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 24기는 정조임금이 실전에 맞게 집대성한 것으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수록되어 있는 무예를 말한다. ‘무예24(武藝二十四技)’는 조선시대 군사무예교범인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24가지의 무예로, ‘무예이십사반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다. 하지만 실제 무예도보통지 속에는 무예이십사기로 기록되어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각종 외침을 겪었던 조선이 자주국방을 이루기 위해 조선, 중국, 일본 등 동양 삼국의 무예 중 정수만을 집대성한 실전무예지이다. 더욱 무예도보통지에는 우리나라의 무기만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 사용하던 무기들까지도 그 동작 등을 실어 실전의 교범으로 삼고 있다는 데에서, 가히 당대 최고의 무예지라고 볼 수 있다. 무예도보통지에 전하는 무예 24기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1. 본국검 2. 예도 3. 제독검 4. 쌍수도 5. 쌍검 6. 마상쌍검

7. 등패 8. 왜검 9. 왜검교전 10. 월도 11. 마상월도 12. 협도

13. 장창 14. 기창(騎槍) 15. 죽장창 16. 기창(旗槍) 17. 당파 18. 낭선

19. 권법 20. 곤봉 21. 편곤 22. 마상편곤 23. 격구 24. 마상재 등이다.

 

창룡문 앞에서 펼쳐진 무예24기 시연

 

15일 오후 3시 수원 화성의 창룡문 안 잔디밭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오후 1시가 조금 넘어서부터 자리를 깔고 앉아있는 가족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무예24기 시범이 보일 시간이 되자 창룡문과 인근에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아침부터 차비를 하고 창룡문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2시가 좀 안되어서이다.

 

 

 

 

 

날이 뜨겁다. 한 여름 날씨보다는 많이 시원해졌다고 해도, 아직도 한 낮의 기온은 30도에 육박한다. 자리를 잘 차지하고 앉았으니 비울 수도 없다. 잠시만 자리를 비워도 딴 사람들이 앉아버리기 때문이다. 흐르는 땀을 닦아가면서 자리를 지키는 수밖에. 먼저 창과 검 등을 들고 시범을 보인 후 마상무예가 시작이 되었다. 사람들은 말을 탄 무예24기 시범단이 말을 달려 앞으로 지나갈 때마다 환호를 하면서 박수를 친다.

 

그러던 중 잠시 소란이 인다. 말을 달려 나오기 시작하는 곳에서 단원을 태운 말이 쓰러져버렸다. 무슨 일일까? 다치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말을 타고 시범을 보이는 사람들이 몇 바퀴를 돌았는데도 말 위에서 떨어진 단원은 보이지를 않는다. 걱정을 하고 있던 차에 다시 말을 달려 나오는 모습을 보고서야 안도의 숨을 내쉰다.

 

 

 

 

 

많은 사람들 환호로 격려 하지만 마음은 아파

 

수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서 무예24기 시범을 보이고 있는 시범단에게 격려를 한다. 한 사람은 저렇게 기술을 연마하기 까지 상당한 노력을 했을 텐데, 도대체 저런 단원들에게 얼마나 많은 봉급을 주어야 하느냐고 이야기를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마음이 아프다, 늘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만, 무예24기 시범과 화성을 떼놓고 이야기 할 수가 없다. 화성이 유형의 자산이라면 무예24기는 무형의 자산이다. 하지만 아직도 무예24기 단원들은 일당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상에 어느 지자체가 자신들의 상징인 기능을 보여주고 있는데 일당제로 고용을 하고 있을까?

 

 

 

 

 

시범을 보이다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치료야 보험으로 해결한다고 하지만, 시범을 보이지 못하면 당장 생계를 꾸려나가기 힘든 것이 시범단원들이다. 수원을 가장 남들에게 알릴 수 있는 것, 그리고 가장 수원스런 것이 바로 무예24기 시범단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땀을 흘리며 시범을 보이고 있는 무에24기 시범단원들을 보면서 하루빨리 이들이 마음 편하게 시범을 보이고, 무예24기의 온전한 전승을 위해 노력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

한 무예인이 자신이 그동안 연구하고, 직접 시연하던 무예 24기 중 <조선후기 기병전술과 마상무예>에 대한 내용을 제목으로 하는 책을 써냈다. 이 책은 288쪽 분량으로 임진왜란기의 기병전술과 마상무예의 특성부터, 19세기 기병전술과 마상무예의 쇠퇴기까지를 시대별로 정리를 하였다.

 

책의 저자인 최형국은 실제 조선시대 전통무예를 수원 화성에서 20여 년 간 수련해온 실제 무예인이다. 자신이 연마해 온 무예를 바탕으로, 조선시대 무예사를 전공하여 중앙대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온 몸으로 마상무예를 연마하고 그것을 한 권의 책으로 엮기까지, 마음 속에 응어리를 풀지 못한 저자는 이 책속에 모든 것을 다 담아냈다.

 

 

특히 본 서의 주제인 마상무예 뿐만 아니라 전통무예 전반을 집중적으로 수련하여 실기사를 바탕으로 한 무예사 연구의 시초를 연 조선시대 군사, 무예 전문가다. 현재 수원 화성행궁에서 매일 시범 공연되고 있는 무예24상설공연(수원문화재단 주관)의 수석단원 및 한국전통무예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은 자신의 박사학위논문인 <朝鮮後期 騎兵馬上武藝 硏究>(중앙대학교 2011, 8)을 정리하여 단행본으로 엮은 것이다.

 

안타까운 무예인의 현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안타까움을 표출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무인(武人)’에 대한 연구는 지극히 부족한 실정이다. 마치 현재 학계의 흐름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에 대한 연구나 군사(軍史)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새가 좌우의 날개로 하늘 높이 날아갈 수 있듯이 국가는 문()과 무()가 균형을 이뤄야만 안정적인 발전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역사학이라는 학문에서도 이러한 문무균형의 원칙은 산산조각 나버린 지 오래고, 안타깝지만 거의 문 중심의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다. 물론 이러한 평가는 필자가 무적인 부분을 중심으로 연구해서 생기는 조금은 편향된 시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무에 대한 연구를 지속할 경우 쉽게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지 못하기에, 생계유지도 막막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임진왜란기부터 19세기까지의 체계적인 마상무예 연구

 

10년 이상을 연구해서 논문으로 펴내고, 그것을 보완해 한 권의 단행본으로 엮기까지 오직 무()와 무인(武人), 마상무예에 몰두한 저자의 노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최형국 박사는 본 저서에서 '조선후기 기병전술과 마상무예'를 실제 무예를 수련하고 연구하는 입장에서 기존의 이론에 실기를 함께 병행해 역사학으로서의 무예사에 보다 본질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란 국가 위기를 겪은 뒤, 조선후기 기병전술과 마상무예에 대한 무예사적 특성과 이에 따른 전술적 변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했다. 저자는 조선후기 기병전술과 마상무예는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주변 국가의 군세 속에서 끊임없이 수정과 보완을 거듭해 왔고,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고 본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중 특수한 병종(兵種)인 기병과 기마무예라는 군세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접근을 통해, 조선시대의 무예사를 보다 면밀하게 살펴보았다. 또한 당시 전술의 변화와 정치, 사회적인 변화들까지 확대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기존의 기병에 대한 제도사적 접근의 한계와 연구 시기의 협소성을 뛰어넘어, 기병의 전술사적 연구와 더불어 기병이 훈련했던 마상무예의 실기를 수련하고 연구하는 입장에서 조선후기 전반에 걸친 기병의 마상무예 변화와 특성을 살펴본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끊임없이 노력한 흔적 역력해

 

기마무예는 한 시기를 정점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정조대에는 장용영(壯勇營)을 중심으로 한 기병 강화 정책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사도세자가 만든 보병무예 중심의 '무예신보(武藝新譜)'에 마상무예 여섯 가지를 추가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를 간행하여 중앙군영과 지방군에 보급하였다.

 

또한 이와 함께 편찬된 병서인 '병학통(兵學通)''이진총방(肄陣總方)' 등에는 기존 병서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기병의 다양한 진법들이 실려 있어 기병전술 강화를 의도했다. 이러한 기병 강화 정책은 화약무기의 발달과 함께 정조대에 완성된 거··(車騎步) 통합전법에서 기병의 역할을 극대화시킴으로써, 화약무기 연속 사격의 단점을 보완하여 다양한 전술구사를 가능하게 하였다.

 

더불어 기병의 마상무예에도 변화가 있었는데, 마상편곤이 무과시험 과목으로 채택되는 등 기병의 필수무예로 정착되었다. 마상편곤은 적에게 깊숙이 접근하여 근거리에서 빠르게 적을 타격할 수 있어 기존의 환도나 기창보다 효과적으로 적을 제압할 수 있는 무기였다.

 

그러나 이러한 기병전술과 마상무예의 정비는 19세기에 들어서면서 크게 쇠퇴하였다. 훈련대장 박종경이 편찬한 '융원필비(戎垣必備)'에는 화약무기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 당시의 변화하는 전술사적 특징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기병의 핵심 업무가 국왕 원행 호위나 궁궐 숙위 부분으로 한정되었으며, 마상무예의 경우도 기병의 쇠퇴현상에 따라 점차 궁궐 숙위병 위주로 한정되어 훈련되었다. 이러한 기마무예의 쇠퇴는 화약무기의 급격한 발달로 인하여 그 실효적 가치를 잃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도서출판 혜안 펴냄, 지은이 최형국(한국전통무예연구소 소장), 288, 26천원, 신국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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