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자식 과잉보호라는 것이 무엇인지? 또는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 자신이 아이들을 잘 키우지 못했으니, 무엇이라고 말할 자격은 없다. 가끔 이웃블로거들의 아이들에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가슴 시리게 반성을 하는 것도 내가 아이들에게 살갑게 대하지를 못했기 때문인가 보다.

일을 보러 여기저기 다니다가 보면 거의 외식을 해야만 한다. 원래 분위기 없는 인사인지라 그럴 듯한 레스트랑은 그만두고라도, 시설 좋은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는 것은 아예 꿈조차 꾸질 못한다. 그렇게 다니다가 보면 편안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그런 집을 선호하는 편이다. 오랜 시간 답사를 하다가보니 이젠 대충 느낌으로도, 저 집이 괜찮겠다는 정도는 되었으니 말이다.  

이미지 사진입니다

식당을 헤짚고 다니는 아이

밥을 먹으러 식당을 들어갔다. 넓지 않은 식당 안은 일요일이라 그런지 꽤 많은 사람들이 식사중이다.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리는 없다. 늘 그렇게 혼자 먹고 다니지만, 아직도 혼자 먹는다는 그런 불편함이 가시지를 않았나보다. 한편에 자리를 잡고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너댓살 먹은 꼬마가 식탁위로 기어 오른다. 처음에는 그저 무심히 바라다보고 있었는데, 아예 식탁 위에 올라가 쿵쿵거리기 까지 한다.

꼬마를 달래 내려놓으니, 이 녀석 다시 올라가 난리를 친다. 이 식당안에서 밥을 먹는 누군가의 아이일텐데 말리지를 않는다. 밥을 차려 놓았는데도, 이 녀석 상 위로 오르기를 그치지를 않는다. 할 수 없이 한 마디 했다.

"이 꼬마 어떤 분이 데리고 왔어요? 좀 부르세요"
"얘... 이리오라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이 녀석 도대체가 말을 듣지 않는다. 이쯤 되면 슬슬 부아가 치민다.

'아줌마라뇨? 내가 아줌마 같아요?'

"아이좀 부르세요 아줌마"
"머라고요?"
"아이좀 부르라고요 밥좀 먹게"
"이 아저씨봐. 내가 아줌마처럼 보여요?"
"이 아이 엄마 아니세요?"
"참 어이가 없네. 아저씨 눈좀 독바로 뜨고 다니세요. 내가 어딜봐서 아줌마예요?"

이쯤되면 밥이고 머고 기분 다 상했다.

"아줌마, 아이를 데리고 다니려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지. 밥 먹는데 아이가 이렇게 해도 놓아둡니까?"
"나 아줌마 아니란 말에요"
"그럼 이 아이는 누구예요?"
"우리 이웃집 아이인데 잠시 맡아 있는거라구요. 나에게 아줌마라니.."

아이를 부르라고 했더니, '아줌마'에 목숨을 건다. 이런 세상에. 아무리 보아도 아줌마처럼 보이는데. 자기 아이가 아니라고 한다. 이럴 땐 무엇이라고 해야하나? 사과를 해야하나? 아니면 끝까지 우겨야만 하나. 참으로 난감하다.

"남의집 아이를 맡았다고 해도, 이 아이 아줌마가 데리고 왔으니 데리고 있어야지 밥을 먹을 수가 없잖아요"
"아저씨 나 아줌마 아니라는데 왜 자꾸만 아줌마라고 하는 거예요"

급기야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소리를 지른다. 식당 안에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다. 이건 내가 잘못한 것으로 매도를 당하는 것만 같다.

"아줌마가 아니라면 미안해요. 그래도 그렇지 아이를 데리고 오셨으면 적어도 남에게 방해는 주지 말아야죠"
"내가 무슨 방해를 주었어요. 그 아이가 그리 간 것이지"

이쯤되면 할 말이 없다. 그저 모든 것은 다 내탓이다. 밥을 먹는다는 것도 불편하다. 누구 아이이건 이렇게 아이를 방치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도대체 아이 교육이란 무엇일까? 괜히 아이가 잘못한 것을 '아줌마'로 이야길 돌리는 수단에 놀랄 수밖에. 할 수 없이 돈을 계산하고 그냥 나오고 말았다. 밤 기차를 타야하는데 쫄쫄 굶고가게 생겼다. 밖으로 나오니 식당 주인이 따라나와 한 마디 한다.

"손님 죄송해요. 식사도 안하셨는데 밥값을 내시네. 저 아이 저 여자분이 맨날 데리고 다니는 아이예요"

참 이제와서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이람. 저 아줌마는 죽어도 자기 아이가 아니라고 하고, 아줌마도 아니라는데. 이제와 다시 들어가 계속 따질 수도 없고. 아줌마가 아니라고 이마에 써 붙인 것도 아니고. 괜히 죄없는 배 탓만 할 수 밖에. 걸음을 걸으면서 비 맞은 무엇처럼 혼자 중얼거린다.

'맨날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아줌마 맞네' 

모처럼 마음 편하게 기차에 올랐다. 그저 단 며칠이지만, 세상 시름 모두 내려놓고 쉬러가는 길이다. 기차에서부터 몸을 축 늘어트린다. 3일간이지만, 세상에서 피곤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다. 잠시 눈을 붙인 것 같은데, 벌써 내릴 때가 되었다. 아마도 그동안 이일저일로 쌓였던 스트레스가 사람을 지치게 만든 것인가 보다.

역에서 내려 차를 타려고 택시 승강장 쪽으로 걸어가는데 누군가 부르는 것 같다. 뒤를 돌아보니 낯선 남자 하나가 쫒아온다.

“선생님 저 모르시겠어요?”
“잘 모르겠는데요.”
“벌써 한 8년 된 것 같네요. 잘 모르실거예요”
“죄송합니다만 기억이 나질 않아서요. 누구신지?”
“저 예전에 역전에서 노숙하던 사람입니다. 선생님께 매번 술값을 달라던”
“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도시. 그 안에는 별별일이 다 있게 마련이다.

밥 대신 술을 사달라던 사람이

그렇게 이야길 듣고 보니 얼굴이 조금 떠오르는 듯도 하다. 하지만 그때는 정말로 몰골이 추했을 때고, 지금은 이렇게 멋진 신사가 되어있으니 알 수가 있나. 잠시 이야기를 하자고 근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이 아니시면 저는 아마 지금도 역에서 노숙을 하고 있을 겁니다.”
“아니,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그나저나 지금 몇 살이세요?”
“저 지금 마흔 일곱입니다. 이름은 ○○○이구요”
“그래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하네요.”

쉴 새 없이 퍼붓는 질문에 이 분 웃어가면서 이야기를 한다. 당시 매년 연말이 되면 내가 하는 일이 있었다. 세상에서 많은 분들게 너무 많이 받았다고 늘 미안한 생각이 들었을 때다. 조금이나마 남에게 베풀겠다고 생각을 한 것이 털목도리와 털장갑, 양말 그리고 과일과 빵 등을 봉지에 담아 50봉지 정도를 준비해, 역에서 노숙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는 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이 이런 것 말고 10,000원만 달란다. 술이나 한 잔 먹겠다고 하면서. 그래서 돈을 주었더니, 이 사람이 역에서 만날 때마다 술값을 달라는 것이다. 노숙을 하면서 오죽이나 힘이 들면 그럴까하고 이해도 하지만, 심한 것 같아 혼을 낸 적이 있다. 나이도 별로 많지 않은 사람이 이게 무슨 짓이냐고, 술 먹을 돈으로 밥을 먹고 힘을 내 살아갈 궁리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준 것이다.

그 뒤로 그 사람을 역에서 볼 수 없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어디로 갔는지 그 뒤로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선생님께서 그렇게 혼을 내시고 난 뒤 처음에는 더러워서 살아보겠다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선생님 원망을 하면서요. 그런데 돈이 모이고 방이라도 얻고 보니, 선생님의 마음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어서 여기저기 찾았는데 영 소식을 듣지 못하겠대요.”

세상은 음지가 양지가 되고, 양지가 음지가 된다고 했던가? 그 일 이후 난 그곳에서 사람들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고, 그 고장을 떠나버렸다. 그리고는 그쪽으로 몇 년을 발길도 돌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신수가 훤해진 사람을 만난 것이다. 역시 세상은 이래서 재미가 있는 것인지.

아마도 이 사람은 무슨 이유로 노숙을 했는지는 몰라도 심성이 착한 사람이었나보다. 그렇게 바로 일어설 수가 있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노숙인들이라고 다 탓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마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나도 남들에게 아픔을 당한 것이, 다 이렇게 마음을 아프게해서 나도 그런 일을 당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결국 그 모든 것이 그대로 받는 업보는 아닐까 모르겠다. 

“선생님 연락처 하나 주세요. 제가 아이들하고 꼭 한 번 찾아뵙고 싶습니다. 제 아내도 선생님을 꼭 만나고 싶어합니다”

명함 한 장을 건네주고 돌아 나오면서, 어쩌면 이것이 올 한가위 선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도 이 사람이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 아닐는지. 날이 잔뜩 흐렸는데도, 기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맑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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