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하지만 아직도 한 낮에는 길을 조금만 걸어도 등줄기에 땀이 줄줄 흐른다. 이런 날 가장 생각나는 곳 중 한 곳이 바로, 명승 제37호인 동해 무릉계곡이다. 강원도 동해시 무릉로 584 등에 해당하는 동해 무릉계곡은 동해시 두타산과 청옥산을 배경으로 하는 아름다운 계곡이다.

 

산수의 풍경이 중국 고사에 나오는 무릉도원과 같다 하여 무릉계곡이라 부르며, 소금강이라고도 한다. 시의 동쪽에 솟아 있는 두타산(1,353m)·청옥산(1,404m)·고적대(1,354m) 등에서 발원한 소하천들이 계곡을 흘러 전천을 이룬다. 삼화사, 학소대, 옥류동, 선녀탕 등을 지나 쌍폭, 용추폭포에 이르기까지 숨 막히게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진다.

 

 이승휴의 ‘제왕운기’가 집필 된 곳

 

여름철이 되면 무릉계곡에는 피서를 하기 위해 찾아든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무릉계곡은 고려시대 동안거사 이승휴가 살면서, 『제왕운기』를 저술했다고 전한다. ‘무릉계곡’이라는 명칭은, 조선 선조 때 삼척부사인 김효원이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1,500여평의 무릉반석에는 조선 전기 4대 명필가의 한 분인 봉래 양사언의 석각과, 매월당 김시습을 비롯한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시가 새겨져 있다.

 

 

 

 

무릉계곡에 찾아 든 시인묵객들은 이곳에서 시 한수를 읊조리고, 바위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했을 것이다. 아마도 옛 선비들은 이곳을 세상의 시든 때를 깨끗이 하기 위한 장소로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맑은 물에 발이라도 담구고 앉아있으면, 세상 시름을 잊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정자와 어우러진 곳에 발을 쉬다

 

무릉계곡은 곳곳이 폭포 및 기암절벽들이 절경을 형성한다. 거기다가 뚜렷한 절리 등이 단열에 의해 형성되고 있으며, 쌍폭과 용추의 절리로 형성된 절벽에 따라 소가 형성되어, 특이한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무릉계곡에 나타나는 단애 및 폭포 등이 전형적인 화강암 계곡의 침식 및 퇴적 지형을 나타내고 있어, 학술적으로 매우 가치가 높은 명승지로 알려져 있다.

 

 

 

 

이 무릉반석이 있는 곳에 정자 하나가 서 있다. ‘금란정’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정자는 무릉반석 곁에 노송 몇 그루와 바위들로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처음 금란정은 조선조 말 명륜당에서 공부를 하던 유생들이, 1910년 강제로 한일합방이 되고 향교가 폐지되자 그 분을 이기지 못해 <금란계(金蘭契)>를 조직하였다고 한다. 유생들은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금란정을 이곳에 짓기로 하였으나, 일본의 관헌들에 의해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후 1945년 조국의 광복을 맞이해 당시 유림선비들의 자손들이 모여 선대의 뜻을 기리고자, 이곳에 정자를 세우고 금란정이라 현판을 걸었다. 지금도 매년 봄, 가을에는 금란계 계원들이 모여 시회를 열고 그 뜻을 기리고 있다는 것이다. 깨끗하게 정리가 된 지금의 금란정은 근자에 들어 새롭게 조성한 정자다. 아마 1945년에 지은 것을 부수고 다시 조성한 것처럼 보인다.

 

 

 

여름철, 무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곳. 더구나 이곳에는 삼화사라는 절이 있어 지친 심신을 달래기에는 제격이다. 나는 한 여름철 무더위에 지칠 때마다 이곳을 생각하면서 하는 말이 있다.

 

‘신선이 되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무릉계곡으로 달려가라’

천혜의 신비를 간직한 무릉계곡은 국민관광지 제77호로 1977년에 지정이 된 곳으로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에 있는 계곡이다. 두타산과 청옥산을 배경으로 형성된 무릉계곡은 호암소로부터 시작하여 약 4km 상류에 있는 용추폭포가 있는 곳까지를 말한다. 넓은 바위 바닥과 바위 사이를 흘러서 모인 넓은 연못이 볼만한 무릉계곡은 수백 명이 앉을만한 무릉반석을 시작으로 계곡미가 두드러지며 동해시 중심지에서 서쪽으로 10㎞ 지점에 있다.

 

산수의 풍경이 중국 고사에 나오는 무릉도원과 같다 하여 무릉계곡이라 부르며, 소금강이라고도 한다. 시의 동쪽에 솟아 있는 두타산(1,353m)·청옥산(1,404m)·고적대(1,354m) 등에서 발원한 소하천들이 계곡을 흘러 전천을 이룬다. 삼화사, 학소대, 옥류동, 선녀탕 등을 지나 쌍폭, 용추폭포에 이르기까지 숨 막히게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진다.

 

 

금란정과 수많은 글들이 적혀있는 무릉반석(아래)

 

기암괴석이 아름다운 곳

 

일명 무릉도원이라 불리는 이곳은 고려 시대에 동안거사 이승휴가 살면서 『제왕운기』를 저술하였고, 조선 선조 때 삼척부사 김효원이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기암괴석이 즐비하게 절경을 이루고 있어 마치 선경에 도달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조선전기 4대 명필가의 한 분인 봉래 양사언의 석각과 매월당 김시습을 비롯하여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시가 1,500여 평의 무릉반석에 새겨져 있다.

 

이 무릉반석이 있는 곳에 정자 하나가 서 있다. 금란정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정자는 무릉반석 곁에 노송 몇 그루와 바위들로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금란정은 조선조 말 향교인 명륜당에서 공부를 하던 유생들이 1910년 강제로 한일합방이 되고 향교가 폐지되자, 그 분을 이기지 못한 유생들이 모여 금란계(金蘭契)를 조직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금란정을 이곳에 짓기로 하였으나 일본의 관헌들에 의해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명승 무릉계곡

그 후 1945년 조국의 광복을 맞이해 당시 유림선비들의 자손들이 모여 선대의 뜻을 기리고자 이 정각을 세우고 금란정이라 현판을 걸었다. 지금도 매년 봄, 가을에 계원들이 모여 시회(詩會)를 열고 그 뜻을 기리고 있다.

 

새롭게 선경에 조성한 금란정

 

깨끗하게 정리가 된 금란정은 근자에 들어 새롭게 조성한 정자다. 아마 1945년에 지은 것을 부수고 다시 조성한 것처럼 보인다. 옆에 맑은 물이 흐르는 무릉반석에는 깊게 판 많은 글자들이 사람의 눈길을 끈다. 한문으로 된 문구들을 바라보며 학식이 없음을 탓한다. 어찌하랴, 워낙 재주가 없다보니 그냥 바라다 보고만 있어야지.

 

누가 같이 동행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그 반석의 넓이나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의 장관에 취해 잠시 정자는 잊었다. 흐르는 맑은 물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해가 간다. 이 절경을 보고 시 한수 읊지 않는다면 어찌 시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 아름다움에 취해 흥얼거리지 않는다면 어찌 묵객이라 할 수 있겠는가? 나라를 잃은 울분을 이곳에 와 정자를 지어 풀어버리려고 했던 분들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이곳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으니 그분들도 그런 심정이지나 않았을까.

 

 

금란정을 찾아가는 길은 동해시 무릉계곡을 찾아 계곡 입구에서 삼화사 쪽으로 올라가다가 보면 일주문 전에 정자가 있다. 무릉계곡을 찾아가는 길은 동해시 효가 사거리 - 우회전 - 4.4km - 삼화동3거리 - 좌회전 - 5.3km - 무릉계곡 주차장으로 들어가 매표소를 지나 다리를 건너 조금만 올라가면 된다. 현지교통을 이용하려면 동해시외버스터미널-무릉계곡으로 30분 간격으로 운행을 하는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