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고 난 10일, 여주 5일장을 찾았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오면 걱정이 되는 분들은, 난전을 펼치고 있는 어르신들이다. 눈을 대충 치운 장거리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몇 가지 안 되는 물건을 펴놓고,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계시는 할머니들이 보인다.

 

하늘이 하시는 일인데

 

"할머니 추운데 나오셨네요, 춥지 않으세요?"

"좀 춥네."

"이나저나 왜 5일 장날마다 이렇게 눈이 오거나 비가 오네요."

"그러게, 올해는 계속 그러네."

"많이 파셨어요?"

"아직 개시도 못했어. 이나저나 하늘이 맘이 상하셨나."

 

좌판에 벌려놓고 있는 물건을 보니 몇 가지되지도 않는다. 깻잎과 새로 뜯은 냉이, 그리고 동치미무와 짠지무가 전부다. 이것을 들고 장마다 나오시는 할머니께 함자를 여쭤보기도 죄스럽다.  

 

"냉이는 어디서 캐셨어요?"

"집 근처에서 캤지"

"집이 어디신데요?"

"내양리"

 

▲ 할머니의 난전 몇 가지 되지도 않는 물건을 펴시고 장사를 하신다

 

여주 장날만 나오신다는 할머니

 

몇 가지 되지도 않는 물건을 벌여놓고 계신 할머니는, 장 한쪽 끄트머리 사람들의 왕래도 드문 곳에 자릴 펴고 계시다. 그렇게 하루 종일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어도, 이쪽은 왕래가 드문 곳이니 팔릴 것 같지도 않다.

 

"여기서 많이 파실 수 있겠어요?"

"아는 사람들은 오지. 이 짠지무는 식당을 하시는 분이 4만원 어치나 사셨어. 맛이 있다고. 사가서 양념해 놓으면 정말 맛있어"

"오늘은 좀 파셨어요?"

"이것 좀 사가, 남자가 개시하면 잘 팔려"

"그 깻잎 오천 원 어치만 주세요."

 

깻잎을 담고 계시는 할머니는 여주 장날만 나온다고 하신다. 이만한 물건을 갖고 어떻게 이 장 저 장을 다니겠느냐는 할머니는, 이렇게 작은 물건이나마 파는 것도 다 하늘이 하는 일이라고 하신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장날마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오는 것도 다 하늘이 하는 일이요, 많은 사람들을 보내고 안 보내는 것도, 다 하늘이 정해 놓은 일이라는  것이다.

 

▲ 깻잎 덤으로 깻잎을 듬뿍 담아주시는 할머니는 이렇게 일기가 고르지 못한 것도 모두 하늘의 뜻이란다.


할머니의 하늘은 왜 마음이 상하셨을까?

 

그런 할머니의 하늘은, 오늘이 장날인데도 눈이 오고 날이 춥게 만들었다. 연세가 드신 분이 추위에 몸을 웅크리고 계시면서도, 날씨 탓을 하지 않으신다. 할머니의 하늘은 과연 무엇일까?

 

"깻잎 많이 담지 마세요."

"먹을 만큼은 주어야지. 개시를 잘 주면 하루 종일 손님이 많아."

"많이 파세요. 추운데 불이라도 좀 지피시지 않고."

 

할머니는 모든 것이 다 하늘이 알아서 하신다고 말씀을 하신다. 인간이 마음대로 일을 저지르면 결국 그것은 인간에게 재앙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눈이 많이 오는 것도, 비가 많이 오는 것도 다 인간들 스스로가 하늘의 뜻을 거역했기 때문이라는 것. 과연 할머니의 하늘은 어떤 것일까? 장을 돌면서 내내 생각을 해보아도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할머니의 하늘은 듬뿍 물건을 더해 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 작은 난전 여주 5일장 한편 끄트머리 사람들의 왕래도 드문 곳에서 장사를 하시는 할머니의 마음은 하늘을 닮으셨다는 생각이 든다,
 

(출처 : 오마이뉴스 / 2010, 3, 11)

2월 5일, 며칠 안남은 설 대목을 준비하고 있는 여주 5일장. 다른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장을 찾았다. 아무래도 설이 10여 일 밖에 남지 않았으니, 꼭 장을 보지 않는다고 해도 이것저것 알아보려는 사람들로 더욱 붐빈다. 양평, 이천 등 가까운 곳에서 온 사람들까지, 모처럼 활기를 띠는 여주장이다.

 

여주 전통 5일장은 경기도에서는 성남 모란장 다음으로 큰 장으로 손꼽힌다. 5일장 날이 되면 장 주변의 주차장은 물론, 인도에까지 난전이 서는 바람에 통행이 조금은 불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것이 5일장의 북적이는 재미 중의 하나이다. 고함치는 소리, 흥정하는 소리, 심지어는 작은 스피커까지 들고 나온 판이니 소음도 만만치가 않지만, 사람들은 그런 북적임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하다.

 

5일장의 아름다운 부부장꾼

 

▲ 족발 보기에도 먹음직스런 족발이 군침을 돌게한다. 두 사람의 정성이 있어서 인지, 더욱 맛이 좋다고 한다.
 

 

여주 5일장 한 복판에 족발을 파는 난전이 있다. 두 사람의 남녀가 열심히 족발을 썰고, 그릇에 담아낸다. 벌써 여주 장에서만 3년 넘게 한 자리에서 족발을 팔고 있는 오재현(남, 46세), 방영심(여, 42세) 부부. 여주 5일장을 찾는 사람들이라면 이들 부부의 금슬을 늘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사업을 하다가 실패를 했죠, 누구나 다 그런 실패 한 번쯤은 하는 것 아닙니까? 그대로 무너질 수가 없어서, 족발 장사를 시작을 한 것이 벌써 6년째네요. 여주 장에서 장사를 시작한 것은 올해로 3년이 되었고요."

 

말을 하면서도 연신 족발 썰기를 멈추지 않는 오재현씨. 남들이 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부부가 함께 장에 나와 장사를 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여주 장을 돌아다니면서 몇 번을 보았지만, 한 번도 얼굴을 찌푸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저 늘 웃는 모습으로 손님들을 대한다.

 

"5일장을 돌면서 보면 지난해보다 많이 힘들다는 것을 피부로 느껴져요. 하지만 열심히 하다가보면, 그 또한 힘이 들어도 보람이 있으니까요. 5일장을 돌면서 하루 종일 서 있다는 것이 여간 힘이 들지가 않아요. 그래서 4일은 장을 돌고, 하루는 쉬고 있죠. 그렇지 않으면 체력이 달려서 할 수가 없어요."

 

네 곳의 장을 돌고, 하루는 쉬어

 

▲ 썰기 이야기를 하면서도 밀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연신 족발을 썰고 있다.

▲ 족발 여주장이 다니는 5일장 중에서 단골이 가장 많다고 한다.


오재현씨 부부는 여주 5일장을 비롯해, 충북 단양의 매포장, 충남 천안의 성환장, 그리고 충북 괴산 등 4곳의 5일 장에서 장사를 한단다. 현재 충주에 거주하면서 이 네 곳을 4일 동안 돌고, 하루를 쉬어 다시 장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하루에 70 ~ 80개 정도를 파는데, 하루 종일 쉴 수가 없어요. 다음 장은 대목장이라 아무래도 수량을 좀 더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요즈음은 그래도 단골이 많이 생겨서 많이 좋아진 편이죠"

 

주변의 상인들은 이들 두 사람의 부부가 정말 열심히 산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부부가 다니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저는 네 곳을 모두 돌지는 못해요. 집안일도 해야 하기 때문에. 여주장과 괴산장만 돌고, 매포와 성환은 장이 좀 작다보니 아이들 아빠가 혼자 다녀요."

 

그렇게 혼자 남편을 장으로 보내고 나면, 늘 마음이 편치가 않다고 한다. 남편이 썰어 놓은 족발을 포장을 하면서 방영심씨가 하는 말이다. 힘이 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힘이 들기는 하지만 같이 다니니 오히려 즐겁다고 웃음을 짓는다. 언제나 손님이 오면 웃음으로 대하기 때문에, 5일장을 함께 나오는 장꾼 중에서는 소문이 자자하다.

 

5일장의 장꾼들은 끈끈한 정이 있어

 

▲ 대담 장사를 마칠 시간이 오후 7시. 오재현, 방영심 부부와 대담을 하는 기자.

 

"5일장을 다니면서 장사를 하시는 분들끼리 모이고 있어요. 이렇게 난전을 하고 있지만, 이분들과 만나면 오히려 점포를 지니고 계신 분들보다 더 정이 깊어요. 아무래도 여기저기 다니면서 장사를 하기 때문에, 힘이 들어 더욱 정을 느끼는 것 같아요."

 

주변의 난전을 하는 상인들과 속 깊은 우대관계를 갖고 있다는 오재현씨. 그래서 장에 나온다는 것이 단지 물건을 팔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함께 장사를 하는 분들이 보이지를 않으면, 내색은 하지 않아도 걱정이 많이 된다고 한다.

 

"저 부부를 보면 참 부지런도 하지만, 어째 저렇게 금슬이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3년 넘게 보아왔지만 힘이 들기도 할 텐데, 한 번도 낯을 붉히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우리 5일장의 보배죠."

 

장마다 나온다는 한 할머니의 칭찬이다. 앞으로 이 부부가 이루고자 하는 일이, 꼭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도 그 때문이다. 모처럼 여주 5일장에서 아름다운 부부를 만나, 보는 사람도 기분이 좋다. 역시 웃으면서 산다는 것은 자신만이 아니고, 주변이 모든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것 같다. 오후 7시가 넘어 어둠이 깔린 장터에서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 아름디운 부부. 얼굴에는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그 아름다운 미소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출처 : 오마이뉴스 / 2010,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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