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풍요로움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시골에서는 가을이 되면 농작물을 수확하기 위해 엄청 바쁜 날을 보내고는 하죠. 어제 몸살, 감기로 영 몸이 말이 아닌데도 가을 수확을 하러 나갔습니다. 고구마를 절에서 떨어진 밭에다가 봄에 심었는데, 서리가 오기 전에 서둘러 수확을 하느라고요.

몇 몇 분이 동행을 하여 나간 고구마밭. 9월 한달 동안 행사준비 등 바쁜 일정으로 미쳐 밭을 돌보지 못했더니, 잡풀만 그득하니 자라났네요. 먼저 줄기를 걷어내고, 다음으로는 비닐을 모두 걷어 한 곳에 쌓아두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은 단단해진 흙더미를 헤치자, 붉은 고구마들이 주렁주렁. 그래서 수확의 기쁨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스님짜장' 재료로 사용할 고구마

이렇게 밭에 고구마를 심은 것은 '스님짜장' 재료로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따져보니 짜장 한 그릇의 원가가 1,300원 정도인데, 고구마 등을 일일이 사서 사용을 하여고 하면, 아무래도 원가가 더욱 비싸집니다. 그래서 양파와 고구마 등은 직접 심어서 수확을 해서 사용합니다.

가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한 낮의 더위는 그래도 덮습니다. 땡볕에서 열심히 작업들을 한 덕분에 그래도 한 20여 상자는 수확을 하였네요. 이 고구마를 이용해 더 맛있는 짜장을 만들어, 이웃들에게 봉사를 하려고 합니다.     




절집에서 봉사를 하는 총각입니다. 고구마 줄기를 걷어내는 폼이 멋집니다.





이것을 엉덩이에 대고 고구마를 캡니다. 요즈음은 고구마 등 농작물을 캘 때 이 도구를 많이들 상요합니다. 의자인 셈이죠. 한결 작업을 하기가 편하다고 하네요.





수확철인데 그래도 고구마 꽃이 피었습니다. 밭 고랑에 캐 놓은 고구마들이 실합니다. 하나 깎아 먹어보니 그 맛이 일픔이라는...
 



수확을 한 고구마입니다. 돈으로 따지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직접 농사를 지은 고구마를 이용해 '스님짜장'을 만든다면, 그도 의미있는 일이란 생각입니다.

올레길, 둘레길... 요즈음 각 지자체마다 주변의 산책로에 나름대로 이름을 붙여 걷기를 종용하고 있다. 주민들의 건강이나 관광객들의 즐길거리를 하나 더해준다는 기분 좋은 자연적 자원활용이다. 가끔은 이런 길에 있었나 싶을 정도의 아름다운 길을 만나기도 한다. 워낙 사진을 찍는 재주하고는 메주인 나로서는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전해 줄 수 없음이 늘 안타깝다.

지난 8일 찾아간 북지장사 가는 길. 대구 팔공산 올레 제1길이다. 소나무 숲길이 1.5km가 이어지는 길을 타박거리며 걷고 있노라니, 세상에 찌든 세상살이의 역겨움이 다 씻어지는 듯하다. 물과 돌, 그리고 소나무들이 정겨운 소나무 숲길. 그 길을 따라가 본다.


아름다운 소나무 길. 언제 걸어도 좋을 듯



길을 걸어 조금 가다보니 올레길이란 안내판이 보인다. 그리고 가을 수확을 하느라 바쁜 일손이 거기 있었다.


소나무가 양편으로 갈라서 사람을 기다린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나무 틈 사이로 쏟아지는 햇볕이 눈부시다. 그리고 여기저기 널린 돌들. 산돌들은 그렇게 오랜 시간 그 자리에 앉아 오가는 길손에게 말을 건다.


북지장사. 아마도 대웅전보다 지장전이 더 유명한 절이었는지. 북족에 있는 지장사란 이름을 붙인 것을 보면. 절에 무슨 행사가 있었을까? 오고 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커다란 산돌들이 나무 숲 그늘에 쉬고 있다.



산을 감돌아 흐르는 계곡가에 소나무가 돌을 피해 자라고 있다. 자연은 그렇게 딴 사물에 피해를 주지 않고 스스로 피해 자란다. 인간들은 왜 저런 진리를 모르는 것일까? 그런 조악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 보고 배웠으면 좋겟다는 생각을 한다. 길가 계곡물이 흐르는 옆에 쌓아놓은 돌탑. 예전에 이곳에 서낭당이라도 있었음 즉하다.



안양교란 작은 다리가 놓여있다. 아마 이곳서 부터는 속세의 연을 내려놓으라는 것인지. 물이 흐르는 곳을 바라다본다. 참 깨끗하다. 저 물에 더렵혀진 몸과 마음을 흘려보내란 것인지. 그 위로 아이를 데리고 부부가 한가롭게 걷고 있다. 거리를 보아도 아이를 데리고 걷기 딱 좋은 길이다.


길 우측 소나무 숲속에 누군가 쌍탑을 쌓았다. 그 옆으로 실하게 자란 배추밭이 보인다. 올해는 배추금이 어떠려나.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이제 하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 인심을 보아야 한다니...



길가 허름한 집 담벼락에 누군가 친절하게 거리를 서 놓았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조금은 여유로움을 느낄 수가 있다. 좌측으로 소나무 들이 조금 더 커진 듯한 길이다. 그 길 끝에 북지장사가 나그네를 기다리고 있다. 

그저 터벅거리고 걸어도 20여분. 왕복 3km의 소남 숲길이다. 물과 돌이 함께 하는. 아이들과 걷기에도 적당한 거리인 이 소나무 숲길은, 그렇게 오랜 세월 객들을 기다리며 굽어보고 있었다. 
아침부터 산을 오르려고 벼르고 있는데, 하늘이 영 반갑지가 않다. 잔뜩 검은 구름이 낀 것이 금방이라도 소나기 한 줄기가 내릴 것만 같다.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서성이는데, 할머니 한 분이 농약통을 지시고 길을 나서신다.

"안녕하세요"
"예"
"밭에 약 치시러 가세요. 비가 올 것 같은데요"
"비가 올까요?"
"예, 금방 쏟아질 것 같아요"
"어제 잠시 해가 들었을 때 칠 것을 그랬네"


팔순 할머니는 아직도 농사일을 하신다.

할머니가 길을 접고 집을 향해 걸어가시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내심 잘 되었다고 안심을 한다. 돌아가시는 할머니는 하늘이 원망스러우신가 보다. 연신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신다. 그러실 것이다. 힘들에 나서신 길인데 비가와서 일을 할 수가 없다면, 온 몸이 쑤시는 것이 더욱 힘드실  것 같다.

잠시 쏟아지던 비가 멈추었다. 우산을 손에 든 할머니가 다시 길로 나오셨다. 여주군 북내면의 정말 시골스러운 마을에 사시는 할머니는, 영감님을 여의신지가 벌써 몇 년째시다. 지금은 혼자 사시면서 밭일을 하고 이런 저런 일로 소일을 하신다. 매일 아침 그 시간이면 집을 나서시고, 같은 시간에 밭에서 돌아오신다. 밭이 먼 곳은 아니지만, 할머니께서 다니시기에는 결코 가까운 거리는 어니다.


할머니는 이 길을 따라 밭으로 가셨다. 

할머니의 길에는 물이 차 있고

뒤를 보이고 가시는 할머니를 몇 장 찍었다. 여주에 올 때마다 뵙는 분이기에 낯설지가 않다. 산 모퉁이를 돌아 할머니께서 사라지셨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할머니의 밭은 어떤 밭일까? 아우에게 할머니의 밭을 묻고 난 뒤, 뒤를 따라 나섰다. 길은 젖어 있고, 바지가랑이가 젖어든다. 그래도 궁금하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좌우로 길이 나온다. 어디인지 알았으니 우측 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할머니의 밭 가까이 가니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길이 끊겼다. 매일 다니시는 길이지만 연세가 드신 분이기에 건너기가 만만치가 않았을 텐데. 할머니가 보이지를 않는다. 여기저기 찾아 보았지만,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가신 것일까?

할머니는 이 길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걸으셨다. 할머니의 길을 따라 걸어본다. 발밑에 밟히는 감촉이 좋다. 가끔은 돌뿌리가 채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저 멀리 할머니가 계시다. 아까 뒷짐을 지고 들고 나가셨던 우산은 아직도 손에 꼭 쥐고 계시다.   

할머니가 밭으로 나가는 길에 도랑이 생겼다
할머니의 밭. 얼마나 정성을 들였을까?

돌아오실 때는 마중이라도 해야겠다

하루 종일 밭에서 일을 하시는 할머니는 이제 돌아오실 시간이 가까이 되었다. 시간이 되니 걱정이 앞선다. 돌아오실 때는 개울에 물이 더 불어 있을텐데. 어떻게 건너실 수가 있을까? 할머니에게서, 우리의 어머니가 보인다. 아마 우리 어머니도 저렇게 살아오셨을 것이다. 


돌아오실 때 연락이라도 해 주시면 좋을텐데. 그렇게 보아도 말을 놓지 않는 할머니는 아마 남에게 부담이 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실 분 같다. 아직은 낯이 익지 않았으니. 집으로 돌아가시는 길을 눈여겨 보면서, 괜한 비탓만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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