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은 음식을 만드는 곳이고, 부엌이라는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은 집안의 주부가 된다. 부엌에는 ‘조왕신’이 좌정을 하고 있다는 곳이다. 조왕신은 ‘불의 신’이다. 이는 부엌에서 음식을 조리할 때, 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집안의 난방을 위해서도 불을 땐다. 그런 점으로 조왕신을 불의 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나들이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먼저 부엌으로 들어갔다가 방으로 간다. 이는 밖에서 혹시 나쁜 것이라도 따라왔으며, 모두 태운 후에 집안에 들어간다는 속설 때문이다. 이렇듯 조왕은 집안에 드는 모든 액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하기에 부엌 안에서는 나름대로 조심하는 행동들이 있기도 하다.


부뚜막에 앉으면 경친다.

어릴 적에는 부엌에 들어가는 것을 꽤나 좋아했다. 부엌에 들어가면 우선은 따듯한 점도 있겠으나, 딴 형제들보다 먹을 것을 먼저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엌에 들어가면 부뚜막이 그렇게 따듯할 수가 없다. 그래서 얼른 부뚜막에 올라가 앉는다. 그러다가 바로 경을 치기 일쑤다. “부뚜막에 올라앉으면 조왕할머니한테 경친다.” 어머니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다. 부엌에는 조왕할아버지나 할머니가 계시다는 것이다.

아마도 할아버지이기 보다는 할머니가 맞을 것 같다. 부엌에서 주로 생활을 하는 것이 집안의 여성들이고 보면, 할머니라야 더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 조왕신이 좌정을 하고 있는 곳이, 부엌의 선반 위나 부뚜막이 되는 것이다. 하기에 부뚜막에 올라앉으면, 조왕신의 자리에 엉덩이를 들이 민 것이나 경을 칠 수밖에.

부엌에 있는 조왕단지. 안에는 쌀을 넣어 놓는다.

다양한 형태의 조왕신의 신표

부엌에 모시는 조왕신의 신표는 지역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난다. 대개는 조왕단지리고 해서 항아리를 부엌 한편에 두고, 그 안에 쌀을 넣어놓기도 한다. 이는 부엌은 집안에 음식을 장만하는 곳이기 때문에, 집안 식구들의 재복을 기원하는 것이다. 즉 먹을 것이 항상 넘치게 해 달라는 기원을 담고 있다.

또한 집안사람 중에 먼 길을 떠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밥그릇에 밥을 담아 부뚜막에 올려놓는다, 이는 항상 따듯하고 굶지 말라는 뜻이다. 부엌의 부뚜막은 따듯한 기운이 있기 때문에, 춥지 않게 해달라는 뜻이 담겨있다. 또한 밥그릇에 밥을 떠서 부뚜막에 놓는 이유도, 식은 밥을 먹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중부지방에서는 대개 그릇에 정화수를 한 그릇 떠서 부뚜막에 올려놓는다. 이 정화수는 매일 아침 주부가 제일먼저 갈아 놓는다. 이렇게 물을 놓는 이유는 정성이기도 하지만, 불을 이용하는 곳이기 때문에 화재를 막는다는 뜻도 포함이 되어있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대나무 가지를 꺾어 병에 꽂아놓기도 한다. 대나무 잎은 늘 푸른 것이기 때문에, 항상 집안이 그렇게 변함없이 먹을 것이 넘쳐나기를 바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렇듯 조왕은 우리네 실생활에서 불의 신이면서도 재액을 막아주고, 집안을 배부르게 하는 직능을 갖고 있다.

조왕신에게 치성을 드리기 위한 고사상
 
집안에서 가장 소탈한 조왕신

사실 집안에 있다는 많은 가신(家神) 중에서 가장 많이 만나게 되는 것이 바로 조왕신이다. 물론 그 신을 섬기는 주제가 집안의 주부이기는 하지만, 가장 많이 드나들게 되는 곳이 바로 부엌이다. 비록 주부만이 아니고 집안 식구 역시 부엌만큼 자주 드나드는 곳은 많지가 않다. 물을 한 그릇 먹으려고 해도 부엌 안에 있는 물독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 아파트로 보더라도 물과 같은 것은 주방에 있는 냉장고를 이용한다. 그 주방이라는 곳이 바로 예전 우리 가옥의 부엌에 해당하는 곳이고 보면,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조왕은 우리 생활에 있어서 소중한 곳이기도 하지만, 가장 출입이 빈번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조왕신은 그렇게 표시가 나게 섬기지를 않는다. 그저 정화수 한 그릇에도 만족해하기 때문이다. 섣달그믐에 그릇에 쌀을 담고, 그 앞에서 주부기 비손을 한다. 집안에 모든 식솔의 허기를 채워주고, 집안에 드는 나쁜 액을 막아달라고. 그렇기에 조왕신은 아무리 사는 곳의 형태가 달라졌다고 해도, 언제나 우리와 가장 가까운 신격으로 남아있다.


범어사 사천왕문이 방화로 추정되는 가운데 전소가 되어버렸다. 뉴스를 통해 불이 타 무너져내리는 천왕문을 보면서 참으로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다. 외국의 열강 등에 의해 수도 없이 찬탈당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같은 민족에게까지 그렇게 훼파가 되어가고 있는 우리 문화재들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 마음이 아리다.

도대체 이 나라사람들은 종교가 다르다고, 혹은 세상이 마음에 안든다고 문화재에 화풀이를 하는 것일까? 이참에 문화재보호법을 더 강력하게 제정을 해, 다시는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이런 날 꼭 소개하고 싶은 문화재 한 점이 있다. 바로 경남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마을 뒤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보물 제294호 승안사지 삼층석탑이다.


통일신라 석탑의 형태를 계승한 고려탑

승안사지 삼층석탑은 우선 보기에는 매우 둔탁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저 첫눈에 보이는 느낌은 조금은 시골스런 남정네를 연상케 한다. 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석탑은, 전체적으로는 신라 석탑을 계승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 지역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석탑이기 때문인가 보다.

기단부에는 비천인과 불, 보살 등의 조각이 되어있다. 이 모든 조각들은 무릎을 꿇은 형태로 되어있는 점도 특이하다. 탑의 전체적인 높이는 4.3,m 정도로 길쭉한 편이다. 그러한 점이 조금은 불안한 듯하지만, 투박한 탑의 형상이 그런 불안감을 조금은 해소시키고 있기도 하다. 자칫 탑의 조형의 비례가 맞지를 않아 중심이 흐트러질 뻔한 것을, 투박한 무게로 이겨내고 있다고 보겠다.




자리를 옮긴 석탑의 놀라운 조각예술

이 석탑은 1962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 올 때, 홍치 7년인 1494년에 중수를 한 기록이 한지에 먹으로 쓴 문서가 발견되었다. 이런 점으로 본다면 승안사는 당시에 존재해 있었다는 점이다. 이때도 탑이 옮겨졌음을 알 수 있는데, 결국은 두 번이나 자리를 옮긴 셈이다. 당시 1층 몸돌 위에 만들어진 사리구멍에서는 원통형사리함, 녹유사리병, 비단조각과 주머니, 유리구슬 등이 발견되었다.

기단부는 네모나게 조성을 하고, 그 위에 우주와 탱주를 새긴 위층 기단부를 놓았다. 위층 기단에는 불, 보살, 천인상을 조각을 하였으며 덮개돌에는 연꽃 문양을 새겨 넣었다. 기단부의 덮개돌은 층이 없이 평평한 돌을 위로 불룩하게 돋아 조각을 하였다.



일층 몸돌에는 사면에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다. 그런데 이 사천왕상의 조각이 일반적인 탑에서 보이는 사천왕상과는 다르다. 사천왕상의 발밑에 보면 목제 사천왕상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무엇인가를 밟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특수한 조각기법과 장엄한 모습 등이 이 승안사지 삼층석탑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탑 하나에도 장인의 숨결이

탑을 돌아보고 석불을 돌아보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오랜 세월 그렇게 보존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은 바로 장인의 숨결이 배어있는 것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장인의 집중한 정신이 그 안에 함께 내재되어 있기에, 천년 세월을 버틴 것은 아닐까? 오랜 풍상에 시달리면서도 그렇게 한 자리에 버틸 수 있었음은, 보이지 않는 장인의 혼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승안사지 삼층석탑의 몸돌에 새긴 사천왕상은 장중하다.

이번 화재를 거울삼아 우리 문화재에 대한 일제 점검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매번 입으로만 앵무새가 따라하 듯, 문화재의 소중함을 떠들어 댈 것이 아니라, 실제로 완벽하게 보존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오랜 세월 지켜 낸 문화재들은 한번 잃으면 그만이다. 그런 자산을 이렇게 바보스럽게 잃는 우를 다시는 범하지 않기만을 바랄뿐이다.


둘째 주와 네 째주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달아서 쉬는 날이다. 요즘말로 ‘놀토’가 된다. 이렇게 두 번째 주와 네 번 째주는 세상없어도 가방을 둘러메고 답사를 떠난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아니면 바람이 불어도 길을 나선다. 내일(12월 11일)은 바람도 불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고 일기예보에서는 이야기를 하지만, 이렇게 이틀 동안 답사를 하지 않으면 철지난 자료를 이용해 글을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2월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참을 만하다. 폭설이 내려 무릎까지 눈이 쌓인 산길을 걸은 것이,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 남들이 돈을 줄 테니 이런 날 답사를 하라고 하면, 죽어도 안한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주는 남원과 함양, 산청을 돌아보리라고 미리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서둘러 길을 나섰다.


기차를 타고 떠나는 답사

오후 5시 30분이 근무를 마치는 시간이지만, 30분을 먼저 서둘러 길을 나섰다. 요즈음은 금요일이 되면 유난히 길이 많이 막힌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전주에서 남원으로 내려가 남원에서 묵고, 아침 일찍 답사를 시작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여름 같으면 충분한 시간이 되지만 요즈음은 5시만 되면 벌써 어둑해져, 아침 일찍 나서야 하나라도 더 돌아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미리 예매를 하지 않는 것은 전주에서 남원은 40분이면 내려 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장소를 이동할 때는 가급적이면 기차를 타는 것도, 막히지가 않기 때문이다. 오후 5시 54분 차를 겨우 집어 탈 수가 있었다. 이 차는 익산에서 여수로 가는 무궁화 열차다. 아마 출퇴근시간에 맞추어 운행을 하는 열차인 듯하다. 빈자리가 없어 입석으로 표를 끊었다.

요즈음은 열차에 카페 칸이 있어, 그곳에 들어가 차 한 잔을 마시면 남원까지 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카페 칸은 기차의 한편에 좁게 자릴 잡고 있고, 의자는 고작 5개가 전부였다. 이런 낭패가 있나. 그곳에도 사람들이 많아 서 있을 자리도 만만치가 않다.


화장실 앞에서 무작정 기다리는 분, 도대체 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옆을 보니 넉넉하게 자리가 비어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보이지를 않는다. 이게 웬 떡이냐 싶어 그곳으로 갔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무슨 복에. 그 앞이 바로 열차의 화장실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이곳을 이용하지 않을 수밖에. 그러나 40분만 서 가면 되고, 급할 때는 바로 해결을 할 수가 있으니 이곳이 명당이란 생각이다.

기차가 출발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아이를 데리고 한 분이 오신다. 아이가 칭얼대는 것을 보니, 소변이라도 급한 것인가 보다. 그런데 정작 화장실 앞에 선 분이 문을 열지 않는다. 아이는 발을 굴러댄다. 화장실이 비어있는데 무슨 일일까?


사용 중이면 불이들어오는 안내등. 문 앞에서서 문이 열릴 때를 기다리다가 아이가 옷을 적시고 말았다. 사진은 좋지 않은 휴대폰으로 촬영을 해 화질이 좋지 않다. 

“아이가 급한 모양인데 왜 안 들어가세요?”
“예, 사람이 있는 것 같아서요”
“거기 표시등이 꺼져 있잖아요.”
“문이 안 열려서 그래요”
“문을 열어야 열리죠.”
“예, 열어야 해요? 어떻게요?”

문을 열어 주었는데, 이미 때가 늦어버렸다. 괜한 애만 갖고 나무란다. 이 분 화장실 앞에 서면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줄 알았는가 보다. 아마 화장실 문을 자동문으로 착각을 하신 것이나 아닌지. 세상 참, 무궁화 열차 처음 타보셨나? 그래도 그렇지 화장실 문이 자동으로 열리기를 기다리다니. 괜한 어린아이만 옷을 버렸다. 자동문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기차여행을 하면서 가끔은 이런 재미도 쏠쏠하다. 차에서 내려 혼자 넋 빠진 사람처럼 비실거리고 웃고 말았다.

정말 덥습니다. 찜통더위라고 아침부터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흘러 주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날 밥이라도 해 먹으려고 불을 가까이 했다가는 정말 숨 막혀 죽을 것 같습니다. 이럴 때 불을 조금이나마 피해갈 수 있는 방법. 저는 이런 날은 '묵은김치 막초밥'을 해 먹습니다. 

묵은김치는 아는데 '막초밥'은 또 무엇이지? 하고 궁금해 하실 필요가 전혀없습니다. 그야말로 막싼 초밥이라는 뜻이니까요. 언젠가 아우녀석 집에가서 먹어보았는데, 그 맛이 괜찮아 사진자료를 좀 보내달라고 했더니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라, 직접 해먹었더니 맛이 아주 좋았다는 것이죠.

이 묵은김치 막초밥은 그저 한 10분 정도만 투자를 하면, 혼자 충분히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 이렇게 찜통더위에서 불을 가까이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일석이조. 거기다가 후식까지 그럴듯 해서 일석삼조. 다음뷰에 포스팅거리 하나 생겼으니 일석사조. 이런 노다지를 그냥 놓아두면 안되겠죠. 시작하겠습니다.


준비물은 간단합니다. 묵은김치를 물에 잘 씻어둡니다. 그리고 찬밥을 먹을만큼 준비를 해 놓으면 반은 끝난 것이죠. 옆에 빈 그릇은 무엇이냐고요? 그것은 밥을 비빌 그릇입니다.
 

빈 그릇에 깨와 소금을 준비합니다. 저는 일체 화학조미료는 사용을 하지 않는 편이라, 맛소금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천일염을 조금만 가미해도 맛이 드니까요. 거기다가 참기름 한 방울을 치면 더욱 좋습니다.


밥을 다 비볐습니다. 먹을만큼만 만들면 되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밥은 비벼놓을 필요는 없습니다. 간을 보니 짭짤한 것이 감칠맛이 있네요. 역시 오랜 생활끝에 터득한 맛의 비결이 남다른 듯 합니다.(이러다가 혼나지)


잘 씻어 놓은 묵은김치를 잘라냅니다. 초밥을 싸 먹기 적당한 크기로 자릅니다. 물론 잎 부분을 사용합니다. 줄기는 심심하면 먹을 수 있는 반찬이 되기 때문에 더욱 좋습니다.
 

드디어 '묵은김치 막초밥'이 완성되었습니다. 묵은김치의 맛과 고소한 깨와 참기름 등이 어우러져 별미가 될 수 있을 듯도 합니다. 그보다는 이 찜통더위에 불을 가까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죠. 

그런데 여기서 그냥 그치면 재미가 별로 없습니다. 아무리 불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고 해도, 더운 여름에 먹거리 준비를 하다보면 땀을 많이 흘리는 저는 고역입니다. 그럴 때는 당연히 보양식이 필요하죠. 제 보양식은 아주 간단합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산에 올라가 채취해 놓은 자연산 더덕입니다. 크기는 작고 볼품은 없지만, 향은 따를 수가 없습니다. 거기다가 효능은 말할 필요가 없죠. 이 더덕을 두어 뿌리 잘개 썰어 믹서에 우유와 함께 갈아 먹습니다.


끝내주는 향이 코끝을 간지럽힙니다. 오늘 만찬은 이것입니다. 불 가까이 가지 않아 덥지 않아 좋고, 주변에 있는 손쉬운 자료를 이용하니 돈 안들어 좋고, 거기다가 보양식까지. 온누리 이렇게 산답니다. 세상에 살다보니 이젠 요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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