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에 다양한 문양과 아름다움을 조형해내는 가죽공예. 값비싼 공예품이기에 일반인은 소유하기조차 힘들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견해일 뿐이다. 알고 보면 남들보다 싸게 구입할 수 있으며,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직접 만들 수도 있다. 이제 가죽을 손에 잡은 지 12, 김혜영(, 46) 작가는 가죽에 붙어 하루를 보낸다.

 

가죽을 만진 지는 한 12년 정도 되었나 봐요. 하지만 이렇게 제가 직접 공예품을 만들기 시작한 지는 한 7~8년 정도 되었어요.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을 했는데 이제는 본업이 되어버린 것이죠.”

 

14일 오후에 만난 가죽공예 김혜영 작가의 공방에는 가죽으로 만든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그저 보기만 해도 고급스러워 보인다. 김혜영 작가는 가죽공예를 하기 전에 많은 작업을 해왔다. 비즈공예, 점핑클레이, 폴리머클레이, 리본자수, 퀼트와 펠트, 석회공예 등이다. 이 모든 공예에 대한 자격증을 갖고 있다고 한다.

 

 

수강료가 비싼 가죽공예

 

처음에는 그저 취미생활로 시작한 가죽공예예요. 그런데 가죽공예는 수강료가 상당히 비싼 편이죠. 자격증을 따기 위해 제대로 배우려면 4달에 280만원이나 들어요. 소품위주로 배운다고 해도 3달에 180만원이니 한 달에 60만원 꼴이죠. 아마도 가죽공예를 하려면 소 한 마리를 사야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가죽공예를 하기 위해서는 가죽을 평당 얼마라고 가격을 매기고 있지만, 손 한 마리를 사야한다고 한다. 소 한 마리의 가죽을 다 사야한다는 것이다. 소의 크기에 따라 가격이 잘라진다는 것.

 

가죽공예를 하기 위해서는 도구만 해도 상당하다. 가죽에 염색을 하고, 각종 조각을 하기도 한다. 거기다가 일일이 필요에 따라 바늘구멍을 내야하고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야 한다. 공정작업이 어렵다보니 시간도 상당히 걸린다고 한다. 작은 작품 하나를 만들어도 일주일, 대작 같으면 한 달 이상 걸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가죽공예는 100% 수공예로 제작을 하기 때문에 상당한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하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배우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저는 병점 풀잎문화센터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배우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그저 제가 작업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수입은 보장이 되기 때문에 일주일에 두 번을 강의를 하고 있어요.”

 

아직은 더 공부를 하고 싶어

 

가죽공예는 두 가지로 구분이 된다고 한다. 소가죽에 다양한 문양과 염색 등을 하는 카빈이 있고, 일반적으로 무늬 등이 포함되어 나오는 가죽을 그대로 사용하는 공예로 구분이 된다는 것이다. 김혜영 작가는 카빈은 자격증을 갖고 있으며, 기공가죽은 수료를 했다고 한다. 종류가 다른 공예는 자격증조차 따로 따야 한다는 것이다.

 

 

가끔 손님들이 찾아와 가격을 묻고는 하지만 아직 팔지는 않았어요. 제가 손지갑 같은 작품을 가격을 부르니 그것의 세 배는 받아야 된다고 주변에서 말씀들을 하세요. 아무래도 가죽공예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그만큼 많은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가격도 높을 수밖에 없죠. 그래서 작품을 판매를 하기보다는 강습을 통해 직접 작품을 만들기를 권유하고 있어요.”

 

공을 들여 만든 작품으로 전시회를 할 의향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아직은 멀었다라고 하면서 더 배운 다음에 생각을 해보겠다고 한다. 비록 사람들을 가르치고는 있지만, 남들이 모두 인정을 할 때에 하겠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가죽에 매달려서 작품을 만들고 있는 김혜영 작가. 언젠가는 전시회를 그 날을 기대를 하며 기다리는 것도 좋을 듯하다.

해가 저무는 12월 22일은 일 년 중 해가 가장 짧다는 ‘동지(冬至)’이다. 동지에는 붉은 팥죽을 쑤어 집의 여기저기에다가 뿌린다. 한 마디로 모든 잡귀들이 얼씬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잡귀들은 붉은색을 싫어하기 때문에, 예전부터 이런 풍습이 전해진다. 아마 팥죽을 한 그릇 먹는 것도, 알고 보면 내 몸 자체를 잡귀에게서 보호하려는 뜻이었을 것이다.

아침에 아우한테 가니 동짓날 팥죽 쑬 것을 미리 준비를 한다고 장을 보러 나간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이 집에 찾아오니, 적잖이 팥죽을 끓여대야 할 것이다. TV를 보고 앉아 있다가 갑자기 ‘꾼’이란 단어 생각이 난다. 어째 갑자기 ‘꾼’이란 말이 생각이 날까. 아마도 TV 화면을 통해 보이는 정치인들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국어사전에서 ‘꾼’이란 말을 찾아보았다.


‘꾼’은 나름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

<꾼>이란 [명사] ‘즐기는 방면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즐기는 방면의 일에 능숙한 사람이라. 그래서 인터넷을 하는 사람들을 ’누리꾼‘이라고 하는 것인지. 그런데 그냥 하는 것이 아니고, 즐기면서 하는 사람이란 뜻이란다. 누리꾼이란 결국 ’누리‘와 ’꾼‘의 복합어인 듯. 그 뜻이 인터넷 안에서 못 갈 곳이 없으니 ’온누리‘를 다닌다는 것인지, 아니면 즐긴다는 것을 ’누린다‘로 바꾼 것인지는 모르겠다. 워낙 어휘력도 부족한 내가, 국문에도 문외한이니 말이다.

기실 과거부터 많은 ‘꾼’이란 밀을 사용했다. ‘꾼’이란 자신이 즐기면서도 남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고 함께 공유한다는 뜻으로 많이 쓰였다고 늘 생각을 한다. 즐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그 즐거움을 남들과 공유를 하고, 나름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 꾼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많은 꾼들은 나름대로 사회의 일원으로 생활을 하면서, 남에게 이런저런 즐거움을 주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란 생각이다.

○ 농사꾼 /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 꾼들은 농사를 지어 나만 배불리 먹는 것이 아니다. 예전 농사를 지으면서 부르는 농사소리에 보면 ‘이 농사를 얼른 지어 나라님께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선영봉제 마친 후에 처자권속 배불리세’라는 사설이 있다. 즉 농사꾼이란 단순히 나만 잘 먹는 것이 아니고, 나와 이웃, 그리고 나라까지 걱정을 했다.

○ 장사꾼 / 장사를 한다는 것은 이문을 남기기 위해 한다. 하지만 그 이문을 그냥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도 이문을 남겨 생활에 보탬을 주지만 필요한 물건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날라다 주고 그 대가를 받는 것이니 서로 상부상조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 풍물꾼 / 풍장을 치는 사람을 이야기한다. 전문적인 기예를 펼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들도 자신의 기예를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함께 즐김이라는 것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자신이 노력을 하여 갖게 된 예인으로서의 능력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줌으로써 함께 공유를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춤꾼, 소리꾼 등 다양한 예능의 전문가 집단이 있다고 하겠다.

○ 상여꾼 / 출상을 할 때 상여를 메는 사람들을 말한다. 예전에는 영구차로 씽~ 하고 장지로 가는 것이 아니고, 꽃상여를 만들어 여러 사람이 상여를 메고 상엿소리에 발을 맞추어 장지로 향하고는 했다. 이 안에 발을 못 맞추는 짝발이라도 있으면 곤란을 당한다. 이렇게 마음을 합하여 상여를 메는 사람들을 상여꾼이라 한다. 그리고 그 앞에서 선소리를 하는 사람을 ‘향두꾼’이라 한다. 이 향두꾼은 한 마디로 상여꾼을 인솔하는 지도자인 셈이다.


그러고 보면 꾼이란 참 많은 노력을 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말이다 여기서 정말 알 수 없는 한 가지가 자꾸만 날 괴롭힌다. 꾼이란 다 좋은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꾼도 있기 때문이다. 사기꾼도 있고 훼방꾼도 노름꾼도 있기 때문이다.

꾼에도 종류가 있어

‘사기꾼’을 찾아보니 [명사] ‘사기를 일삼는 사람. 사기사(詐欺師). 사기한(詐欺漢)’이라고 되어 있다. 물론 사기란 남을 속여 자신의 이익을 채우는 사람이란 뜻이다. ‘훼방꾼’이란 남의 일에 훼방을 놓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니 좋은 꾼이 아님은 자명한 일이다. ‘노름꾼’이야 노름에 미쳐 가정을 돌보지 않는 사람이니 오죽하리오.

그러고 보면 ‘누리꾼’ 중에도 같은 이름을 갖고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다. 남에게 좋은 정보를 주고 즐거움을 주며, 양식이 될 만한 글을 쓰는 사람은 <좋은 누리꾼>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유 없이 남을 비방하고 폄하하면서, ‘카더라’ 식의 글을 적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나쁜 누리꾼>에 속할 것이다. 좋고 나쁜 것은 스스로가 판단하길 바란다.

그런데 이런 같은 이름을 가진 ‘꾼’이 또 하나가 있다. 바로 ‘정치꾼’이다. 정치꾼이란 그야말로 정치를 하는 사람이다. 흔히 ‘정치인’ 혹은 ‘정치가’라고 표현을 하지만, 이들이 좀 더 전문적인 집단으로 승화를 하기 위해서는 ‘인(人)’보다는 ‘꾼’이 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그 꾼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니, 낮추어 부르는 말이라고 표현을 한다. 예를 들어 사전에서 농사꾼을 찾으면 ‘농사짓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으로 표현을 하기 때문이다.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꾼’이 필요해

이 ‘정치꾼’은 사전에 ‘정치가를 낮추어 이르는 말, 정치에 관계되는 일에 빠지지 아니하고 꼭 참여하는 사람’.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내가 생각할 때는 정치꾼이란 ‘정치를 해서 국민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국민들의 권익보호와 복지를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그런 전문가’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요즈음은 아무리 보아도 이 정치꾼들이 국민을 위해 노력을 하면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저 혼자 잘 먹고 아전인수 격인 주장만 하면서 국민들을 내동댕이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요즘 가만히 보면 무엇인가 심상치가 않은데, 그런 내용을 속속들이 모르니 더욱 답답한 일이다.

내년에 총선이 있다. 여야가 모두 새판 짜기를 시작했다. 언제나 그렇듯, 이번에도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정작 국민들은 등을 돌린 지가 오래이다. 이젠 지금까지의 그런 구태한 모습들을 보여서는 국민들의 눈길을 받기가 쉽지가 않다. 이제는 정말로 국민들을 위한 그런 전문적인 ‘꾼’이 필요할 때이다. ‘싸움꾼’이나 ‘난동꾼’이 아닌, 국민을 위하는 그런 듬직한 즐거움을 주는 ‘꾼’ 말이다. 동지 팥죽 생각을 하다가말고, 별 생각을 다 한다. 아마도 동지팥죽을 들고 꼭 가고 싶은 곳이 있기 때문인지.

2년 전인가 4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들락거리던 다음 블로그와 티스토리를 떠났다. 그리고 1년 6개월 만에 다시 돌아왔다. 많은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문화재를 알리려면, 다음 뷰에 글을 송고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 때문이다.

티스토리 초대장을 받은 것이 올 4월인가 보다. 티스토리는 개설을 해놓고도 글도 쓰지 않고 송고도 하지 않았다. 그 때 당시 책을 쓰는데 몰두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정확히 이야기를 하자면, 술 마시기에 급급했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한 달이면 10여 차례나 현장답사를 하면서, 쌓여만 가는 문화재답사 자료들을 보면서 한숨만 내쉴 수는 없는 일. 친분이 있는 블로거 한 분의 종용이 가장 컸을 것이다. 다시 돌아오라는.

한달 동안 60편의 글을 썼다. 매일 두편씩 쓴 것이다. 그리고 1,200개가 넘는 댓글을 달았다.
 
한 달간 송고한 포스팅이 60편

2010년 8월 2일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쌓인 글이 60편. 하루에 두 편 씩을 송고를 한 셈이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글을 쓰느냐고 한다. 현장 답사를 다니면서 쓰는 글은 앉아서 감상문을 쓰는 것과는 다르다. 시간과 경비가 만만치 않게 깨진다. 하지만 문화재를 내 눈으로 보지 않고 어떻게 느낌을 쓸 수 있을까? 그래서 힘이 들어도 현장을 나가 돌아다녀야 한다.

낮에는 근무를 해야 하는 나로서는 시간이 밤 밖에 나질 않는다. 점심시간을 잠시 이용해 전날 써 놓았던, 두 번째의 글을 올려놓고 부리나케 나가야 한다. 아니면 미리 예약송고를 해놓던지. 보통 두 편의 사진을 고르고 글을 쓰려면 두 시간 정도가 필요하다. 그래놓고 이웃 블로거들의 집을 찾아다니면서 인사를 하다가 보면 시간은 두 시를 훌쩍 넘기기 일쑤다. 그렇게 보낸 한 달이다.

어느새 이렇게 순위가 매개져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별 의미가 없다.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는 노력을 따라 온다.

먼저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오해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식 잘난 체는..’이란 생각이 드시는 분들은 바로 글을 그만 읽으셔야만 한다. 계속 그런 쪽으로 흘러 갈 수도 있으니. 처음 글을 송고하고 난 뒤 우연히 여기저기 다니다가 보니 순위라는 것이 있다. 굳이 순위를 매겨야 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전체 9287위>란다. 두 편의 글을 송고하고 난 뒤니, 적어도 그 앞에 글을 쓰시는 분들이 그만큼은 된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싶다.

순위 매김에 마음을 쓰는 인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은 한 번씩 드려다는 본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400 등으로 올라 있다. 아마 현장을 다니면서 쓴 글이고 전통문화를 쓰는 분들이 많지 않아서, 다음 측에서 나름대로 배려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꼬박 한 달을 블로그에 매달려 살았다.

순수문화의 글을 쓰는 분들이 많지가 않아 오히려 득이 되었다.

난 한 달 동안 이렇게 치열한 싸움을 했다.

처음 글을 송고하면서 15편의 글을 쓸 때 까지만 해도 베스트에 걸리지가 않는다. 글을 쓰기 시작하고 일주일이 지난 15번 째 글이 열린 편집 베스트에 걸리더니, 그 뒤로 하루에 두 편의 글이 모두 베스트에 걸리기도 했다. 순수문화를 쓰는 블로거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글을 자주 쓰는 나로서는 그것이 득이 되었던 것만 같다. 하지만 추천이나 구독은 아주 미미한 정도이다. 하루에 고작 100 ~ 200명이 들려가는 곳일 뿐이다. 추천은 많아봐야 40 ~ 60 정도이니, 내가 찾아간 분들의 절반 정도뿐이다. 그래도 끊임없이 찾아가는 노력을 한다.  

그 한 달 동안 나는 나름 무수한 블로그를 방문을 했다. 그들이 오건, 오지 않건 그것은 그들의 몫이다. 물론 티스토리를 떠날 때 황금펜을 갖고 있었으니, 그도 다시 돌아와 글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찾아보지 않아도 그들이 찾아올까? 그것은 나만의 착각일 뿐이다. 지금도 난 아침이면 거의 100명에 가까운 분들을 찾아다니면서 추천을 하고 댓글을 단다. 그러면 내 글에도 추천이 100개는 기본적으로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그렇게 다녀도 고작 30% 정도만이 답방을 오는 정도이다.

티스토리와의 기나 긴 싸움이다. 아니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이용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전쟁이라고 해야 옳다. 난 요즈음 세대들이 이야기하는 컴퓨터의 기능조차 모른다. 그저 사진을 작업하고 그것을 글을 써 올리는 것이 내가 유일하게 자신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답답할 때가 많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물어물어 하면 된다. 우리 문화재를 한 사람이라도 더 볼 수가 있다면, 난 그것으로 다시 시작한 티스토리의 덕이라는 생각이다.

현장을 찾아다니는 답사글은 쉽지는 않다. 하지만 도전해볼 만 하다. 다음측의 배려도 고맙다.

이렇게까지 많은 글을 쓸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글을 쓰는 것에 재미를 붙였던 것도, 알고보면 매일 거르지 않고 들려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 알음부터 지금 새롭게 알아가는 모든 분들의 힘이 되는 그런 글이 없었다면, 아마 오늘 이런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오늘 이 자리의 공은 모든 그분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 분들이야 말로 문화재에 대한 글은 쓰지 않아도 나와 함께 우리 문화를 답사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진정한 전도사라고 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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