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명의 여인들이 양 손에 채를 들고 신나게 북을 두드린다. 곁에서 보고만 있어도 절로 몸이 움찔거린다. 가수 박상철이 부르는 무조건이라는 노래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자 북을 두드리는 율동이 점점 다양해진다. 6개월 만에 인생이 달라졌다고 하는 사람들. 도대체 무엇이 얼마나 달라진 것일까?

 

살아가는 모습들이 다양해지면서 여인들의 생활도 달라지고 있다. 이제는 집안에서 살림만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나름대로 자신만의 생활을 즐길 줄 안다. 누구는 친구들과 어울려 등산을 다니기도 하고, 그중에는 낚시를 다니는 사람들도 있단다. 각 지자체에서도 주민센터마다 문화강좌라고 하여서 다양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놓고 있다.

 

 

매주 화요일 오후 4시부터 한 시간 30분 동안 수원시 영통구 중부대로 339에 소재한 원천동(동장 변응호) 주민센터 3층에는 난타동아리들이 모여 신바람 나게 북을 두드린다. 얼마 전에는 전 원천유원지인 광교호수공원 마당극장에서 첫 공연을 하기도 했단다. 6개월 만에 공연을 했다고 자랑들이 대단하다.

 

그때 공연을 하고나서 많은 분들이 문의를 하세요. 보기에도 신이 났던 모양예요. 그 날은 가족들도 함께 와서 열렬히 응원도 했어요. 남편이 와서 사진도 찍어주고 며느리에게 꽃다발을 받은 회원도 있어요.”라고 한 회원이 귀띔을 해준다.

 

난타를 하면서부터 인생이 달라졌어요.

 

한 시간 정도 연습을 한 것 같은데 등에는 땀들이 흘러 옷이 젖어있다. 그만큼 열심히 북을 쳤다는 것이다. 원천동 주민센터에서는 문화강좌로 난타를 시작한지 이제 고작 6개월이라고 한다. 그런데 벌써 공연을 하고 많은 박수를 받았다고 박은희 강사는 은근히 자랑을 한다.

 

 

이제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 처음으로 난타를 시작했는데 정말 즐거워요. 저는 건강을 위해서 시작을 했는데 난타를 정말 잘 시작한 것 같아요. 사는 것이 즐거우니까요.”

동아리 회장을 맡아본다는 강영옥(, 56)씨의 말이다.

 

요즈음 주부들을 상대로 개설하고 있는 문화강좌 중에 대세가 난타인 듯하다. 주민센터마다 난타동아리들은 빠지지 않는다. 일부 동아리들은 아마추어의 실력을 넘어서기도 한다. 전국을 다니면서 공연을 하는 동아리들도 수원에만 서너 팀이 있다. 주부들이 난타를 좋아하는 것은 아무래도 북을 치면서 스트레스가 풀리기 때문인 듯하다.

 

난타를 남들이 하는 것을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시작을 했어요. 이렇게 화요일에 만나서 한 시간 반 동안 북을 두드리고 나면 스트레스가 확 풀려요. 난타를 하면서 신이 나서 그런지 집안 분위기도 밝아진 것 같아요.” 동아리 총무를 맡아본다는 정미정(, 45)씨는 정말 잘 배운 것 같다고 웃으면서 이야기를 한다.

 

 

북을 치고 나면 모든 걱정이 다 사라져

 

연습을 할 때 중간에서 제일 신나게 북을 두드리고 있던 주부가 있다. 이영미(, 48)씨는 보는 사람들이 다 흥겨울 만큼 온 몸으로 북을 두드린다. 그렇게 흥겹게 두드리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은 물론, 집안 걱정까지도 사라진다고 한다.

집안에 걱정이 있거나 할 때도 신나게 북을 치고 나면 정말 모든 것이 다 해결이 되는 듯해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요. 그래서 살림을 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난타동아리에 들기 정말 잘한 것이죠. 그래서 목요일이 기다려지죠. 좋은 사람들도 만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니까요

 

이곳에 모인 난타동아리회원 중 가장 연장자라는 조동석(, 60)씨는 지자체에서 이렇게 시민들을 위해 좋은 문화강좌를 마련해주어 고맙다고 한다.

지자체에서 이렇게 주민센터마다 문화강좌를 마련해 주어서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도 주민센터에서 이렇게 좋은 강좌가 있다는 것을 잘 모르는 주부들이 많은 듯하다 . 좀 더 적극적으로 홍보를 해서 더 많은 분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일주일에 한 번 모인다는 연습시간을 빼앗는 것 같아 서둘러 인터뷰를 마친다. 기다렸다는 듯이 동아리회원들이 북에 달라붙는다. 1주일에 한 시간 반은 짧다는 것이다. 한 달에 한 번은 연습이 끝나면 동아리 회원들끼리 모임도 갖는다고 하는 원천동 난타동아리. 땀을 흘리면서 즐거워하는 그녀들의 표정에서, 주부들이 문화강좌 중 난타동아리를 선호하는 이유를 알만하다. 세상의 모든 스트레스를 북에 대고 두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어디를 가나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연희 패거리들은 바로 각종 타악기를 두드리며 신나게 장단을 몰아치는 난타와,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고 헤진 모자를 쓰고 얼굴에 칠을 하고 나타나는 각설이패(혹은 품바)들이다. 그 중 장바닥에서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것은 역시 각설이패다.

 

사실 각설이패들은 걸인집단이 아니다. 각설이는 구한말 유랑집단들의 한 유파다. 각설이가 거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누더기 옷을 입고 깡통을 들고 동냥을 다니는 모습 때문에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연희 후에 받는 동냥이 아니면 일체 받지를 않았다. 오죽하면 육당 최남선조차 수표교 밑의 각설이들을 보고 대단한 예인집단이라고 칭찬을 했을까?

 

 

구한말 유랑집단의 한 패거리인 각설이패

 

구한말 한창 정세가 어두웠다. 사람들은 날마다 먹고 산다는 것에 전전긍긍하던 시기였다. 이 때를 맞아 전국적으로 많은 예인집단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집단으로 구성된 남사당패였다. 남사당보다 먼저 생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당패는 술동이를 남정네 등에 지워 술을 팔고 다니는 사당패였을 것이다. 이들 사당패들이 있어 남사당이라고 불렀다고 하니 말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유랑집단들이 생겨났다. 주로 절의 중창을 목적으로 절에서 내준 신표를 갖고 다니면서 걸립을 하는 절걸립패로부터, 중매구패, 솟대쟁이패 등 다양한 패거리들이 전국을 누볐다. 유랑집단들이 전국의 장거리나 사대부가를 누비면서 기예를 파는 것에 비해. 각설이패는 주로 정해진 정거리에서 소리를 팔아 연명을 했다는 것에 차이가 있다.

 

 

백제멸망 후에 보이기 시작했다는 걸인집단

 

각설이패들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는 정확히 알 길이 없다. 다만 전하는 말에 의하면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의해 망하자, 당시 지배계층은 떠돌이 나그네가 되어 거지로 변장하거나 혹은 정신병자나 병신으로 위장하여 걸인 행각을 했다는 것이다. 이때 문인 계통은 광대로, 무인 계통은 백정이나 줄타기 등을 하는 재인(才人)으로 전락하여 각설이 타령을 부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 설은 믿기 어려운 말이지만 각설이들이 부르는 소리는, 구전되어 오던 타령이 문자로 정착한 것은 조선조 때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조선 말기의 판소리 작가 신재효(18121884)의 변강쇠가에서 품바의 뜻이 입장고라 기록되어있고, 송순(14931583)이 지었다는 타령과, 작자는 알 수 없으나 조선조에 과거에 낙방한 선비들이 낙향하면서 걸인 행각 중 불렀다는 천자풀이 등이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고대소설이나 신재효 판소리집, 강령탈춤, 가산오광대 등에서 각설이타령이 등장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들이 부르는 각설이타령의 유형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많은 유형의 소리가 전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각설이패의 역사는 구한 말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허 이놈이 이래도 정승 판서의 자제로

팔도 감사를 마다하고 돈 한푼에 팔려서 각설이로 나왔네

지리구 지리구 잘한다 품바하고도 잘한다

앉은고리는 돈고리 선고리는 문고리 뛰는고리는 개고리

나는고리는 꾀꼬리 달린고리는 저고리 지리구 지리구 잘한다

 

 

각설이타령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어

 

각설이들이 부르는 각설이타령은 장타령이라고도 한다. 장타령이라는 어원은 ()’을 쫓아다니며 소리를 하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1에서부터 시작한 노래가 장(10, )으로 끝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각설이 타령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의 장타령으로 구분하는데 그 중 장()타령은 떠르르르르르르 돌아왔소. 각설이가 먹설이라 동설이를 짊어지고 똘똘 몰아서 장타령……대부분 이렇게 시작되며, “1자에 한자나 들고나 봐..”로 시작하는 것은 숫자 장(=)의 장타령이 되된다. 즉 그 사설의 종류에 따라 유형이 구분이 되는 것이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올 추석은 이르게 찾아왔다. 그리고 처음으로 <대체공휴일>의 시행으로 토요일부터 5일간이라는 긴 연휴를 즐길 수가 있다. 수원의 전통시장이 몰려있는 팔달문 상가들도 추석대목을 맞이하기 위해 동분서주 바빠졌다고 한다. 아마 이 추석장을 볼 때쯤 지동교에 가면 각설이패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신바람 나게 꽹과리와 북을 두드리며 부르는 장타령 한 대목을 들으면서, 올 추석은 모든 이들이 정말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은그런 풍성한 한가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어 JM은 아줌마의 줌마를 영어로 표기한 것입니다. 저희는 2009년에 수원시 영통구 매탄4동의 문화동아리로 결성이 되었습니다. 현재 12명의 동아리 회원들이 혹서기와 혹한기를 제외한 3~6월과 9~11월 동안 한 달에 4회 정도, 일 년이면 25~30회 정도의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타드락 김명애 단장의 말이다.

 

요즈음에는 어디를 가나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공연이 바로 난타가 아닌가 한다. ‘난타(亂打)’란 말 그대로 때리고 치는 것을 말한다. 대사 없이 리듬과 비트가 중심이 된 한국형 타악 퍼포먼스라고 보면 될 것이다. 일부에서는 비언어적 공연이라고도 한다. 요즈음 갖가지 매기를 부각시킨 많은 난타 공연팀들이 생겨나면서 재미를 더해가고 있기도 하다.

 

난타는 단순히 타악기를 치고 두드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음식을 만들면서 마구 두드리기도 한다. 주방장의 복장을 입고 나와 도마 등 두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가리지 않고 마구 두드린다. 그래서 점점 재미를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난타라는 이름으로 공연 장르가 생긴 것은 19971010일이었다. 난타는 대한민국의 뮤지컬 공연으로서, 송승환이 대표로 있는 PMC 프러덕션에서 창작한 작품이다.

 

 

어디를 가나 만날 수 있는 대중적인 퍼포먼스

 

송승환이 창안한 난타는 199710월에 서울 호암 아트 홀에서 초연을 하였으며, 말없이 소리와 몸짓으로만 공연을 한다는 "비언어적 표현"(Non-Verbal Performance)을 표방하는 것으로, 영국의 스톰프(Stomp)’와 미국 블루 맨 그룹의 튜브(Tubes)’ 공연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했다고 한다. 난타는 무엇보다 한국 전통 음악인 사물놀이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계승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난타는 이제 어디를 가나 만날 수 있는 대중적 퍼포먼스를 자리를 잡았다. 각 지자체마다 많은 난타 팀들이 공연을 하고 있다. 그 중에는 아마추어의 수준을 넘어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난타 공연 팀들이 상당수가 있다. 그 중에서 JM 타드락 난타 공연 팀은 이제 전국적으로 유명한 퍼포먼스 팀이 되었다.

 

저희들은 전국의 축제 등에 많은 초청을 받아서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초등학교 현장 체험도 하고 있어요. 북을 한 100여 대 갖고 가서 아이들이 전통 학습체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고요. 정기적으로 요양원 등을 다이면서 무료공연도 실시하고 있죠.”

 

 

남편들이 도와주기 때문에 마음껏 활동할 수 있어

 

28일 오후 4시 지동교에서 열린 지동시자의 날에 만난 JM 타드락. 무대가 넓지 않아 5명의 회원이 공연에 참어를 했다. 무대 위를 꼭 채운 갖가지 악기를 신바람 나게 두드리는 흥겨움에, 무대 앞에는 절로 구경꾼들의 춤판이 벌어졌다. 신명을 만들어내는 아줌마들의 파워를 실감할 수 있는 공연이다.

 

저희 회원들은 모두 주부들예요. 그런데 남편 분들이 상당히 좋아들 하시고 도움도 많이 줍니다. 오늘도 제 남편이 차로 악기를 모두 날라주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어디를 가나 마음 편하게 공연을 할 수 있죠.”

 

전국으로 다니면서 공연을 하는 주부들로서는 남편의 도움이 절대적이라는 것. 일 년에 한 번은 평택항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고 중국으로 향하면서 선상에서와 중국에 도착해 호텔 등에서 보따리장사들을 위한 공연도 한단다.

 

평택항에서 중국으로 오가는 객선은 모두 4. 영성(퉁청)을 오가는 대륭호는 14시간, 위해(웨이하이)를 오가는 교동호 14시간, 연운(렌윈)을 오가는 연운호 24시간, 일조(르지오)를 오가는 일조호 20시간 동안 배를 타며 일주일에 3회를 오간다. 이 중에서 한 항로를 선택해 배를 타고 위문공연을 하는 셈이다.

 

 

이제는 해외공연을 하고 싶어

 

30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에 공연을 하느라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그런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구경꾼 중 한 어르신이 음료를 사다가 준다. 그만큼 공연은 사람들과의 교감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JM 타드락 공연 팀은 그런 교감을 끌어나기에 충분할 정도로 많은 노력을 하는 난타 공연 팀이다.

 

이제는 국내만이 아니라 해외공연도 나가고 싶어요. 그동안 정말 열심히 연구하고 노력했거든요. 이제는 한국 아줌마들의 얼마나 대단한가를 해외에 알려주어야죠.”

아줌마들의 반란으로 시작한 JM 타드락 난타팀. 남편들의 도움을 등에 업은 이 아줌마들의 흥겨운 한마당이 이젠 세계로 뻗어가기를 고대한다.

 

정조로 상가번영회에서 준비한 공연도 흥겨워

 

생태교통 시범지역인 행궁동 일원, 골목마다 돌아보면 재미가 쏠쏠하다. 무심코 그냥 지나치다가 보면 잘 보이지 않던 것들도, 주변을 잘 살펴보면 여기저기 재미가 있다. 정조로를 지나다가 보면 골목 안에 무대가 보인다. 장터라고 적힌 이곳은 정조로 주변에 상인들인 정조로 상가번영회에서 준비를 한 것이다,

 

정조로 상가번영회(회장 표장손. 54)는 한 때는 가입 회원수가 100여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 둘 떠나고 50여명의 회원들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 상인들이 마련한 무대가 91일부터 8일까지, 매우 오후 4시부터 두 시간씩 생태교통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공연을 펼친다.

 

 

다양한 공연도 볼 수 있어

 

골목 입구에 마련한 작은 무대지만, 재미는 쏠쏠하다고 구경꾼들은 이야기를 한다. 난타 공연이며 경기민요, 현대 퓨전음악에 전통 춤까지 관람을 할 수가 있다. 중간에는 떡메치기도 할 수 있고, 그렇게 떡메를 친 것으로 인절미도 만들어 나누어 준단다.

작은 무대 옆에는 공터에 마련한 전시장과 먹거리가 있다. 전시장에는 국악기며 골동품 등이 전시가 되어있으며, 밖에는 서각과 골동품, 그림들이 전시가 되어있다.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그림방 대표 박복철씨에게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이 전시는 어떻게 마련되었나?

생태교통 수원2013’이 우리 지역에서 열린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우리 번영회 회원들도 무엇인가 동참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마련을 했어요. 그런데 이 장소가 너무 외져서 그런지 사람들은 많지가 않아요.

 

-몇 명의 회원이 참가를 하고 있는지?

이번 전시는 회원 8명이 함께 마련했습니다. 그림은 의당화랑, 수지표구사, 교동필방에서 전시를 하고 있고요, 골동품은 고방골동품, 그림방골동품과 유화랑에서 내놓았어요. 악기는 하늘소리 국악사의 것을 전시했고요. 서각은 신라공예사에서 마련했어요. 모두 8명의 회원들이 각자가 소장하고 있는 것들을 전시한 것이죠.

 

 

- 공연도 직접 섭외를 하셨다고 들었는데?

, 공연은 저희 회원들 중에 국악을 하시는 분들, 소리를 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그 분들이 섭외를 하셨어요. 여기 장터 무대에 서는 공연은 모두가 저희가 주관을 하는 것입니다.

 

- 장사는 잘 되나요?

기대만큼 미치지 못합니다. 이곳이 주 행사장과 거리가 있어서인지 사람들이 다니지를 않아요. 어차피 6시까지 공연을 마치고나면, 저희들도 철수를 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보니 많은 분이 찾아오지는 않아요.

 

- 공연과 전시는 언제까지 하나요?

저희들은 98일까지만 합니다. 그리고 전시 등은 상황을 보아서 하던가, 아니면 저희들의 점포를 이용해 계속 홍보를 할 생각입니다.

 

 

정조로 상가번영회에서 준비한 장터 공연과 전시장. 국악기 전시장에는 보기 힘든 편경과 편종 등을 절반 크기로 제작한 악기 등이 진열이 되어있다. 골동품 전시장 에는 옛 농기구를 비롯해 여러 가지 볼 것들이 전시가 되어 있다. 각종 그림은 물론, 목조각으로 만든 장승과 서각들도 전시가 되어있다.

 

가끔은 외국인들이 흥정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8일까지 계속되는 정조로 상가번영회의 공연과 전시. 생태교통 지역을 돌아다니다가 보면 이런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생태교통 시범지역은 한 곳에 머무르는 것보다, 골목마다 누비면서 재미를 찾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523일 오후 1. 장안구 율천동 주민센터를 찾아보았다. 주민센터 지하실에서 요란하게 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바로 지역의 주부들이 모여 난타연습을 하고 있는 문화강좌이다. 율천동은 3개 팀의 난타 연습생들이 있다. 그 중 목요일 오후에 연습을 하기 위해 모이는 팀은 18명이다.

 

앞에 북을 놓고 두 손에 채를 들고, 신바람 나게 몸을 움직여가면서 북을 두드리고 있는 주부들. 율천동 주민센터에서 마련한 문화강좌 중 난타 연습이다. 지도 강사인 김형숙씨의 지시에 따라 14명의 주부들이 흥이 올랐다. 곁에서 구경만 해도 절로 어깨가 들썩인다. 그만큼 신바람 나게 음악에 맞추어 북을 두드린다.

 

 

4년 째 강사로 난타를 가르치는 김형숙 강사

 

난타를 지도하고 있는 김형숙 강사는 음악을 좋아해, 수원문화원에서 처음으로 북을 치기 시작했다고. 그러다가 3~4년 전부터는 강사로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JM타드락이라는 난타팀에서 활도을 하고 있다는 김형숙 강사는 일 년이면 30~40회 정도의 많은 공연을 하고 있다는 것. 현재는 장애인복지관과 매탄4, 방과 후 수업 등 몇 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기도 한다고.

 

요즈음에는 어디를 가나 난타 공연을 접할 수가 있다. ‘난타(亂打)’란 말 그대로 함부로 때리고 치는 것을 말한다. 대사 없이 리듬과 비트가 중심이 된 한국형 타악 퍼포먼스라고 보면 될 것이다. 일부에서는 비언어적 공연이라고도 한다. 요즈음 갖가지 매기를 부각시킨 많은 난타 공연팀들이 생겨나면서 재미를 더해가고 있기도 하다.

 

더욱 음식을 만들면서 마구 두드리는가 하면, 주방장의 복장을 입고 나와, 도마 등 두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가리지 않고 마구 두드린다. 그래서 점점 재미를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난타라는 이름으로 공연장르가 생긴 것은 19971010일이었다. 난타는 대한민국의 뮤지컬 공연으로서, 송승환이 대표로 있는 PMC 프러덕션에서 창작한 작품이다.

 

송승환에 의해 창안된 작품

 

199710월에 서울 호암 아트 홀에서 초연을 하였으며, 말없이 소리와 몸짓으로만 공연을 한다는 "비언어적 표현"(Non-Verbal Performance)을 표방하면서 영국의 스톰프(Stomp)’와 미국 블루 맨 그룹의 튜브(Tubes)’ 공연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하기도 하였다고. 난타는 무엇보다 한국 전통 음악인 사물놀이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계승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이제는 대중적인 장르가 되어버린 타악 퍼포먼스인 난타. 열심히 지도강사의 요구에 따라 몸을 흔들며 북을 치고 있는 주부들. 운동도 되지만 이렇게 북을 두드리면서, 생활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남편이 시간까지 챙겨주죠

 

율천동 오후 1시 난타팀의 총무를 맡고 있다는 오영희(, 61)씨는

저는 이제 남편이 먼저 연습하는 날이라고 알려주기도 하죠.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색소폰 동호회에도 가입되어 있기도 하고요. 난타를 시작하면서부터 활발해졌어요. 예전보다 집에서 말이 많아져서 남편도 좋아하고요란다.

 

그만큼 난타는 사람의 성격까지도 바꾸어 놓을 정도로 좋은 음악이다. 선우 복(, 55)씨도 사람이 더 많이 쾌활해졌고, 더불어 가정도 편안해졌다면서 난타 칭찬들을 하기에 주저함이 없다.

 

 

이제 배우기 시작한지는 1개월 반 정도가 지났지만, 당장에라도 무대에 올리면 음악에 맞추어 난타공연을 할 수 있다는 율천동 난타팀. 아마 올 연말이 되면 지역에서 하는 행사에서 만나볼 수 있지나 않을까? 18명의 주부들에게 거는 기대가 큰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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