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수탈과 도난은 우리 역사에 오점을 남기고 있는 사건이다. 수많은 외침을 당한 우리 역사 속에서, 중요한 문화재를 수탈당한 것은 참으로 치욕적인 일이기도 하다. 아직도 내 나라의 소중한 문화재가 엉뚱한 곳에 가서 진열이 되어있는 것을 보아야 하는 우리네다. 그런데도 국권 운운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렇게 국권이 대단한 나라라고 한다면, 약탈당한 문화재조차 왜 제대로 환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외국의 걸출한 사람들을 모아다가 국제회의라고 하면서, 왜 그럴 때 우리문화재 환수를 거론조차 하지 않았을까? 그러면서도 문화재를 지켜야 하다고 입만 열면 떠버리는 것을 보면, 이 나라에 과연 문화재의 가치를 알고 있는 양반들이 있기는 한 것인지 모르겠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는 도난문화재에 대한 정보가 오른다

끝이 없는 문화재 절도, 막을 방법이 없을까?

나는 늘 문화재청 홈페이지를 검색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문화재 답사를 나가기 전에, 지역의 문화재에 대해 세세하게 살피고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문화재에 대한 기초적인 상식도 없이 답사를 나가면, 정작 그 문화재의 소중한 면을 빠트리기가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화재청 홈페이지를 볼 때마다 눈길을 끄는 것이 보인다.

바로 ‘도난문화재’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숱하게 약탈을 당한 문화재, 그것도 모자라 이젠 도적들까지 문화재를 집어다가 팔아먹고 있다. 도대체 이 인간들은 어찌된 것들이기에, 소중한 문화재를 훔쳐다가 팔아먹는 것일까? 몇 년 전인가 대대적으로 문화재를 도굴하던 범인들이 잡힌 적이 있다.

그 집 안에는 각종 도굴된 문화재들이 가득히 쌓여있었다는 것이다. 난 그때도 울화가 치밀어 문화재를 훼손, 도난, 도굴, 외국에 팔아먹는 행위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중벌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어떻게 소중한 문화유산을 제 배 불리자고 내다 팔수가 있단 말인가?

그런대도 문화재 도난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도대체 이 나라의 문화재법이 맹물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빼앗기고, 그것도 모자라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폄훼하고, 이젠 도적놈들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제는 문짝까지 떼어간다. 세 번째 도난을 당한 곳이다.

사라진 문화재를 찾습니다.

중요민속문화재 제170-4호인 봉화 거촌리 쌍벽당. 기록에 보면 조선 고종 29년인 1892년에 안채를 크게 수리하면서 외당을 별도로 세웠다고 한다. ‘쌍벽당’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 별당은 이때 지은 것으로 보인다.

이 쌍벽당의 도난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0년 6월 11일부터, 2000년 6월 18일 사이에 고서 247책을 도난당했다. 그런데도 3년이 지난 2003년 6월 26일부터 2003년 6월 28일 사이에 고서적 158책이 또 도난을 당했다. 더구나 이번에는 (2011, 5, 9 이전) 안방 문짝 3점과 사랑방 문짝 1점, 그리고 별채 문짝 2점 등 총 6점의 문짝을 떼어갔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해가 가질 않는다. 문화재관리를 어떻게 하기에, 두 번이나 연속해서 도난을 당한 곳이 이번에 세 번째로 또 털렸을까? 납득이 가질 않는 부분이다. 도난문화재에 심심찮게 올라오는 새 글이 보인다. 그것이 지정문화재이던, 비지정문화재이던 모두 소중한 우리의 문화자산이다. 그것을 아무 죄책감 없이 집어가는 도적님들. 이제는 중벌로 다스려야 하지 않을까?

다시 한 번 부탁을 드린다. 문화관련 의원님들. 그리고 관계자 여러분들. 제발 이젠 솜방망이 집어치우고, 좀 더 확실한 철퇴를 쓰기를 권유한다. 선조들의 예혼(藝魂)이 깃든 문화재, 더 이상의 도난은 막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모악산에 자리한 대원사는 전북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997번지에 소재한다. 대원사는  모악산 동쪽 중턱 어머니 품속 같은 형태에 자리잡고 있으며, 삼국유사 권제3 <보장봉로 보덕이암> 조애는 '백제 의자왕 20년인 660년에 열반종 개산조 보덕의 제자인 대원, 일승, 심정 등의 고승이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조 인종 8년인 1130년에 원명국사 징엄 스님(1090~1141)이 중창 하고, 이어서 공민왕 23년인 1374년에는 나옹 혜근스님(1320~1376)이 중창하였다. 조선조에 들어서는 태종 15년인 1415년에 중창 흔적의 기록이 있으며, 그 뒤 선조 30년인 1597년의 정유재란 때 대부분 건물이 불타 없어졌으나, 선조 39년인 1606년 진묵스님(1562~1633)이 다시 중창하였다.

 

어머니의 절 대원사

 

▲ 벚꽃이 만개한 경내 모악산 대원사 주변에는 수령이 300년 이상이 되었다는 산 벚꽃나무들이 아름답게 꽃을 피운다.


대원사 주변에는 300년 이상 되었다는 산 벚꽃이 둘러쌓고 있어, 봄철에는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으며, 가을이면 온통 불이 타는 듯한 붉은색이 절을 뒤덮는다. 대원사에서는 2001년부터 매년 1월1일 촛불기원 해맞이 타종축제와 4월 둘째 주 일요일에 열리는 모악산진달래 화전축제로 이미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고찰이다.

 

모악산 대원사는 어머니 품속 같은 터전에 자리 잡아, 천하대복지 최길상지 명당이라고 한다. 대원사를 어머니의 절, 효의 절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주말과 휴일이 되면 등산객들로 늘 경내가 붐비고 있는 대원사는, 전국 각지에서 예를 갖추고 찾는 이가 끊이지 않는 창건 1350년의 유서 깊은 전통사찰이다.

 

대원사 문화재 안내판의 이변

 

▲ 방치된 옛 안내판 문화재를 분실하고 나서 그대로 방치된 목각사자상 안내판

▲ 안내판 목각사자상을 도난 당한 사연을 적은 현 안내판


어느 절이나 사찰에 문화재가 있으면, 그 앞에 문화재 안내판을 설치해 놓는다. 모악산 대원사에는 대웅전에 모셔진 전북 유형문화재 제215호인 삼존불과 전북 유형문화재 제71호인 용각부도가 있다. 그런데 대원사 안내판에 보면 현재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문화재가 있었음을 적고 있다. 바로 진묵 스님이 만든 것으로 전해지는 목각사자상이다. 전북 민속자료 제9호로 지정이 되어 있었다는 목각사자상은 어떤 것일까?

 

대원사 경내 한편에는 예전 목각사자상을 설명한 문화재 안내판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 내용을 보니 다음과 같다. 

 

이 목각사자상은 조각한 시기와 조각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전하는 바에 의하면 진묵대사가 만들었다고 하며, 이 위에 북을 올려놓고 가축을 하늘로 인도하는 제사를 지낼 때 북을 쳤다고 한다. 크기는 높이 90cm, 길이 135cm이며 괴목나무로 섬세하게 조각한 사자상이다. 다리는 다른 나무로 만들었으며 현재 다리부분이 약간 떨어져 나갔다. 이 사자상의 등에 경전 등을 올려놓을 수 있게 만들었다.

 

위와 같은 설명으로 보아 이 목각사자상은 상당히 소중한 문화재임이 틀림이 없다. 더구나 제를 지낼 때 사용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신물(神物)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도대체 이 목각사자상은 어디로 간 것일까? 현재 대원사 문화재 안내판에는 목각사자상이 사라진데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다.

 

대원사의 문화재인 사자상은 돌아와야

 

 
▲ 도난단한 목각사자상 도난 당한 목각사자상. 뛰어난 조각솜씨를 보이고 있다. 안내판 사진


어떤 연유로 목각사자상이 대원사를 떠났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안내문에는 1988년 12월 1일에 도난을 당한 것으로 적고 있다. 그리고 1989년에는 완주군에서 속성으로 문화재지정을 해제했다는 것이다. 문화재가 도난을 당할 경우 해당 부처에서는 문화재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빨리 문화재해제를 한 것일까? 그 이유가 궁금하다.

 

그 뒤 목각사자상은 1999년 10월 27일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거주하는 이모씨가 소유를 하고 있었는데, 공소시효를 주장했다고 한다. 당시의 문화재법은 어떠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미 문화재 지정이 해제돼 있었다. 그리고 이 목각사자상은 다시 종로구 인사동 거주 이 아무개에게 팔렸다는 내용이다.

 

문화재란 개인의 것이 아니다. 더구나 진묵 스님이 만들었다고 하면 이미 그 제작연대가 500년 가까이 되었다는 것이다. 대원사는 진묵 스님께서 가장 오래 묵으신 절이기도 하다. 그만큼 진묵 스님의 체취가 배어있는 고찰이다. 그리고 목각사자상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이 될 만큼 소중한 문화재란 생각이다.

 

문화재법도 중요하지만 소중한 모악산의 문화재인 목각사자상은 반드시 대원사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제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다. 대원사 문화재 안내판에는 목각사자상이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얼마나 간절한 바람이었으면, 안내판에 그러한 사연을 기록을 했을까? 어떤 경로를 통해 문화재를 취득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목각사자상은 대원사로 돌아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출처 :  오마이뉴스 / 2010, 4, 19)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