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린 휴게소에서 참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았다. 나이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녀가, 사람들이 많은 휴게소에서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곁에 서 있던 내가 다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남자가 여자를 향해 퍼 뭇는 막말이었다. 한 마디로 여자를 존중하는 마음이 쥐뿔도 없는 그런 말투였다.

 

“야~ 네가 그따위로 사니까 남들이 막하는 거야”

“당신은 어떤데?”

“네가 한 짓을 생각해봐 내가 화 안나게 되었는지. 넌 안 돼.”

 

 

글쎄다. 이 대화만 갖고는 도대체 왜 말다툼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무슨 잘못을 얼마나 저질렀는지는 몰라도, 그 사람들이 많은 휴게소에서 목소리를 높이다니.

 

“야 얼른 오지 않고 뭣해,”

“야, 야 하지마.”

“이걸 그냥”

 

바로 한 대 칠 기세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참 어이가 없다. 대화를 통해보면 두 사람은 부부인 듯하다. 그런데 어째 저렇게 자신의 부인에게 막말을 할 수가 있을까? 남편조차도 챙겨주지 않고 함부로 대하는데, 남들이라고 대우를 할 것인가?

 

함부로 하는 남자, 나이 먹으면 서럽다.

 

요즈음은 남녀가 평등하다고 한다. 오히려 여자들이 시회생활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가정에서의 지위가 반대로 된 경우도 허다하다. 심지어는 남편이 전업주부의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런 시대에 말끝마다 “야”라는 호칭으로 군림하려는 이 남자 분. 나이가 먹으면 어떤 대우를 받을까?

 

 

황혼이혼의 사유된다.

 

인터넷을 뒤지다가 보면 요즈음 황혼이론이 급증한다는 내용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젊어서 남편과 아이들에게 매어 살던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찾겠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한다. 이유야 어찌되었거나, 이런 사회풍조를 만든 이유에서 남자들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듯하다.

 

내가 아는 지인 중 한 분도, 나이가 65세가 넘어서 갈라서신 분들이 있다. 그 연세에 어쩌자는 것이냐고 했지만, 부인이 워낙 강하게 요구를 해 어쩔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평생 그만큼 정성을 드려서 보필을 했으니, 이젠 좀 편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남의 일에 이런저런 말을 할 수도 없다. 다만 이 지인 분이 평소에 부인에게 한 행동이, 무시하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여자들에게 점수를 따는 방법

 

처녀총각 때야 자신들이 좋으면 그만이라도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난 뒤에는 모든 사정이 달라진다. 남자들이라고 해서 여자에게 함부로 했다가는, 말년에 이 지인분과 같은 일을 당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한 후배의 이야기를 해보자. 정말 실력이 출중한 사람이다. 벌써 결혼 한지가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신혼부부처럼 산다. 그 비결은 부인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돈을 잘 벌지는 못하지만, 작은 선물이라도 끊임없이 부인에게 한다. 심한 말 한마디 안하고 사는 남자. 그리고 선물을 하는 남자. 이 남자가 사는 법이다.

 

부인도 늘 이야기를 한단다. “조금만 돈을 잘 벌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멋진 신랑이다”라고. 평소에 밖에서 부인과 주고받는 통화를 들어보아도 그런 생각을 할 만하다고 본다. 통화내용을 들으면 거의 닭살이 돋을 정도니 말이다.

 

아무리 여자가 잘못을 했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서 자신의 부인에게 막말을 해대는 휴게소에서 본 남자 분. 혹 이 글을 읽게 된다면 반성을 좀 하시라도 권해드리고 싶다. 내가 위하지 않는 내 사람, 결국 아무도 위해주질 않는다는 것은 세상 이치라고 말이다.(사진은 내용과 특정한 관계가 없습니다)

문화재 답사.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보면 참으로 희한한 것들을 만날 수가 있다. 주로 넘녀의 성을 상징하는 것들은 민속자료로 지정이 되는데, 그런 것들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애틋한 사랑이야기 한 자락쯤은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재미를 느끼는 것이기도 하지만.

충북 단양군 적성면 각기리. 이름부터가 유별나다. 이 마을에 가면 마을 입구에 돌이 서 있다. 흔히 ‘입석’ 혹은 ‘선돌’이라고 하는 이 돌은, 청동기시대부터 전해진 것으로 마을 입구에 세워진 것이다. 그런데 이 마을입구에 세워진 선돌은 두 개의 선돌이 성을 상징하고 있어 특이하다.


남녀를 상징하고 있는 두 기의 선돌

꽃이 피는 철이나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꽃구경이나 단풍구경이다 하면서 여행을 간다고 하면서 난리들을 피는데, 혼자 떠나는 문화재 답사는 늘 쓸쓸하다. 그러나 그 하나하나가 주는 의미를 되새기고, 그것을 정리한다는 것 또한 남들이 알지 못하는 재미가 있기도 하다.


 


각기리의 선돌을 보고 한참을 고민을 했다. 왜 두 개의 선돌을 멀찍이 떨어트려, 그 선돌을 금줄로 연결을 했을까? 정월에 마을 주민들이 모여 정성껏 제를 지낸 듯, 암돌과 숫돌을 연결한 금줄에 길지도 남아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이 두 개의 돌을 짚으로 이엉을 엮어 둘러쳤다는 것이다.

남성을 상징하는 숫돌은 서쪽에 서 있는데 끝이 뾰족하고 높이가 높다. 높이 275cm 너비 220cm, 두께 60cm 정도로 세모꼴 형태에 가깝다. 이 숫돌의 둘레에는 높이 65~70cm 정도의 단을 쌓아 놓았다. 넓이는 4m 정도에 길이는 3.5m 정도이다. 이런 단을 쌓은 것으로 보아 이 선돌은 마을의 신표로 제를 지냈음을 알 수 있다.

숫돌에 비해 동쪽에 서 있는 암돌은 넙적한 것이 특징이다. 높이는 180cm, 너비는 171cm, 두께 37cm 정도 규모의 자연석이다. 이 두 개의 돌은 17m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데, 마을에서는 이 돌을 각각 숫바위와 암바위라고 부른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암바위는 이엉을 엮어 치마처럼 밑 부분을 둘렀고, 숫바위는 머리 부분에 씌워놓았다.


둘러친 이엉이 성을 상징하고 있어

그저 바라다만 보아도 이 두개의 선돌이 성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돌을 두른 짚으로 만든 이엉 때문이다. 숫돌은 모자를 씌우듯 했고, 암돌은 치마를 둘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웃음을 터트리고 만다.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가린 것이다. 그 이엉으로 인해 양편 돌의 성별이 확연해진다.

마을이름인 <각기리>는 이 선돌의 모습이 뿔처럼 생겼다고 하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각기리의 선돌은 도로변 마을 초입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은 작은 골짜기의 물이 합쳐지는 곳이다. 여러 주변 상황을 살펴볼 때 각기리에는 선사시대부터 주변에 집단으로 사람들이 주거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각기리에 세워진 두 개의 선돌은 왜 남녀의 성을 상징하는 모습일까? 그것은 아마 이 마을의 여건으로 볼 때 풍농과 다산을 기원하는 것이라고 본다. 남자와 여자의 성기를 상징하는 마주 봄 두 개의 돌. 그 두 개의 돌을 금줄로 연결을 해 놓았다. 끈끈한 정으로 하나가 되는 부부와 같은 모습이다.

어느 곳에 있던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부부를 상징하는 암바위와 숫바위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것 하나에도 해학을 알고 멋을 아는 선조들의 지혜에 그저 감탄만 할 뿐이다

가을은 역시 산이 좋다. 높지 않은 산을 가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정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으로 몰려든다. 단풍이 제철을 맞으면, 산을 오르는 발길들은 더욱 잦아든다. 그래서 가을 산은 풍성한 이야기꺼리를 만들어 주는가 보다. 그 이야기 중에는 참 좋은 내용도 있지만, 참 씁쓰레한 내용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씁쓰레한 내용이, 산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산 인근이나 아니면 시내 한 복판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가 있는 일이다. 다만 씁쓰레한 일을 목격한 것이 산일뿐이다. 참 산에게 미안하다. 괜히 정신적 오염을 시킨 듯해서 말이다.


산길 걷는 남녀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

출장길에 수원에 있는 광교에 올랐다. 광교 저수지 안쪽으로 등산로가 나 있다. 그 안에 볼일이 있어 오르는 길. 갑자기 무릎이 심하게 저리다. 잠시 쉬고 있는 동안에 사람들이 내려온다. 남녀가 내려오는데 그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이 든다. 손을 꼭 잡고 내려오는 사람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연신 웃음소리가 숲길을 메아리친다.

저만큼서 오는 모습을 보면서 ‘참 아름다운 연인’이라는 생각을 한다. 요즈음에는 친구 녀석들도 건강을 위해 부부가 같이 등산을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실실 심통이 나기도 한다. 그건 머 어쩔수 없이 못된 성격 탓으로 돌리고는 있지만. 가까이 오는 두 사람의 대화소리가 들린다.

“그런 자기야 이번에는 어디로 가지. 1박으로 갈까?”
“그래도 되겠어?”
“괜찮아 일 다해놓고 가면되지”


부부사이인 듯도 한데, 대화가 조금 야릇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가 '참 세상을 왜 이렇게 남을 의심하며 살지?‘ 하면서 스스로를 탓한다. 그런데 휴대폰이 울린다.

이런 남편이 또 있다니

여자가 잡았던 손을 놓고 전화를 받는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뒷골이 찡하다.

“여보, 나 오늘 친구하고 산에 왔어. 아침에 등산 간다고 그랬잖아. 저녁에 일찍 들어갈 게”

이건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부부인줄 알았더니 전화를 받고 ‘여보’란다. 그러면 저 여자는 남편이 한 두엇 되나?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시간이 이제 점심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둘러댄다. 도대체 어디 살기에 저녁까지 무엇을 하려고. 참 혼란스럽다.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순간적으로 두 사람 다 눈길을 피하고 걸음을 빨리한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리나케 산을 내려가는 두 사람. 참 못 들을 것을 들었단 생각이다. 하기야 자신들이 좋아서 서로 사랑을 하겠다는데, 내가 참견을 할 필요는 없다.

요즈음 드라마고 무엇이고 맨 이따위 짓을 하는 것들만 보여주고 있으니 사람들이 무엇을 배우랴. 그런 방송을 보면서 사람들은 잠재적인 기억 속에 그런 것이 각인이 되어 나쁜 것이란 사고를 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참 가을 날 기분 좋게 산을 오르다가, 머 밟은 기분이 되어버렸다. 그 남편은 아무것도 모르고 열심히 땀을 흘리겠지.

요즈음 연애에 대한 글이 자주 올라온다. 물론 ‘연애에 대한 정석이 있나, 없나?’ 에는 확고한 대답이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듯, 연애에 대한 대답 또한 정답은 있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다. 내가 다르고 상대가 다르기 때문에, 그 많은 사람이 한 가지 룰에 적용이 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누군가 ‘당신 연애다운 연애 해보았어?’ 라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과연 연애다운 연애가 무엇인가라는 해답 또한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한다. ‘연애를 잘하기로 소문이 난 친구에게 조언을 들었다가, 괜히 망신만 당했다’는 말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바로 사람들의 마음이 일관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도 연애의 정석은 변하지 않는다?

세월이 흐르면서 남녀사이의 애정표현도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 애정표현은 그야말로 ‘순수’였다면, 현재의 애정표현은 ’발랄‘이라고 해야 할까? 어차피 내가 연애블로거도 아닌 다음에야, 그 표현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내 속내를 이야기하면 되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과거와 현재의 차이는 무엇일까?

과거의 애정표현은 그야말로 순수했다? 이 순수라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참 답답하기도 한 모습이다. 가슴 속에 담아두고서 혼자만 끙끙거렸으니 말이다. 요즘 시쳇말로 하면 ‘짝사랑’에 가깝다고 해두자. 마음에 있는 말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경우가 많고, 그러다가 자신의 가슴에 있는 사람이 훌쩍 딴 사람 품으로 날아가 버리면, 술로 세월을 달래기 일쑤였다. 한 마디로 답답한 인사들이라고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 하나는 참으로 오래 간직하고 살았다. 그렇다고 요즈음 젊은 세대들의 마음에 그런 애틋한 감정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의 순수한 감정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요즈음은 그것을 당당하게 밝힌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이렇게 솔직한 마음을 토로할 수 있다는 것이 어찌 보면 ‘발랄’이요, ‘당당’이다.

그러나 그 발랄하고 당당한 가운데서도 그 애틋한 마음은 변치가 않은 것만 같다. 나름대로 한 사람에게 향한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런 점에서 세월은 흘러도 연애의 정석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외형만 달라졌다고 보는 것이 맞는 이야기일 것이다.


진정성이 보인다면 연애해 보아도 좋다.

그런 순수한 감정을 어떻게든지 표현을 하는 사람들. 그 표현을 어떻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란 생각이다. 그보다는 그 표현은 좀 어눌해도, 마음에 진정성을 갖고 있다면 그런 사람과 연애를 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마음에 진정성을 어찌 알아볼 수 있을까? 그런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선 상대방만 배려를 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 눈에 항상 푸근한 감정이 실려 있다면 그 사람은 진정성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쉽게 만났다가 쉽게 헤어진다고 한다. 헤어질 때 깨끗하게 헤어지면 ‘쿨하다‘고 표현을 한다. 과연 그 쿨하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한때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보내는 것이 쿨한 것일까? 말로는 쉽게 헤어진다고 하지만, 그 속이 얼마나 탔는지는 본인이 아니면 알 수가 없지 않을까? 쿨하고 안하고는 바로 본인의 마음속에서만 알아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제 삼자가 왈가왈부 논할 수는 없지 않을까?

사족이 길면 글이 어지러워진다. 지금 이글을 쓰는 내가 그렇다. 연애박사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닌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다니. 참 내가 생각해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러나 이것 한 가지 만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남녀사이의 애정에는 정석이 없다. 다만 순수한 열정을 갖고 사랑을 했다면, 그것이 바로 그 두 사람이 하는 연애의 정석이 된다.

만일 내 이성친구가 진정성을 보인다고 하면, 표현은 그리 멋지게 하지 못해도 꽉 잡아라. 그것이 바로 좋은 이성을 얻는 방법이다. 나중에라도 그것이 오래 세상을 살면서도 꾸준한 사랑으로 내 곁을 지킬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절구는 곡식을 찧는 농기구의 일종이다. 절구 외에도 곡식을 찧는 기구는 방아가 있다. 방아는 연자방아, 통방아, 물레방아 등이 있다. 그 모습들은 저마다 다르고, 이용하는 방법도 다 다르다. 그러나 절구는 쇠절구, 돌절구, 나무절구로 구분을 하지만, 그 형태나 사용하는 방법은 같다.

사실 절구만큼 우리네 실생활과 밀접한 농기구도 그리 흔하지 않다. 절구는 곡식을 찧는 외에도 콩을 삶아 찧어서 메주를 만들거나, 그 외에 여러 가지 식물을 찧을 때도 사용을 했다. 그런 절구통은 예전에는 집집마다 한 두 개씩은 다 있었다. 이 절구를 요즈음은 인테리어를 하는데 사용하기도 하지만, 과거의 절구는 여인들과 가장 가깝게 실생활에 사용이 된 농기구 중 하나이다.


성을 기억해 낼 듯한 우리의 절구


흔히 우리는 나이 먹고 뚱뚱한 사람을 비유할 때 ‘절구통’이라고 표현을 한다. 절구 중에는 ‘통절구’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위아래가 굴곡이 없이 밋밋하게 만들어진 절구를 말한다. 아마도 그런 통절구라면 이런 표현이 가능할 것이다. 통절구는 대개 나무절구로, 둥근 나무를 중앙을 둥글고 깊게 파들어 간다.

돌절구나 쇠절구는 아래받침 부분을 잘록하게 만들어, 유한 선을 만들어 낸다. 이 절구는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절구질을 할 때 필요한 홍두깨인 ‘절구공이’이다. 이 절구공이를 갖고 절구통 안에 있는 곡식을 찧으면, 껍질이 벗겨지게 되는 것이다. 절구질을 할 때는 혼자하면 ‘외절구’요, 둘이하면 ‘쌍절구’ 혹은 '맞절구'라고 부른다.


은밀한 성을 노래하는 절구질

사람들은 왜 절구질을 하면서 ‘방아타령’이란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방아타령이라는 것이 정말로 방아를 찧으면서 하는 소리이기보다는, 절구질을 하면서 하는 소리이다. 즉 남녀 간의 ‘성(性)’을 표현하는 것인데, 절구질을 하면서 이런 소리를 한다.

쿵덕쿵 쿵덕쿵 찧는 방아 이방아가 뉘방아냐
건너 마을 김서방네 벼를 찧는 방아로다
건너 마을 김서방은 밤이 새도록 찧는다는데
우리네 서방은 어쩌자고 초저녁잠만 늘어가나
 

저기 가는 저 할머니 딸이나 있으면 사위삼소
딸이야 있지마는 나이 어려서 못 삼겠네
아이고어머니 그 말씀마소
참새는 작아도 알만 잘 낳고
제비는 작아도 강남을 가오
고추가 작아도 씨가 많고
가재는 작어도 돌팍만 인다오


민초들의 작업요에는 성적인 요소가 있다.

우리네 소리는 특별한 양식을 따지지 않는다. 그저 일을 하면서 힘든 노동을 잊기 위해 부르는 소리이다. 하기에 이 '방아타령‘이라고 하는 사설은, 방아타령과 여타의 노동요 사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저 힘든 절구질을 하면서, 그 힘든 작업에서 오는 고통을 잊기 위한 소리일 뿐이다. 그런데 그 소리 안에는 성(性)이 있다. 이웃집 남정네는 밤새 방아를 찧는다고 표현한 것이나, 우리 집 서방은 초저녁잠이 많다는 것은 모두 성을 빗댄 표현이다.

뒤이어 나타나는 사설도 마찬가지이다. 나이가 어린 소녀가 아마 시집이라도 가고 싶었는지, 아니면 평소 흠모하는 사내가 있어 마음이 들뜬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나이가 어리다고 하니 세상에 작은 것들을 들먹이며, 자신은 능히 성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빗대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곡식을 찧는 기구인 절구. 그저 단순히 농기구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노동을 해야 하는 농기구를 이용해, 우리네 여인들은 많은 소리를 창출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은연중 남녀 간의 성을 빗댄 소리로 전해졌다. 그것은 우리 민초들의 소리문화가 그만큼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한 것 하나를 갖고도,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우리네의 풍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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