

성벽 밑으로 까치 한 마리가 부리로 연신 땅을 쪼아댑니다. 아마 그곳에 무엇인가 먹을 것이라도 있는 모양입니다. 사람이 가까이 가도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소나무 숲에는 진달래가 가득합니다. 그 색의 조화가 정말 오묘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누가 이렇게 아름다운 색채를 표현 할 수 있을까요? 자연의 신비가 경이롭게 느껴집니다.

 

 

화양루 밖에서 용도를 따라 걷다가 보면, 그 끝에 암문과 포사가 보입니다. 그리고 길에는 진달래들이 피어 있어, 코를 벌름거리면서 걸어도 봅니다. 팔달산의 봄을 마음껏 맡아보는 것이죠. 누군가 힐링을 하는 듯 붉은 진달래 틈으로 걸어갑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 팔달산에 있습니다. 그것도 도심 한 복판에 말입니다.

 

어찌 수원이란 곳이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이런 맨흙을 밟으면 걸을 수 있는 길이 지천에 널려있기 때문입니다. 물과 바람, 산과 숲, 그리고 자연과 이야기를 하는 성곽. 이것이 바로 화성 외곽 길입니다. 정말 걷고 싶은 그런 길입니다. 이 길만 걸으면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람과 자연이 만나는 곳

 

화성을 흔히 자연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만큼 화성은 자연적 지리를 최대한 활용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곳, 자연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이 자연인 양, 그렇게 조용히 자리를 틀었기 때문입니다. 가파른 언덕을 내려오다가 보면 약수터가 보입니다. ‘팔달약수터’, 걷느라 마른 목을 축일 수가 있습니다. 이 또한 팔달산이 갖는 아름다움입이다. 그저 누구에게나 많은 것을 주기 때문입니다.

 

시원한 물 한잔을 마시고나면 성곽을 도로가 지나기 때문에, 아치형으로 성을 조형해 길에게 자리를 내준 곳이 있습니다. 이 아치형의 입구는 예전에 내 것이 아닙니다. 이곳은 19일에 벚꽃이 만개를 했다가, 이미 바람에 꽃잎이 날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 바쁘고요. 벚꽃과 화성은 그렇게 하나인 양, 딱 달라붙어 있습니다.

 

 

봄을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길 둘은 화성의 외곽 길 중 남쪽길입니다. 팔달산 남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화양루에서 팔달문까지. 그렇게 자연과 숲, 꽃과 바람이 하나가 되어 걸었습니다. ‘힐링제대로 한 셈이죠.

동백은 그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추백(秋栢), 동백(冬栢), 춘백(春栢) 등으로 구분이 된다. 난 개인적으로는 추백이나 동백보다 봄철에 꽃을 피우는 춘백이 좋다. 겨우내 꽃을 피우고도 모자라 5월까지도 꽃을 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많은 나무가 함께 뒤엉켜 있는 모습을 보면, 그 꽃에서 민초들의 어우러진 삶을 연상할 수 있어서 더욱 좋다.

내가 서천군 서면 마량리 산 14번지 일대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169호인 ‘마량리 동백나무 숲’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우선은 아름답게 꽃을 피우는 동백 숲도 있지만, 당집과 동백정, 그리고 서해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볼거리가 한꺼번에 모여 있는 곳은 찾아보기가 쉽지가 않다.


5월을 아름답게 꾸미는 마량리 동백

지난 5월 4일 서천군 마량리 동백나무숲을 찾았다. 이곳은 80주가 넘는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100주도 채 안 되는 동백나무 군락이지만, 주변을 덮고 있는 모습을 보면 장관이 따로 없다. 이곳의 나무들은 강한 해풍으로 인해 키는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옆으로 퍼져나간 나뭇가지들은 오히려 무성한 숲을 이루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라나고 있다.

요즈음은 작은 나무들을 키워 더 넓은 지역에 동백 숲이 조성이 되고 있어 그도 볼만하다. 이곳에 동백나무를 처음 심은 것은 약 500여 년 전이라고 한다. 전설에는 마량리에 주둔하던 수군첨사가 꿈에 바닷가에 있는 꽃 뭉치를 많이 증식시키면, 마을에 항상 웃음꽃이 가시지를 않을 것이란 계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수군첨사는 진감인가 하여 바닷가에 나가보니, 정말로 꽃이 있었단다. 그것을 증식시킨 것이 바로 현재의 마량리 동백나무숲이라는 것이다. 동백나무숲 옆으로는 해송이 자라고 있는데, 이 두 숲이 방풍림 역할을 하고 있다.

서해를 내려다보는 동백정의 정취

사람들은 동백나무가지가 터널을 이루고 있는 계단을 오르며,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연신 웃음소리가 그치지를 않는다. 아마도 500여 년 전 이곳에 동백을 심은 수군첨사의 꿈대로,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시지를 않기 때문인가 보다. 동백꽃이 땅에 떨어져 그림처럼 아름답다. 떨어져 내린 꽃도 이렇게 아름다운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오르면 누각으로 된 동백정이 있다. 지난해인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보수공사 중이라 미쳐 정자에는 오르지를 못했다. 정자에 올라 서해를 내려다본다. 5월의 시원한 해풍에 몸을 맡긴 채, 한 없이 이곳에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이 절경에 세월이 가는 것을 모르고 머물지 않았을까?

연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나이 지긋한 연인들도 이곳을 오면 젊은이가 되나보다. 젊은 연인들보다 오히려 나이가 든 부부들이 더 많이 찾는 듯하다. 아마도 동백나무숲과 동백정의 정취 때문은 아닐는지. 동백나무숲만으로도 족하거늘, 동백정이 그 풍취를 더하고 있다.



멀리 작은 배 하나가 지나간다. 그런 모습을 보고도 글 한자 남길 수 없는 마음이 안타깝다. 정자에서 내려 동백나무숲 안을 들여다본다. 가지가 이리저리 서로 맞물리며 자라고 있다. 그저 이곳을 오면 민초들의 얼크러진 삶이 연상되는 것도, 이렇게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가지 때문이다.

늘 찾아오는 곳이지만, 늘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곳. 마량이 동백나무숲은 주변 절경과 어우러져 늘 미소를 머금게 한다. 아마도 500년 전의 이 전설은 앞으로도 영원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힘들고 지쳤을 때 이렇게 찾아와 새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뒤돌아 오는 길에 누군가 동백꽃 세 송이를 울타리에 올려놓았다. 그것을 바라다보며 괜히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다. ‘저 것만 보고도 글 하나는 쓸 수 있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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