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농촌으로 돌아다니다가 보면,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작은 개구리들이다. 이 녀석들 계곡이고 들판이고 가리지 않고 돌아다닌다. 우기가 끝나고 산 계곡에 이렇게 작은 개구리들이 돌아다니다가 보니, 이 녀석들을 노리를 뱀들도 여기저기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인가 녀석들이 노는 곳이 달라졌다. 집안까지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녀석들로 인해, 가끔은 놀라기도 한다. 겨울철에 눈을 치우기 위한 검은 플라스틱 장비의 대가 빠져나간 안에서 무엇인가가 꼼지락거린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손가락 한 마디만한 작은 청개구리 녀석이다. 이 녀석 제 집이라고 그 안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주 가끔은 이런 녀석들을 들여다보면서 살아가는데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참 블로그가 먼지. 그저 무엇인가 색다른 것만 보이면 이 짓이다. 찍고 쓰고 올리고. 

 

 

 

 

 

 

우리는 많은 이야기 중에서 다음과 같은 그림 하나를 볼 수 있다. 즉 겨울철 행랑방이나 여름철 대청에 앉아, 호롱불을 하나 켜놓고 새끼를 꼬는 모습이다. 주로 집안에 머슴들이 맡아하던 새끼를 꼬는 일은 우리 농촌 생활에서는 흔히 보는 모습이다. 이렇게 밤을 이용해 새끼를 꼬는 것은, 그만큼 새끼를 꼬아두면 그 용도가 많기 때문이다.

 

힘들게 짚으로 꼬아 만들던 새끼. 그러던 작업이 기계 하나가 농촌의 일손을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 바로 새끼를 꼬는 기계가 농촌에 나타난 것이다. 이 새끼 꼬는 기계를 이용하면 사용의 용도에 따라 가는 새끼, 보통 새끼, 굵은 새끼 등으로 그 굵기를 마음대로 조절을 할 수가 있다. 이 기계는 또 두발식과 외발식 등 그 디딤판의 구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두발식의 불편함을 덜어내기 위해, 외발식은 후에 개조가 된 것이라고 한다.

 

 

간단한 원리로 만들어진 기계

 

새끼 꼬는 기계의 원리는 간단하다. 새끼를 꼬기 위해 축을 돌리는 발판이 밑에 있고, 그 위에 톱니로 물려 돌아가는 기계 뭉치가 있다. 이 기계뭉치의 끝에는 짚을 투입하는 두 개의 구멍이 있다. 이 구멍의 크기가 새끼의 굵기가 되는데, 구멍의 크기를 조절하는 여러 개의 구멍을 뚫은 쇠가 있다.

 

새끼가 꼬아져 나오면 그것을 감는 나무로 만든 물레가 있다. 디딤판을 번갈아 디디면서 양편에 있는 투입구에 짚을 넣으면 새끼가 꼬아져 나온다. 바쁜 농촌에서 이 새끼 꼬는 기계는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1950년대부터 농촌에 보이기 시작한 새끼 꼬는 기계

 

새끼 꼬는 기계가 언제 처음으로 나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 기계가 처음으로 농촌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정도였을 것이라고 한다. 현재 70세 정도 되신 어른들이 어릴 적부터 보았다는 기억을 하기 때문이다.

 

이 기계가 마을에 한 대씩 보이기 시작하자, 온 마을의 구경꺼리였다고 한다. 아마 힘들게 졸린 눈을 비벼가며 새끼를 꼬던 사람들은, 이 기계의 출현이 더 없이 반가웠을 것이다. 쉽게 다리품만 팔면 얼마든지 많은 새끼를 손쉽게 꼬아 낼 수가 있었으니.

 

 

 

"이 기계가 언제쯤 나왔나요?"

"한 60년쯤 되었나 봐요. 저희가 어릴 적에 마을에 들어왔으니."

"이 기계가 마을에 들어왔을 때 꽤 인가가 좋았겠네요?"

"인기 정도가 아니라 지금으로 치면 커다란 농사용 농기구 하나 들어온 정도였죠. 아마 이 기계가 더 빨리 있었으면, 사람들이 졸면서 새끼를 꼬지는 않았을 텐데."

"새끼 꼬는 일이 많이 힘이 드셨나 봐요?"

"힘만 들어요? 하루 종일 논밭에 나가 일하고, 밤에 되면 불을 켜 놓고 새끼를 꼬아야 하는데. 정말 새끼 꼬느라 손바닥이 다 닳을 정도였다고나 할까."

 

명성황후 생가 옆 민가마을에서 근무를 하시는 어르신들이 들려주시는 새끼 꼬는 기계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가 있다. 옛날 이 기계가 마을에 들어왔을 때는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새끼를 꼬는 일은 그만큼 농촌의 작업 중에서 적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웃으시면서 이야기를 하시는 어르신들이지만, 아마 당시에 손바닥이 다 닳았다는 표현이 적합하단 생각이다. 침을 뱉어가며 손바닥으로 짚을 비벼 새끼를 꼬았으니 말이다. 그런 시골생활에 이 새끼 꼬는 기계는 몇 사람의 몫을 해댔다고 한다. 이제는 사라지고 있는 풍물인 새끼 꼬는 기계. 그 기계를 이용해 꼬아져 나오는 새끼를 보고 있노라니, 옛 농촌의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동안의 출장길에서 참 가슴 아픈 소리를 들었다. 농사를 짓는 어르신의 푸념섞인 이 말은, 지금 우리 농촌의 현실이기도 하다. 농사는 일년 동안 피땀 흘려 짓는 것인데,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소출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올 여름은 유냔히 비가 많이 내렸다. 일조량이 부족하니 농산물이 재대로 생육을 하지 못했던 것. 그러나 막상 길을 다니면서 만난 논은, 생각 외로 심각하기가 이를데 없다. 나락도 지난해보다 적게 달렸다는데, 그도 많은 소출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 거기다가 아예 벼포기만 파랗게 자라고, 아직 나락이 아예 없는 논들도 있다. 


이제 포기하고 갈아업어야지

공주를 지나면서 논을 보니 이건 웬일인가? 논에 나락이 보이질 않는다. 마을 어르신인 듯 한 옆에서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길게 한숨을 쉬신다.

"어르신, 올 벼농사가 어때요?"
"보면 모르겠소. 나락이 하나도 달리지 않았는데"
"이 쪽은 늦벼 아닌가요?"
"조생종은 아니라고 해도 지금쯤은 나락이 달려 고개를 숙일 땐데. 저것 보시오 암것도 없는데.."


말끝을 잇지 못하신다. 논에 자란 벼포기를 보니, 정말로 나락이 하나도 달리지 않았다. 그저 풀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 농사를 짓기 위해 여름 내내 흘렸을 땀이 헛된 것이 되고 말았다.  

농촌에 아이울음을 끊어졌다고 했던가? 노인분들에게는 그나마 일년 농사가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 자식같은 논을 갈아업어야겠다고 하신다. 그 마음이 오죽하실까? 자식이 다 죽은 것 같다고 하시는 어르신. 그 마음을 우리는 헤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씀을 하시면서 눈가에 맺히는 이슬을 누가 닦아드릴 수가 있을 것인가? 

"우리같은 늙은이들은 이렇게 가을이면 수확을 하는 낙으로 사는데, 올해는 먹고살 것도 없을 것 같구만"

깊은 한숨과 함께 자리를 털고 일어나신다.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별별 짓을 다해가면서 산다. 하지만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그저 하늘과 땅만을 바라보고 산다. 벼 이삭도 달리지 않은 벼포기. 그 안에 깊은 눈물이 배어있는 듯하다.     
6월 10일 경남에 일을 보고 난 후, 진주에 들렸다. 한 낮의 기온은 가히 머리가 벗겨질 만 하다는 이야기가 날만큼 뜨겁다. 진주시 수곡면에 있는 문화재 답사를 한 후 되돌아 나오는 길에 보니, 주변이 온통 비닐하우스로 덮혀있다. 요즈음은 비닐하우스를 이용해 특작을 하는 농가가 많다보니, 그저 무심코 지나치기가 일쑤이다.

그런데 한 곳에 눈이 머물렀다. 딸기 모종인 듯한데, 어떻게 공중에 떠 있는 듯하다. 자세히 보니 위로는 비닐을 씌울려고 하는지 철골 구조물이 있는데, 그 아래 딸기의 모종판이 철제 사다리를 받쳐 위로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아래는 물이 흐르도록 하였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난 후 조금은 의아하다. 왜 저렇게 공중에 모종판을 올려 놓은 것일까?   



딸기의 모종판. 모종을 키우는데 땅에 키우는 것이 아니라 철걸 구조물로 아래를 받치고 위로 올려놓았다. 밑으로는 물이 고이게 시설을 하였다.

농촌생활에서 익힌 생활의 지혜

도대체 왜 저렇게 만들어 놓은 것일까? 내가 농사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다만 보기에 색다른 모습이기에 사진을 찍어놓고 주변을 살피니, 밭의 주인인 듯한 분이 다가온다.

"혹시 이 밭 주인이세요?"
"예, 그런데요. 왜 그러세요?"
"왜 저렇게 공중에 띄워서 모종을 키우죠?"
"아! 저거요. 허리가 아파서 위로 올린 것이죠"
"예, 그런 이유였군요"

 



그러고 보니 금방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기구가 하나 있다. 바로 바퀴가 달린 앉은판이다. 바퀴가 달린 앉은판에 앉아 밀면서 자리를 옮기는 것이다. 그리고 다 자란 모종을 비닐하우스로 옮겨 간단다. 예전 같으면 허리를 굽히고 해야하기 때문에, 허리통증을 많이 호소를 하고 했단다. 생활에서 얻어지는 지혜, 이런 것이 바로 전문가가 되는 길은 아닌지. 그저 지나칠 수도 있는 것에서 시골생활의 즐거움을 본다. 물론 농사일이 쉽지는 않지만,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바퀴가 달린 앉을판. 이곳에 앉아 편안히 밀고다니면서 모종 관리를 한단다. 

하늘이 갑자기 새까맣다. 그렇다고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도 아니다. 까만 점처럼 생긴 물체 수천마리가 날아들면, 금방 인근의 마른 논이 새까맣게 변해버린다. 주변 전선도 까맣게 변해버린다. 그리고는 눈이 쌓인 온 논바닥을 헤집으며 돌아다니다가, 어느새 무리는 딴 것으로 날아가 버린다.

영화 히치콕 감독의 영화 속에서 본 공포를 보는 듯도 하다. 저러다가 더 많은 무리가 집단으로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수천마리는 됨직 한 까마귀 떼들이 날아다니면서, 먹을 것을 찾아다닌다. 2011년 1월 25일(화), 오전 11시경에 26번 도로를 따라 김제시 백구면 반월리 인근에서 까마귀 떼를 만났다.


수천마리가 집단으로 이동

요즈음 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까마귀 떼는 수천마리가 집단으로 이동을 한다. 처음에는 무슨 철새가 날아오는 것으로만 알았다. 김제시 벡구면 인대에는 가끔 많은 철새들이 만경천을 따라 이동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철새와는 날갯짓이 다르다. 까맣게 몰려든 무리들은 겨울철 마른 논바닥을 금방 까맣게 만들어버린다.

까마귀 떼들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차에 찬 한 사람이 “애고 저 까마귀 떼들, 정말 골칫거리네“라고 한다. 무엇이 그리 골칫거리일까? 수천마리가 함께 집단으로 이동을 하는 모습이 그리 보기 좋은 것은 아니다. 더구나 까마귀는 우리 속설에는 불길한 날짐승으로 표현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또 다른 걱정거리를 안겨주는 까마귀 떼

까마귀는 우리들의 속설에는 ‘불길한 존재, 혹은 머리가 나쁜 새’ 도로 알려졌다. 까마귀는 건망증과 문맹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까마귀들은 호도를 길바닥에 놓고, 차가 호도를 깨고 지나치기를 기다릴 줄 아는 영리한 새이다. 그런 까마귀들이 잡단으로 몰려다니면서 농촌의 새로운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말도 마세요. 저 까마귀들이 비닐하우스에 앉으면, 괜히 비닐하우스를 쪼아대서 구멍을 다 내 놓아요”
“겨울철 농작물은 먹지도 않으면서 다 파헤치고 다녀요”

집단으로 이동을 하면서 까마귀들이 농촌에 피해를 입힌다는 것이다. 겨울철 먹을 것이 마당하지 않은 까마귀 떼들이, 언제부터인가 수천마리씩 집단으로 이곳저곳으로 날아다닌다는 것이다. 전깃줄에 새까맣게 앉은 까마귀 떼를 보면, 정말로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만일 저 많은 까마귀들이 집단으로 사람이라도 공격을 한다면 어찌 될 것인가 하면서.




언제부터 이렇게 집단으로 까마귀 떼들이 몰려다닌 것일까? 김제시 백구면 삼정리에 사신다는 한 어르신은

“한 4~5년 전부터 저렇게 수천마리가 몰려다니고 있어. 그 이전에는 그런 광경을 본 알이 없는 것 같은데. 요즈음에는 저 까마귀들 때문에 걱정도 되지. 까마귀들은 불길한 새라고 하는데, 저 새 떼들이 조류독감이나 옮기는 것은 아닌가 하고”

라고 하신다. 까마귀 떼의 집단적인 움직임이, 또 다른 걱정거리를 만드는 것만 같다. 수천마리가 모여 하늘을 새까맣게 덮고 있는 것을 보면, 그런 불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래저래 구제역이다, AI 조류인플루엔자로 뒤숭숭한 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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