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어처구니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점심을 먹으면서 기분 좋게 사진을 몇 징 찍었습니다. 반찬이 좋아 소개를 좀 할까 해서. 그런데 정박 밥은 찍을 생각도 않고, 반찬도 찍었다는. 이런 경우 이걸 어쩌나하고 후회를 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저 나이가 먹더니 벌써 치매 끼가 온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네요.

 

이천시 관고동 503-5 번지에 소재한 이천 쌀밥 한정식 집인 동강’. 이천 마란다 호텔 앞에서 곤지암으로 향해 올라가다가 우측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맞은편에는 마치 거대한 방주같은 이천중앙교회가 자리를 하고 있어, 누구나 찾기가 수월할 듯하네요. 이 집은 외형적으로는 그저 단순한 조립식 건물입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면 으리으리한 한옥이죠.

 

 

건물 안에 한옥이 있어

 

정말 반전입니다. 건물 안에 이렇게 멋진 한옥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그런데 점심을 먹으로 들어갔는데, 이 집에서 먹는 점심이 가격이 싼 편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이천의 쌀밥 집을 들어가면 한 사람 당 2만 원 정도의 식사대가 나옵니다. 거기에 비하면 조금은 씬 편입니다. 17,000원 이니까요.

 

경기도가 선정한 음식점인 동강. 반찬이 그런대로 꽤 먹을 만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반찬만 찍었지, 정작 밥을 찍지 못했습니다. 밥 먹는다고 빠져서 그랬죠. 아마도 이 집의 음식이 입에 맞았던지, 나오자마자 먹는 것에 열중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나, 이젠 맛집 소개 그만 두어야 할까 봅니다. 이렇게 정신이 없어서야 원~.

 

아무튼 반찬이라도 죽 올려드리렵니다. 17,000원이나 받는 밥상이기 때문에....

 

사람이 짐승에게서 배울 것은 하나 둘이 아니다. 특히 농촌에서 사람과 가장 가까이 있는 소에게서 배울 것은 더욱 더 그렇다. 흔히 소선생, 혹은 우선생이라고 하는 소는, 옛 선인들은 사람에게 가장 많은 것을 준다고 하였다. 그러기에 소 한 마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그저 짐승으로만 여긴 것이 아니다.

 

소에게서 배우게 되는 세상살이. 그리고 주인이 시키는 대로 말없이 따라하는 우직한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조금은 어리석게도 보이지만, 그것이 주인에 대한 충심인지도 모르겠다. 소와 동행을 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에서 세상을 배운다.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를 돌아보고, 영월의 동강과 서강이 만나는 합수머리를 찾아가는 길에 만난 '소를 몰고 가는 여인'.  지금은 어디를 가도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다. 더욱이 차도 한 편으로 걷는 소는, 절대로 포장이 된 도로 위로 올라오려고 하지를 않는다.

 

소는 절대로 포장도로 위로 올라오려고 하지를 않았다.
 

버티면서 땅만을 밟고 있는 소. 우직함일까? 아니면 생명을 지키기 위함일까?

저 멀리 굽이길을 돌아설 때까지 한 번도 도로를 밟지 않고 땅으로만 걷는 소

 

소를 끌고 가는 여인이 잡아 끌어보아도, 도로 위로 올라오지 않는 우직한 소. 한낱 짐승이지만 예의를 아는 것일까? 아니면 도로 위로 오르면 생명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저 멀리 굽이치는 길을 돌아설 때까지 한 옆으로만 걸어가는 소와 여인. 그 광경이 참으로 아름답다.

 

동강과 서강이 만나는 영월읍의 합수머리. 다리쪽에서 흐르는 물이 서강이다. 사진 밑에 우측으로 오르면서 동강이 된다.

 

태백산 검룡소에서 발원한 물이, 정선의 아우라지를 만나 조양강을 이룬다. 그리고 이 물이 오대산에서 발원한 평창강(주천강, 서강)과 만나는 영월의 합수머리에서 남한강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동강의 길이는 56㎞에 달하며, 서강은 영월군 한반도면 옹정리 선암마을에서 시작하여, 단종의 첫 유배지인 청령포를 감싸 안으며 영월읍 합수머리에서 동강과 만나 남한강으로 흐른다. 

 

합수머리 동 서강이 모여 큰 물을 이루면서 강의 이름이 남한강으로 바뀐다.

 

물이 맑고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 널려있다는 동강과 서강. 그리고 그 물이 합수머리부터 남한강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바뀌어 흐르는 구간에도 아름다움은 끝없이 펼쳐진다. 그러나 찢기고 할퀴어진 남한강은 이제 그 옛 모습을 다시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합수머리에서 바라보는 동, 서강과 남한강이 애틋하게 다가오는가 보다.

영월읍을 가로 질러 흐르는 동강. 그곳에는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이 되어 영월 땅으로 유배를 간 후, 그것마저 부족해 수하들을 시켜 단종을 죽음으로 몬 수양의 슬픈 이야기가 전하는 정자가 있다. 단종이 죽고 난 뒤, 낙화암에서 동강 푸른 물로 몸을 날려 단종을 따른 시녀와 종인들의 슬픈 영혼을 위로하는 사당이 있다.

 

그 사당 앞에 자리 잡은 정자가 동강 푸른물을 굽어보고 있는 금강정이다. 금강정은 세종 10년인 1428년 김복항이 처음으로 건립하였다고 전해진다. 금강정을 찾은 날은 벌써 꽤 오래되었다. 사람들은 그 주변에서 운동을 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이 금강정의 슬픈 이야기는 모르고 있는 듯하다.

 


단종이 숙부인 세조에 의해 죽임을 당한 해가 세조 3년인 1457년이었으니, 시녀와 종인들이 이곳에 와 동강 푸른물에 몸을 날렸을 때는, 이미 금강정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아마 시녀와 종인들은 단종이 머물던 동헌을 떠나, 이곳으로 와 이 금강정에서 마음을 추스르지 않았을까? 동강을 굽어보고 있는 금강정은 대답이 없다.  

 

금강정은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4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이자삼이 영월 군수로 있을 때, 금강정이란 명칭을 붙였다고 한다.

 

정면 네 칸의 팔작 정자

 

금강정은 이자삼이 영월 군수로 있을 때, 정자를 고쳐짓고 금강정이라 이름 붙인 것이라고 한다. 송시열이 숙종 10년인 1684년에 쓴 금강정기가 남아있다고 한다. 금강정은 처음으로 이 자리에 짓고 나서 벌써 600년 가까이 된 셈이다.

 

금강정은 30cm 정도의 자연석 기단 위에 덤벙 주초를 놓고, 둥근 기둥을 이용하여 정자를 지었다. 정면 네 칸, 측면 세 칸의 정자는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지었다. 정자의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머름형태의 평난간을 둘러놓았다. 화려하지 않은 금강정의 처마를 올려다보면 조금은 색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처마 밑 장식을 용이나 닭 등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금강정은 잉어를 조각한 듯하다. 아마 밑을 흐르는 동강 맑은 물을 상징이라도 하는 것인가 보다.

 

금강정은 30cm 정도의 자연석 기단 위에 덤벙 주초를 놓고, 둥근 기둥을 이용하여 정자를 지었다.

잉어를 조각해 놓은 듯하다.

 

아름다운 금강정, 세월은 슬픔도 잊어

 

현재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4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금강정. 그동안 수차례 보수를 하였겠지만, 그 아름다운 모습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정자 뒤편에 있는 시녀와 종인들의 넋을 위하는 민충사와 함께 동강을 굽어보고 있어, 역사를 알고 나니 슬픔을 간직한 듯 보인다.

 

금강정 앞으로는 동강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조망대를 설치하였다. 그곳으로 발길을 옮기니 멀리 흘러 남한강으로 이름을 바꿔 흐르는 동강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모시던 임금이 사약을 받는 모습을 본 시녀와 종인들도 이렇게 동강 맑은 물을 내려다보았을까? 그 때 그들의 마음을 가늠조차 할 수 없다.

 

금강정에서 바라본 동강. 단종이 죽은 후 이곳에서 동강으로 뛰어 든 시녀와 종인들이 마음을 느껴보다.

 

 

금강정은 정면 네 칸, 측면 세 칸의 정자는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지었다.

 

난간에는 여기저기 낙서를 해 놓은 것이 보인다. 젊은 사람들이 찾아와 서로의 사랑을 약속하면서 굳은 맹서라도 한 것일까? 역사의 슬픈 흔적은 그 낙서로 인해 다 지워지는 듯하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을 다 잊는 사람들. 그래서 사람들은 세월이 약이라고 하는가 보다. 여기저기 쓰인 낙서를 보다가 쓴 웃음을 짓고 만다.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낙서. 이제는 그런 모습을 보고도 화가 나지도 않는다. 그저 그러려니 할 뿐.

 

오늘도 금강정 앞으로 흐르는 동강은 그렇게 말이 없다. 600년 전의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자에 올라 동강을 굽어보며 잠시 고개를 숙인다. 이 찬 물로 뛰어들었을 시녀와 종인들이 넋이라도 위로를 할 생각으로. 세월은 그렇게 흐르고, 슬픔을 안은 역사는 그리 계속되는 것인지. 

 

조망대 난간에 쓰인 낙서

젊은이들이 사랑을 확인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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