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차례를 지내고 났는데 할 일이 너무 많다. 도대체 정월 초하루부터 이렇게 머리를 쓸 일이 많이 생기면, 올 한 해 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날까?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우리의 속설에는 정월 초하루는 조상님께 차례를 모신 후, 근신을 하는 풍습이 있다. 그리고 이튿날은 귀신 날이라고 해서, 여자들은 문밖출입도 삼가야한다.

 

정월 초사흘이 되면 하늘에서 평신(坪神 = 터주신, 혹은 대지의신)이 내려온다고 하여서, 마을마다 지신밟기가 시작이 된다. 모든 마을에서는 풍장패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하면서 일 년의 안과태평을 축원해 준다. 그런 날이니 집에서 있어야 마땅하지만, 갈 곳이 있어 카메라를 메고 나들이를 했다.

 

 

몰린 인파들 저마다 즐기고 있어

 

설날에는 모든 고궁과 능묘, 그리도 박물관 등도 무료로 입장을 할 수가 있다. 수원 화성 행궁도 예외는 아니다. 설날 오후 행궁은 어떤 사람들이 모여 들었을까? 마침 날씨도 좋아 사람들이 몰려나왔을 것만 같다. 행궁까지는 천천히 걸어서 20분 정도. 가는 길에 화성을 보니 관람을 하는 사람들이 줄 지어 가는 모습도 보인다.

 

행궁 앞에는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를 나온 부모님들이 연날리기를 하느라 야단법석이다. 아이들보다 오히려 어머니와 아버지, 혹은 할머니들이 더 즐거워하는 것만 같다. 한복으로 곱게 차려입은 꼬마들이 아버지가 날리고 있는 연을 달라고 생떼를 쓰는 모습도 보인다. 행궁 앞 한편에 마련한 썰매 장에는 아이들 썰매를 끌고 다니는 아버지들의 모습이 정겹다. 어머니들은 그런 모습을 연신 휴대폰에 담아낸다.

 

 

아침 일찍 차례를 모신 후 이곳으로 나왔어요. 어차피 집으로 가려면 길이 막힐 것 같아 수원에서 놀다가 저녁 늦게 출발하려고요.”

대전에서 부모님 댁에 다니러왔다는 김아무개(, 42)는 연신 얼레를 풀었다 감았다 하면서 즐거워한다. 아이는 연신 그 연을 달라고 조르고 있고. 광장에는 이제 걸음마를 갓 땠을 꼬마도 종종거리고 엄마와 함께 즐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몰린 행궁

 

행궁은 여느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린 듯하다. 명절 차례를 마친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소원지 쓰기, 투호놀이 등 전통놀이를 즐기는 모습도 보인다. 수원 화성 행궁의 북군영 입구에는 수령이 600년 이상 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이 느티나무를 사람들은 신령한 나무라도 해서 영목이나 신목이라고 부른다.

 

이 나무에 소원지를 써서 걸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나무 밖에는 새로 쓴 소원지들이 걸려있다.

오늘 소원지를 쓰러 이곳으로 왔어요. 용인 한국민속촌을 가려고 했는데, 아이들에게 우리 문화유산도 가르칠 겸 해서 왔는데, 소원지가 한 장도 없어요. 사람도 없고요. 이런 날은 준비를 좀 더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용인에서 아이들과 함께 소원지를 쓰러 왔다는 신정희(, 39)씨는 소원지가 떨어져서 조금은 기분이 상했다고 이야기를 한다. 정조의 모친이자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었던 봉수당 앞에도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이곳이 이 화성을 축성한 정조 임금님의 어머님이신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연 곳이다. 아까 저쪽에서 진찬연 그림을 보았지? 그 연희를 한 곳이 바로 여기야

한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이야기다. 아이들도 사뭇 진지하게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다. 설명을 하는 내용으로 보아도 행궁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아이들에게 우리 역사를 가르쳐 주기 위해 공부를 하고 왔어요. 아이들은 어머니가 이런 것을 잘 알려주면, 부모님에 대한 존경심이 생겨 스스로 더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 같아요

이정희(, 37)씨는 젊은 어머니답지 않게 속이 깊은 듯하다. 설날 한 낮에 찾아간 수원 화성 행궁.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역시 우리 명절은 모든 이들의 잔치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좋은 날도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함께 살고 있다는 점이 가슴이 아리다. 모든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명절. 그런 날이 과연 올 수는 있을 것인지.

 

팔달문 앞에 인정시장(인정시장은 흔히 전통시장이라고 하며 상인회의 가입된 점포수가 50개 이상인 시장을 말한다.)은 모두 9개 시장이 있다. 팔달문시장, 영동시장, 남문 패선1번가, 시민상가, 지동시장, 미나리광시장, 못골종합시장 등 7개 시장과, 도로를 사이에 둔 남문로데오상가와 구천동 공구상가 등이다. 이 중 도로를 건너는 2곳의 시장을 제외한 7개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흔히 명절 대목장이라고 하는 장날 아닌 장날인 셈이다.

 

평소 이 7개 시장을 이용하는 인원은 하루에 4만 여명 정도가 될 듯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대목장이라서 그런지 아침부터 20만 명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팔달문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의 말이다. 이곳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거쳐 가는 곳이지만, 29일 오후는 단 때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평소보다 세 배 정도 팔았어요.”

 

수원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 앞에서부터 지동교 바향으로는 사람들이 많아 제대로 걷기가 힘들 정도이다. 이리저리 피하기도 수월치가 않다. 팔달문 시장 거리와 영동시장, 그리고 패션 1번가와 시민백화점 등을 돌아보았다. 어림잡아도 주말에 모이는 인파의 두 배는 넘을 듯하다.

 

오후가 되면서 사람들이 많이 빠졌어요. 오전에는 정말 발 디딜 팀도 없었어요. 예년보다 올해가 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패션 1번가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이 예년보다 사람들이 더 몰린 듯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으 그동안 꾸준히 전통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을 해오기도 했지만, 방송 등에서 전통시장을 이용하라고 적극적으로 권유를 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고.

 

 

오늘은 정말 대목장 분위기가 납니다. 저희들도 오늘 평소 때보다 세 배는 더 판 것 같아요. 아무리 바빠도 매일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미나리광 시장에서 생선가게를 하는 한 상인은 바쁘다고 빨리 가라고 하면서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그만큼 온통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다. 못골시장 안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라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사람들에게 밀려 장도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정말 밀려서 그냥 물건 흥정도 제대로 못할 지경예요. 저희는 수지에서 왔는데 이렇게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정말 엄청나네요. 전통시장을 사람들이 이렇게 선호할 줄은 몰랐습니다.”

수지에서 장을 보러 왔다는 이아무개(, 43)는 제대로 장이나 보았는지 모르겠다면서 한 바퀴 더 돌아보아야겠다고 한다.

 

 

조상님의 음덕에 감사해야

 

오늘따라 노점상들까지 모여들어 정말 대목장 분위기가 납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인데 말이죠. 이렇게 전통시장에 나와 물건을 사면서, 흡사 과거 우리네 모습을 찾는 것 같아서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지동시장 정육점 앞에서 적거리를 사고 있던 한 시민은 차례는 조상님의 음덕에 감사를 하는 신성한 의식이다. 좋은 상품으로 제사를 모시는 것은 후손의 당연한 도리이다. 이곳 전통시장을 늘 이용하고 있는데, 이곳은 대형마트 등에서 찾을 수 없는 것들도 다 준비가 되어있다. 굳이 딴 곳을 가지 않아도 모든 것이 해결이 된다. 전통시장이 살아나야 지역 경제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라고 한다.

 

갑오년 정월 초하루를 맞이해 조상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즐길 수 있는 우리고유의 명절인 설날’. 전통시장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민족의 본 모습이 아니겠는가? 대목장을 돌아보면서 그 안에 들어가 그저 인파가 흐르는 대로 몸을 맡겨보아야겠다.

 

올 추석 차례 상은 지난해보다 오히려 장보기가 수월한 듯해요.”

추석이 임박하면서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예년의 차례 상 비용과는 달리, 올해는 오히려 갈수록 하락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15일 추석명절을 앞두고 지난828일과 94, 9, 11일 등 4차례에 걸쳐, 전국 17개 지역 39개소(전통시장 14, 대형마트 25)을 대상으로 시장별과 권역별 추석 차례 상 구입비용 및 선물세트 가격을 조사해 발표했다.

 

조사결과를 보면 지난 11일 기준 전국 평균 차례 상 구입비용은 전통시장 182702, 대형유통업체는 256808원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17개 지역을 5개 권역(수도권·충청권·전라권·경북권·경남권)으로 구분해 분석한 결과, 수도권의 전통시장 추석물가는 182702, 대형마트는 256808원이 소용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야채 값은 하락세, 도라지와 고사리는 지난해보다 비싸

 

전통시장을 이용할 때 조기는 3마리에 12,000원 정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팔달문 앞 전통시장의 경우 이보다 조금 싼 가격에도 구입이 가능하다고 한 상인은 이야기를 한다. 배는 상품 5개에 15,000, 중품은 12,000원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

 

노점상들이 파는 것은 그보다 더 싼값에 팔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정상적인 청과물 상회에서 사는 것이 물건이 믿을만하다.”고 장을 보러 나온 주부는 이야기를 한다. 이런 가격이라면 대형할인마트보다 전통시장이 28~30% 정도 저렴하게 추석 장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전체적인 물가는 전년 대비 1.3%가 올랐지만, 오이 등의 채소류 값은 91일 대비 50% 정도까지 가격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이는 917,100원이던 것이 15일에는 3,800원으로 내려갔으며, 무는 914,900원이던 것이 15일에는 3,250으로 내려갔다. 대파 한 봉지에도 91일에는 2,400원이던 것이, 15일에는 1,900원으로 하락했다. 이렇듯 채소 값이 하락을 한 것은 9월 초에는 일기 등의 이유로 출하를 하지 않았으나, 추석이 가까워지면서 산지에서 많은 양의 출하가 이루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추석 장 전통시장에서 마련하자.

 

대형마트의 경우에는 한 곳에서 모든 제수용품을 마련할 수 있는 편리함이 있고, 더욱 배달을 해주기도 해 편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정찰제로 운영이 되는 마트의 경우에는 전통시장에 있는 인간적인 따스함이 없죠. 전통시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부딪기면서 장을 보아야 제대로 추석을 맞이하는 기분이 듭니다.”

 

못골시장에서 추석 장을 보고 있던 한 시민의 말이다. 보따리마다 무게가 나가 힘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면 인간적인 정을 느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저는 늘 전통시장을 이용합니다. 전통시장에 나오면 무엇인가 우리 정서에 명절 장을 보는 기분이 물씬 나거든요. 조금은 불편하지만 그래도 우리 전통시장을 이용해야죠. 정이 있어 좋고, 질 좋은 제수용품을 싼 값에 구입할 수도 있고요.”

 

집 안에 어른들이 계시기 때문에 전통시장을 이용한다는 한 주부는, 전통시장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고 한다. 잘 정리가 된 대형마트는 깨끗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가득 쌓아놓은 물건들이 더 정감이 간다는 것이다.

 

우리의 정서에 맞는다는 전통시장. 이번 추석명절은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질 좋고 값이 싼 전통시장에서 한가위를 풍성하게 느껴볼 수 있도록.

서구화된 문명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조선조 말기부터, 일제강점기의 강압적인 우리문화 말살정책으로 인해 수없이 사라져간 우리의 풍속들. 그 안에는 상원일이라고 하는 정월 대보름의 놀이들이 있었다. 공동체를 창출하고 마을과 마을 간의 단합을 일구어 낸 수많은 놀이들이, 단지 옛것이나 미신이라는 폄하로 인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사실 정월 대보름은 우리민족에게는 4대 명절 증 하나였다. 설날, 추석, 동지와 함께 정월대보름을 큰 명절로 잡은 것이다. 이렇게 정월 대보름을 큰 명절로 잡은 이유는 정월 초사흘부터 시작한 각종 공동체놀이들이, 정월 대보름을 기해 마무리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월 초하루에 설을 쇤 사람들은 초이틀은 귀신 날이라고 해서 근신을 하다가, 하늘에서 평신(平神)이 하강한다는 초사흘부터 지신밟기 등 각종 놀이를 즐기기 시작한다.

 

두레싸움은 서로 상대마을의 두레기에 달려들어 꼭대기에 꽂힌 꿩장목을 빼앗는다

 

3일부터 시작하는 대동놀이들

 

음력 초3일되면 각 마을마다 두레패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한다. 지신밟기는 마을마다 한 집도 빠짐없이 다니면서 고사덕담(告祀德談)’인 축원을 해주는데, 문굿서 부터 시작을 해 우물, 마구간, 부엌, 장독대 등을 돈 후 대청에 마련해 놓은 고사상 앞에서 덕담을 한다.

 

고사덕담은 그 집이 일 년 동안 안과태평하기를 바라는 축원굿으로 일 년 간의 액을 막아내는 홍수풀이부터, 농사가 풍년이 들기를 바라는 농사풀이 등 창자의 능력을 따라 다양한 소리를 한다. 지신밟기를 마치면 대청에 마련한 술과 떡을 나누고 난 뒤, 고사상에 올려 진 쌀과 돈을 갖고 다음 집으로 향한다. 그 쌀과 돈은 마을의 기금으로 사용을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먼저 지신밟기를 하기 위해 풍물패를 집안으로 끌어들였다고 하니, 우리민족은 정월에 하는 놀이가 풍농과 안과태평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만 같다. 이렇게 마을을 돌면서 지신밟기를 하던 두레패들이 길에서 만나게 되면, 상대방에게 먼저 기를 숙여 인사를 하라고 소리를 친다. 그러다가 급기야 상대 두레기의 기의 상단에 꽂힌 꿩장목을 뽑게 되는데, 이것이 정월에 열리는 '두레싸움'이다.

 

두례싸움에서 먼저 꿩 장목을 빼앗긴 마을은, 상대방의 마을을 '형님마을'로 일년간 대우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긴 마을에서는 빼앗은 꿩장목을 기에 함께 달고 다니기도 했다. 진 마을에서는 일 년 동안 장목이 없는 두레기를 들고 다녀야만 한다. 

 

수원 고색동 코잡이 놀이( 사진 / 이용창)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줄다리기 

 

음력 정월 14일 밤이나 보름날 마을에서는 줄다리기를 벌인다. 줄다리기는 풍농과 다산, 마을의 안녕 등을 기원하는 기원성 대동놀이이다. 이 줄다리기는 처음부터 큰 줄을 갖고 줄다리기를 하기도 하지만, 처음에는 마을마다 작은 새끼줄을 갖고 줄을 당기고, 진 마을의 줄을 이긴 마을 줄에다가 더하게 된다.

 

그 줄을 갖고 이웃의 이긴 마을끼리 서로 줄다리기를 하면 조금 굵은 줄이 된다. 그것이 또 다른 마을과 시합을 하면서 자꾸만 더해져, 나중에는 얌용과 숫용이라는 거대한 줄이 된다. 이 줄을 암용의 용두는 넓게 하고, 숫용은 가늘고 뾰족하게 제작한다. 이 숫용의 용두를 암룡의 용두에 밀어 넣어 비녀라고 부르는 장목으로 고정시킨다.

 

이렇게 제작된 용을 당기게 되는데, 줄을 당기게 되는 이유와 용도는 마을마다 차이가 난다. 어느 곳은 여자와 남자로 나누어 당기기도 하는데, 이 때는 여자가 이겨야 풍농이 든다고 한다. 다산과 풍농이 필요한 시기에 나타난 속설이다. 또 이 줄을 마을 입구에 놓아 액을 막거나, 줄을 이용해 보를 막기도 한다. 어느 곳에서는 이 줄에 액송기를 꽂고 물에 떠내려 보내, 모든 액을 막아내기도 했다.

 

우리고장 고색동에는 코잡이놀이라고 하여 줄다리기가 전해졌다. 한 때 중단되었던 고색동 줄다리기는 인근 12개 마을에서 풍물패가 모여들어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 삭전(索戰)이라고도 부르는 줄다리기의 기원은 아주 오래전에 기인한다. 고색동 줄다리기도 언제부터 시작하였는지는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무척 오래전부터였던 것으로 보인다.

 

1796년 수원 화성의 축성 이후에는 양반과 평민이 나누어 줄을 당겼다고 전해지고 있는 고색동 줄다리기는, 일제 강점기는 1960년대 까지도 전승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의동 길마재줄다리기 역시 영통구 길마재와 용인시 수지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줄다리기를 하였다. 남자들은 동쪽 줄인 숫줄을 잡고 여자와 이이들은 서쪽 암줄을 당겼는데, 결과는 늘 암줄이 이겼다고 한다. 이는 여자들이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장치기는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활달하게 하기 위한 놀이였다

 

한 겨울의 움츠려든 몸을 푸는 장치기

 

장치기는 마상유희인 격구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정조대왕 당시 펴낸 <무예도보통지>의 무예 24기에도 마상무예 중 격구가 포함되어 있다. 격구는 고려조에 들어서 여자들도 즐겼으나, 너무나 요란한 치장으로 인해 중지를 시키기도 했다. 그러한 격구가 민간놀이로 변하게 된 것이 장치기라고 본다.

 

장치기는 간단하게 공을 몰고 다니는 이라는 나무막대와, 소나무공이나 짚을 이용해 만든 얼레공만 가지면 누구나 즐길 수가 있다. ‘얼레공치기라고도 부르는 장치기는 수원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3121일자 <동아일보>는 서탄면 황구지천에서 전국의 32개 남여 팀이 참가한, '전 조선 얼레공대회'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 사보 124일자부터 30일자까지에는 수원군 양감면 용소리 앞 냇가에서 얼레공대회를 개최한다는 예고가 실렸으며, 참가할 각 팀의 선수는 5명으로 한다고 하였다.

 

양감면 용소리 앞 냇가에서 열기로 한 전조선얼레공대회에, 구경꾼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 장소를 서탄면 황구지천으로 이동을 했다는 것이다. 예전 수원은 장치기를 재현시켜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한 겨울동안 움츠려들었던 몸을 풀고, 봄을 맞이하여 농사를 지을 힘을 비축하기 위한 놀이로도 많이 이용을 한 것이 장치기였다.

 

액송기를 꽂은 줄을 강물에 띄워보내는 액송의식 

 

그 외에 사라진 놀이

 

정월 열나흘이 되면 마을의 공터에 달집을 세운다. 대나무와 솔가지, 짚을 이용해 쌓은 달집은 보름을 맞아 농사를 짓기 전에 해충을 없애는 기능을 갖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해동(解冬=겨울을 녹인다)’의 뜻이 더 깊다. 쥐불놀이와 함께 대보름을 맞이하기 전에, 모든 재액을 태워버린다는 속설을 갖고 있기도 하다.

 

사람들은 라는 짚단으로 만든 것을 손에 들고 있다가, 달이 뜨기를 기다려 제일먼저 달이 뜬 것을 본 사람이, ‘망월(望月)이여를 외치면서 달집으로 달려가 불을 붙인다. 달맞이를 할 때는 임산부인 여자가 먼저 보면 남자아이를 낳고, 병자가 먼저 보면 병이 완쾌된다고도 한다. 처녀가 먼저 보면 시집을 가고, 총각이 먼저 보면 장가를 간다고도 한다.

 

달집태우기(사진 / 이용창)

 

이렇게 다양한 우리들의 상원일의 놀이는 이 외에도 마을과 마을이 벌이는 횃불싸움이나, 수원의 여러 마을에서 나타났던 석전(石戰=돌싸움), 그리고 일 년 동안 건강한 몸과 다리를 튼튼하게 한다는 다리밟기 등 많은 놀이가 전해지고 있었다.

 

정월 보름날 아침에는 연에다가 서원을 적거나, 집안의 애환을 적어 날려 보내는 액연날리기도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정월 대보름의 놀이들은 모두가 풍농과 풍어, 마을의 안녕, 가내의 안과태평 등의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민족은 그 안에서 공동체를 창출했으며, 놀이를 하면서 이웃과 하나가 되는 우리라는 단단한 결속력을 다졌던 것이다.

 

그러나 작금에 들어 재현이 되는 많은 놀이들을 보면서,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사고는 사라진 채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전시성민속이 되어가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민족의 상원일의 놀이는 단순한 연희가 아닌, 그 내면에 깊은 사고를 지닌 놀이였기 때문이다.

3천 만 명 이상이 민족의 대이동을 했다는 계사년 설 연휴. 몇 군데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우리나라의 설은 명절 중에서도 가장 큰 명절이다. 명절 때가 되면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밀린 이야기들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이런 명절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행복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명절이 더 외로운 사람들도 있다. 자신의 직업 때문에 고향을 찾아가 가족을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은 그래도 행복한 편이다. 그것은 자신이 할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날 수 있는 가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날 수 없는 사람들. 설날인 10일 하루 동안 찾아 본 그들의 마음 아픈 이야기이다.

 

 

3년 째 보지못한 가족, 체취라도 맡고싶어

 

서울을 올라가려고 수원역을 나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뒤늦게 고행을 찾아 기차를 타려고 역사 안이 시끌벅적하다. 그 한편에 남루한 차림의 남자가 보인다. 보따리를 하나 곁에 두고 하염없이 기차를 타기위해 줄을 선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눈에 이슬이 맺혀있는 것이 보인다. 곁에 가서 괜히 이야기를 걸어본다.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사람이 깊은 한숨을 내쉰다.

 

날씨가 추울 거라고 하더니 좀 풀렸네요.”

담배 피우세요?”

나가서 담배나 한 대 피우시죠.”

 

흡연구역으로 따라 나오기는 했지만 정작 담배를 피우지를 않는다. 가만히 보니 담배가 없는 듯하다. 매점으로 가서 담배 한 갑을 사서 손에 쥐어준다. 그리고 묻고 싶었던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고향이 어디세요?”

“......”

그런데 고향에 안 가세요?”

벌써 가족들을 보지 못한지 3년이 넘었네요.”

 

고향조차 말하기가 어려운 듯하다. 사업을 하다가 본의 아니게 부도를 내고 말았다는 김아무개() 고향을 갈 수도 없고, 전화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명절 때만 되면 역에 나와 이렇게 사람들이 고향을 가는 모습이라도 보고 싶다는 것이다. 이렇게라도 하면 보지 못하는 가족들의 체취라도 맡을 수 있을까 해서란다. 그 말에 가슴이 아려온다. 나 역시 한 때 가족들과 떨어져 수많은 날을 그리움으로 지새보았기에, 그런 마음이 이해가 가기 때문이다.

 

 

찬바람을 맞는 어르신은 왜 혼자였을까?

 

명절 전인 8일 재래시장을 취재하러 나갔다. 취재를 마치고 일부러 남수문을 돌아 화성을 좀 걷고 싶었다. 창룡문 쪽을 따라 성 밑 길을 걷고 있는데, 추운 날씨에 어르신 한 분이 성 밑돌에 앉아계시다. 이 추운데 왜 저곳에 계신 것일까?

 

어르신 이 추운데 왜 거기 계세요. 고뿔드시겠어요.”

갈 데가 없어

집이 없으세요?”

아니 잔 집은 있어. 그런데 장에 나온 사람들 구경하느라고

그럼 장으로 가서 보셔야죠.”

장으로 들어가면 아이들이 더 보고 싶어서.”

 

말끝을 흐리시는 어르신. 혼자 생활을 하시는 홀몸어르신이라고 하신다. 아들딸이 있지만, 벌써 보지 못한지가 오래되었다고. 어쩌다보니 혼자가 되었다고 하시는 어르신, 더 이상을 물을 수가 없다. 언제인가 방송 일을 할 때 양로원에 계시던 분의 말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 그분은 자녀들이 살고 있는 주소도 모른다. 집 전화번호도 모른다. 그리고 심지어는 아들의 이름도 모르신다고 했다. 자녀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부모의 마음이다. 그러나 밤이 되면 눈물을 흘리시면서 무엇인가 방바닥에 손가락 글씨를 쓰더라는 것이다. 물론 그 손가락 글씨는 보고 싶은 사람들의 이름이나, 귀여운 손자손녀들의 이름이었을 것이다.

 

명절이 되면 더 슬픈 사람들.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명절 때마다 피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러저런 이유로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혼자 쓸쓸히 명절을 보내는 많은 사람들. 이젠 더 이상 이렇게 가슴 아픈 모습들을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새정부가 들어서고 최우선이 서민들의 복지라고 한다.

 

과연 이 새 정부가 온전한 복지를 이루어낼 수 있으려는지 모르겠다. 올 계사년 추석에는 제발 이렇게 혼자서 아픈 가슴으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는 무관합니다. 설날 한국민속촌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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