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국립부여박물관 경내 한편에 눈에 발목이 묻혀있는 석불 한기가 보인다. 날이 추워서인가 박물관을 찾아오는 발길도 뜸한 듯하다. 이런 추운 날 밖에서 저리 서 있다면, 더 춥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석불입상이지만, 가만히 살펴보다가 괜히 웃고 만다.

 

석불입상을 보고 웃은 이유는 그 모습이 균형미를 잃어서가 아니다. 그 추운 날 만난 석불입상의 입가에 흘린 엷은 웃음 때문이다. 돌이다가 어떻게 저리도 따듯한 미소를 표현할 수 있었는지. 그것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 웃음 하나가 세상 온갖 고통을 한꺼번에 녹여버릴 듯하다.

 

천왕사 터 부근에서 발견되다

 

현재 충청남도 지정 문화재자료 지106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이 석조여래입상은, 1933년 부여군 부여읍 금성산의 천왕사 터라고 전해지는 곳의 인근에서 발견이 되었다고 한다. 이 석조여래입상은 고려시대 지방의 장인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의 석불이 거대석불 인 점을 감안하면, 이 석불은 그리 큰 편은 아니다.

 

 

이 석불은 몸체에 비해 머리가 유난히 크다. 전체적인 모습은 굴곡이 없이 일직선의 신체로 표현을 하였다. 어깨와 하체가 일직선으로 곧게 서 있는 모습이다. 목에는 삼도를 표현하였으며, 얼굴은 살이 올라 풍부한 느낌을 준다. 반쯤 감은 눈과 입술 등의 윤곽이 어우러져, 보는 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밋밋한 장식의 표현

 

어깨에서부터 흘러내린 법의는 아무런 무늬가 없이 발밑까지 내려져 있다. 법의는 가슴께까지 깊게 파여져 있으며, 어깨부터 팔을 따라 주름으로 표현을 하였다. 이렇게 표현한 주름이 이 석불입상에서 가장 표현을 강하게 한 부분이다. 두 손은 가슴께로 올렸으며, 그 아래ㅔ로 법의가 U자의 주름으로 발목까지 내려가고 있다.

 

 

손은 투박하고 제 모습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전체적인 비례가 맞지 않는 이유도 몸체에 비해 유난히 큰 머리와 손 때문으로 보인다. 왼손은 위로 올려 손바닥이 밖을 향하게 하였고, 오른손은 아래로 내려트려 손바닥이 보이게 하였다. 손가락의 표현도 어디인가 멋스럽지 못하다.

 

충청도 일원에서 보이는 고려불의 특징

 

이러한 모습은 충청도 일원에서 발견이 된 고려불의 특징이다. 중앙의 장인들이 아닌, 지방의 장인들에 의해서 조성이 된 석조여래입상으로 보인다. 지방에서 나타나는 고려석불의 특징은 거대불이란 점이다. 그런데 이 석불입상은 그리 큰 편은 아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실내에 서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어래 기단부가 눈에 파묻혀 있어서 제대로 파악을 할 수 없음이 아쉽다. 봄철 눈이 녹으면 다시 한 번 찾아가 받침돌을 확인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비록 균형미는 떨어지는 석불입상이지만, 그 편안한 미소에서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 그런 위로 덕분에 이 추운 날에도 길을 방황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북지장사는 신라 소지왕 7년인 485년에 극달화상이 세웠다고 전하는 절이다. 팔공산 자락의 절 중에서도 그 역사가 가장 깊다고 하는 북지장사의 임시 대웅전에는, 삼존불 곁에 석불좌상 한 기가 있다. 이 불상은 북지장사 대웅전 뒤쪽 땅속에서 발견된 것으로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다.

이 불상은 발견될 당시에 광배와 연화좌는 없었으며, 화강암으로 조성한 좌불상 한 기만 발견이 되었다고 한다. 이 좌불상은 현재 북지장사의 대웅전은 복원 공사로 인해, 임시 대웅전에 모셔두고 있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이 석불좌상은, 지장보살 좌상으로 보인다.

온화한 얼굴의 통일신라 말기의 좌상

북지장사 석조지장보살좌상의 얼굴은 온화한 인상이다. 그저 옛 석불답지 않게 말끔하게 조각이 되어, 언뜻 보면 요즈음의 석조미술품으로 볼 수도 있는 형태이다. 전체적으로 비례가 알맞고 단정한 자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왼손에는 보주를 들고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을 아래로 향한 촉지인을 취하고 있다.

법의는 양쪽 어깨를 감싸고 있는 통견으로 조성을 하였으며, 옷은 주름의 조각선이 가늘고 약하게 형식화되어 시대가 뒤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머리의 형태나 손에 든 보주 등으로 미루어 보아 지옥의 중생을 구제한다는 지장보살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이며, 단정한 자태와 온화한 인상 등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미소를 띤 듯 노한 듯, 마음가짐이려니

북지장사 석조지장보살좌상은 얼핏 보아서는 그리 오래된 석불 같지가 않다. 문화재에 깊이가 없는 사람들은 그저 요즈음에 조성한 것으로 착각할 듯. 그렇게 고풍스럽지 않고 너무 말끔하단 생각이다. 그러나 그 연대가 신라 말이라고 하면, 이미 천년을 훌쩍 지났다는 것에 놀라고 만다.

아마도 이 석조지장보살좌상을 만든 장인이, 얼마나 오랜 시간 그 표면을 닦고 또 갈아낸 것일까? 이런 정도로 곱게 만들었다고 하면, 그 세월 또한 만만치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안내판의 설명을 미리 보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도 그냥 지나쳤을 판이니 말이다.




곱게 표면을 갈아놓은 석불의 얼굴에는 미소를 띤 듯도 하고, 노여움을 가진 듯도 하다.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따라 미소로도, 아니면 노한 듯도 보이는 대구 팔공산 자락 북지장사 석조지장보살좌상. 그것 하나가 바로 옛 석불에서 만나는 신비로움이 아닐는지. 마음을 열고 석불을 바라다본다. 입가에 보일 듯 말 듯한 엷은 미소를 찾아낸다.



부처님 앞에 마음 한 자락 내려놓고

삼배를 하고 난 후, 고개를 든다. 한 낮의 햇볕을 받은 석조지장보살좌상. 지장보살은 이 사바세계에서 억압받는 자, 죽어가는 자, 악몽에 시달리는 자 등의 구원한다. 스스로 지옥으로 떨어지는 벌을 받아야 하는 모든 ‘사자(死者)’의 영혼을 구제할 때까지, 자신의 일을 그만두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전한다. 지장보살은 전생에 브라만 집안의 딸로 태어나 석가모니에게 헌신적으로 기도함으로써, 자신의 사악한 어머니가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한 적도 있다는 것이다.



그 지장보살 앞에 무릎을 꿇는다. 나 역시 이곳에서 서원을 세우기 위해서이다. 기운이 자라는 데 까지, 내 나라에 있는 문화재를 돌아보다가 명을 걷을 수 있기를. 그것이 10월 7일 팔공산 기슭 옛 고찰 북지장사에서 나의 서원이다. 엷은 미소를 입가에 띤 지장보살 앞에 내 마음 한 자락을 내려놓는다. 그 서원을 지킬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문화재 답사를 하다가 보면 가끔 혼자 웃고는 한다. 특히 전국의 사찰에서 만날 수 있는 석불 등, 불상을 볼 때 그렇다. 어떻게 시간에 따라 그 표정의 느낌이 바뀔 수 있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누구는 그 때의 마음이라고도 한다. 즉 내 마음이 편하면 불상의 표정이 편하고, 내가 화기가 있으면 불상도 찡그린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가 공감이 가는 것은, 같은 불상을 보면서도 수시로 그 표정이 변하기 때문이다. 어느 때는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고, 어느 때는 준엄한 얼굴이기도 하다. 때로는 노여움을 탄 얼굴이기도 하고, 그런가하면 자비로운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 불상의 표정을 보면서 스스로 내 마음을 추스르고는 한다,


진리의 상징, 비로나자불좌상

강원도 원주시 호저면 용곡리. 호저면 중에서도 제일 깊숙한 곳에 자리한다. 이곳은 칠봉이라는 계곡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봉우리를 지나 들어가는 막다른 마을이다. 마을 끝에는 탑과 불상이 함께 자리하고 있는데, 용운사지 석불 좌상과 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용운사지 석조비로나자불 좌상’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2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이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은 고려 전기인 11세기경에 조성된 불상이다. 최근에는 불상 뒤편에 세우는 광배가 발견이 되어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용운사지 석조비로자나불 좌상을 보면 늘 기분이 좋아진다. 매끄럽지 못한 조각이지만, 그 얼굴은 늘 웃음이 가시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석불의 얼굴은 광대뼈가 두드러지게 표현을 하였다. 입은 약간 앞으로 튀어 나왔으며, 입 끝이 처져있다. 머리는 신체에 비해 큰 편이고 약간 앞으로 구부정한 모습이다. 코는 한쪽이 떨어져나갔다. 귀는 어깨까지 내려왔는데, 한쪽 끝은 파손이 되어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비례가 잘 맞지 않고 조각 기법은 세련되지 못하였지만, 고려 초기에 이 지역에서 보이는 석불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렇게 즐거운 일이 무엇인지

석불의 손은 가슴께로 모아 오른손을 위로, 왼손을 아래로 하여 왼손의 둘째손가락을 오른손이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수인을 지권인이라고 하며, 이는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상의 모습이다. 대좌는 밑에 지대석을 놓고 그 위에 마련하였는데, 아래위로 연꽃을 큼지막하게 조각하고, 중간의 돌에는 안상을 하나 조각하였다. 이러한 형태는 고려시대 조각에서 보이는 특징이다.




투박하고 세련미는 없지만 우직한 모습으로 편안함을 주는 용운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난 언제나 마음이 울적하거나 결정해야 할 일이 생기면 이곳을 찾는다. 항상 안면에 미소를 띠우고 있는 이 석불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화가 치밀 일이 생겨도 이곳이 와 이 석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노여움이 눈 녹듯 사라지기 때문이다.

늘 이 용운사지 석불좌상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한다. ‘부처님, 세상이 그리 즐거우세요?’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언제나 한가지이다. ‘그럼 즐겁지 않으면 무슨 뾰족한 방법이 있나?’ 그 대답을 들으면 모든 노여움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갖가지 표정으로 만나게 되는 수많은 불상들. 그 표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속에 응어리진 것들이 모두 사라져버린다. 그런 문화재를 보고 어찌 생명이 없는 조형물이라고 할 것인가? 오늘도 답사를 떠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당야한 표정을 만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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