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집을 가면 가끔 황당할 때가 있다. 이런저런 이유가 다르겠지만, 아무래도 속인들 같지 않으신 스님들은 살아가는 방법이 우리하고는 다른 듯하다. 오늘 찾아간 금산사. 죽은 사람들의 천도제를 지내고 나서 제를 지낸 것들을 태우는 '소대' 옆에 불이문이 있다.

이 불이문을 나서면 다리를 건너 선원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그런데 앞장 선 분들이 내가 소대를 찍고 있는 사이 문을 나서 사라지셨다. 불이문 앞으로 가 문을 열라고 하니, 이게 무슨 일인가 손잡이가 없다. 그리고 밀어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 문 틈으로 보니 밖에 잠굼장치가 있는 듯하다. 아니 그런에 어떻게 여길 나가신 것일까? 도를 많이 닦아 그냥 통과를 하신 것일까?

불이문. 그런데 손잡이가 보이질 않는다.


스님 한 수 배우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문은 밖에서 열고 닫게 되어있다. 선원에 계신 분들에게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 선원 쪽에서 문을 열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선원은 한참 먼 거리에 있어, 이곳까지 누가와서 문을 열어 불 수가 없다. 만일 선원을 나와 공양간에서 밥이라도 먹고 가려면 어떻게 문을 열까? 월담이라도 하는 것일까?

그런데 문에 무엇이 하나 달려있다. 흡사 표주박 같은 것이. 가까이 가서보니 위만 고정이 되어있다. 옆으로 밀어보니 밀린다. 구멍 안으로 보니 손을 넣을만 하다. 세상에 이 구멍으로 손을 넣어 빗장을 푸는 것이다. 간단한 장치 하나가 사람을 재미있게 만든다.

 


문 한편에 무엇이 달려있다. 가까이 보니 위쪽만 고정을 시킨 것이다.

이것을 밀어보니 수월하게 밀린다.

아래를 보니 빗장이 보인다. 아하~ 이렇게 문을 열고 닫았구나.

밖으로 나가보니 이 용도를 쉽게 알 수 있다. 간단한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재미있다. 어디다가 서 먹어야겠다.

"스님, 오늘 한 수 배우고 갑니다. 불이문에서. 오늘은 이 장치로 선문답 하나 품고 가렵니다. 아마도 닫아도 열고, 열어도 닫는 마음이나 아닌지 모르겟습니다. 세상에 마음 닫고 사는 저 윗전나리들. 이런 구멍 하나 가슴에 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열어볼 수 있게. 시장이 되겠다고 하시는 분들, 구청장이 돼야 한다고 고래고래 고함치시는 분들. 이렇게 구멍하나 만들어 가슴을 보이면 좋으련만. 괜한 기대는 하지 않으렵니다. "     

 사불산(四佛山) 대승사. 경상북도 문경시 신북면 전두리에 소재한 고찰이다. 대승사는 신라 진평왕 9년인 587년, 비단보자기에 쌓여 사면에 불상이 새겨진 바위가 공덕봉 꼭대기에 내려앉자, 임금이 바위 곁에 절을 세운 것이 창건 기원이다.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로, 병풍처럼 둘러친 사불산의 자락 안에 자리한다.

『삼국유사』 권3 <사불산조>에 기록에 의하면 임금이 이 사면바위에 와서 절을 하고, ‘대승사’라 사액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기록으로 보아 대승사라는 사명으로 전래한 것이, 벌써 1430년 정도나 된 고찰이다. 진평왕은 망명비구에게 사면석불에 공양을 올리게 하였는데, 망명비구가 입적을 한 후 무덤에서 한 쌍의 연꽃이 피어났다고 전한다.

자장으로 점심공양을 마치고 선방으로 돌아가시는 스님들

묵언수행’을 하는 대승사

7월 22일 금요일. 아침 일찍 대승사로 향했다. 3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대승사. 몇 번이고 주변까지 찾아가 보았지만, 정작 대승사 일주문을 들어선 것은 처음이다. 작은 일주문 앞에는 ‘사불산 대승사’라고 적혀있고, 안쪽에는 ‘불이문(不貳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불이문을 지나니 넓은 주차장이 나타난다. 대승사의 살림을 맡아하는 원주스님이 마중을 나오셨다. 공양간 한편에서는 아궁이에 커다란 솥을 걸고 불을 끓이고 있다. 오랜만에 보는 아궁이다. 장작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른다. 이 복중에 아궁이에 불을 때 공양을 지어야 한다니. 그래도 옛 정취가 있어 좋다는 생각이다.



대승사 일주문인 불이문과 주차장 위에 놓인 장독대

대승사에는 보물 제991호인 금동보살좌상과 보물 제575호인 목각탱부관계문서, 경북 유형문화재 제239호인 마애여래좌상과 유형문화재 제300호인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이 있다. 이 중 금동보살좌상은 공개를 하지 않고 있으며, 대웅전에 모셔진 후불탱화인 목각탱화는 전국에 있는 목각탱화 중 가장 섬세한 아름다움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목각후불탱화는 나무를 깎아 돋을새김을 하고, 중앙에는 광배와 연꽃을 새겨 넣었다. 그리고 별도의 나무로 깎은 아미타불이 안치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라다만 보아도 대단한 작품이라는 느낌이다.




대승사 대웅전과 보물 목각탱화, 그리고 대웅전의 꽃창상과 대웅전 앞에 서 있는 향나무

이 목각탱화는 길이 3.6m, 폭 2.7m이다. 원래는 영주 부석사에 있던 것을 옮겨왓다고 한다. 아미타불을 중앙에 배치한 이 목각탱화는 좌우로 5단에 걸쳐 협시상을 배치하고 있는데, 좌우에 3구씩 4열에 맞추어 좌우대칭으로 배열하였다. 시간이 없어 사면바위와 마애불을 오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다음번에 대승사를 방문했을 때는 그곳부터 들려보아야겠다.




대승사 꽃밭에서 만나 나비와 응진전, 그리고 응진전에 모셔진 나한상과 스님들이 수행을 하는 공간

짜장 한 그릇에 만족하는 스님들

공양간 앞에 놓인 동판을 친다. 나무망치로 치는 동판은 둔탁한 소리를 낸다. 여기저기서 스님들이 공양간으로 모여든다. 그리고 발우에 면과 짜장을 받아 섞는다. 한 그릇을 다 드시고 조금 부족하신 듯하다. 면을 더 넣어 드신 후 선원으로 돌아가는 스님들. 그 뒷모습이 참으로 한가해 보인다.



한 여름에 아궁이에 불을 때서 면을 삶아낸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수행이란 생각입니다

“잘 먹었습니다. 역시 스님이 만드신 것이라 그런가, 맛이 더 있는 것 같네요”

선원에 계신 스님들은 묵언 수행중이라 ‘맛있다’라는 말씀도 못하신다. 일을 보시는 스님이 오셔서 대신 말씀을 전하신다. 아마도 묵언 중이 아니시라면 꽤 많은 칭찬을 받았을 것을. 그렇게 공양을 하기 위해 찾아간 문경 대승사. 언젠가는 스님들의 생활을 소개할 수 있는 날이 올 수가 있을까? 점점 멀어져 가는 스님들의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공양을 준비하는데 곁에서 떠나지를 않는 대승사 견보살 백구. 스님들의 공양시간을 알릴 때 치는 동판. 그리고 스님들의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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