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답사.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보면 참으로 희한한 것들을 만날 수가 있다. 주로 넘녀의 성을 상징하는 것들은 민속자료로 지정이 되는데, 그런 것들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애틋한 사랑이야기 한 자락쯤은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재미를 느끼는 것이기도 하지만.

충북 단양군 적성면 각기리. 이름부터가 유별나다. 이 마을에 가면 마을 입구에 돌이 서 있다. 흔히 ‘입석’ 혹은 ‘선돌’이라고 하는 이 돌은, 청동기시대부터 전해진 것으로 마을 입구에 세워진 것이다. 그런데 이 마을입구에 세워진 선돌은 두 개의 선돌이 성을 상징하고 있어 특이하다.


남녀를 상징하고 있는 두 기의 선돌

꽃이 피는 철이나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꽃구경이나 단풍구경이다 하면서 여행을 간다고 하면서 난리들을 피는데, 혼자 떠나는 문화재 답사는 늘 쓸쓸하다. 그러나 그 하나하나가 주는 의미를 되새기고, 그것을 정리한다는 것 또한 남들이 알지 못하는 재미가 있기도 하다.


 


각기리의 선돌을 보고 한참을 고민을 했다. 왜 두 개의 선돌을 멀찍이 떨어트려, 그 선돌을 금줄로 연결을 했을까? 정월에 마을 주민들이 모여 정성껏 제를 지낸 듯, 암돌과 숫돌을 연결한 금줄에 길지도 남아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이 두 개의 돌을 짚으로 이엉을 엮어 둘러쳤다는 것이다.

남성을 상징하는 숫돌은 서쪽에 서 있는데 끝이 뾰족하고 높이가 높다. 높이 275cm 너비 220cm, 두께 60cm 정도로 세모꼴 형태에 가깝다. 이 숫돌의 둘레에는 높이 65~70cm 정도의 단을 쌓아 놓았다. 넓이는 4m 정도에 길이는 3.5m 정도이다. 이런 단을 쌓은 것으로 보아 이 선돌은 마을의 신표로 제를 지냈음을 알 수 있다.

숫돌에 비해 동쪽에 서 있는 암돌은 넙적한 것이 특징이다. 높이는 180cm, 너비는 171cm, 두께 37cm 정도 규모의 자연석이다. 이 두 개의 돌은 17m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데, 마을에서는 이 돌을 각각 숫바위와 암바위라고 부른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암바위는 이엉을 엮어 치마처럼 밑 부분을 둘렀고, 숫바위는 머리 부분에 씌워놓았다.


둘러친 이엉이 성을 상징하고 있어

그저 바라다만 보아도 이 두개의 선돌이 성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돌을 두른 짚으로 만든 이엉 때문이다. 숫돌은 모자를 씌우듯 했고, 암돌은 치마를 둘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웃음을 터트리고 만다.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가린 것이다. 그 이엉으로 인해 양편 돌의 성별이 확연해진다.

마을이름인 <각기리>는 이 선돌의 모습이 뿔처럼 생겼다고 하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각기리의 선돌은 도로변 마을 초입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은 작은 골짜기의 물이 합쳐지는 곳이다. 여러 주변 상황을 살펴볼 때 각기리에는 선사시대부터 주변에 집단으로 사람들이 주거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각기리에 세워진 두 개의 선돌은 왜 남녀의 성을 상징하는 모습일까? 그것은 아마 이 마을의 여건으로 볼 때 풍농과 다산을 기원하는 것이라고 본다. 남자와 여자의 성기를 상징하는 마주 봄 두 개의 돌. 그 두 개의 돌을 금줄로 연결을 해 놓았다. 끈끈한 정으로 하나가 되는 부부와 같은 모습이다.

어느 곳에 있던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부부를 상징하는 암바위와 숫바위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것 하나에도 해학을 알고 멋을 아는 선조들의 지혜에 그저 감탄만 할 뿐이다


절구는 곡식을 찧는 농기구의 일종이다. 절구 외에도 곡식을 찧는 기구는 방아가 있다. 방아는 연자방아, 통방아, 물레방아 등이 있다. 그 모습들은 저마다 다르고, 이용하는 방법도 다 다르다. 그러나 절구는 쇠절구, 돌절구, 나무절구로 구분을 하지만, 그 형태나 사용하는 방법은 같다.

사실 절구만큼 우리네 실생활과 밀접한 농기구도 그리 흔하지 않다. 절구는 곡식을 찧는 외에도 콩을 삶아 찧어서 메주를 만들거나, 그 외에 여러 가지 식물을 찧을 때도 사용을 했다. 그런 절구통은 예전에는 집집마다 한 두 개씩은 다 있었다. 이 절구를 요즈음은 인테리어를 하는데 사용하기도 하지만, 과거의 절구는 여인들과 가장 가깝게 실생활에 사용이 된 농기구 중 하나이다.


성을 기억해 낼 듯한 우리의 절구


흔히 우리는 나이 먹고 뚱뚱한 사람을 비유할 때 ‘절구통’이라고 표현을 한다. 절구 중에는 ‘통절구’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위아래가 굴곡이 없이 밋밋하게 만들어진 절구를 말한다. 아마도 그런 통절구라면 이런 표현이 가능할 것이다. 통절구는 대개 나무절구로, 둥근 나무를 중앙을 둥글고 깊게 파들어 간다.

돌절구나 쇠절구는 아래받침 부분을 잘록하게 만들어, 유한 선을 만들어 낸다. 이 절구는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절구질을 할 때 필요한 홍두깨인 ‘절구공이’이다. 이 절구공이를 갖고 절구통 안에 있는 곡식을 찧으면, 껍질이 벗겨지게 되는 것이다. 절구질을 할 때는 혼자하면 ‘외절구’요, 둘이하면 ‘쌍절구’ 혹은 '맞절구'라고 부른다.


은밀한 성을 노래하는 절구질

사람들은 왜 절구질을 하면서 ‘방아타령’이란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방아타령이라는 것이 정말로 방아를 찧으면서 하는 소리이기보다는, 절구질을 하면서 하는 소리이다. 즉 남녀 간의 ‘성(性)’을 표현하는 것인데, 절구질을 하면서 이런 소리를 한다.

쿵덕쿵 쿵덕쿵 찧는 방아 이방아가 뉘방아냐
건너 마을 김서방네 벼를 찧는 방아로다
건너 마을 김서방은 밤이 새도록 찧는다는데
우리네 서방은 어쩌자고 초저녁잠만 늘어가나
 

저기 가는 저 할머니 딸이나 있으면 사위삼소
딸이야 있지마는 나이 어려서 못 삼겠네
아이고어머니 그 말씀마소
참새는 작아도 알만 잘 낳고
제비는 작아도 강남을 가오
고추가 작아도 씨가 많고
가재는 작어도 돌팍만 인다오


민초들의 작업요에는 성적인 요소가 있다.

우리네 소리는 특별한 양식을 따지지 않는다. 그저 일을 하면서 힘든 노동을 잊기 위해 부르는 소리이다. 하기에 이 '방아타령‘이라고 하는 사설은, 방아타령과 여타의 노동요 사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저 힘든 절구질을 하면서, 그 힘든 작업에서 오는 고통을 잊기 위한 소리일 뿐이다. 그런데 그 소리 안에는 성(性)이 있다. 이웃집 남정네는 밤새 방아를 찧는다고 표현한 것이나, 우리 집 서방은 초저녁잠이 많다는 것은 모두 성을 빗댄 표현이다.

뒤이어 나타나는 사설도 마찬가지이다. 나이가 어린 소녀가 아마 시집이라도 가고 싶었는지, 아니면 평소 흠모하는 사내가 있어 마음이 들뜬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나이가 어리다고 하니 세상에 작은 것들을 들먹이며, 자신은 능히 성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빗대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곡식을 찧는 기구인 절구. 그저 단순히 농기구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노동을 해야 하는 농기구를 이용해, 우리네 여인들은 많은 소리를 창출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은연중 남녀 간의 성을 빗댄 소리로 전해졌다. 그것은 우리 민초들의 소리문화가 그만큼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한 것 하나를 갖고도,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우리네의 풍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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