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롯데가 또 우리 수원시의 상인들을 기만하는 일이 있다면 그동안 협상을 위해 서로의 대화는 모두 원상태로 돌아갑니다. 8월 말까지 롯데는 저희 상인들이 요구하는 사안을 협상을 거쳐 수용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희 240만 명의 전국상인연합회 회원들은 끝까지 롯데가 이곳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투쟁을 할 것입니다.”

 

31일 오후, 그동안 무덥운 날씨 속에서 8일간 단식투쟁을 벌여 온 수원시 상인연합회 회원들이 다시 수원역 광장에 모였다. 지난 24일 오후 3시 수원역 광장에 모여 롯데쇼핑몰 수원입점 반대집회를 연 후, 바로 역 광장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간 수원시 22개 상인회장들은 8일 오후 2시를 기해 단식투쟁을 멈춘다고 했다.

 

 

대화의 창 열어놓고 순리로 풀어볼 터

 

이날 수원시상인연합회 최극렬 회장은 단식농성 중에 스러져 병원으로 실려가기도 했다. 지금까지 몇 명의 상인회 회장들도 병원신세를 졌다고 한다.

날이 워낙 덥고 밤이 되면 모기 등 많은 해충들이 달려드는데다, 아무리 물을 마셔도 탈진증세를 일으켜 몇 분이 쓰러졌어요. 오늘 롯데 측에서 협상에 응하겠다고 답을 해와 일단 농성을 풀겠습니다. 하지만 협상이 결렬이 되면 또 다시 시작해야죠.”

 

링거를 팔에 꽂고 병원 복을 입고 현장에 나온 최극렬 상인회 연합회장은, 그동안 시민들에게 여러모로 불편을 드린 점을 사과를 한단다. 이어서 수원시민들께서 함께 동참하는 마음으로 히을 보태주셔야 한다면서, 그동안 많은 분들의 격려에 깊이 감사를 드린다고.

 

 

이번 단식투쟁의 해단은 롯데측이 84일에 지동시장 회의실에서 2차 협상을 하겠다고 통보를 함으로써 전격적으로 회장단의 회의를 가쳐 일단 농상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번 집회의 대책위원인 김한중 로데오거리상가 상인회장은

저희들로써도 상당히 힘이 든 것은 사실이죠. 벌써 몇 분이 탈진이 되어서 쓸어졌으니까요. 그래도 저희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시민들의 껴려와 함께, 상인회 회원님들이 함께 단식농성에 동참도 해주시고, 저희들 곁에서 힘을 내시라고 격려를 해주셨기 때문입니다.”라고 한다.

 

 

해단식은 성명서 발표 후 일일이 악수하고 헤어져

 

8일 만에 단식농성은 일단 해단을 했지만 불씨가 가신 것은 아니다. 상인회 측은 언제라도 협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다시 집회와를 시작하겠다고 한다. 이번에는 전국상인회도 함께 동참을 하겠다는 것.

 

 

상인회 측은 해단식 성명을 통해

- 731일 집회 마감일을 기점으로 롯데쇼핑몰 측의 진정성 있는 자세로 협상에 임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집회를 철회한다.

- 롯데 측과 협상 시 상인연합회의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제2, 3차 강력한 투쟁을 할 것이다.

- 2차 집회 예정일은 815일 수원시 상인연합회 22개 전통시장 모두가 점포 문을 닫고 갈역 투쟁을 한다.(집회동선은 지난번과 같이 수원역에서 집회 후 팔달문을 지나 지동교까지 도보행진. 지동교 집회 후 역전으로 이동하여 단식투쟁)

- 3차 집회는 2차 집회와 동일하게 진행하되 협상이 지속적으로 결렬될 경우 롯데쇼핑몰 본사 앞에서 강력한 대규모 투쟁을 강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해단식의 성명서를 발표한 일행은 22개 전통시장 상인회장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해단식에 참가를 한 상인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한 상인은 최극렬 상인연합회장과 포옹을 한 뒤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말한다.

이렇게 더운 날에 쓰러지기까지 하면서 이렇게 단식투쟁을 함께 해준 상인회장님들께 정말 감사를 드린다. 이분들로 인해 협상의 문이 열리게 되었으니 다시는 이렇게 집회와 농성으로 이어가는 일이 없기를 바랄뿐이다.”

 

매년 정기적으로 모여 밤을 새우며 즐기던 이들은 자칭 '달빛파'이다. 달이 뜨면 웃고 떠들면 마시기 시작해 달이 질 때까지 마시는 사람들이다. 5명 중 막내인 진주 동생이 사정이 생겨 해를 건너 산수유나무 아래서 오랜만에 자리를 함께했다 

 

요즈음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화두는 단연 힐링이다. 할링이란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는 뜻이다. (Heal)은 고치다, 낫다를 말하는데, 이를 동명사화하여 힐링(Healing)으로 사용한다. 즉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는 뜻이다. 힐링 뮤직이나 힐링 댄스 등도 즐거운 마음으로 음악을 하거나 춤을 추어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 가장 효과가 빠른 힐링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힐링 뮤직이나 힐링 댄스를 추고, 자연 속에서 좋은 길을 걷는다고 해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상통하지 못하고, 그들에게서 좋은 기운을 받지 못한다고 하면 힐링이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연을 좋아해 스스로 자연인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자연의 상을 마련했다. 상에는 자연에서 채취한 땅두릅, 머우 등 각종 나물들이 푸짐하다  

 

마음이 통하는 좋은 사람들이 바로 힐링

 

세상에 사람들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의 주변에 있는 가까운 사람들을 만나보면 알 수가 있다고 한다. 그 사람의 주변에 정말 신의가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의리가 있는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남에게 겸손하지 못한 사람이 주변에 있다고 하면, 그 사람도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 사람들의 관계가 정말 서로를 신뢰하는 사이이고, 서로가 이해하는 그런 사이인가는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를 위하고 신뢰하는 사람이 주변에 단 2명만 있어도, 그 사람은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서로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는 뜻일 것이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한돈 생고기가 숯불 위에 놓여졌다. 오랜만에 만난 막내에게 먹이기 위해 낮에 잡은 생고기를 공수한 것이다  


 

산수유가 노랗게 피는 날 만나기로 한 다섯 사람. 하지만 살다가 보면 각자가 하는 일이 바쁜 사람들이다 보니 날짜를 잡아 만나기가 수월치가 않다. 하지만 지난 12일 경남 진주와 강원도 고성, 그리고 수원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로 모였다. 산수유가 이미 퍼져버렸지만, 그래도 산수유 꽃이 지기 전에 약속대로 만난 것이다.

 

그저 세상이 즐거운 사람들.

 

이 다섯 사람은 여주에 사는 부부를 빼놓고는 모두 남남이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만나면 서로 호칭이 형, 동생, 혹은 오라버니, 누님이다. 그렇게 한 가족처럼 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어느 누가 아파하면 다 같이 그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다. 기쁜 일도 있어도 서로를 격려하고 축하를 해 줄줄 아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모일 때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각자가 모이기 전에 장을 보아온다는 것이다. 그 장보기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사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들을 준비한다. 그러다가 보니 이들 모임은 항상 푸짐한 먹거리가 준비가 된다. 그렇다고 그것이 비싼 음식도 아니다. 서로가 정성을 다해 준비를 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누구는 마트 등을 이용하지만, 집에 있는 것들을 준비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보니 만날 때마다 많은 음식을 먹을 수가 있다. 대식가들도 아니지만 그저 만나면 즐거움이 넘친다. 별 이야기가 아닌 것을 갖고도 웃고 떠들면서 난리들을 친다. 남들은 이들을 이해하기가 힘들다고  힌다. 그만큼 이들을 독특한 개성들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서로간의 믿음이 있다.

 

 

술잔에 조팝나무 꽃을 따다가 넣어준다. 그리고 동동 띄운 얼음속에도 꽃이 숨어있다. 이들이 지연을 즐기는 방법이다. 


 

자연인들이 자연에서 자연을 만나다.

 

여주에 모일 때는 음식이 모두 자연이다. 청정지역에서 채취한 각종 나물들을 한 상 차려낸다. 시간이 되면 직접 산행을 해서 얻어 낸 음식도 준비한다. 그리고 각자가 갖고 온 맛있는 음식도 곁들인다. 상은 늘 푸짐하다. 그렇게 웃고 떠들면서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 바로 힐링이 아닐까? 더구나 조금 쌀쌀하긴 해도 모닥불을 피워놓고 공기 좋은 야외에서 먹는 음식이 아니던가?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조팝나무 꽃 잎을 술잔에 넣어준다. 그리고 내온 얼음에도 꽃이 있다. 그 역시 자연이다. 좋은 자연의 환경에서 좋은 사람들과 나누는 좋은 음식. 최고의 힐링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만나기만 해도 즐거운 사람들. 헤어질 때는 늘 서운함이 앞서지만, 또 다음 날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에 늘 즐겁다고들 한다. 진주에서 올라 온 막내가 오랜만에 자리를 함꼐 해 더 즐거운 만남의 자리. 자연에서 자연을 만난 자리이다.

 

 

아버지, 그건 어떻게 알았어?”

너희 엄마가 얼마나 지독했는지 아냐. 심지어는 나한테도 돈 빌려주고 이자 받았어

그러니까 말도 안했는데 어떻게 알았데.”

그것뿐이 아냐. 돈 들어오는 날이 되면 어떻게 알았는지 사무실에 와서 버티고 있다가 주판 들고 계산해서 다 들고 갔어.”

맞아, 그래서 금고도 커다란 것 마련했잖아

 

모녀간의 대화이다. 그런데 그냥 모녀의 대화가 아니다. 이승과 저승을 초월한 모녀간의 대화다. 오래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현세에 살아있는 딸이 한 대화이기 때문에 듣고 있자니 소름이 끼친다.

 

 

 

굿판에서 만난 저승의 아버지와 이승의 딸

 

22일 오전 10시부터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있는 고성주(, 60)의 전안(전안이란 무속인들이 신령을 모신 곳을 말한다). 악사와 무녀 등 6명이 굿판에 앉았다. 제가(제가란 굿을 의뢰한 집을 말한다) 집은 수원시 장안구 정자2동 두견마을에 거주하는 이아무개(, 66)이다. 굿판에는 부인인 이아무개(, 59)가 함께 했다.

 

아침부터 시작한 굿은 부정, 천궁맞이, 산거리, 신장 대감 등을 거쳐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조상거리가 시작되었다. 당주(굿을 맡아 진행하는 무속인)인 고성주가 조상거리를 맡아했다. 선대조상부터 고성주의 몸을 빌려 자손을 만나기 위해 현신한다. 안택굿은 경기도 지방에서 보이는 굿으로, 한 해 동안 가내의 안과태평을 기원하는 굿이다. 구래서 안택굿은 대개 음력 정월에 한다. 예전에는 집에서 했지만 지금은 대개 전문 굿당이나 무속인의 전안에서 이루어진다.

 

 

 

선대의 조상들이 먼저 현신을 하고 난 후, 친정아버지가 고성주의 몸과 입을 빌려 현신을 했다. 처음부터 살아생전 부녀사이를 알 수 있는 대화가 오고갔다. 아마도 부친이 살아생전에 21녀인 맏이인 딸을 부친이 엄청 예뻐했던 것 같다. 부친이 세상을 뜬 지가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무당을 통해 현신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대화 중에 그대로 나타난다.

 

굿은 이래서 하는 것인가 보다

 

아버지는 어떻게 엄마를 그렇게 잘 알아?”

엄마가 얼마나 돈에 대해 지독한지 아냐. 그래도 그렇게 했으니까 너희들이 물질에 어려움 안당하고 살고 있는 거야

그럼 뭐해. 아들만 알고 아들들한테만 재산을 주는데

너도 올 추석이 지나면 줄 거야 걱정하지 마라

이건 녹음해놓아야 되는데

내가 살아생전에 딱 한 번 바람을 피우다가 마누라한테 걸렸는데, 그때부터 쥐죽은 듯 살았다오.”

 

 

 

대화가 점점 흥미 있어진다. 무당의 입을 빌려 이야기를 하는 망자는 평소에 술을 좋아했다고 하면서, 굿상에 놓인 술을 연신 마셔댄다. 살아생전에는 본인이 한량에다 잘 났다고 이야기를 한다. 망자를 만난 딸도 맞다고 맞장구를 친다. 한참이나 딸과 상면을 한 저승의 부친이 이제는 간다고 하니, 딸이 주머니에서 노자 돈을 하라고 돈을 꺼내 쥐어준다.

 

그것 갖고 돼 아버지. 더 드릴까?”

나야 더 주면 좋지. 저승 가는 길에 막걸리도 한 잔 사먹고 목마르면 물도 사 마시고

 

그 말에 주머니에서 얼마인가를 더 꺼내준다. 부녀간의 대화를 듣다가 보니 아버지가 환갑도 못 넘기도 돌아가셨단다. 그러니 맏이인 딸로서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남다를 수밖에. 곁에서 듣고 있던 사람도 덩달아 웃다가 울다가 한다. 굿은 열린축제라고 한다. 누구나 다 굿판은 참여를 할 수가 있다. 아무도 굿판을 구경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생전에 아버지에게 하지 못한 말도 굿판에서는 가능하다. 그리고 속에 품은 생각을 이야기를 해도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비록 무당의 입을 빌려 하는 말이지만,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와 딸은 마음껏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서 굿을 하는 것인지.

봄을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길 둘

 

경기도청의 벚꽃이 만개를 했습니다. 그런 길을 따라서 걷다가 보면, 사람들은 괜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자연친화적인 길이나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한다는 것은 그래서인가 봅니다. 벚꽃 길을 벗어나 팔달산 위로 오르다가 보면, 진달래가 여기저기 소나무와 다른 색조를 띠며 피어 있습니다.

 

팔달산을 싸안고 있는 성곽. 화성은 그렇게 자연을 보듬어 안고 길게 누워 있습니다. 연분홍 진달래가 성벽에 기대다시피 피어 있습니다. 소나무 숲길을 따라 심호흡을 한 번 해봅니다. 짙은 솔향이 가슴으로 밀려들어 옵니다. 바로 이런 숲이 내음으로 인해 이 길이 좋아지는가 봅니다.

 

 

흙을 만나는 즐거움

 

사실 길이란 것은 어디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도심의 한 복판에서 먼지가 이는 흙길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입니다. 그 길을 밟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고 하니까요. 천천히 화성의 바깥 길을 남쪽으로 따라 걸어봅니다. 걷다가 눈을 돌려보니 진달래가 지천에 깔려 있습니다.

 

419(), 역시 4월의 꽃답게 푸른 소나무 숲 아래 그렇게 수줍게 피어있습니다. 4월에 만난 진달래는 언젠가 헤어짐에 눈물을 흘리던, 아련한 여인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 계절만 되면 한 번씩 몸살을 앓는 것도, 진달래를 닮은 여인 생각이 나기 때문인가 봅니다. 저만큼 화양루의 지붕이 삐죽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앞서가던 여인이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화양루 바깥 길을 돌아 다시 북쪽으로 성곽이 이어집니다. 그곳을 천천히 걸어봅니다. 화성을 바라보고 핀 작은 꽃들이 성벽을 기어오르기라도 할 것처럼 성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습니다.

 

자연을 만날 수 있는 화성 외곽 길

 

성벽 밑으로 까치 한 마리가 부리로 연신 땅을 쪼아댑니다. 아마 그곳에 무엇인가 먹을 것이라도 있는 모양입니다. 사람이 가까이 가도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소나무 숲에는 진달래가 가득합니다. 그 색의 조화가 정말 오묘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누가 이렇게 아름다운 색채를 표현 할 수 있을까요? 자연의 신비가 경이롭게 느껴집니다.

 

 

화양루 밖에서 용도를 따라 걷다가 보면, 그 끝에 암문과 포사가 보입니다. 그리고 길에는 진달래들이 피어 있어, 코를 벌름거리면서 걸어도 봅니다. 팔달산의 봄을 마음껏 맡아보는 것이죠. 누군가 힐링을 하는 듯 붉은 진달래 틈으로 걸어갑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 팔달산에 있습니다. 그것도 도심 한 복판에 말입니다.

 

어찌 수원이란 곳이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이런 맨흙을 밟으면 걸을 수 있는 길이 지천에 널려있기 때문입니다. 물과 바람, 산과 숲, 그리고 자연과 이야기를 하는 성곽. 이것이 바로 화성 외곽 길입니다. 정말 걷고 싶은 그런 길입니다. 이 길만 걸으면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람과 자연이 만나는 곳

 

화성을 흔히 자연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만큼 화성은 자연적 지리를 최대한 활용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곳, 자연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이 자연인 양, 그렇게 조용히 자리를 틀었기 때문입니다. 가파른 언덕을 내려오다가 보면 약수터가 보입니다. ‘팔달약수터’, 걷느라 마른 목을 축일 수가 있습니다. 이 또한 팔달산이 갖는 아름다움입이다. 그저 누구에게나 많은 것을 주기 때문입니다.

 

시원한 물 한잔을 마시고나면 성곽을 도로가 지나기 때문에, 아치형으로 성을 조형해 길에게 자리를 내준 곳이 있습니다. 이 아치형의 입구는 예전에 내 것이 아닙니다. 이곳은 19일에 벚꽃이 만개를 했다가, 이미 바람에 꽃잎이 날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 바쁘고요. 벚꽃과 화성은 그렇게 하나인 양, 딱 달라붙어 있습니다.

 

 

봄을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길 둘은 화성의 외곽 길 중 남쪽길입니다. 팔달산 남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화양루에서 팔달문까지. 그렇게 자연과 숲, 꽃과 바람이 하나가 되어 걸었습니다. ‘힐링제대로 한 셈이죠.

2004년도에 수원에서 생활을 할 때, 처음으로 화성을 돌았다. 그리고 그 이후로 아마도 화성을 안과 밖으로 돌아본 것이 20여 회는 되는가 보다. 그것도 복중에, 장마철에, 단풍이 들었을 때, 흰 눈이 쌓여있어 몹시도 미끄러울 때. 같은 시기에 돌아 본 적은 별로 없는 듯하다. 심지어는 밤에도 화성을 돌아보았으니.

 

이렇게 세계문화유산이자 사적 제3호인 화성을 왜 그렇게 돌아보았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보면 볼수록 더 많은 것을 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저 성 밖에 보이지 않았다. 차가운 돌들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화성. 그런데 몇 번인가 계속해서 화성을 돌아보았더니, 아주 조금씩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띠기 시작한다.

 

 

화성과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화성이 정조대왕의 효심과 막강한 군주의 위용이 서린 곳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단지 화성이 그것뿐이었을까? 적어도 화성에는 그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할 거리들이 널려있다. 우선은 자연이 그 안에 있다. 그리고 민초들의 애환과 정조대왕의 위민도 있다. 또한 숱한 석공들의 땀과 희열도 있다.

 

그 화성을 알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저 운동 삼아 화성주변을 돌아도 좋다. 하지만 그렇게 돌아다니기 보다는, 그래도 그 화성과 말 한마디 쯤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지난해인가, 효원고등학교를 다니던 김주송이란 학생이 돌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라는 책을 쓴 적이 있다. 그 책을 접하는 순간 충격이었다.

 

 

나는 20년이란 세월이 지나서야 느낀 것을, 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생이 깨달았다는 사실이. 하지만 주송이는 아버지를 따라 어려서부터 화성을 걸었다. 그렇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생각이다. ‘돌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주송이는 얼마나 큰 기쁨을 얻은 것일까?

 

그동안 오마이뉴스에 화성에 대한 글을 연재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수도 없이 화성을 걸었다.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기 때문이다. 그렇게 화성을 돌면서 한 가지 깨우친 것이 있다면, ‘마음으로 바라보라는 점이다. 문화재는 눈으로 보아서는 그 안에서 무엇도 발견할 수가 없다. 마음으로 문화재를 바라볼 때, 정말 많은 것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고달사지에서 또 한 번 좌절을 맛보다

 

화성 못지않게 많이 찾아간 곳이 바로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에 있는 고달사지이다. 고달사지에는 국보인 승탑을 비롯해, 보물이 3점이 남아 있다. 그 중에는 보물 제6호인 고달사지 원종대사 탑비가 자리하고 있다. 이 탑비는 몸돌인 비는 무너져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받침돌인 귀부와 머릿돌인 이수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318일 여주에 동행한 지인들과 함께, 아침에 고달사지를 찾았다. 넓은 고달사지에는 여기저기 석조물들이 자리를 하고 있고, 혜목산 자락 쪽으로 탑비가 자리를 하고 있다. 나는 그 한편도 보지 않았는데, 일행은 이미 모든 것을 다 보고 내려오고 있다. 찬찬히 원종대사 탑비를 보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수 뒤편으로 돌아가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이 눈에 띤다. 움푹 파인 것을 그동안 무심히 보아온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세상에 이럴 수가. 틀림없이 용의 발톱자국이 그 안에 있다. 날카로운 발톱으로 할퀴고 간 듯한 자국. 네 개의 발톱자국이 선명하다. 왜 이렇게 이수에 할퀴고 간 흔적을 만든 것일까?

 

그동안 10여 차례나 이 탑비를 보았으면서도, 한 번도 이 움푹 파인 곳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았었다. 다시 탑을 꼼꼼히 따져본다. 이번에는 이수 앞쪽에 쓰인 명문아래에 도깨비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양편으로는 힘을 주어 금방이라도 비를 떨치고 일어날 것만 같은 발이 표현되어 있다.

 

 

그동안 무엇을 본 것일까? 날마다 찾아와 들여다보았으면서도 아직 이런 것을 보지 못하였다니. 순간 부끄럽다. ‘문화재를 마음으로 보라고 그렇게 떠들어댔지만, 정작 내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는 것인가? 또 한 번의 죄스러움. 그 앞에 서 있는 내가 부끄럽기까지 하다. 얼른 자리를 비켜 승탑이 있는 산으로 발길을 돌린다. 바쁘다는 핑계로 미처 깨닫지 못한 아름다움. 난 또 한 번의 깨달음을 얻는다. 그래서 문화재는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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